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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영지전을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의 서재는 사실상 지휘본부가 되었다.

     “여기에 너를 부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구나, 그레이.”

     “본가의 서재는 또 정말 오랜만이죠. 그리고 그곳이 이렇게 바뀐 것도 오랜만이고.”

     한 때.

     “제가 10살 때, 아버지의 서재에 왔던 때. 그 때 아버지, 여기에서 전쟁 준비를 하셨잖습니까.”

     “네가 많이 도와줬지.”

     어머니가 희롱을 당하고 돌아온 뒤, 아버지는 진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서재에 여러 가지 ‘준비’를 했었다.

     “그게 다시 이렇게 쓰이는구나. 비록 바르셀 후작가에 한정되어 있지만.”

     “말이 바르셀 후작가지, 사실상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따르는 귀족 무리 전체가 아닙니까.”

     서재에 있는 넓은 테이블.

     “국왕이 대놓고 영지전에 개입하고 있죠. 비공식적으로.”

     장치를 ‘딸칵’하고 조작하니, 곧장 나무로 된 장치가 움직이며 테이블 위가 하나의 ‘지도’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나를 돕지 않으면 반역자. 지브롤터를 도우면 제국주의자. 황금여명과 함께하면 애국자.”

     노스트럼 전도.

     “노스트럼을 향한 애국심을 강요하여, 노스트럼 전역의 귀족들로부터 전쟁물자를 요구했습니다.”

     테이블의 끝, 지브롤터의 옆으로 펼쳐진 협곡은 정확하게 벽에 맞닿아있다.

     “이 전장에, 제국이 끼어들 요소는 없죠.”

     “대외적으로는 말이지.”

     “제국군이 협곡을 지나와서 주둔할 것도 아니잖습니까?”

     “음. 그래. 과거든 지금이든…’주적’은 제국이 아니지.”

     제국은 아예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라도 한듯, 오로지 아버지가 바라보던 전장은 왕국 뿐이다.

     애초에 제국군이 적이 되었다고 해도, 협곡에서 틀어막는다는 전술 이외에는 당시의 지브롤터가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바르셀과 렘부르 군터 말고는 사실 별 신경도 쓸 필요는 없었으나, 세인트 지오가 바르셀 성에 눌러앉으면서 그 아래에 달라붙은 귀족 무리는 중앙 정계에서 연합을 구성해도 될 지경.”

     마나를 흘리자 바르셀 후작가에 해당하는 지역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게 국왕의 권위를 향한 도전처럼 여겨질 수도 있기에, 현재 바르셀 후작가로 모여드는 이들의 면면이 생각보다 굉장한 편이기는 하죠.”

     그리고 그에 맞춰 주변에 있는 영지 몇 개를 비롯하여, 노스트럼 왕국 각지에 ‘금색’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북부. 롤랜드 후작가. 남부. 세이레네 백작가. 그들이 발자크 후작가의 편에 섰습니다.”

     “규모는?”

     “인적자원은 없습니다. 롤랜드 후작가에서는 무기를, 세이레네 백작가에서는 제국산 보존식량을 보냈습니다.”

     “체면치레군.”

     “예. 그들도 대놓고 저희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겠지만, 내부 여론도 무시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노스트럼 평균 여론이 그러하다.

     “어쩔 수 없이 보낸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지브롤터라고 해도 ‘백작가문이 국왕을 향해 진짜로 칼을 겨누는 꼴을 볼 수 없다’라는 생각이겠죠.”

     “아무리 왕이 잘못했기로서니, 왕을 수호하는 기사단장이 크게 잘못했기로서니, 그렇다고 진짜로 영지전을 거냐. 그 지브롤터가.”

     아버지는 누군가의 말을 읊듯이 피식 웃었다.

     “개소리지.”

     “예. 개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은 개소리 전문가이며, 위치적으로 개소리의 강압에 이기지 못하는 자들은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바르셀 후작가에 자원을 보내고 있죠.”

     

     내가 마력을 뿌리자, 전국 각지에서 바르셀 후작가로 금색의 화살표가 향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보육원, 그리고 취업을 통해 노스트럼 전체에 퍼져있는 ‘협곡의 아이들’로부터 얻은 첩보를 분석한 결과. 이번 영지전에서 바르셀 후작가를 향해 자원을 보낸 곳은 모르가니아를 제외한 모든 영지입니다.”

     “지브롤터에는?”

     “단, 한 곳도.”

     “좋군.”

     왕국의 모든 전력이 바르셀 후작가로 모이는 건 아니다.

