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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213화. 공주와 오크 ( 2 )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옵션이라고 붙은 게 겨우 이거라고?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 : 착용자의 품위가 상승합니다.》

       

       “하.”

       

       품위가 상승하면 뭐 전투 중에 적들이 알아서 항복하기라도 하나?

       조금 고상해지고 우아해 보이는 걸로 체력이 늘어나기라도 하냐는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결국 이 티아라는 전투에는 굉장히 쓸모없는 골동품 그 이하의 가치다.

       

       막말로 한스나 이스칼 같은 남캐가 이런 티아라를 쓰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케니스나 프리가 같은 근접 계열한테 주기도 애매하다.

       

       전투 중에는 순간의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데, 거기에 반짝이는 티아라를 쓰고 간다고?

       차라리 든든한 뚝배기 하나 쓰고 말지.

       

       “이걸 진짜 어디에다 쓰냐.”

       

       비싼 흑요석으로 만들어서 아무 곳에나 버리기도 애매하고, 쓰기도 애매하다.

       

       말 그대로 계륵 같은 존재.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 

       이름만 보면 굉장히 사연이 있어 보이는 퀘스트 아이템인데 말이지, 실상은 그냥 잡동사니라니.

       

       긁적.

       

       “이걸 도대체 누구한테 줘야 하나?”

       

       

       

       

       

       

       *****

       

       

       

       

       

       사락-.

       

       만신전의 대서고.

       곰팡내와 퀴퀴한 먼지, 그리고 까마득한 지식의 향기가 가득한 이곳.

       

       두꺼운 책들이 산처럼 쌓인 어느 곳에서 안토니오 대사제가 책에 쌓인 먼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책장 구석에 버려진 듯 꽂혀있던 책이다.

       

       보관이 영 좋지 못했는지 종이는 노랗게 변색 되었고, 딱딱하게 굳어 조금이라도 섣불리 넘기면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더군다나 해괴하기 그지없는 고어로 적혀있어 일반인이라면 차마 세 장을 읽기도 전에 내던졌을 것이다.

       

       신학에 조예가 깊은 이가 아니라면 차마 읽지도 못할 고서(古書).

       안토니오가 천천히 책의 표지를 헤아렸다.

       

       아이를 위한 동화책이었을까?

       귀엽게 그려진 동물들과 두 발 달린 것들이 여럿 보인다.

       

       ‘오크와… 잿더미 공주님의 이야기라.’

       

       잿더미.

       망국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버려진 공주?

       

       오크와 공주.

       

       ‘참으로 상반되는 것들의 이야기군.’

       

       밥 달라고 행패 부리는 것들과 잿더미 공주의 이야기라.

       안토니오는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만서고에서 하루 종일 오크에 관련된 책만 찾았더니 슬슬 눈도 침침하던 참인데,

       마침 자료 조사 핑계로 딱 머리 비우기 좋은 것이 생기지 않았는가.

       

       사락-.

       

       안토니오가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샛노란 종이가 넘어가며, 긴 세월 품어왔던 제 이야기를 안토니오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느 넓은 평원에… 오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

       

       

       

       “…”

       

       ‘그것’은 초원이었다.

       

       초록색의 피부는 드넓은 초원이었다.

       동시에 울창한 나무였고, 억센 풀이었으며, 자유였다.

       

       드높은 구름에서 떨어지는 바람 한 줄기가 제 등을 떠밀어 줄 때면 땅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었고,

       제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감히 그가 오르지 못할 곳은 없었다.

       

       ‘그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무리를 이끌 위엄과 힘을 타고났고, 자연스레 우두머리가 되었다.

       

       무리를 이끌었다.

       초원을 누비며 싸우고 승리하여 약탈한다.

       그들에게 싸움이란 본능과도 같았다.

       

       몸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피를 원하고, 싸움을 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의 영혼을 불태우는 불꽃은 싸움,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마치 사막을 거니는 고행자와도 같았다.

       

       아련한 오아시스를 찾아 뜨거운 사막을 헤매는 방랑자처럼, 뭔지 모를 것을 찾아 헤맸다.

       뜨거운 불꽃을 다스릴 무언가를 찾아 방랑하며 싸운다.

       

       ‘그것’의 선조가 그러했고, 선조의 선조가 그러했다.

       

       유일한 방법은 싸우고, 먹고, 자는 것.

