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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213 – 재단에서 날아온 공문서>

     

    오크노디는 모자를 툭 치며 핀잔을 주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갑자기 헤스티아에게 말을 걸다니, 제 심정도 생각해달라고요.”

    “미안. 오래도록 대화를 나눈 아이가 심란해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어…”

    “죄책감 때문이죠? 실은 몸을 뺏으려고 했던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괴로워서.”

     

    모자는 적잖이 놀랐다.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지닌 아이.

    어쩌면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기에 날카로운 아이.

     

    “그럴지도. 아니, 그게 맞아. 마음은 컵에 들어찬 물과 같은 거야. 행동은 컵에서 넘쳐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담긴 마음이 행동으로 흘러내린다면, 마지막 한 방울이 된 것은 틀림없이 죄책감이었겠지.”

    “미안해요. 딱히 탓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알아. 헤스티아만큼 오래 지켜본 아이가 너였으니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 네가 어떤 아이인지.”

    “정말요?”

    “네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넌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요?”

    “사람들은 너를 착한아이 혹은 나쁜아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하고 싶은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지.”

    “헤헤. 진짜 줄곧 보고 계셨구나.”

    “너 자신은 스스로를 착하다고도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되고 싶은 쪽을 행세할 수 있으니까.”

    “미안해요. 여기까지만 해요. 자기 마음이 들키는 기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해맑은 웃음 뒤에 드리운 오크노디의 민낯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속마음을 2대 모자씨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그녀는 감히 자신의 잣대로 헤아려보았다.

     

    “그래도 실은 좋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분.”

    “치. 그만 하라니깐요.”

    “부끄러워하고 있네. 헤스티아처럼. 사랑 받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서 얼버무리고 싶어해.”

    “흥. 나빴어 진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런 네 모습도, 네 마음도. 언제나 착한아이가 될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착한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 말이야.”

    “남 몰래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고요?”

    “착한아이는 약해. 타인의 악의를 간파할 줄 모르고, 쉽게 속아 넘어가. 그래서 벽에 갇히고, 자신의 인생도 잃어버려. 그런 나니까 말할 수 있어. 나쁜아이라고…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많은 고민과 많은 후회가 꾹꾹 눌러담긴 진솔한 이야기에 오크노디가 손을 들어 모자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런 짓을 하면 착한아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진심이 담기지 않은 행동이라도 좋다.

    그 행동에 자신은 위안을 느끼고 있으니까.

    2대 모자씨는 생각했다.

    헤스티아와 오크노디.

    역시 이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오크노디.”

    “왜요?”

    “재단의 보복이 시작될 거야.”

    “…넹? 누구한테요?”

    “너한테.”

     

    그래서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 방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 *

     

     

    재단의 일반장학생 프라이머.

    한 차례 대소동이 되었던 저주작전이 실패한 뒤, 그는 재단으로부터 다른 지령을 받았다.

    오크노디의 주변인 곁에 머물러라.

    그리고 기회를 노려라.

    그녀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설마 이런 기회가 정말로 찾아올 줄이야…”

     

    ━━━

    <재단에 보내는 전언>

    헤스티아의 동아리에 찾아온 오크노디.

    장시간 신체의 자유를 상실하며 외부의 개입에 일방적으로 시달리는 <페이퍼 던전>에 침입.

    향후, 헤스티아를 이용하여 다시 한 번 페이퍼 던전에 오크노디를 밀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됨.

    ━━━

     

    암호로 적은 전서구를 둘둘 말아 작은 병에 넣고는 내부의 정부를 외부로 전달하고 싶을 때 이용하는 청소도구함에 집어넣는다.

    이 뒤에는 아카데미에 숨어든 재단의 다른 일원이 알아서 정보를 전달하겠지.

    다시 한 번 쓸모를 증명했으니 당분간은 재단의 무모한 임무를 받을 일은 없을 거라며 안도하던 프라이머의 발목을 거친 목소리가 붙잡아 세웠다.

     

    “프라이머. 괜한 짓은 하지 마.”

