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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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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적발 미소녀가 떨어져 사람을 기절시킨다면 양아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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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단하다.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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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쌔, 쌤!”
    “미친! 같이 가!”
    ​
    ​
    끽해봐야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애들 돈을 뜯거나 성인이 되면 무한정 피울 수 있는 담배가 일탈의 전부인 허약한 양아치들은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
    ​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제 친구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제스는 콧잔등을 씰룩이다가 이내 기절해버린 남자 위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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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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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멍한 얼굴로 제스를 바라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떨었다. 그의 ‘적응’이라는 권능이 발동되고 있긴 했지만 아직 완벽한 형태를 이루지 못해, 지금처럼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버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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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라이트 노벨에나 나올 법한 현재 상황에도 ‘적응’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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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다쳤어?”
    “으응?”
    ​
    ​
    그건 어디까지나 적응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의 일이었다. 처음 보는 미소녀가 거리감 없이 훅 다가와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말을 거는 장면은 새로운 충격이었기에 권능이 약화되었다.
    ​
    ​
    제스는 말랑해 보이는 리안의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팔을 활짝 벌렸다. 마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거 같은 모습에 리안이 주춤하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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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왓, 읍..!”
    “귀여워어!”
    ​
    ​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그대로 얼굴이 끌어안겨졌다.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말캉함과 바디워시 특유의 부드러운 향기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
    ​
    그녀의 강한 힘에 그대로 종이 인형처럼 흔들리다가 숨이 막혀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
    ​
    “앗..”
    “…!”
    ​
    ​
    다급했던 탓일까? 리안이 밀어낸 건 어깨가 아닌, 리안을 숨통을 조여오던 말랑한 가슴이었다.
    ​
    ​
    리안은 태어나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그 황홀한 감촉을 확인하듯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가, 제스의 가냘픈 신음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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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앗! 리안!”
    ​
    ​
    권능은 더 이상 작동하는 걸 그만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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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막 깨어나자마자 보인 새하얀 천장을 보며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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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꿈이었구나.’
    ​
    ​
    종종 양아치들에게 폭력적인 일을 당하다 기절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눈을 뜨면 항상 양호실에서 눈을 떴기에, 리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꿈으로 치부했다.
    ​
    ​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적응’의 권능은 리안을 온전히 보호할 정도의 힘은 없었지만, 무너지는 정신을 보호할 정도는 되었다. 
    ​
    ​
    가냘프게 흔들리던 정신이 혼란에서 벗어나 굳건하게 제 자리를 찾는 순간. 묘하게 평소보다 시야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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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와 달리 베개가 두 개 쌓여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뒷머리를 맞아서 혹이라도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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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에 스며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뒷목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
    ​
    “어…?”
    ​
    ​
    리안은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러자 대충 하얀 천장만 확인하고 눈을 감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붉은 머리카락을 뒤늦게 발견했다.
    ​
    ​
    “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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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턱 아래에서 사람을 올려다보면 굴욕스러운 얼굴 샷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의 법칙을 혼자만 빗겨나간 건지,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
    ​
    리안은 그제야 제 머리가 탄력 있는 허벅지 위에 놓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
    “아.”
    ​
    ​
    오래된 컴퓨터를 부팅시킨 것처럼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렸다. 제스는 리안이 짧은 탄성을 내뱉은 후 그대로 굳어버리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
    ​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릴 때마다 체향이 훅 맡아졌다. 섬유 유연제의 향기처럼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의 향기가 리안의 머릿속을 또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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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리안답게 또다시 권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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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어디 아파?”
    ​
    ​
    제스는 리안이 기절한 사이 여기저기를 조물조물거려 사심을… 아니,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을 끝냈지만, 혹시나 그녀가 파악하지 못한 곳에 상처가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
    ​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애정과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에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
    ​
    삐걱, 리안은 양호실 침대가 시끄럽게 울어댈 정도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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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양… 호실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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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문장을 완성 시킨 후 호랑이 굴에서 도망치는 가녀린 토끼처럼 후다닥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다행히 그가 내려온 쪽에 실내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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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실내화를 구겨 신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침대 공간을 나누고 있는 커튼을 치웠다. 