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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나루미를 보내 거점을 만든 진성은 이제 급한 일이 모두 끝났다는 듯 신창에 틀어박혀 버렸다.

         

       이는 이제 주술과 주물에 집중하고 싶다는 진성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가.

         

       ‘사크에아 인신공양 주술 의식’의 대가가 찾아온 것이다.

         

       ‘쯧.’

         

       진성이 행했던 주술은 옛 바빌로니아에서 행했던 인신공양에서 비롯된 주술 의식이었다.

         

       사크에아, 혹은 사카에아라고 불렸던 이 축제는 로우스 달의 16일에 시작해 닷새간 진행되었으며, 하인 중 하나가 주인과 자리를 바꾸고 주인인 양 행세하며 닷새간 집안을 다스렸다. 또한 주인으로 그치지 않고 왕으로 분장하기도 했는데, 이때 왕으로 분장한 하인은 조가네스(Zoganes)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왕궁 역시 이 축제에 참여하였다.

       왕궁에서는 사형수 한 명을 뽑아 왕의 자리로 올려 닷새간 왕이 누리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때 사형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조가네스(Zoganes)라는 칭호를 주고 왕처럼 대접해주었다. 하지만 닷새가 지나면 사형수에게 베풀어진 환락과 주연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을 싹 바꾸고 가짜 왕을 끌어내어 옷과 장신구를 벗겼고, 죽지 않을 만큼 흠씬 두들겨 팬 다음에 목을 매달거나 찔러서 죽여버렸다.

         

       이는 고대에 왕이라는 것이 절대권력을 가진 존재보다는 신의 대리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가교, 신 대신 숭배를 받고 신의 분노를 대신 받아줄 희생물이라는 개념에 있었기에 생긴 축제였다.

         

       다만 왕이라는 존재는 매년 한낱 희생물로 취급하여 바치기에는 무거운 존재였으며, 그 가치가 가볍지 않았다.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사크에아(sacaea).

         

       특정 시기에 사형수를 왕의 자리로 올려서 상징을 부여하고, 그것을 끌어내어 바치는 것으로 희생물의 대용품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사형수가 죽는 것은 ‘왕’이 그 나라에 들어찬 모든 액운을 끌어안고 신에게 ‘공양’ 되는 것이며, 액운이 빠져나간 빈 곳에 국가의 평온과 평화, 신의 은총이 들어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신공양은 세월이 지나가면서 주술 의식의 역할 대신 단순한 축제의 형식으로 변형을 거듭하였으며, 훗날 바빌로니아가 망하게 되며 세를 잃게 되었다. 게다가 주술 의식으로서 간신히 이어지던 명맥 역시 훗날 사크에아 축제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의 농신제(saturnalia)가 사크에아를 대체함에 따라 사크에아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사용하는 이는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이가 사라졌다는 것은 정당한 비용을 내고 주술 의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기에 진성은 야태도아랑류의 당주, 히라모토 미치시게에게서 힘을 뽑아내기 위해 이 주술을 선택하였다.

         

       물론 사크에아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선택한 데에는 히라모토 미치시게의 성향 역시 큰 이유를 차지했다.

       사크에아 인신공양 주술 의식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사형수’ 혹은 사형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악인이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가 되었는데, 미치시게는 딱 거기에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죽였고, 범죄를 저질렀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교화나 반성을 기대하기는커녕 세계 3차 대전이 터지면 망설임 없이 사람들을 납치해서 인신공양을 진행할 정도로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있는 인간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도 않으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사회를 위해 공헌할 존재도 아니었다.

         

       미치시게의 인생이, 그가 걸어온 궤적이, 그리고 관성에 따라 그가 미래에 저지를 악업이.

       그 모든 것이 그를 ‘사형수’에 걸맞은 제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그를 바쳤다.

         

       잊힌 주술 의식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형수’와 같은 제물이었기에.

       우연히 눈에 들어와 살아갈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악행만 저지르다가 허무하게 죽어 없어질 미래 대신에, 마나와 생명력을 뽑아 세상에 공헌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성은 주술의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대다수 사람이 미치시게를 ‘죽일 놈’이라고 인식시키게 하여 사형수로서의 상징을 극대화했으며, 커진 효과와 함께 커진 대가를 줄이기 위해 ‘축복’을 내려준 사람들에게서 받은 귀물들을 사용하였다.

         

       그렇게 가벼워진 대가는….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구나.’

         

       바로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팔다리의 근육이 전기를 맞은 것처럼 움찔거리고, 덜덜덜 떨렸다가 튕기기를 반복한다.

       게다가 수시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어마어마한 쥐가 엄습해오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얼굴 근육 역시 이리저리 뒤틀려 사람을 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줄인 것이 이 정도였으니, 본래라면 한동안 몸이 마비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기에 진성은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모조리 리세에게 맡겨버렸고,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가면을 쓴 채 영상통화로 그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마치 칩거라도 하듯 신창에 틀어박혀 정신없이 쌓인 물건들을 탐닉하였다.

