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4

     

    “오오, 고트베르크 병원장님!”

    “지난번에는 검진 신세 졌습니다.”

     

    연합군 총회의장에 들어서니 악수 요청이 들어왔다. 소국의 사절들이었다.

     

    “오랜만에 뵙소이다.”

     

    왕국의 대런 장군이 큼지막한 손으로 악수를 청해왔다.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원장님의 충고로 궐련을 끊은 덕분이었소. 처음엔 힘들었지만 몇 달 지나니 젊은 시절 생기가 돌아오더군. 지금은 비타민 없으면 아침을 시작 못 하지.”

     

    장군이 이두근을 자랑하며 건강을 과시했다.

     

    “원장 선생님! 뵙고 싶었어요.”

     

    “오랜만입니다, 왕녀님.”

     

    페르시야 1왕녀도 만날 수 있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전보다 한결 좋아 보였다.

     

    “전에 흡혈귀 사태를 막아주신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려버렸네요.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왕국민들이 무사할 수 있었어요.”

     

    “괜찮습니다. 연합국 공동의 위기이지요. 이후로 왕국 서부에 마족의 움직임이 보인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마물의 위험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여러 길드에서 동시에 올라오고 있어요. 지난번 같은 마족의 국소 공격을 막기 위해 소국과 협력해서 국경을 방어하고 있어요.”

     

    중간계 경계는 벌써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마족이 건너오는 시간이 있으니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앞으로 약 3년 후 정도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후국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요.”

     

    “정말 안심되는 말씀이네요. 수입한 약품이 모험가들에게 보급되면서 전선 유지력이 20퍼센트는 늘어났어요. 이제는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에요.”

     

    무역로가 열린 긍정적인 효과가 벌써 나오고 있었다.

     

    “고트베르크. 이제 병원장이로군.”

     

    “존안을 뵙습니다, 전하.”

     

    절도 있는 기품을 풍기며 헤이케가 입장했다. 게오르크에 관해 물어보고 싶긴 했지만 다른 국가도 있는 자리에서는 난감한 주제일 테니 일단 미루기로 했다.

     

    이런저런 정치적인 주제가 오간 후, 나는 그녀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아셀라 전하께서는 참석하시지 않았군요.”

     

    “음, 현재 황실은 완전한 분권 체제다. 아셀라는 게오르크의 권한도 떠맡아 제국 내치에 집중하고 있지. 연합군은 내가 맡는다.”

     

    “그렇군요.”

     

    아셀라 성격에 아예 손을 뗄 리는 없을 줄 알았는데.

    게오르크가 없어져서 일감이 많아졌나.

    나를 피하려고 이 중요한 자리를 포기했다…는 건 자의식 과잉이겠지.

     

     

    얼마 안 있어 각국 대표들이 모두 자리했다. 나를 포함한 사절들이 뒤를 지키는 가운데 회의가 시작됐다. 내 권유로 후국 대표로는 아버지가 아니라 네리아가 앉았다.

     

    “안건이오. 마왕군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발견했소.”

     

    국왕의 발언을 시작으로 여러 주제가 오고 갔다. 마왕군의 움직임이나 그 대응에 관해, 연합군 훈련 시의가 적절한지, 본격적인 전쟁이 터졌을 때 보급은 충분할지 등등.

     

    “기본 전략은 제국의 원안에 전 국가가 동의했소. 텔레포트 게이트를 마계에 설치해 연합군과 소수 정예군이 침투하는 작전이오.”

     

    공방을 동시에 이뤄내는 전략이다. 미래에서 유효했던 바로 그 전략이 내 발언에서 여기까지 도착해 다뤄지고 있었다.

     

    “마도국, 선행부대 편성은 언제 완료되오?”

    “6개월 더 필요하다. 마도사로 둘, 상급 마법사 열 개 부대 총 예순 명을 편제할 수 있다. 게이트 제작은 순조로운가, 드워프 왕국.”