양호실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지만, 인사조차 제대로 뱉지 못한 채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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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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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거친 발걸음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벌써 수업이 시작된 건지 복도는 고요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는 NPC처럼 평온한 얼굴로 느릿하게 제 교실을 찾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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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뛰듯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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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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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이 빠르게 차오르다 못해 숨통을 조여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오랜 시간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시야가 어지럽고 바닥이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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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없이 발을 움직여 도착한 곳은, 처음 제스가 도착했던 인적이 드문 음악실 창고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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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그럭,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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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작은 열쇠를 꺼내 잠긴 교실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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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자 커튼이 쳐져 캄캄한 창고에 빛이 스며들어왔다. 빛에 노출되면 상하는 악기들이 있었기에 커튼은 암막 커튼이었다. 그 탓에 음악실은 밝은 낮임에도 정적이었다.
    ​
    ​
    커튼 틈과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부유하는 미세한 먼지를 비췄다. 리안은 곧바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
    ​
    철컥.
    ​
    ​
    “하아, 하아…”
    ​
    ​
    나무 문에 머리를 박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을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리안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쿵 하고 문에 머리를 가볍게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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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 대체 왜 날 그렇게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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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오랜 시간 애정 한 자락을 갈구해왔다. 예의상 건네는 감사의 인사라도 좋았다. 그를 이용하려 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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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이 세상을 사랑했고, 사랑받길 원했기에 지어낸 사랑조차 긍정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를 거부하는 것처럼 단 한 방울의 애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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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원하고 절망하고 비루하게 매달리다 결국 체념과 함께 놓아버렸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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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애정을 한 방울도 아닌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처럼 품은 이가 나타났다. 모든 걸 포기한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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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알 수 없는 미지에 두려움을 느낀다. 눈앞에 괴이한 존재가 서 있는 것보다, 어두컴컴한 복도 너머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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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고립된 그에게 제스의 무한한 애정은 사랑스러운 폭력이자 두려움이었다. 권능으로 인해 한껏 예민해진 리안의 감각은 제스의 애정을 느꼈고 감당하지 못한 리안은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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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도저히 답을 내리지 못한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
    ​
    말라 죽어가는 이에게 내밀어진 잘 익은 고기처럼, 제스의 애정이 너무나 탐욕스러웠다. 체념이란 감정으로 내동댕이쳐졌던 감정이 게걸스럽게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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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악, 학..”
    ​
    ​
    리안은 머리를 꾹 부여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
    ​
    왜 이제 와서? 네가 뭐기에? 라는 분노와 그녀의 애정을 한 입에 삼켜버리고 싶다는 탐욕, 손에 넣었다가 잃게 될 때 느낄 상실감에서 비롯된 두려움, 권능으로 인해 잠들었던 원초적인 본능들이 깨어나며 느껴지는 지독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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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당 인간이라면 느낄 법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리안의 숨통을 조여왔다. 신음하던 리안은 결국 바닥에 쓰러져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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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서 도망치고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하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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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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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게 꿈일 거라 생각하며 평온하게 미소 짓던 조금 전과 달리, 지금의 리안은 제게 한없이 애정을 쏟아주던 존재가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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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겨있던 눈이 슬며시 뜨자,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그 빛에 따라 흔들리는 작은 먼지도 보였다. 악기들 특유의 텁텁한 향이 폐를 가득 채웠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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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절하듯 잠들 수 없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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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 본능으로 권능까지 가지게 된 리안이었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황에 빠질 법한 상황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거칠어졌던 호흡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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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읍…하아..”
    ​
    ​
    리안은 깊게 숨을 들이 마신 후 뱉어내길 반복하며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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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
    ​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혼잣말을 뱉어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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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쾅!
    ​
    ​
    “헉..!”
    ​
    ​
    굳게 잠겨있던 교실 문이 거칠게 흔들리며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음을 냈다. 리안이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
    ​
    콰앙! 콰직!
    ​
    ​
    문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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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서진 문틈 사이로 곱게 눈꼬리를 휜 제스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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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적발 미소녀가 떨어져 사람을 기절시킨다면 양아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간단하다. 도망친다.

