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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스트리아는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하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나, 나를 위해서 해주는 건데 그게 싫을 리가 없잖아.”

     

   왜인지 뒤에 있는 아슬란과 세이랑의 시선이 짠해진 기분이었지만 아스트리아는 정신이 없었다.

     

   “크라슈 님.”

     

   그런 그녀 대신 나선 것은 성녀의 성기사 디오나였다.

   성기사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그녀다.

     

   아스트리아의 호위 역할을 맡을 만한 실력을 갖춘 그녀는 크라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배를 부수시겠다고 했습니다만. 성배의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성배를 부수고 싶다면 최소한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했다.

   그런 그녀의 말을 들은 크라슈는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거기에는 미레이 베아키스가 서 있었다.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그녀는 앞으로 걸어와 고개를 한차례 숙였다.

     

   “성배의 위치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미레이 베아키스 추기경님께서 말씀이십니까?”

     

   디오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살짝 난처한 기색도 서려 있었다.

     

   그야, 지금 반대파의 수장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테르사다 베아키스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이쪽을 돕는다는 게 미심쩍었다.

     

   하지만 미레이는 디오나 대신 성녀 아스트리아를 바라보았다.

     

   “저는 성녀님께 한 번 목숨을 빚지었습니다. 세계 침식자의 종으로 타락되어 버렸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성녀님 덕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원래 대로였다면 미레이는 십중팔구 처형이 예정되어 있었다.

   신성 왕국이 인정한 추기경이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어 희롱당했다는 사실을 퍼지면 신성 왕국의 입지가 위험하니까.

     

   거기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은 다름 아닌 아스트리아였다.

     

   크라슈에게 부탁을 받은 것도 있긴 했으나.

   아스트리아야말로 신성 왕국에서 가장 부당한 일을 많이 겪어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아스트리아는 미레이가 그런 식으로 처형당하는 것을 절대 두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아스트리아는 미레이를 살리고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성녀님께서 신성 왕국과 직접 담판을 벌여 주신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미레이는 자신이 신성 왕국으로 끌려온 날.

   사슬에 묶여 무릎 꿇린 자신의 옆에 서준 아스트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영문도 모른 채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어 버린 후 경멸받던 자신을 말이다.

     

   「이곳은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는 곳입니다. 죄를 지지 않은 인물이 부당한 대가를 당한다면 신성 왕국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과 같아요.」

     

   그때 자신을 감싸며 해준 아스트리아의 말을 미레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프리만이기에 오히려 미레이 베아키스 추기경을 지켜야만 합니다. 신께서도 넓은 아량으로 응당 그리하셨을 테니까요.」

     

   미레이가 신에게 기도를 올리듯 자신의 양손을 모은 뒤 무릎을 꿇었다.

   그 몸짓에는 아스트리아를 향한 경의가 담겨 있었다.

     

   “아스트리아 님은 성녀님이 맞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진짜 성녀님을 뵈었습니다.”

     

   누구보다 불합리한 상황에 부닥쳐 있음에도 다른 이를 위해 신성 왕가의 불의에 맞서 설 수 있는 자.

     

   그런 이를 어느 누가 성녀라고 일컫지 못할 수가 있을까.

     

   아스트리아의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성녀로서 해온 선행이 거짓된 게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스트리아는 알지 못하나 그녀의 선행은 늘 누군가를 움직인다.

     

   이번에 그녀의 선행으로 움직이게 된 이는 미레이 베아키스였다.

     

   미레이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띄워졌다.

     

   “성녀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릴 수 없지 않나요. 프리만의 성녀님께 받은 빚은 너무나 크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갚고 싶었습니다.”

   “미레이 베아키스 추기경…….”

     

   그녀의 진심을 느낀 아스트리아는 미레이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태양과도 같은 미소가 눈부시게 빛났다.

     

   “고마워요. 당신의 뜻, 감사히 받겠어요.”

     

   그 모습은 정말로 누가 뭐래도 성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크라슈가 짧게 웃었다.

