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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아프다.

        

       샤를로트가 ‘때려도 되나요?’하고 물었을 때만 하더라도 아주 한순간 진지하게 시간을 또 돌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샤를로트는 내가 그런 고민을 끝마치고 행동할 시간을 굳이 주지 않았다.

        

       한순간 시야가 번쩍하고 이마에 통증이 퍼졌다.

        

       딱! 하는 소리를 보아서, 아마 샤를로트는 내 머리에 꿀밤이라도 먹인 모양이다.

        

       꿀밤이라고 해도 꿀맛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시간을 돌린다면 그조차도 피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후우.”

        

       번쩍이는 시야 뒤에 들어온 샤를로트의 표정이 몹시 통쾌해 보여서, 나는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눈물이 찔끔 나오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라서 손으로 문지르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싶은 생각을 꾹 참은 채, 자리에 앉는 샤를로트를 보았다.

        

       “좋아요, 그럼.”

        

       샤를로트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이 뒤에도 따로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국왕 폐하께 정보를 전달한 거겠죠? 별생각도 없이 다짜고짜 저를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음…….

        

       ‘별생각 없이’는 아니다.

        

       ‘나 혼자 하려던’ 계획을 갑자기 여러 명이 할 일로 바꿔버린 게 가장 크지.

        

       그런데 뭐 어쩌겠어.

        

       이미 이렇게 하자고 결정 한 건데. 안 그랬으면 나는 이미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리면서 이 사건조차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

        

       결국 내 주장은 저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수는 확실하게 많아졌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는 빼두고 생각했던 다른 모든 이들을 불러왔으니까.

        

       그래, 뭐, 제이크와 로티는 어차피 제국 사람이다. 제이크가 자기 아버지에게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로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이크가 말하지 않으면 로티도 말하지 않겠지. 이 두 사람은 큰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음으로, 레나.

        

       레나는……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정황상 자치국에서 내 주변에 사람을 심기 위해서 보낸 것이 확실한 아이였으니까.

        

       다만 본인의 성격이 순수한데다가, 시기상으로도 본격적으로 북부로 갈 타이밍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렇다 할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이 작전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특히 당신의 가족들이나 상관에게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혹시 몰라서 몇 번이고 그렇게 다짐받았는데, 이상하게 레나는 다짐받는 내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소속되어있는 동안은 저도 제국의 사관생도기도 합니다. 군인으로서 특정한 곳에 소속되어 진행한 작전을 타인에게 누설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

        

       엄밀히 따지자면 ‘제국의 작전’조차 아니지만.

        

       왜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야기를 듣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마 나를 그만큼 믿고 따르고 있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설마, 이 애의 안에 내재한 중2병이 ‘비밀작전’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고 있다거나.

        

       여기서 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전쟁이 한창이라는 설정의 원작에서는 주인공 일행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연출로 보면 아무리 봐도 사람을 태우고 토사에 깔리게 만들고, 얼음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칼로 베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전투가 끝나면 적들은 모두 죽어서 쓰러진다기보단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로 무력화된다.

        

       그렇다. 정의로운 주인공 일행은 이름도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 적들의 목숨까지 걱정하며 싸운다는 말이다.

        

       ……이미 사람을 몇 번이고 쏘아본 내가 하는 말인데, 현실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아무리 중2병이 다 낫지 않은 애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을 쏜 다음 정신이 완전히 멀쩡할 수는 없다.

        

       레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게 된 아이들 전부.

        

       뭐, ‘진짜로’ 사람을 쏘아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

        

       “레오는 어떻습니까?”

        

       자기 무기의 점검을 끝내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클레어에게 물어보자, 클레어는 조금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소피아와 단둘이 이야기 중이야.”

        

       아직도 둘은 서로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상대가 오빠이건, 남동생이건,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긴다고 한다면 기분이 엄청 이상할 것이다.

