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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사라의 기분이 굉장히 나빠 보인다.

        

       그리고 이건, 유하늘, 신소희, 이수아에게는 비상사태였다.

        

       지금까지 사라와 만나면서, 사라가 오늘만큼 기운 없고, 짜증이 나보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심지어 그럴 때도, 보통은 친구인 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손길이야 사라가 먼저 조금 자제해달라고 말을 해둔 터이니 손을 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말 정도는 먼저 걸어주곤 했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기에는, 무서웠다. 사라는 분명 힘도 셋보다는 약하고, 억지를 부리면 잘 들어주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라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사라가 안아주는 것, 말을 걸어주는 것, 혹은 입맞춤을 해 주는 것…… 모두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보다는 사라에게서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최나경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 무서웠다. 그렇게 사라를 손에 넣으려고 하고, 사라……아니, ‘사라’가 나름대로 애착을 두고 있던 그 상대가 지금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사라의 기억 속에 평생 최나경과 비슷한 이미지로 남는다고 하면, 차라리 그럴 바에는 사라의 애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서먹한 친구 관계로 남는 것이 나았다.

        

       물론 그렇다고 서먹한 친구 관계로 쭉 남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라의 기분은, 손아름과의 대화 이후로 더더욱 나빠진 것 같았다. 세 사람뿐만이 아니라 같은 교실을 사용하는 학생들이나 수업하러 들어온 선생들마저 사라의 그 네거티브한 분위기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랬기에,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온 뒤, 사라가 세 사람을 자기 앞에 나란히 앉혔을 때는 정말로 무서웠다.

        

       “…….”

        

       “…….”

        

       잠깐의 침묵.

        

       차마 사라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소리로 사라가 숨을 가다듬는 것을 들을 수는 있었다.

        

       “그…….”

        

       사라는 입을 열었다가, 금세 다물었다.

        

       “큼.”

        

       그리고 짧게 목을 가다듬은 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은 잘했어.”

        

       세 사람의 고개가 한꺼번에 확 들렸다.

        

       사라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무서워했던 게 조금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사라는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던 거 전부 지켜줬으니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

        

       이번에는 세 사람이 눈을 피할 차례였다.

        

       묘하게 쑥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무서운 분위기는 이제는 전혀 없었지만, 사라가 저런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니, 뭔가 좀,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친구가 부탁한 거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유하늘이 제일 먼저 그렇게 말했다.

        

       “뭐…… 그냥, 그런 거지.”

        

       소희는 그 말에 슬쩍 편승했다.

        

       “아냐, 내가 고맙지.”

        

       수아는 그렇게 말해놓고, 자기가 한 말이 사라가 한 말보다 훨씬 부끄러운 말이라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얼굴을 더욱 빨갛게 물들였다.

        

       잠깐 세 친구와 사라 사이에 마냥 어색하지만은 않은, 굉장히 간지럽고 부끄러운 시간이 흘렀다.

        

       “아, 아무튼!”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날려버리겠다는 듯, 사라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약속했던 대로! 세 사람에게 포옹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놓고 혼자 격침되었다.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져 침대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끄으~~~~”하는 의미 불명의 소리를 내며 침대를 팡팡 두드린 사라는, 쓰러졌을 때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사라는 뭔가 단단히 각오하기라도 한 표정이었다.

        

       “자!”

        

       그리고, 침대 위에 앉은 그대로 양팔을 벌렸다.

        

       “누가 먼저 할래?”

        

       “…….”

        

       그런 사라를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던 유하늘, 신소희, 이수아 세 사람은 시선을 마주쳤다.

        

       누가 먼저 사라와 포옹하는가.

        

       이건 꽤 중요한 문제였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는, 제일 먼저 사라를 안은 사람이 제일 짧은 시간 동안 포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뒷사람은 앞사람이 안은 시간만큼 안은 다음, 조금이라도 더 안고 있는 것으로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

        

       다만, 사라가 지금 세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작긴 하지만 조금 무서운 반감 때문에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다.

        

       앞 사람보다 더 오래 끌어안고 있으려고 해도, 사라가 거부하고 중간에 끊어버리면 괜히 손해만 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제일 뒷사람은 제일 짧게 포옹하게 된다. 당연히 세 사람 중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잠시간의 침묵.

        

       “……안 할 거야……?”

        

       결국 사라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물기 어린 눈으로 세 사람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

        

       그리고 당연히, 사라의 그 표정을 본 시점에서 세 사람은 자기 생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느꼈다.