     “모두가 100% 바르셀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1%라도 지지하는 자들을 적이라고 친다면….”

     하지만 밀가루 한 톨이라도 보낸 가문을 참전 가문이라고 친다면, 영지전 선전포고 목록에 읊어야 할 가문은 모르가니아를 제외한 전부.

     “우리는 노스트럼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셈이군.”

     “예.”

     “모르가니아와 지브롤터를 제외한 모든 가문을 상대로.”

     “예.”

     “그들에게 달라붙은 황제의 사생아들도 마찬가지.”

     “예.”

     “여기까지가, 상식 선에서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

     “예.”

     아버지가 직접 전장으로 다가와, 바르셀 후작령에 자리잡은 금색의 ‘킹’을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이 미친놈이라면 우리가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보낸 사신을 죽이려고 하겠지?”

     “사신의 목을 잘라서 ‘선전포고 잘 받았다’라고 할 인간이죠.”

     “그런가.”

     아버지는 킹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긴 다음, 바르셀 후작령 근처에 있던 민트색 룩을 전신시켰다.

     “돌아오고 나면 보고를 들어야 하겠지만….”

     “아마, 예상대로 흘러갈 겁니다.”

     나는 민트색 룩의 앞에 있는 병사들을 가볍게 옆으로 밀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지고 오라는 명령은 없었으니.”

     * * *

     바르셀 후작성의 넓은 홀.

     

     일반병과 기사들이 전부 칼을 든 채 홀의 가운데에 선 여인을 향해 칼을 겨눈다.

     “환영인사 한 번 거치네, 정말.”

     여인, 멘테 리프트 경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가지런히 올리며 품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이거 전하러 왔는데, 말 좀 편하게 타려고 했더니 말을 향해서 화살 쏘는 거 뭐야?”

     툭.

     “예상대로, 선전포고야.”

     “…….”

     “왜? 제로스 단장님. 편지 주으러 안 와?”

     멘테 경은 자신이 바닥에 떨어뜨린 편지를 가리켰으나, 후작성에 있는 그 누구도 편지를 줍지 않았다.

     “예법대로 사신이 직접 와서 전달했어. 나는 분명 전했다?”

     “멈춰라, 멘테 리프트.”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근엄한 목소리로 앞으로 나섰다.

     “리프트 자작령은 제국과 함께 하기로 했는가?”

     “뭐래. 제국이 아니라 백작령이고, 애초에 나 자작으로 만들어주신 분이 지브롤터 백작이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스트럼의 영광을 위해….”

     “야. 너 나보다 나이 어린 거, 알지?”

     멘테 경이 제로스 후작을 향해 검지를 들며 삿대질을 했다.

     “너, 나한테 사석이든 공석이든 존댓말했는데. 모르나봐?”

     “…….”

     “하긴. 당사자도 아닌데 누가 알겠어.”

     멘테 경이 좌중을 훑자, 기사들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모두가 침묵하기로 했구나? 어쩌나, 정말. 죽은 사람이 억울해서. 자기 죽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고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닥쳐라. 제로스 바르셀은 죽지 않았다. 여기,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그래? 그러면 최소한 상급 기사는 된다는 말인데….”

     멘테 경이 허리에 찬 칼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일격, 받아낼 수 있겠지?”

     “뭣…?!”

     멘테 경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순간적으로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

     자신도 모르게.

     멘테 경이 서 있는 곳의 공간이 넓어지고, 기사들은 자신이 물러났다는 것을 좌우를 훑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만.”

     짝.

     

     “선전포고를 하러 온 겁니까, 아니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하면서 즉시 전쟁을 하러 온 겁니까.”

     “헤에.”

     제로스 후작의 옆, 군청색 머리칼의 청년이 홀의 계단을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편지지를 주웠다.

     “너, 제법이다? 마스터야?”

     “설마요. 저는 그저 후작님의 한낱 집사일 뿐입니다.”

     청년은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편지지를 공손하게 자신의 품에 넣었다.

     “하지만 하나는 명심하시길.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많다는 걸.”

     “약물을 이용해서 강해진 것 같은데, 말이 많다?”

     “재능의 한계를 넘어보겠다고 40년 허송세월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하, 하하…. 입 뚫렸다고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네.”

     멘테 경은 집사를 향해 정확하게 검지를 뻗었다.

     “너. 다음에 올 때 보자.”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집사가 손을 들자, 홀의 정문이 열리며 새로운 기사들이 나타났다.

     “후작님. 명령을.”

     “…아아, 그래! 황금여명이여!”

