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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마신을 숭배하는 것이 ‘신앙’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종교로서 요건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내세(來世)에 대한 약속이었다.

       마신은 자신을 믿는 신도들에게 ‘죽은 뒤의 세상’을 제공했다.

         

       어비스에 기거하는 마신들은 그 안에서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장소는 마신마다 그 크기도 특징도 제각각이었다.

         

       원더랜드는 바로 키르쿠스가 관장하는 영역이었다. 마술사, 곡예사, 광대들의 영혼은 죽으면 자동으로 이곳으로 모였다.

         

       이곳은 TTT의 팬이었던 그에게도 각별한 곳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이곳에서 TT1, TT2에 나왔던 아군, 적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각자가 어떤 최후를 맞았건 그들은 원더스타인을 물리치기 위해 플레이어에게 협력했다. 그들 모두가 참전하는 마지막 전투는 트릴 트릴로 시리즈를 오랫동안 즐겨온 팬들에게 빠트릴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최종 스테이지는 트릴로지의 완결에 걸맞은 질과 방대한 볼륨을 자랑했다.

       팬 커뮤니티에서는 이 마지막 스테이지 하나만으로 TT3는 걸작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곤 했다.

         

       원더스타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은 TTT의 종착지이자 그 정수가 담긴 곳이었다.

       그는 일행을 찾는 것도 잊고 멍하니 눈앞에 펼친 정경을 바라봤다.

         

       수만 개의 건물이 쌓여 만들어진 높이 수천 미터의 커다란 서커스 천막.

       온갖 빛깔을 내뿜으며 맥동하는 거리.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유쾌한 음악과 웃음소리.

         

       평화로운 원더랜드의 모습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본편 시점에서는 원더스타인의 침공으로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고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치에 너무 압도된 탓일까.

       그는 자신의 팔다리가 온전치 못한 상태라는 것을 깜빡했다.

         

       “어어?”

         

       우당탕.

       문밖으로 나선 그는 발을 헛디뎠고 그만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팔과 다리가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도대체 얼마나 다쳤길래 몸이 이 모양이 된 것일까.

       그는 땅을 짚고 일어서며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이게……뭐야?”

         

       그곳에는 그의 팔 대신 엉뚱한 물건이 달려 있었다.

         

       차라리 그것이 촉수나 가시였다면 덜 놀랐었을 것이다. 원더스타인의 몸에 달려 있을 법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팔이긴 했지만, 그 형태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누군가 나뭇가지 서너 개를 이어서 고무줄로 엮고, 그 끝에 솜으로 채운 장갑을 매달아 놓았으면 딱 이 꼴일 것이다.

       그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게 분명 자신의 팔로써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팔을 움직이려 하면 이 작대기 같은 것이 뿌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장갑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땅을 짚는 감각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순간 원더랜드의 주요 설정 중 하나를 기억해냈다.

       설마?

         

       그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에 다리 역시 나무 작대기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나온 건물을 돌아봤다. 그곳의 유리창에는 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모습은……?”

         

       해진 밀짚모자에 낡은 옷가지.

       누더기를 얼기설기 기워서 만든 얼굴.

       그리고 나무 작대기를 엮어 만든 팔과 다리.

         

       그곳에는 허수아비 한 명이 서 있었다.

         

         

       ***

         

         

       TT2가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트릴 트릴로 커뮤니티에는 상당히 화제가 되는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그것은 어떤 익명의 사용자가 올린 것이었다.

       매크로를 쓴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정교한 콘트롤과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인 플레이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 익명의 유저를 ‘토치 댄서’로 불렀다.

       그가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믿기 힘든 슈퍼 플레이를 성공시킨 다음 꼭 캐릭터에게 횃불을 들게 하고 ‘춤추기’ 동작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방송 전문 기획사의 직원이 그의 집을 찾은 것은 그를 회사의 전속 크리에이터로 섭외하기 위해서였다.

         

       직원은 그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욕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 일을 하다가 사회성이랑은 담쌓은 음침한 인간들을 워낙 많이 만나 봤다. 이상하게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그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달라고 했을 때는 그동안 몇 번이나 겪었던 안 좋은 일들이 떠올리며 그 욕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그것이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상대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를 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그것을 욕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놀라셨죠?”

       “조, 조금요.”

         

       둘의 대화는 어색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문 영업 사원이었다. 그녀는 금방 상대가 좋아할 만한 주제를 꺼내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 나갔다.

         

       둘은 주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나온 게임 중에 뭐가 좋았는지, 뭐가 기대 이하였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뭔지.

         

       흥이 난 토치 댄서는 어떻게 자신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지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화면이 휙휙 전환되었다. 그녀는 프로게이머에 버금가는 그의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에 연신 감탄사를 토했다.

       토치 댄서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들뜬 표정으로 컴퓨터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방송 얘기로 넘어가자 그는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제가 과연 방송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상대방의 자존감이 낮다고 타박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럴 만한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를 위로하는 것은 영업 사원으로서 마이너스였다. 여기서는 상대를 북돋아 줘야 했다.

         

       그녀는 장장 몇 시간에 걸쳐서 그를 설득했다.

