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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어… 음…….”

         

         정중한 부탁과는 달리, 듣기만 해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울림을 내포한 단어를 곱씹었다.

         

         고르고 골라 ‘육체 회수’ 라니! 어느 모로 봐도 겁나게 시커먼 음모와 연구소의 알싸한 소독제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게, 구체적으로 두 번 정도 치열한 생존 싸움을 펼쳤던 어딘가의 비밀 시설들이 떠올라 거부감이 확 올라왔다.

         

         이쪽이 무슨 깃발 꽂기 게임을 하고 있거나, 네오 헤이븐 도전 과제를 연달아 깨는 것도 아닐진대 그런 등골이 싸해지는 의뢰를 마구 받겠냐! 어!?

         

         ……심지어 댁 개인 사정이랑 연관된 문제면 십중팔구는 엑사테크 이슈 아니야?

         레오나르의 착각처럼, 현재 그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캐릭터 배경이야 읽은 기억이 있으니까 이 부분은 틀림없다.

         

         헌데 아무리 내가 마땅한 대체재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자폭 버튼을 몇 번 누른 적은 있어도, 이미 불바다가 펼쳐진 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다음 ‘여기는 왜 이렇게 뜨겁죠.’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한 적은 없는데요.

         

         바스락….

         

         천천히 소파의 푹신함에 몸을 맡긴 채로.

         깔끔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바꿔 팔은 팔 대로 팔짱을, 다리는 다리끼리 교차해 꼬는 것으로 불만이 있음을 은근히 드러냈다.

         

         비록 가구 내장재도 겉 부분 재질도 부드러운 탓에 의도했던 만큼 삐걱거리는 소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그다지 내키지 않다는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야박하군. 수락하기도 전에 밑바닥 사정까지 낱낱이 알려줄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의뢰 내용은 들어보고 난 뒤에 판단하는 게 어떤가?”

         

         “…일단 들어는 볼게. 들어는.”

         

         어지간한 해커 녀석들 마냥 공명심이나 욕심에 눈이 멀어서 냅다 달려들 거라는 기대는 버리도록. 나는 아아아주 냉정하게 가성비와 여건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일을 골라 받을 만큼 심리적 여유가 생겼으니까!

         

         하지만 이게 웬 걸.

         비판적인 태도와 별개로 침착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썩 만족스럽다는 듯이 가벼운 헛기침을 흘린 다음 추측을 현실로 바꾸는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네는… 엑사테크라는 거대 괴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

         

         솔직히 대답하자면 당연히 많이 안다. 자칫 문제가 될 수준으로.

         허투루 만 단위의 시간을 네오 헤이븐에 박은… 크흠, 투자한 게 아니다 이 말씀이지만.

         

         본래 의수나 의족 제작을 전문으로 하던 정밀 공업 회사가 전쟁 특수를 등에 업고 건설 기계와 산업 장비 제작사를 인수한 걸로도 모자라, 기어이 초법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게 된 배경.

         

         에나마와 원수까지 져가며 공격적으로 유명 뇌의학자와 신경학자들을 영입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기술 특이점에 매료된 천재들.

         

         마지막으로 뇌라는 인간이 가진 최강의 무기이자, 극강의 연산 장치를 보조하는 육체의 다른 부위들이 너무 열등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기계 숭배의 시초까지.

         

         원한다면 현 엑사테크 최고 경영자가 생겨 먹은 형태나 그의 극비 프로젝트도 아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었지만… 여기서 레오나르가 물어보는 건 진짜 그런 걸 바란 질문은 아니겠지.

         

         “…남들이 아는 만큼은 적당히 알 걸?”

         

         “음, 그런가….”

         

         그래도 입으로는 무심하게 대꾸하는 한편, 사이버웨어로는 인터넷 검색 엔진을 열고 ‘엑사테크에 관한 101가지 상식’처럼 어딘가 미심쩍은 정보를 담은 비공식 홈페이지라도 급히 열람했다.

         

         직접 기업과 부대끼며 살던 시민들이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고, 또 나라고 엑사테크의 사훈(社訓; 사원이 지켜야 할 회사의 방침) 같은 것까지 세밀하게 외우고 다니는 건 아니었으니 오픈 북 시험이라도 쳐야지 어쩌겠어.

         

         따각… 따각.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개하는 게 좋을까, 어떤 식으로 풀어놔야 이쪽을 영입하기 수월할까 고민하듯 드로이드의 손가락이 탁자를 두들겼다.