         

       “주술과 주물이 꽤 많이 모였구나.”

         

       신창은 과거 진성이 영상통화로 보았던 것보다 많은 물건이 쌓여있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며 마약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끌고 와 똑같은 처지로 만들려고 하는 사이고 켄지와 키시모토 요시아키의 노력 덕분에 축복받은 사람의 숫자가 크게 늘었고, 그 숫자에 비례해서 ‘자발적으로’ 바친 주물과 주술이 쌓이게 된 것이다.

         

       ‘주술이 기록된 물건은…. 크게 늘지는 않았구나.’

         

       그가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주술이 적힌 기록물.

         

       중국에서 건너온 것인지 갑골문으로만 적힌 것도 있었고, 중세 일본어로 적힌 것도 있었고,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쓰던 암호로 기록된 물건도 있었다. 민속학과 관련된 것들도 있었고, 온갖 비유가 가득해서 사료를 찾아보지 않으면 해석조차 할 수 없는 주술도 있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주술을 익히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었으니까.

       주술을 익히고 주술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진성은 주술을 익히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고, 그는 그때마다 마음을 진정시키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쯧. 완벽한 신체가 되었다면 이런 주술도 마음껏 쓸 수 있으련만.’

         

       이는 주술을 직접 사용해서 시험해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에 각인시키기 위한 푸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푸념은 꽤 효과가 있어서 주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 대신에 ‘어서 빨리 신체를 완성해야겠다.’라는 목표 의식을 가지게 해주었으며, 정체 모를 주술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증 대신에 뚜렷하게 앞으로 걸어가기 위한 갈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절제하는 와중에도 쓸만해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있었으니.

         

       ‘보자. 내가 살아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주술들이 있구나. 민속학 학자와 리세에게 물어서 사료가 얼마 없는 것이라면 잊힌 주술일 터. 별다른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겠다.’

         

       완전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묻혀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버렸을 법한 주술이 있었고.

         

       ‘보자. 갑골문으로 적힌 이 주술은 내가 본 적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잊혔거나, 문화대혁명 때 소실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구나. 아니면 일본군이 약탈할 때 맥이 끊겼을 수도 있겠다.’

         

       모종의 사건으로 맥이 끊겼을 주술이 있었고.

         

       ‘보자. 조선의 통신사들에게서 받았던 주술이라? 삼한의 맥을 이은 왕의 권위를 치켜올리고 칭송하여…. 흠.’

         

       정치적인 이유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술이 있었다.

         

       진성은 그 모든 주술을 즐기듯 탐닉하였고,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주술을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창고 안에 있는 모든 주술을 외운 진성은 주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째 들어오는 것들이 죄다 저주와 관련된 것들인고?’

         

       신창에 쌓여있는 물건들은 꽤 다양했다.

         

       옛날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낡아빠진 나무 국자, 닳고 썩어서 볼품없이 변해버린 나무젓가락, 에도 시대에 사용하던 금화가 그려진 그림,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것을 그린 서양화, 초창기에 출시된 것으로 보이는 잘 관리된 자전거, 낡지만 잘 관리된 전자레인지, 옻칠했는지 아름다운 광택을 뽐내는 상자 등등.

         

       옛 시절부터 현대까지.

         

       주물이라기보다는 골동품에 가까워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얼핏 흔해 보이는 이 물건들은 끔찍한 과거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위장하는 맹수처럼 말이다.

         

       낡아빠진 국자는 잡는 순간 손이 그대로 얼어붙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을 일으켜 한여름에도 사람을 동사시킬 수 있는 주물이었고, 광택이 아름다워 보이는 상자는 태아와 탯줄을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만든 저주용 주물이었으며, 박물관에나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전거는 물귀신 뺨치는 귀신들이 들러붙어 사용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물이었다.

       금화가 그려진 그림은 벽에 건 것만으로 집의 음기를 증가시켜 귀신이 창궐하게 만드는 녀석이었고, 서양화는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물건이었다.

         

       ‘참 쓸만한 것들이 많구나, 많아.’

         

       신창에 있는 모든 물건이 이와 같은 주물이었다.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 점막을 망가뜨려 코피가 나게 만들고, 시야를 어그러뜨리고 평형감각을 이상하게 만들어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고, 방향감각에 영향을 주어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여자가 가지고 있으면 기형아 탄생률을 높이는 것도 있었고, 오래 지니고 있으면 무정자증으로 만드는 주물까지 존재했다.

         

       그야말로 인간의 악의를 물건으로 빚어서 그대로 가져다 놓으면 이런 형상이 되지 않을까 싶은, 끔찍한 지옥도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진성은 이러한 지옥도가 너무나 기껍다는 듯 주물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였고, 주물에 적용된 주술에 대해서 추측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에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 해가 바뀌려고 하는데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냐? 돌아오도록 해라. 』

         

       이양훈이 보낸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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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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