     황금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

     그들은 제로스 단장을 보고는 인상을 잠시 찌푸렸으나, 곧 멘테 경을 향한 포위망 안으로 파고들어 가장 가까이에서 검을 겨눴다.

     “적이 선전포고를 했다! 지금부터는 전쟁이다!”

     “사신으로 왔는데, 이렇게 죽이려고 해도 되는 거야?”

     “저들은 국왕 전하가 계신 곳임에도 불구하고 영지전을 건 이들! 반역자들이다!”

     “골치 아프게 하는데, 정말로 반역자는 누굴까.”

     찰칵.

     “자기 몸 건사하자고 황태자가 되지 못한 제국의 ‘폐세자’들을 데려와서 자리 준 사람이 반역자-”

     카ㅡㅡ앙!

     “…무슨 말을 못하겠네.”

     “죽어라, 멘테 리프트!!”

     “죽어, 라?”

     멘테 경은 가장 먼저 달려든 기사의 검을 받아치며, 느긋하게 몸을 돌려 정문으로 향했다.

     “어린 놈들이 건방지게.”

     카ㅡ앙.

     “쫓아오지도 못할거면서.”

     멘테 경은 자신을 향한 검을 튕겨내며, 그대로 포위망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신을 죽이려고 하는 비겁한 쓰레기들! 쫓아올 거면 쫓아와봐! 어디, 한 번 지브롤터까지 쫓아와보든가!”

     멘테 경은 신난 얼굴로 땅을 달렸다.

     “저, 저…! 쫓아라!!”

     제로스 단장이 풀쩍풀쩍 크게 뛰어가는 멘테 경을 가리키며 소리쳤으나.

     “…….”

     그 누구도, 멘테 경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 * *

     왕국의 모든 가문이 적이 된 상황.

     설령 우리의 적이 되고 싶지는 않더라도, 도매급으로 ‘아무튼 반역자’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아 우리를 향해 그 누구도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

     우리는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나, 공교롭게도 우리는 예상치 못한 지원을 받게 되었다.

     “바토리 부총장. 여기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어머, 좋은 소식 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성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푸대접인가요?”

     마도자동선도 아니고 마차를 직접 타고 온 바토리 부총장이 양산을 펼치며 내 앞에 섰다.

     “아카데미는 안전하다고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후후.”

     “그거야 당연하죠.”

     현재.

     윈체스터 대공은 오로솔 아카데미에 있다.

     흑장미 기사단을 비롯한 모르가니아의 전력이 오로솔 아카데미를 지키고 있으며, 오로솔은 영지전이 일어나더라도 ‘교육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제 3지대.

     우리가 오로솔 아카데미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왕국의 귀족들 또한 오로솔 아카데미에 암살자를 보내거나 할 수 없는 상황.

     설령 암살자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는 아스타시아와 누아르,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머무르고 있는 백금경이 있다.

     그래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거죠? 마치 제가 온 것 자체가 불안한 요인이라는 것처럼.”

     “그야, 바토리 부총장은 황제의 사람 아닙니까.”

     바토리 부총장이 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걱정거리다.

     “관광이라면 어디 조용히 호텔에 머무르시고, 귀향이라면 이대로 쭉 협곡으로 가시죠.”

     “너무하네요, 이사장님. 그래도 도우러 온 사람인데.”

     “그러니까, 계신 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거라니까요.”

     “어머나, 매정하게. 그래도 전언이랑, 몇 가지 도움 되는 정보들을 가져왔는데 말이죠.”

     “…전언?”

     “예. 흠흠.”

     바토리 부총장이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굳힌다.

     “…’폐세자’들을 단속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사과를?”

     “네. 여기까지가 폐하의 말씀이시고,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 입장에서는…호호호.”

     바토리 부총장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켜 웃었다.

     “워낙 많이 싸질러놓으셨다보니, 통제가 안 되는 자식들이 정말 많거든요.”

     “…….”

     “그리고 그들 대부분, 양자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고.”

     “하….”

     “그래서 도우러 왔어요. 저쪽도 제국의 도움을 받는데, 여기도 도움을 받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왕국과 제국의 대리전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제국의 도움을 받으라는 겁니까?”

     “어머. 아뇨?”

     바토리 부총장은 가리고 있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리며, 상체를 숙이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원군은, 저예요. 데헷.”

     “…….”

     “어머, 이래도?”

     “바토리 부총장.”

     나는 바토리 부총장의 양산 끝을 당겨, 그녀의 얼굴과 가슴골을 동시에 가렸다.

     “아스타시아보다 작으면 닥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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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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