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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내가 원래 학교를 다닐 적에 방학이란 건 언제나 짧은 것이었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으면 입에서 절로 벌써?! 라는 비명이 새어나오곤 했지.

   

   허나 지금은 아니다. 난 아직도 방학이 끝나지 않았단 것에 전율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내 손으로 내 스텟을 올릴 수 있는 건데!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잖아!

   

   안다. 이 보상을 준 것이 그 동안 고생했으니 쉬라는 허접 주신의 배려라는 것을.

   

   허나 그 휴식은 내가 병약 메스가키일 적에 모두 다 취했다.

   

   이젠 몸이 멀쩡해져서 알른 가문 기사와 동등한 수준의 훈련을 거듭할 수 있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동 성장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훈련을 해야 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단 말이다!

   

   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맞지. 맞는 말이야.

   

   근데 있잖냐! 이 빌어먹을 판타지 세상에서 백수가 할 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스마트폰도 PC도 없는 세상에서 할 게 얼마나 되겠냐고!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나니까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내가 아카데미 개학 며칠 전 미리 그 쪽에 가려 마음먹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최소한 거기는 저택에 있을 때보다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어쩌면 자잘한 퀘스트라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고.

   

   “아가씨. 정말 가시는 겁니까?”

   

   방학 기간 내내 내 옆에 붙어 다니며 시종을 들었던 에린은 예의상 가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난 눈치 없는 상사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갑이 옆에 붙어 있으면 얼마나 귀찮은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칼과 함께 아카데미로 향했다.

   

   방학 기간이 꽤나 길었음에도 아카데미의 거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카데미가 망한 것도 아닌데 몇 십 년간 유지되어온 거리에 격변이 생길 리가 있나.

   

   라는 나의 생각은 알새틴이 돌아왔을까 싶어 뒷골목을 방문한 순간에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안녕하십니까!”

   

   과거 알새틴의 정보상은 시시껄렁한 패들이 뭉쳐있는 곳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섭고 더러워서 다가가지 않을 듯한 그런 장소 말이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깡패를 연기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예를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누군가가 환상을 보여 주고 있는 거 아냐?

   

   꿈인가? 아냐. 그럴 리는 없어. 할배랑 수련하느라 꿈을 안 꾼 지가 몇 달인데 꿈 일리가.

   

   누가 최면어플이라도 쓴 것만 같은 풍경에 멍하니 굳어 있으려니 위쪽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고용주님. 오랜만에 보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른 영애.”

   

   카리아의 표정은 당당하고 알새틴은 어색한 것이 이 상황을 주도한 게 누구인지 뻔히 보였다.

   

   아무래도 십 년 간 행방불명되었던 스승은 제자가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어때? 괜찮아 보여?”

   

   나의 당혹을 읽은 듯 카리아가 계단에서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우리 제자 놈이 해놓은 꼴을 보다가 예전에 안 가르쳐 준 게 있단 걸 알려줘서 교육을 하는 중이었어. 좀 바뀌었지?”

   

   좀이 아닌 것 같은데. 단검을 혀로 핥아대던 빡빡이가 군기가 딱 잡힌 차렷자세로 서있는 게 조금일 리가 없잖아.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라고!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것 같으니 해주자면… 음. 그래. 뉴먼 가문의 거점에 가 본 적 있어?”

   

   ‘네.’

   “있지. 기분 나쁜 노처녀 아줌마.”

   

   “거기 다 평범했지?”

   

   그러고 보면 그래. 뉴먼 가문의 거점은 어느 곳이건 다 평범한 가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이 많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 듯 서비스가 안 좋긴 했지만 분명 있을 법한 가게였지.

   

   “우리 제자처럼 질 나쁜 분위기를 조성해서 사람을 내쫓는 게 나쁘진 않아.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문제가 뭐냐면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쪽의 권력자에게 털린다는 거야.”

   

   안 좋은 일. 그러니까 커다란 범죄 같은 것이 생겼을 때에 권력자의 적의를 살 수 있다고.

   

   설령 권력자와 커넥션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 꼬리자르기를 당할지 모르는 것이 이 쪽의 생리이니만큼 정보상을 운영할거라면 평범하게 인기 없지만 근근히 먹고 사는듯한 곳이 좋다고 카리아는 설명을 해주었다.

   

   “최고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누가 왔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곳인데. 이런 건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 좋지.”

   

   ‘너무…’

   “오히려 눈에 더 띄는 거 아냐? 저 성질 더러운 빡빡이가 꼿꼿이 서있으면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수군거릴 거 같은데.”

   

   “말했잖아. 가르치는 중이라고. 바꾸진 않을 거야.”

   

   아아. 다음번에 거점을 만들 땐 이런 식으로 하라는 느낌인건가.

   

   다행이네. 계속 이런 분위기였으면 어마어마하게 부담스러웠을 거야.

   

   “일단 올라와. 고용주님. 해야 할 이야기가 몇 개 있거든.”

   

   나를 방으로 안내한 후에 능숙하게 칼을 내쫓은 카리아는 바깥과 안의 소리를 차단시켰다. 평범한 사람이 들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라면서.

   

   “이번에 제자랑 같이 조사를 하면서 느낀 건데 주신 교회 그 쪽 예전보다 더 위험해졌던데?”

   

   카리아는 말했다.

   

   과거 왕국의 그림자로 근무할 적에도 주신 교회가 그리 깨끗한 곳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고.

   

   다만 뒤가 구린 사람보다 적을지언정 분명 선한 이들이 존재했기에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 떨어지는 상태였다고.

   

   “지금은 아냐. 균형이 무너졌어.”

   

   주신 교회가 대륙 널리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권력의 중심은 성지다.