       이 세 가지가 그들을 괴로운 불꽃에서 아주 짧게 자유롭도록 하였다.

       

       “…”

       

       정말로 이것이 정답인가?

       ‘그것’은 고민했다. 둔한 머리를 재촉하며 열심히 생각했다.

       

       생각이라는 행위는 무척이나 고단했다. 마치 뿌연 안개 속을 거니는 장님처럼 하염없이 더디고, 고단한 과정이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가 그들의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 망가트린 것처럼, 생각은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하다.

       

       허나 느리다는 것은, 포기하지만 않으면 목적한 바에 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

       

       저 앞에서 강대한 무언가가 똑바로 걸어오고 있다.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것’이 땅바닥에 귀를 댔다.

       

       두 개의 기척, 여섯 개의 다리… 그중 인간은 하나.

       

       강자다.

       강한 자가 오고 있다.

       

       “흐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싸움이다. 강자와의 싸움.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달래줄 일말의 휴식.

       

       주변의 오크들보다 머리 두어 개는 더 거대한 체구가 일어선다.

       초록색의 거인이 우뚝 솟아나니 마치 산과도 같았고, 전신을 덮은 근육은 그 자체로 갑옷의 형태였다.

       

       손에 잡히는 것은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 잡은 사냥감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몽둥이.

       어지간한 성인 남성은 될 법한 통뼈를 가볍게 휘둘렀다.

       

       막중한 무게의 뼈 몽둥이가 허공을 휘저으며 묵직하고 위협적인 울림을 뱉어냈다.

       

       멈칫.

       

       다가오던 두 개의 기척이 멈췄다. 천천히 물러나는 기색이 느껴진다.

       설마 여기까지 와놓고 도망칠 셈이라면, 이미 늦었다.

       

       투쾅!

       

       ‘그것’이 땅을 박차고 매섭게 앞으로 질주했다.

       

       강자와 싸운다. 피를 흘리고, 뼈를 부수고, 살을 으깨며 생사를 나눈다.

       치열하게 서로의 생명을 겨루는 싸움에서 그는 끝 모를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크워어어어ㅡ!”

       

       ‘그것’의, 오크들의 우두머리의 외침이 작은 마을 구석까지 깊숙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것은 다가오는 자들을 향한 선언이다. 이미 너를 적으로 인식했다는 단방향적인 대화.

       

       《주, 주인이여! 저기 우두머리가 달려오고 있다네!》

       “아니, 야! 우두머리한테 안내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대가 커다란 불꽃에게 안내해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대로 해줬을 뿐이네!》

       “그게 이 무리 전체에서 제일 큰 불꽃이라고 말을 해 줬어야ㅡ 흡!”

       

       우두머리가 온 체중을 실어 휘두른 몽둥이가 한스를 덮쳤다.

       유니콘과 옥신각신하던 한스의 손에는 어느새 롱소드가 뽑혀 있었고, 우두머리의 몽둥이를 막아냈다.

       

       쾅ㅡ!

       

       둘 사이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터지며 충격파가 둥글게 퍼져나간다.

       힘과 힘의 정면충돌.

       

       롱소드와 뼈 몽둥이가 파르르 떨려온다.

       잠깐의 힘겨루기에서 승자는 명확했다.

       

       우두머리는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맞댄 무기를 통해 상대방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작은 인간은, 자신보다 강하다.

       

       우두머리의 입꼬리가 씨익 솟았다.

       피가 끓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나른하게 늘어졌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한다.

       영혼을 갉아먹는 불꽃의 괴로움이 점차 흐릿해진다.

       

       치열한 싸움일수록, 타오르는 고통을 더 오래 잊을 수 있다.

       

       “전쟁! 싸움ㅡ! 크워어어어어어!!”

       “진짜 더럽! 게! 시끄럽네!”

       

       쾅, 카카카캉! 

       

       뼈 몽둥이와 롱소드가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뼈와 금속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맹렬하게 몰아친다.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처럼 물러섬 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휘두른다.

       

       그리고 뼈 몽둥이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우두머리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힘 싸움에 밀린 우두머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힘에서 밀리다니? 우두머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경험이었다.

       

       “떄자앙! 싸우움! 똡눈땨!”