    “마석 수급에 차질이 있지만 기한까지는 문제없소. 언제든 말만 하시게.”

    “방위군 훈련은?”

    “제국 기사단 재편성은 두 달 내로 끝나오. 왕국군의 가용부대 목록이 필요하오.”

     

    연무회에서 한 번 마족에게 대형 공격을 받았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연계가 착착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륙의 국가들은 종족, 사상, 종교 유무가 전부 다르다. 평소에 섞이지 못하고 싸워대는 이유이기도 했다.

     

    미래에서야 다 멸망하고 제국 일부밖에 안 남아 있었지만.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안건이오.”

     

    헤이케가 양손을 모으고 말했다.

     

    “마왕 토벌의 핵심, 용사 파티의 멤버 선정에 관해서이오만.”

     

    순간 회의장에 긴장이 감돌았다.

     

    지금껏 모든 국가는 군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절대 손해는 안 본다는, 국가로서 당연한 기조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맛있는 부분만 빼먹고 싶은 외교의 기본이다.

    협력하는 와중에도 미묘한 알력이 서로를 오가며 작용하고 있었다.

     

    용사 파티에서만큼은 대놓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용사 파티에 출신을 밀어 넣으면 우리 국가가 이만큼 강대하다고 전시할 수 있으니.

     

    자리가 한정되어있으니 적당히 양보하는 척이 불가능하다.

     

    “파티원은 여섯 명이 적당하다고 판단되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용사와 성녀는 이미 선택됐소.”

     

    헤이케가 선언했다. 성녀라는 단어에 교황이 입술을 꽉 닫았다. 자신들이 준비한 후보가 선택받지 못한 게 아직도 분한 모양이었다.

     

    저런 눈치면 치유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밀어 넣으려고 하겠는데.

     

    “남은 자리는 넷이오. 전위, 마법사, 치유사 이 세 직업은 반드시 필요하오.”

     

    “전위? 용사가 전위를 맡지 않소?”

     

    “용사의 검술은 전위를 맡기에 부적절하오. 적을 기습하거나 일기토를 벌이는 데 특화했소. 공격을 막아줄 전위가 따로 필요하오. 그래서 말인데.”

     

    헤이케가 다른 나라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곧장 의견을 제시했다.

     

    “제국이 소드마스터를 내보내겠소. 어떻게 생각하오이까.”

     

    “연무회의 그 기사인가.”

    “으음, 소드마스터라면…”

    “용사의 검 스승이라 들었소.”

    “다른 전사는 고려하기 힘들군.”

     

    여기엔 반박할 수가 없겠지.

    이렇게 흘러오도록 내가 일부러 여태 타냐를 리셰에게 붙인 거니까.

     

    “마법사는 우리가 연무회에서 실력을 증명했다.”

     

    마도국이었다. 마법 실력은 마도국을 따라갈 국가가 없었다. 연무회에서도 그들의 마도사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쳤었다.

     

    아니지, 딱 한 사람.

    아셀라를 빼면.

     

    “후보는?”

    “아르와 또는 수마야. 둘 다 5위계에 도달한 전투마도사다.”

     

    수마야. 미래에서 함께했던 용사파티의 마법사다. 시모어만큼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실력 좋은 사람이기에 맡겨도 괜찮겠다 싶었다.

     

    헤이케가 의견을 이어 말했다.

     

    “남은 한 자리엔 도적이나 성기사, 궁수, 드루이드 같은 보조기술을 쓸 수 있는 자를 편성하는 게 좋다.”

     

    “모험가 파티 편성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시군. 기사단만 운용하는 제국에서는 생소해하실 줄 알았소.”

     

    국왕이 신기하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제국에는 그만큼 우수한 책사가 있다.”

     

    헤이케가 슬쩍 내게 눈짓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현재 검사가 둘, 근접직이 둘이니 원거리 직종을 편성하고자 한다. 궁수가 좋지 않겠는가.”