   

   그리고 지금 성지에는 진심으로 신성을 믿는 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리스트를 짤 적에 위험하다 판단 내렸던 녀석들이 왜 다 위쪽에 포진되어 있는 건지.”

   

   아직 제대로 조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보인다며 카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주님. 이 일이 그리 급한 건 아니지?”

   

   ‘네. 맞아요.’

   “왜 아줌마. 나이가 드니까 예전처럼 움직이기 버거워? 어쩔 수 없지. 나이가 나이니까. 이해할게. 무능한 아줌마.”

   

   “…그런 거 아냐! 내가 힘을 잃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 쯤은 한 달 만에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나이 때문이 아니다.

   

   힘을 잃었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한 조사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달라는 것뿐이라며 버럭거리던 그녀는 이내 바닥을 내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침착을 되찾았다.

   

   “일단 이거나 받아둬.”

   

   카리아가 내민 것은 자그마한 수첩이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싶어 그를 열어 본 나는 첫장에 적힌 내용을 눈에 담자마자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킨 크리샤 추기경

   독실한 신앙을 이어온 크리샤 가문의 삼남으로 태어나…

   자신의 발언력을 부정한 무언가를 취득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가 잦으며…

   과거 페로아 가문의 이녀를 강간하여…(증거 입수. 사실임.)

   협상을 할 경우에는 부정을 안다는 티를 내며…

   

   수첩에 서술된 것은 교회의 권력자가 지닌 부정이었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공론화가 된다면 큰 소란을 일으킬 만한 것들.

   

   뒤 쪽에 적힌 내용도 비슷했다. 자세한 것도 있고 허술한 것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권력자의 부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전에 일할 적에 조사해뒀던 거야. 단순히 논란거리가 된 것부터 사실이 확인된 것까지 기억나는 대로 모두 적었어.”

   

   시간이 지나서 늘어난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줄어들지는 않았을거라는 카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 할배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아야. 이것이 사실이더냐?>

   ‘저도 몰라요.’

   

   정확하게는 모르는 것도 있고 아는 것도 있다고 해야겠지.

   

   똑같은 교회의 고위층이라고 해도 게임 속에서 비중이 큰 사람과 비중이 없다시피한 사람은 분명 나뉘니까.

   

   아무리 내가 썩은물이어도 게임에서 서술해주지 않은 부분은 몰라.

   

   그러니 여기에 있는 게 모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최소한 내가 아는 바 내에서라면 여기에 적힌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말이 모른다는 거지 다른 것도 모두 사실이리라. 과거 왕국의 그림자라 불리던 이가 조사한 데에 허술함이 있을 것 같진 않으니.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모르겠다고 답한 것은 할배의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였다.

   

   여태까지 허접 주신의 핑계를 대며 여러 기행을 벌였던 내가 고개를 끄덕여버리면 이 모든 게 사실이 되어버리지 않나.

   

   불신자인 나야 이를 봐도 쓰레기 새끼들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할배는 다르다.

   

   과거 교회의 사람이었으며 현재 주신 교회가 세력을 퍼트리게 된 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자 신의 말을 믿고 세상을 구한 할배가 받을 충격은 내가 받을 충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교회에 여러 안 좋은 부분이 있다 말하던 할배라도 아예 썩어빠진 쓰레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건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알아가야 하는 사안이다.

   

   지금은 반신반의 하는 정도면 적당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될 테니까.

   

   “그거 낡은 정보니까 너무 믿지 말고 참고 정도만 해.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건 알지?”

   

   ‘이걸 누구한테 보여줘요.’

   “걱정 마. 난 누구랑 다르게 젊어서 수군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쨌든 일단은 그걸로 참아. 길어도 2년 내로는 거기 적힌 것들을 최신화 해 줄 테니까.”

   

   머잖아 제대로 된 것을 가져다주겠다는 카리아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건 허세일까.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일까.

   

   난 카리아라는 사람을 모르니만큼 어느 쪽이라 확신을 내리진 못한다.

   

   다만 저 말이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라면 카리아라는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정보원보다 유능한 인물이리라.

   

   게임에 살아있는 채로 나왔다면 페이비와 마찬가지로 밸붕캐릭 취급이었겠네.

   

   “일의 진행상황을 알려줬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

   

   본론? 지금까지 한 말이 본론이 아니었단 말이야?

   

   지금 내 손에 폭탄을 쥐어줬으면서 이걸 곁다리 취급할 정도면 대체 본론은 얼마나 심각한 일인 건데?!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카리아는 입을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우리 고용주님에 대한 이야기야.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알아두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저요?’

   “나?”

   

   “그래. 고용주님. 주변 눈치 거의 안 보는 척 하지만 사실 엄청 신경 쓰는 우리 고용주님.”

   

   그것까지 눈치 채고 있었어?! 진짜 카리아한테는 메스가키 스킬의 행동강제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구나.

   

   하아. 모두들 카리아처럼 눈치가 빨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내가 오해당할 일도 없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안 좋은 소식이야.”

   

   ‘뭔데요?’

   “아줌마. 빨리 말이나 해. 뜸 들이는 건 아줌마의 비혼이면 충분하잖아?”

   

   “…진짜 은혜를 입지만 않았어도 꿀밤을 때려주는 건데.”

   

   그리 말을 하며 한숨을 쉰 카리아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이야기를 이었다.

   

   “먼저 결론을 이야기할게. 고용주님은 평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고 모두의 질투를 받는 사람이 되었어. 단적으로 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야.”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카리아님?

   

   왜 제 평판이 올랐는데 적이 더 많아지는 거죠?!

   

   야! 허접 주신! 일 제대로 안 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능 주신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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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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