        

       “흐, 흐엫……!”

        

       아무리 그래도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사라는, 뒤로 넘어지며 그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

        

       풍겨오는 냄새가 달콤했다.

        

       세 사람이 쓰는 샴푸나 바디워시는 내가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결국에는 나와 같은 냄새가 풍긴다는 소리인데, 정작 실제로 냄새를 맡을 때에는 그게 나의 냄새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안 할 거야?’라는 말의 파괴력이 굉장히 강하긴 했던 모양이다.

        

       가운데 앉아있던 하늘이는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어서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당연히 나는 그 무게에 눌려 뒤로 넘어졌다. 얼른 다리를 풀었지만, 이미 벌려진 내 다리 사이로 하늘이의 다리가 들어가 버린 뒤였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들려오는 소리를 표현해보자면, 숨소리, 오로지 숨소리뿐이었다. 하늘이는 말하는 시간도 아깝다면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솔직히, 흉부가 조금 압박되어서 숨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쩌면, 하늘이는 ‘키스는 안된다’라는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욕구를 포옹에 다 쏟아버리려는 건지도 몰랐다.

        

       “하아……”

        

       코로 거칠게 숨을 쉬던 하늘이가, 갑자기 입으로 숨을 내뿜었다. 하늘이의 코는 내 목덜미 부근에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숨결은 내 목을 타고 반으로 갈라져, 한쪽은 목덜미와 머리카락 사이로, 다른 한쪽은 쇄골을 타고 가슴 쪽으로 흘러내렸다.

        

       ……옷을 다 입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우리가 성인이었고, 우리 둘 다 알몸이었다면, 나도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을 테니까.

        

       뭐, 내가 여기서 이성을 잃는다고 해서 상황을 리드할 수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아…….”

        

       “으…….”

        

       당연히, 하늘이가 나의 몸을 그대로 끌어안아 버렸기 때문에, 다른 두 사람은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분명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는데, 하늘이는 마치 럭비공을 향해 달려드는 럭비선수만큼 내 몸을 그대로 덮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

        

       어쩌다 보니 좌우로 팔을 쫙 벌리고 대자로 침대에 눕게 되었던 나는, 그대로 팔을 들어 올렸다. 한쪽 팔은 하늘이의 등 뒤에, 그리고 한쪽 팔은 하늘이의 머리 쪽으로.

        

       하늘이는 아직 머리를 묶고 있어서 쓰다듬는 것은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사라야…….”

        

       하늘이의 속삭임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릴 만큼.

        

       하늘이의 볼이 움직이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볼이 지나간 뒤에는 귀가 스치는 것이 느껴지고, 그 뒤에는 하늘이의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린다.

        

       내 머리카락 사이로, 하늘이의 코가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숨을 들이쉬는 그 모습은, 솔직히 아주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늘 하루 동안 한번도 누군가에게 안긴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 애들이 끌어안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나도 품에 안기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비유는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신난 강아지 같기도 하고.

        

       “…….”

        

       그건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이 조용한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소희와 수아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음…….”

        

       난 잠시 고민하다가, 살짝 숨을 내쉬었다.

        

       “저, 하늘아. 다른 애들도 안아야 하니까…….”

        

       “조금만 더.”

        

       마치 어린아이 칭얼대듯 말하는 게 조금 귀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이상 이러고 있는 건—

        

       —하지만, 내가 손으로 하늘이를 떼어내려고 해도, 하늘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

        

       아니, 뭐, 그래. 하늘이가 나보다 훨씬 힘이 센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건……

        

       “어, 잠깐, 하늘아, 왜 팔에 힘을—”

        

       “조금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이가 얼굴을 움직였다. 코와 입이 그대로 느껴진다. 내 목에 딱 달라붙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는 게—

        

       아니, 잠깐잠깐잠깐!

        

       입을 이렇게까지 붙이면 이미 뽀뽀잖아! 그건 안 된다고 미리 말했었는데!

        

       하지만 이미 이성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하늘이는 그런 것을 굳이 구분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유하늘! 이제 비켜줘! 충분하잖아!”

        

       소희가 그렇게 외치면서 유하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하늘이의 어깨 너머로 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니, 그냥 새빨갛다기보다는, 음…….

        

       그, 뭐랄까. 이런 표현을 하긴 조금 그렇지만, 개다래나무 앞의 고양이가 이런 표정일까?

        

       ……그리고 내가 개다래나무고.

        

       “…….”

        

       아마, 그쯤에서 나는 반항하는 걸 그만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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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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