    “자쿠.”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또 너냐? 패배자 주제에 오지랖도 많군. 아니면 너… 초조한 건가? 너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가치를 증명하는 경쟁자가 생겨서. 나 때문에 네가 더 어려운 지령을 받게 될까봐.”

    “딱히? 너 같은 놈 따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꺾을 수 있어. 방금 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충고야.”

    “하. 순수. 순수라. 우리 같은 놈들 입에서 잘도 순수라는 말이 나오네. 그런 건 곱게 자란 오크노디 같은 아가씨 입에서나 나올 줄 알았는데.”

    “넌 오크노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재단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네가 아는 작은 정보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뻔한 수작이다.

    난 너보다 값진 정보를 알고 있다.

    내가 너보다 중요한 사람이다.

    궁금해해라.

    내가 지닌 정보를.

    매달려라.

    내 의견에.

    그런 얄팍한 ‘주도권 싸움’에 놀아날 이유가 없다.

     

    “잘난 듯이 지껄이지만 너도 결국은 재단의 지령이 날아오면 수행해야 할 뿐이잖아? 겁쟁이는 겁쟁이답게 무서운 지령이 날아오지 않길 기도나 하라고.”

     

    힘만 센 녀석은 더 강한 자들에게 휘둘릴 뿐이지만, 자신처럼 머리가 좋은 녀석은 충실하게 지령을 수행하며 재단에서의 입지를 높일 수 있다.

    언젠가는 자신 같은 견습장학생들을 잔뜩 모아다가 훈련시키는 교육자의 위치에 올라설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비로소 해방이다.

    언제 잘려나갈지 모른다는.

    언제 쓸모가 다해 버려질지 모른다는.

    지령에 쫓기는 공포를 잊고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지령을 받는 사람이 아닌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어. 너랑은 다르게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아이 한 명을 곤란하게 만드는 보고 따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가 아이였을 시절.

    자신을 쌀 한 포대 값에 팔아치운 부모도.

    그를 훈련시켰던 재단의 인간들도.

    누구 한 명도 어린아이의 어리광 따위,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이것이 그가 아는 현실이고, 그가 배운 현실이었다.

     

     

    * *

     

     

    아카데미에서 전달된 지령을 받은 감독관은 통신마도구를 들었다.

     

    “새장에서 쓸 만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조커의 버릇을 고칠 기회에 대한 정보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뚝.

    통신마도구의 전원을 내린 감독관은 수백 개의 서랍에서 지령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통신마도구가 담긴 서랍을 열었다.

     

    “특별지령이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정식공문을 넣어라. 재단의 이름으로 기프트 아카데미에 수석장학생 오크노디의 교외 학습 및 수업일수 대체인정요구서를 발송해라. 기한은 일주일. 학습내용은 충분한 실력에 비해 부족한 상식을 교육하기 위한 예절교육이다.”

     

    오크노디.

    재단의 수석장학생.

    이사장이 눈여겨보는 특별한 아이.

    그렇지만 선을 너무 넘었다.

    이 아이 때문에 피해를 본 지부가 한둘이 아니다.

    각국의 군부에 심어둔 인사들도 대대적인 군부감사를 받으며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정도로 간단히 정체가 드러날 이는 아니지만 전직용사 디스트로이어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지부는 궤멸을 당하다시피 했다.

    언젠가는 군부의 라인도, 다른 라인들도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대체 11살짜리 아이가 뭘 알고 있고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자물쇠를 채울 때가 됐다.

     

    “집사 조나에게는 어디까지 정보를 알리겠냐고? 멍청한 소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마라.”

     

    집사가 제대로 교육을 했다면 어린 암코양이가 사고를 치는 일도 없었겠지.

    제 실수로 ‘아가씨’들을 다치게 만든 트라우마 때문에 물러터진 교육이나 했던 녀석의 일처리 따위, 조금도 신용할 수 없다.

     

    “이번 일주일동안 착실하게 새겨넣어줄 거다. 재단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행실을 취해야 하는지. 만일 오크노디 학생이 거부하면 어떡하냐고?”