“쌔, 쌤!”

“미친! 같이 가!”

끽해봐야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애들 돈을 뜯거나 성인이 되면 무한정 피울 수 있는 담배가 일탈의 전부인 허약한 양아치들은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제 친구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제스는 콧잔등을 씰룩이다가 이내 기절해버린 남자 위에서 내려왔다.

“어, 그게..”

리안은 멍한 얼굴로 제스를 바라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떨었다. 그의 ‘적응’이라는 권능이 발동되고 있긴 했지만 아직 완벽한 형태를 이루지 못해, 지금처럼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버벅거렸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라이트 노벨에나 나올 법한 현재 상황에도 ‘적응’할 터였다.

“안 다쳤어?”

“으응?”

그건 어디까지나 적응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의 일이었다. 처음 보는 미소녀가 거리감 없이 훅 다가와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말을 거는 장면은 새로운 충격이었기에 권능이 약화되었다.

제스는 말랑해 보이는 리안의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팔을 활짝 벌렸다. 마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거 같은 모습에 리안이 주춤하는 것과 동시에.

“우왓, 읍..!”

“귀여워어!”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그대로 얼굴이 끌어안겨졌다.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말캉함과 바디워시 특유의 부드러운 향기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그녀의 강한 힘에 그대로 종이 인형처럼 흔들리다가 숨이 막혀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앗..”

“…!”

다급했던 탓일까? 리안이 밀어낸 건 어깨가 아닌, 리안을 숨통을 조여오던 말랑한 가슴이었다.

리안은 태어나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그 황홀한 감촉을 확인하듯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가, 제스의 가냘픈 신음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아앗! 리안!”

권능은 더 이상 작동하는 걸 그만뒀다.

***

리안은 막 깨어나자마자 보인 새하얀 천장을 보며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역시 꿈이었구나.’

종종 양아치들에게 폭력적인 일을 당하다 기절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눈을 뜨면 항상 양호실에서 눈을 떴기에, 리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꿈으로 치부했다.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적응’의 권능은 리안을 온전히 보호할 정도의 힘은 없었지만, 무너지는 정신을 보호할 정도는 되었다.

가냘프게 흔들리던 정신이 혼란에서 벗어나 굳건하게 제 자리를 찾는 순간. 묘하게 평소보다 시야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평소와 달리 베개가 두 개 쌓여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뒷머리를 맞아서 혹이라도 생겼나?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에 스며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뒷목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

리안은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러자 대충 하얀 천장만 확인하고 눈을 감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붉은 머리카락을 뒤늦게 발견했다.

“일어났어?”

일반적으로 턱 아래에서 사람을 올려다보면 굴욕스러운 얼굴 샷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의 법칙을 혼자만 빗겨나간 건지,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리안은 그제야 제 머리가 탄력 있는 허벅지 위에 놓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오래된 컴퓨터를 부팅시킨 것처럼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렸다. 제스는 리안이 짧은 탄성을 내뱉은 후 그대로 굳어버리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릴 때마다 체향이 훅 맡아졌다. 섬유 유연제의 향기처럼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의 향기가 리안의 머릿속을 또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리안답게 또다시 권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혹시 어디 아파?”

제스는 리안이 기절한 사이 여기저기를 조물조물거려 사심을… 아니,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을 끝냈지만, 혹시나 그녀가 파악하지 못한 곳에 상처가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애정과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에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삐걱, 리안은 양호실 침대가 시끄럽게 울어댈 정도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그, 양… 호실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문장을 완성 시킨 후 호랑이 굴에서 도망치는 가녀린 토끼처럼 후다닥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다행히 그가 내려온 쪽에 실내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실내화를 구겨 신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침대 공간을 나누고 있는 커튼을 치웠다. 양호실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지만, 인사조차 제대로 뱉지 못한 채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타닷!