     

    “궁수라.”

    “궁수라면 왕국에 인재가…”

    “정령사는 어떻소이까. 우리 국가에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와중, 헤이케가 그들의 말을 끊었다.

     

    “백발백중의 명사수 엘프를 그대들도 연무회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그 엘프는 제국민 아니오? 지금 제국에서 용사 파티의 네 자리나 가져가겠다는 말씀이시오이까?”

     

    소국 왕 하나가 반발했다. 헤이케가 그를 나무라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엘프는 제국민이 아니다. 신비로운 숲 출신이지. 무엇보다, 출신은 둘째치고 실력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대륙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다.”

     

    헤이케가 냉정하게 논점을 짚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쉽게 말해 꼬우면 우리보다 잘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열 받아도 반박할 길이 없겠지.

     

    “올바른 말씀이십니다, 황녀 전하.”

     

    법국의 교황이 동의했다. 순수한 마음은 아닐 터였다.

     

    “말씀대로 용사 파티 멤버는 실력대로 가용하는 게 타당하겠지요. 연무회에서 활약한 전사들로 최종 검증을 거치면 되겠습니다. 치유사 자리에는 저희 법국의 신앙심 깊은 추기경과 대사제들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말은 좋게 포장했어도 자기네 출신을 하나 반드시 밀어 넣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대로 둘 순 없지.

     

    내가 바로 끼어들었다.

     

    “치유사 자리에는 저희 후국도 인재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허허.”

     

    교황이 인상 좋은 웃음 속에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성녀도 뺏겼으니 마지막 남은 한 자리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타냐도 그렇고 치유사도 내 수제자를 밀어 넣으면 마왕 공략을 보다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애초에 용사 파티를 잘 싸우는 사람들을 넣어야지, 국가들이 정치 싸움을 하는 바람에 내가 미래에서 그 멤버로 고생했던 거니까.

     

    “고트베르크 후국은 신생 국가이지요. 법국은 역사만으로는 천 년 넘게 이어져 여신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우수한 치유사를 준비할 수 있다 이 말씀입니까?”

     

    “연무회 때 제국 월광궁 소속으로 시연을 보였던 의사들이 지금 후국에 있습니다. 당시 시연에서 우승한 건 저희였죠. 법국이 아니라요.”

     

    “…허허허.”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교황이 고개를 저으며 헤이케에게 말했다.

     

    “전하, 이를 위해 후국을 독립시켰다 하시면 실망이 큽니다. 마법사 한 자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용사 파티를 제국에서 독점하는 모양이 되지 않습니까. 국왕 폐하께서는 이 편성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으음.”

     

    왕국의 국왕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왕국 출신은 죄다 제국에 깨졌으니 명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굳이 나서봐야 법국 좋은 일만 하게 되고 모처럼 우호적인 국면으로 진입한 제국과 다시 갈등의 씨앗을 심게 되니 의견을 표명하기 힘들 터였다.

     

    그럼 내가 법국에 반대할 명분을 만들어 주면 되겠지.

     

    “투표로 정하시죠.”

     

    “투표 말이오.”

     

    “예. 저희 후국은 용사 파티에 편성할 의사를 최고의 인재로서 파견해 반드시 마왕을 쓰러트리라고 약조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품에서 약통을 꺼내 들었다.

     

    “반대하신 국가께는 법국의 치유사면 충분하다는 의미로 알고 약품 수출을 후순위로 미루겠습니다. 요즘 워낙 주문량이 많아서 생산이 못 따라가고 있었지요.”

     

    내 말에 국왕이 바로 손을 들었다.

     

    “후국에 표를 던지겠다.”

     

    VIP 고객님, 어서 오시고.

     

    “으윽…!”

     

    패배를 직감한 교황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슥 다른 국가의 수장들을 돌아보았다.

     

    “다음 분?”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