     

   ‘저 녀석의 선행으로 움직이게 된 건 미레이만이 아니니까.’

     

   크라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스트리아에게는 갚을 수 없는 목숨을 빚졌었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크라슈가 갚아줄 차례였다.

     

   “성배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디오나는 걱정을 담아 아스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로서는 아스트리아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후에 반대파 때문에 그녀의 신변이 위험해지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당장 성배까지 가는 길 또한 걱정이 태산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 걱정은 크라슈가 덜어 주기로 했다.

     

   “성녀님 가시는 길 고속으로 뚫어줄 테니까.”

     

   이쪽은 특기 분야다.

   크라슈의 장담을 들은 아스트리아는 결심이 선 듯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 가자 신성 왕국을 부수러.”

   

   

   

   

     

   신성 왕가 프리만이 꼭꼭 숨으려 둔 성녀를 만드는 성배.

   그것을 부수기로 결정을 내렸다.

     

   크라슈는 마지막으로 한 인물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고명하신 점성술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라슈가 마지막으로 물은 인물은 다름 아닌 세이랑이였다.

   찻잔을 한 모금 기울이고 있던 그녀는 이내 크라슈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소녀의 이야기가 중요한가요? 소녀가 입을 여는 순간 어느 것이든 예언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데요.”

   “의견을 듣고 싶어질 뿐입니다. 위험한 수는 피해야 옳죠.”

     

   크라슈는 세이랑이 이번에 아스트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란 걸 별들을 통해 보아 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당신과 관련된 시점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세이랑의 점성술은 분명 세피라의 핏줄답게 무척이나 뛰어나다.

   하지만 크라슈가 관련되면 이상하리만치 어둠이 낀 듯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스트리아에게 문제가 있을 거란 걸 보긴 했으나 어둠이 낀 듯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크라슈의 미래의 결론은 하나로 내릴 수 없다는 것 같았다.

     

   ‘분기점이라던가요.’

     

   하나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는 것.

   어쩌면 크라슈는 그러한 운명을 거스르는 힘을 지닌 걸지도 몰랐다.

     

   ‘그보다 왜 다시 만나니까 또 스킬이 더 늘어나신 건지.’

     

   참,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한가지는 말할 수 있었다.

     

   “새까만 별이 프리만으로 살짝 기울어 있었어요.”

     

   새까만 별.

   그것은 늘 위험을 부르는 별이었다.

     

   그러한 별이 프리만으로 기울었다면 무언가 안 좋은 사건이 종종 터지곤 했다.

     

   “말하신 대로 주의해서 나쁠 건 없겠죠? 아스트리아를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하겠지만 프리만에 기울인 별은 저희가 대처해둘게요.”

     

   세이랑은 그리 말하며 블라비 쪽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블라비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사건이 터진다면 그가 직접 나서서 막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일종에 안전장치였다.

     

   “그러니 소녀의 친구를 잘 부탁해요.”

     

   세이랑이 아스트리아를 보며 웃음 지었다.

     

   오래전,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성녀의 얼굴을 연기하나 혼자 있을 때는 늘 삶의 찌든 얼굴을 하든 그녀가.

   이제는 영락없이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세이랑은 저 얼굴이 계속 아스트리아에게 걸려 있어 주기를 바랐다.

     

   “늘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평생 책임질 겁니다.”

     

   그러자 크라슈 쪽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척이나 의미를 곡해하기 좋은 말이라 아스트리아의 얼굴이 이제는 흰 곳을 볼 수 없을 만큼 새빨갛게 된 건 비밀이었다.

     

     

   * * *

     

     

   신들의 축제.

   추수를 마친 가을에 풍족한 작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축제 덕에 프리만은 어느 때보다도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신들의 축제는 매년 열리는 축제 중에서 가장 큰 축제인 만큼.

   각지에서도 이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화려한 서커스를 하는 이들부터 시작해 평범한 노점을 하는 이들과 구경꾼까지.