        

       물론 진짜로 여자친구가 생긴 건 아니고, 그냥 레오를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한 명 생겼을 뿐이지만.

        

       클레어 입장에서는 ‘쟤 어디가 좋아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원작에서처럼 레오가 하렘을 차렸다면 클레어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물론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나라는 존재가 없어야 할 거고,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원작처럼’ 굴러갔을 테지만.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돌리고 싶지 않거나, 돌릴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런 기준을 넘어간다면 시간이 ‘고정’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죠.”

        

       내가 한 대답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방 안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이전까지 한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결행된 작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모여주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

        

       방 안을 둘러보면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나와 ‘친구’라고 해도 될법한 이들.

        

       어째서인지 내 뒤를 맡겨도 될 것 같다는, 별다른 근거 없는 믿음이 드는 이들 뿐.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나아 원래부터 다 좋아하던 캐릭터들이었지만, 솔직히 얘네들이 나를 본 건 이제야 겨우 반년이 넘었을 뿐인데.

        

       내 어디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지.

        

       ……뭐.

        

       적어도, 그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는 있어야겠지.

        

       *

        

       “실비아.”

        

       소피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 레오가 방에서 나와 나를 불렀다.

        

       “소피아가 너와도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레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JRPG의 전통적인 ‘정의로운 주인공’ 위치에 있는 레오는, 게임에서 이름이 고작 두 번 정도밖에 언급되지 않는 엑스트라의 죽음에도 안타까움을 표현할 정도로 착해빠진 놈이었다.

        

       당연히 우리 작전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했을 소피아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레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레오가 나온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샤를로트의 방 안에는 드레스룸이 딸려있다. 옷이라고 해봐야 거의 다 비슷비슷한 어두운 색의 옷을 입는 나나, 연회 같은 곳에 나가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던 앨리스와는 다르게, 샤를로트는 귀족들과 자주 어울리고 무도회 같은 곳에도 종종 나갔다고 했다.

        

       그러니 그 ‘드레스룸’이라는 곳은 그렇게까지 좁은 곳은 아니다. 어쩌면 학생 등골 빨아먹기 위해서 대학가에 지어진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보다 훨씬 넓을지도 모르겠다.

        

       그 드레스룸 한가운데에 의자 두 개가 마주 보도록 놓여있었고, 그중 하나에 소피아가 앉아있었다.

        

       소피아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럴만도 하지.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소피아 앞에 앉았다.

        

       “……제가 레오 한 사람 때문에 조국을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실제로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신하는 이는 역사적으로도 꽤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 말에 소피아가 반발하려는 표정을 지어서 나는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소피아는 나한테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 계속 나를 노려보았다.

        

       “제가 당신을 여기 굳이 불러온 이유는.”

        

       사실 클레어와 샤를로트의 반응이 가장 컸지. 만약 그 둘이 그렇게까지 반발하지 않았다면 소피아를 여기에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소피아 입장에서도 그냥 우리한테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할 테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당신이 우리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

        

       내 말에, 소피아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

        

       이 게임의 주인공 일행들은 모두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었다.

        

       주인공인 레오를 제외하면, 모두가 무언가 심각하게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귀족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니 당연할지 모른다. 비인간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른 이들과 제대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법을 알 리가 없었다.

        

       아제르나 전기에서 주인공 일행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풀자면, 그런 것이다.

        

       언제나 진솔한 주인공 레오를 통해, 결국 모두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

        

       여신이 어떻냐느니, 전쟁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그런 것은 전부 그냥 장식일 뿐이다. 그 게임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결국 주인공 일행들의 우정 이야기였다.

        

       내가 그렇게 몰입해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내가 원작에서 소피아의 위치에 반발심을 품었던 것도, 거의 완성된 주인공 일행의 ‘우정’안에 다짜고짜 들어와서 훼방을 젓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원작보다 훨씬 먼저 등장했으니까.

        

       게다가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여기 있으면 안 될 캐릭터’는 소피아가 아닌 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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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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