       그녀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달려든 것은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지닌 장애는 화제성이 있었다. 그가 방송을 시작하는 것만으로 대번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상대는 몸이 불편할 뿐이지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이 세상으로 나가면 어떤 주목을 받을지 알고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숨기거나 언급을 피하지 않아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행히 토치 댄서는 그녀의 솔직함을 높게 평가했다.

       결국 그는 그녀의 회사와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회사의 제안에 대해 모든 것을 수긍하지는 않았다.

         

       “제 얼굴은 감추고 싶네요.”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그의 사정을 이해했다. 그것은 그녀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 사건이었다.

         

       “좋아요. 그럼 댄서님의 몸이 어떤 형편인지는 노출하되, 모습 자체는 감추는 걸로 하죠. 가상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걸로 하면 될 거예요. 혹시 생각해둔 캐릭터가 있나요?”

         

       토치 댄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허수아비요.”

         

         

       ***

         

         

       원더스타인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이것은 분명 그가 방송할 때 썼던 아바타였다.

         

       키르쿠스의 신도들이 원더랜드에 오면 그들의 영은 특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무대 위에서 했던 공연, 각자가 했던 분장, 그들의 특기가 반영되어 그 형태가 결정되었다.

         

       무대 위에 쓰는 연기자로서의 가면.

       페르소나.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허수아비라니.

       그는 이전에 세웠던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자신이 스트리머로서 했던 활동을 일종의 공연이라 한다면, 상태창은 그런 자신에게 주어진 인스피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가설의 연장선으로 생각하자면, 이 허수아비는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원더랜드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제부터 알아야 할 것은 나머지 일행의 행방이었다.

         

       그는 상태창을 띄었다.

       시스템 역시 자신을 원더스타인과 다른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름: 토치 댄서

       나이: 27

       직업: 스트리머

       특성

       : [페르소나: 허수아비]

         

         

       음향실로 단원들과 통화를 해보려고 했으나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엘라, 레이나, 마야는 물론, 별장에 있을 다른 단원과도 마찬가지였다.

       단원 퀘스트 역시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비추는 유리창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창뿐만이 아니었다. 건물 전체가 마치 신기루처럼 스르르 녹아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해서 건물이 있던 부근을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것일까?

         

       그때, 그의 뒤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소리쳤다.

         

       “발견했다!”

       “침입자다!”

         

       그들은 마치 할로윈 축제를 즐기다 온 것 같았다. 가면을 쓰고 요란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무기를 겨눴다.

         

       허수아비는 그들을 보고 긴장하려고 했으나 쉽게 되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 든 무기가 너무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무공, 요요, 리본 막대, 트럼펫 따위로 그를 겨냥했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들의 경계심은 금방 허물어졌다.

         

       “잠깐, 잠깐, 멈춰!”

       “뭐야, 페르소나잖아?”

       “페르소나? 뭐야, 진짜네.”

         

       그들은 허수아비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무기(?)를 거뒀다. 그들은 엉거주춤 서 있는 그를 향해 호의적인 태도로 다가왔다.

         

       “이봐, 놀랐잖아. 왜 이런 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어?”

       “그래. 우린 또 산 자들이 침입한 건가 했지.”

         

       그들의 말에 허수아비는 너무 놀라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산 자들이 들어왔다고요?”

       “응? 모르는 건가? 요 며칠 내내 난리였는데.”

         

       그들이 갑자기 수상쩍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일부는 다시 손에 무기를 쥐기까지 했다.

         

       “혹시 등록번호를 알 수 있겠나?”

         

       그들 중 한 명의 말에 허수아비는 게임에서의 지식을 최대한 떠올리며 변명을 궁리해냈다.

         

       “그게……. 저는 인스피라를 받지 못해서요.”

       “허, 그럼 북쪽 하층에 거주하는 주민인가 보군.”

       “아뇨. 북쪽 하층은 출입 금지잖아요. 동쪽 하층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의 막힘 없는 대답에 경비대원들은 완전히 경계를 풀었다.

         

       “미안하네. 의심해서.”

       “요즘 들어 워낙 일이 험해져서 말이지.”

       “어쩌다 이런 외곽까지 오게 된 건가?”

         

       허수아비는 또 그럴듯한 답변을 떠올려 냈다.

         

       “가족을 건지려고요. 그 때문에 한동안 거리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에 경비대원들은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냈다.

         

       “허, 쉽지 않겠군. 인스피라가 없는데 가족을 원더랜드로 불러들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야.”

       “자제하라고 할 수도 없겠군. 그래도 다음부터는 빛이 내려온 장소 근처에는 가지 말게.”

         

       그들은 허수아비를 서커스 성 입구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괜히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좀 성급한 순찰대원들을 만나면 다짜고짜 선제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산 자들이 들어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의 질문에 그들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하늘에서 빛이 번쩍 내려오더니 한 무리의 산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허수아비는 그들의 생김새 묘사를 통해 그들이 자신이 찾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명은 체포했지만, 몇 명은 도망쳤어.”

       “자신들이 곡예사라고 주장하지만, 모를 일이지.”

       “‘부두교’ 그 녀석들의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으니.”

       “아, 그러고 보니 그쪽 이름은 어떻게 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허수아비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자신이 어릴 적 출연했던 연극의 제목에서 이름을 따와 말했다.

         

       “오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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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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