     

    감독관은 가슴팍의 나비넥타이를 한 손으로 풀어 내리고는 상의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가 꺼냈다.

     

    스르릉

     

    손가락보다 긴 갈고리모양의 날을 단 손목고정무기.

    조갑爪甲, 쌍비조雙飛爪, 수갑구.

    혹은 짐승의 긴 발톱을 닮았다 하여 클로Claw라고도 불리는 무기.

    날이 번뜩이며 허공을 누볐다.

    픽.

    시야 구석에서 날아다니며 신경을 거스르던 벌레 한 마리가 날개를 잃고 뚝 떨어졌다.

     

    “날지 말아야 할 벌레가 제멋대로 날아오르면 날개를 베어야지.”

     

    수석장학생은 보스의 관심이 깊은 것을 봐서라도 그리 거칠게 다룰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나가 하던 것보다는 엄한 교육이 되어야 하리라.

    곱게 고개를 숙이든,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려 들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재단은 모두 대응할 방법이 있으니까.

    감독관의 손이 품으로 들어가자 날카로운 클로의 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일어서 방을 나가는 그의 발이 날개를 잃고 추락한 벌레를 가볍게 짓밟았다.

    짓밟는 본인은 자각조차도 없는 압살이었다.

     

     

    * *

     

     

    “중간고사가 끝났다고 너무 풀어져서 지내시면 곤란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1학기의 절반, 1학년의 사분의 일을 보냈을 뿐이니까요.”

    “네에.”

    “후후. 대답은 언제나 씩씩해서 좋군요, 오크노디 학생. 아, 그리고 오크노디 학생은 끝나고 잠시 따라와 주세요. 따로 전달사항이 있거든요.”

     

    매주 월요일 1교시마다 찾아오는 상급반 홈룸.

    마하바라타 1학년 학생부장 교수님의 호출에 나는 호기심을 느꼈다.

    이 교수님이 이런 애매한 시기에 나를 부를만한 일은 없을 텐데, 무슨 신규이벤트라도 나타났나?

     

    “오크노디 학생의 신원보증을 받은 와이히엠하이 재단에서 공문을 전송했어요. 재단 측에서 학생에게 별도의 예절교육을 시킬 예정이니, 일반강의를 대체하여 수업일수를 인정해달라고 하네요.”

    “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오크노디 학생이 수락한다면 수업일수는 충분히 대체해드릴 용의가 있어요. 중간고사 종합 성적에서 이슈타르 공동수석을 넘어서 당당하게 1위를 기록한 수석이니까요.”

     

    생각해보고 말해주세요.

    결정까지는 이틀이 남았으니까요.

    마하바라타 교수님의 말에 나는 즉시 물었다.

     

    “지금 바로 답해도 되죠?”

    “그럼요.”

     

    고인물한테 모르는 이벤트가 나타났다? 그것도 이벤트가 제 발로?

    이거 참으면 고인물 자격 박탈해야지. 신규 이벤트는 절대 못 참아!

     

    “수락할게요!”

    “…정말 괜찮은 건가요, 학생? 혹시 재단에서 학생의 의지에 반하는 강압을 넣더라도 저희는 학생의 학업의지를 존중해서 보호해드릴 용의가 있어요.”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요!”

    “이게 맞는지 모르겠네…”

     

    마하바라타 교수님은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문서를 하나 내밀었다.

     

    “학생 본인의 참여의사를 확인하는 참가동의서에요. 여기에 사인하세요. 대신, 사인을 끝마치면 그때는 저희도 도와드릴 수 없어요.”

     

    망설임 없이 사인 슥삭 해치워버리기!

     

    “에휴… 난 모르겠다.”

     

    헤헤 웃으며 펜을 내려놓으니 마하바라타 교수님도 조금 화난 얼굴로 도장을 쾅쾅 찍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간밤에 새 표지가 나왔습니다.
    응애노디는 아니고 성숙한 오크노디입니다.

    아카데미 졸업 무렵 어른노디 오피셜 설정은 아니에요.
    졸업시점에 저만큼 커질지는 몰?루입니다.
    영원히 133cm의 응애노디로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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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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