평소보다 거친 발걸음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벌써 수업이 시작된 건지 복도는 고요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는 NPC처럼 평온한 얼굴로 느릿하게 제 교실을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뛰듯이 걸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이 빠르게 차오르다 못해 숨통을 조여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오랜 시간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시야가 어지럽고 바닥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없이 발을 움직여 도착한 곳은, 처음 제스가 도착했던 인적이 드문 음악실 창고 앞이었다.

절그럭, 철컥!

리안은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작은 열쇠를 꺼내 잠긴 교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자 커튼이 쳐져 캄캄한 창고에 빛이 스며들어왔다. 빛에 노출되면 상하는 악기들이 있었기에 커튼은 암막 커튼이었다. 그 탓에 음악실은 밝은 낮임에도 정적이었다.

커튼 틈과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부유하는 미세한 먼지를 비췄다. 리안은 곧바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철컥.

“하아, 하아…”

나무 문에 머리를 박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을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리안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쿵 하고 문에 머리를 가볍게 박았다.

“대체… 대체 왜 날 그렇게 보는 거야?”

아주 오랜 시간 애정 한 자락을 갈구해왔다. 예의상 건네는 감사의 인사라도 좋았다. 그를 이용하려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 세상을 사랑했고, 사랑받길 원했기에 지어낸 사랑조차 긍정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를 거부하는 것처럼 단 한 방울의 애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애원하고 절망하고 비루하게 매달리다 결국 체념과 함께 놓아버렸던 ‘애정’.

그 애정을 한 방울도 아닌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처럼 품은 이가 나타났다. 모든 걸 포기한 그에게.

인간은 알 수 없는 미지에 두려움을 느낀다. 눈앞에 괴이한 존재가 서 있는 것보다, 어두컴컴한 복도 너머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세계에서 고립된 그에게 제스의 무한한 애정은 사랑스러운 폭력이자 두려움이었다. 권능으로 인해 한껏 예민해진 리안의 감각은 제스의 애정을 느꼈고 감당하지 못한 리안은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리안은 도저히 답을 내리지 못한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라 죽어가는 이에게 내밀어진 잘 익은 고기처럼, 제스의 애정이 너무나 탐욕스러웠다. 체념이란 감정으로 내동댕이쳐졌던 감정이 게걸스럽게 입을 벌렸다.

“하악, 학..”

리안은 머리를 꾹 부여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이제 와서? 네가 뭐기에? 라는 분노와 그녀의 애정을 한 입에 삼켜버리고 싶다는 탐욕, 손에 넣었다가 잃게 될 때 느낄 상실감에서 비롯된 두려움, 권능으로 인해 잠들었던 원초적인 본능들이 깨어나며 느껴지는 지독한 혼란.

응당 인간이라면 느낄 법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리안의 숨통을 조여왔다. 신음하던 리안은 결국 바닥에 쓰러져 눈을 꾹 감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서 도망치고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하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잠들 수 없었다.

‘꿈이면 어쩌지?’

모든 게 꿈일 거라 생각하며 평온하게 미소 짓던 조금 전과 달리, 지금의 리안은 제게 한없이 애정을 쏟아주던 존재가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잠들 수 없었다.

감겨있던 눈이 슬며시 뜨자,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그 빛에 따라 흔들리는 작은 먼지도 보였다. 악기들 특유의 텁텁한 향이 폐를 가득 채웠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기절하듯 잠들 수 없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생존 본능으로 권능까지 가지게 된 리안이었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황에 빠질 법한 상황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거칠어졌던 호흡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후읍…하아..”

리안은 깊게 숨을 들이 마신 후 뱉어내길 반복하며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대앉았다.

“진정…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혼잣말을 뱉어낸 순간.

쾅!

“헉..!”

굳게 잠겨있던 교실 문이 거칠게 흔들리며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음을 냈다. 리안이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콰앙! 콰직!

문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찾았다!”

“…!”

부서진 문틈 사이로 곱게 눈꼬리를 휜 제스와 눈이 마주쳤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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