   수많은 이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한 축제 사이로 수상한 움직임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겉모습은 노점상이나 구경꾼에 가까우나 그들은 손에 든 마법 통신 장치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 예, B구역은 이상무입니다. ]

   [ A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들은 프리만의 신성 왕가 반대파 세력이었다.

     

   오늘은 대대적인 종교 혁명을 일으키는 날.

   썩어 버린 신성 왕가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 날이었다.

     

   오늘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해왔다.

     

   축제에서 신성 왕가가 저지른 일을 대대적으로 고하고, 그들의 앞에서 성배와 성녀의 정체를 까발려 축제 전체에 알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각지에는 이미 인맥을 통해 특보로 신성 왕가 쪽의 치부가 담긴 정보가 들어가고 있다.

     

   축제에서의 일이 터지는 순간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사가 나올 터.

     

   그렇게 된다면 신성 왕가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런 축제를 내려다보는 대신전의 건물 안.

   테르사다가 한 인물을 불렀다.

     

   “크라슈 발하임 님, 준비는 되셨습니까.”

   “예.”

     

   그는 다름 아닌 크라슈 발하임이었다.

   발하임 가의 막내이자 화제의 인물.

     

   그리고 그 화제를 등에 업고 이번에 프리만을 깨끗하게 바꿔줄 히든카드였다.

     

   크라슈의 옷차림은 테르사다의 요청에 따라 새하얀 일색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기운은 그를 더더욱 돋보이게 했다.

     

   오죽하면 오늘따라 신성력이 느껴지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테르사다는 지난 밤, 크라슈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죠. 영웅.」

     

   오늘 밤까지 의견을 결정해 달라는 테르사다의 말을 따라 크라슈는 대답을 가져왔다.

     

   「단, 아스트리아 쪽에는 피해가 최대한 안 가는 방향으로 할 겁니다.」

     

   그리고 저쪽은 역시나 예상한 대답을 가져왔다.

   그 대답을 들은 테르사다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님께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로 크라슈는 프리만의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허리춤에서 빛나고 있는 새하얀 검이 그 증거였다.

     

   10대 천검 중 하나인 성검.

     

   다른 검들과 다르게 단 두 글자로 명명된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신성하기 그지없었다.

     

   성검을 다루는 이들은 대대로 영웅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을 마치게 된다면 분명 크라슈도 프리만을 대표하는 영웅이 되어줄 터.

     

   새로운 프리만을 시작하기에 무척이나 걸맞은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진짜 축제를 시작해볼 시간이군요.”

     

   테르사다는 그리 말하며 창문 앞에 다가섰다.

     

   “베녹스.”

     

   그러면서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마법 통신 기구에 한 인물을 불렀다.

     

   “성배를 준비하세요.”

     

   성배를 지상에 꺼낼 시간이다.

     

   그리 말한 그가 대답을 기다리던 때였다.

     

   왜일까.

   이상하게도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거기에 의문을 느낀 그가 서서히 의아함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지직-

     

   노이즈 낀 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졌다.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테르사다가 마법 통신 기구를 한차례 흔드는 순간.

     

   [ 아아, 예, 다 준비되었죠. ]

     

   돌아온 목소리를 들은 그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뒤로 홱하니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여전히 크라슈가 서 있었다.

     

   새하얀 복장과 성검.

     

   다시 봐도 그는 분명히 크라슈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크라슈가 의문을 담아 묻자 테르사다는 굳은 얼굴로 침묵했다.

   왜냐하면 크라슈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했다.

   조금 전 마법 통신 기구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크라슈의 목소리였다.

     

     

   “……당신 누굽니까.”

     

   그가 질문을 던진 순간 크라슈의 인영이 점차 흩뜨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테르사다의 두 눈이 점점 더 커져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익숙한 푸른 머리카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미레이 베아키스.

     

   자신의 명을 따라 방에서 대기 중일 터인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도 그녀의 스킬 ‘미러’를 사용해 크라슈의 모습을 연기한 채로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크라슈 발하임은.”

     

   테르사다가 서둘러 창문 밖을 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하늘 위에 새까만 흑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건 테르사다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 갈 정도로 새까만 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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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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