         

         수배범의 입장으로 이런 반 공공시설에 당당하게 침입하기는 역시 부담됐는지, 유사하게 생긴 로봇을 운용해서 찾아왔지만.

         안드로이드를 접대용으로 쓰던 아론의 경우처럼 의식이 거의 일체화한 레오나르의 본신 또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엑사테크 소속 직원은 고위직일수록 신체 개조율이 높아져간다는 통념. 정확히는 시험적 대체 시술과 신규 부품을 적극적으로 많이 체득하고, 그에 대한 리포트를 낼수록 인사 고과에 가산점을 받는다는 건 아나?”

         

         “어. 대충은.”

         

         나름(?) 합당한 시스템이다. 직장과 삶이 동일시되는 부작용이 강하긴 해도 경쟁과 향상심을 유지하는 이점이 훨씬 크니까.

         

         당장 나만해도 매일매일 전기 방출을 연습해서 걸리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출력 한계치를 조금씩 늘리는데 여러모로 노력하느라 바쁘니 기업 단위로 이루어지는 R&D(Research and Development; 기초 연구와 그것에 기반한 개발 업무) 작업이라고 완전히 남 얘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태생부터 콤플렉스 덩어리가 아니라면. 재직 기간이 오래된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특별히 사고를 당한 게 아닌 경우 살과 피… 단백질과 유기 조직으로 된 원래 몸에 애착을 가지는 법이다.”

         

         “으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 막대한 비용 문제를 둘째 쳐도.

         

         아무리 엑사테크가 기계 공학 분야의 성지 같은 기업일지언정,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까지 새로 들어오는 사원 전부가 ‘난 기계가 너무 좋아서 시발 그냥 기계가 될래요오옷!’ 하고 회까닥 돌아버릴 만큼 열정적인 건 말이 안 된다.

         

         “또한 유전자는 물론, 자손을 남겨야 한다는 생명체로서의 근본적인 목적마저 잊어버린 건 아닐뿐더러…. 고위직이나 연구자 전원이 본능과 생리 현상을 망각한다면 현시대와의 괴리가 심화되어서 사업 확장이나 심도 깊은 공부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점에 염려한 결과, 예외를 두기로 하였다.”

         

         “예외라면…… 아, 혹시 임플란트나 기계화 시술을 전혀 안 받은 퓨어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현장 작업 빈도가 비교적 적은 연구원이나 사무원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별해 일절 외부적인 변질을 주지 않고 노화와 생장을 기록하는 제도가 존재했다.”

         

         거기까지, 다소 딱딱하지만 예의 바른 어조로 한바탕 떠든 레오나르 경은 말을 끊었다.

         

         “응……?”

         “………….”

         

         열심히 달리던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마냥 짧은 휴식을 가지는 걸까? …글쎄, 나는 아니라고 봤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다면 여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선호하던 그가 구태여 이런 노골적인 침묵을 사이에 두었을 리 없으니까.

         

         이건 아마도 뇌가 진동판과 음향 장치를 작동시킨다는 익숙한 행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되었다. 가령… 지옥과도 같은 심층 의식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증오를 제어하는데 뇌용량의 대부분을 쏟고 있다거나.

         

         …그런 내 상상은 완전 무근거 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 예외였었다.

         

         

         “흡……!?”

         

         까드드득—!!

         

         흠칫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왜냐고? 그야 치아가 남아있었다면 분명 몇 군데 깨졌을 것이고. 실핏줄이 잔존했다면 틀림없이 여기저기가 터져 나갔을.

         진흙처럼 검고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감정의 분류가 생물학적, 물리학적 제약을 깡그리 무시한 채로 줄줄 흘러나왔기에 그랬다.

         

         일반적인 담배나 술 등의 형태를 취한 화학 물질에 의존할 수 없는 레오나르가 뭘 이용해서 단시간 내로 그 진노를 가라앉혔는지는 직접 대면한 게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를 상대로 화풀이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곧 저 내면의 짐승을 풀어놓을 수 있어서인지.

         

         “내 Fiancé… 그러니까 당시 애인이라고 믿었던 여자가 명의를 위조해서 두뇌 적출 및 육체 재안착 동의서를 상부에 제출했더군. 어느 날 숙소에서 잠들었다가 의식을 되찾고 보니 한 달쯤 지난 상태였다.”