       《주인이여! 주, 주변에 똥 덩어리들이 가득하네! 우욱! 따, 땀 냄새가!! 크아아악! 내 코가 썩는 것 같아!!》

       “이런… 괜히 너 때문에 주변 오크들까지 전부 자극했잖아!”

       

       수세에 몰린 우두머리를 돕기 위해 오크들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한스를 둘러싼 오크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주변에 빼곡한 오크들을 보며 한스가 진땀을 흘렸다.

       

       오크들을 죽이고 제 한 몸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싸우는 우두머리도 힘이 조금 강했을 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금 싸우는 장소가 그의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오크들은 한 마리의 오크라도 죽으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든다는 것.

       

       ‘멀리서 살짝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너무 안일했어…’

       

       한스가 초조하게 롱소드를 고쳐 잡았다. 여기서 오크들이 광분하여 마을 사람들을 해치려 한다면…

       혼자서 모든 사람을 구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크워어어어! 물러, 나라!!”

       

       우두머리가 주변 오크들을 향해 괴성을 터뜨렸다. 돕기 위해 다가오던 오크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오크들의 포위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한 한스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벙한 표정으로 우두머리를 올려봤다.

       

       우두머리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한스를 똑바로 향한다.

       불타오르는 눈동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히힝ㅡ 주인이여. 내가 도와줘야 하는가?》

       “아냐,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한스는 알 수 있었다. 이 커다란 오크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피와 땀을 흩뿌리는 치열한 싸움을.

       

       그렇다면 한 명의 사내로서 물러설 수 없는 법. 흥이 잔뜩 오른 한스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 걸 원하는 거라면!”

       

       쐐애액!

       

       롱소드가 쏘아지는 벼락처럼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크으으으…!”

       

       단 한 번의 휘두름. 

       눈에 잔상만 흐릿하게 남은, 무지막지한 괴력을 담은 일격.

       

       가까스로 반응한 우두머리가 뼈 몽둥이로 막아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혹사당한 뼈 몽둥이가 롱소드를 감당하지 못하여 반으로 부러졌다.

       

       “끄으… 으으으…”

       

        그리고, 초록색의 거구가 서서히 바닥을 향해 가까워지더니 곧 침묵하며 쓰러졌다.

       

       후두둑.

       

       초록색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대지를 적시며 퍼져간다. 우두머리의 옆구리에는 길쭉한 자상이 선명했다.

       

       《주, 주인!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아무리 흥이 올라도 그렇지, 우두머리를 죽여버리다니!》

       “아? 아, 아냐! 안 죽었어! 아, 아직 살아있어! 봐! 숨! 숨 쉬잖아!”

       

       유니콘이 발광하며 날뛰었다. 오크 한 마리만 죽어도 그 무리 전체가 발작하는데, 우두머리를 다치게 했다?

       차마 상상하기도 싫다.

       

       다행히 바닥에 누운 거체는 미약하게 들썩이며 숨을 쉬기는 했다. 이대로 두면 필히 죽을 테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셈이다.

       

       “때자앙…?”

       “쌰우움… 져따…?”

       

       멀찍이 떨어져 있던 오크들이 어벙하게 중얼거리며 한스를 향해 모여온다.

       탁하게 풀린 눈동자는 어쩐지 보는 이를 오싹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눈동자 수십, 수백 개가 가득하다.

       

       《주주주주인이여! 타게! 어, 어서! 이 똥 덩어리들이 발작하기 전에 어서!》

       “…자, 잠깐만. 뭔가 이상해.”

       

       한시라도 빨리 달아나려는 유니콘을 한스가 말렸다. 

       …뭔가 이상했다. 오크들이 우두머리의 복수를 위해 한스를 죽이려 하는 것 치고는, 너무 얌전했다.

       

       저벅… 저벅…

       

       오크들이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 한스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면서도 일정 거리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때애자앙… 졌따아…!”

       “앾한!! 떄장! 젔따!”

       

       털썩.

       

       “썌로운!! 떄애장!! 깡하아다!!”

       “깡한!!! 떄짱!! 크워어어어어!!”

       “떄장!! 떄자아앙!! 크어어어어어어!!!”

       

       일제히 무릎 꿇은 오크들이 한스를 향해 외쳤다.

       

       대장이라고.

       

       “허?”

       

       졸지에 대륙 단위의 메뚜기 떼 우두머리가 된 한스가 멍청하게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나, 나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네. 알아서 잘하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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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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