         

         “아니… 미친, 그게 가능해? 대체 왜??”

         

         “찢어 죽일 년이 수술 책임자였다. 지가 결제 올리고 지가 곧장 집행했지.”

         

         십, 이걸 뭐라고 봐야 해? 23세기 약탈혼?

         

         친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나 숫제 남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인만큼 그의 사연 좀 듣는다고 없던 흥미가 생길 가능성은 적다고 여겼는데.

         

         설마 일어나보니 몸뚱아리가 180도 뒤바뀌었다는… 차마 공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야기가 튀어나올 줄이야.

         

         “정당한 절차를 통해 냉동 보존된 몸을 돌려받으려던 건 그 Chienne이 자꾸 훼방을 놔서 차단, 아예 죽여버리려던 시도도 권한이 너무 차이 나서 아쉽게 실패했다. 작정하고 공격할 필요성이 느껴져서 결국 포기하는 척하다가 탈주했고. …솔직히 절대 살아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일을 더 키우기 부담됐는지 현상 수배만 내려지고 추격자는 따로 오지 않더군.”

         

         “어우씨…… 왠지 미안.”

         

         “? 그대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본론만 떠들면 그만인 얘기를 너무 질질 끌어서 미안하군. 작전을 짠 지는 꽤 됐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떠드는 건 처음이라 쓸데없는 정보가 많이 섞여 들어갔어.”

         

         아까 전의 힘 조절 실패로 인해 도색이 벗겨진 손마디를 슥슥 비비면서 레오나르가 중얼거렸다.

         

         분노 다음은 회한? 아니지, 여기서 그의 잘못이라고 해봐야 사내 연애 한 번 잘못했다는 것뿐인데 뉘우칠 게 뭐가 있겠나? 진짜 재수없게 길 가다가 벼락맞은 신세나 마찬가지인데.

         

         동정? 특별히 바라는 기색은 없었다. 다시금 차분해진 태도를 보면 이 썰 풀이 자체가 공감을 얻거나, 상대를 설득하려 꺼낸 재료라기보단 말마따나 인과를 정리하는 느낌에 가까웠으니까.

         

         …….

         ….

         

         잠깐만.

         나, 왜 이렇게 이 개성적인 보스 캐릭터 씨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야 공감할 사연도 있고, 동조할 감정선도 충분하고, 제로와 부대끼며 지내서 그런지 기계적인 외모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으니까 논리적으로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 네오 헤이븐에서는 죽이는 것 외의 방법이 없던 악당을 마주하는 것치고는 지나치리만치 반감이 적게 든다.

         

         그 이유가 뭘까. 이걸 해소하지 않고서는 이 이상 어울려줘도 찝찝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고력과 직감을 총동원해 눈앞의 로봇, 그리고 너머에 있는 레오나르 경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살폈다.

         

         “……아.”

         

         정답은 의외로 간단, 그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부터 외부로 드러나 있었다.

         

         플레이어 누구나 망설임없이 그를 ‘적’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던 건 전투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나 전리품만이 아니다.

         주변 환경에 대한 병적인 결벽증, 피냄새가 줄줄 흐르는 언사, 공기 중으로 흘러 넘치는 파괴 욕구나 도살 행위에 대한 도를 넘은 집착이 지금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 편린이 엿보인 게 방금 응축된 원한이 폭발했던 일순간.

         만약 그게 없다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결과값이라면 ‘미치광이 레오나르 경’은 실상 조금 까탈스럽고 실용주의적 측면이 강한 일류 기술자 레오나르에 불과하지 않을까…?

         

         “…해서 최종 타겟은 엑사테크의 독립 연구시설, 목표는 육신이 보관된 냉동 캡슐의 탈환. ……부가적으로는 여자 한 명을 죽이는 것까지. 실력 좋은 너에게는 서브 오퍼레이터의 역할 겸 시설 무력화를 부탁하고 싶다.”

         

         이쪽이 이쪽 대로 고민하는 동안, 심적 정리가 끝난 그가 대답을 요구해온 건 당연한 흐름이었으니.

         

         자, 이제는 진짜 선택해야 한다.

         더 깊이 관여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할 것이냐의 선택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경질적으로 계속 자기 부품을 더듬던 그의 비밀이 드디어 대공개!
    Chienne : 썅년 or 암캐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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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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