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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 조만간 가겠습니다. 』

         

       독촉하는 듯한, 하지만 묘하게 진성에게 배려가 담겨있는 듯한 문자에 진성은 그렇게 짤막하게 답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진성은 근육이 제멋대로 튀고 움찔거리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상태로 갔다가는 어디 오지 돌아다니다가 희귀한 병이라도 얻었냐면서 병원에 감금이 될 것이 분명했고, 주술의 대가라고 둘러댄다고 한들 병원에 입원하는 미래는 바꿀 수 없었을 테니까.

         

       아예 손 쓰는 것도 불가능한 대가라면 모를까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 정도야 외부에서 전기자극을 주거나 약물을 투여하는 것 정도로 억누를 수 있을 거라 믿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가능하기는 하지.’

         

       하지만 진성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병원에 갇혀서 치료받는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냥 근육이 움찔거리고 쥐가 나고 잠을 못 자는 것 정도야 가벼운 방해에 불과한 것이다. 근육이 튀어서 손가락이 움찔거려 주물을 놓치려 하는 것은 허공을 쥐어서 주물을 띄우면 되는 문제이며,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찔거려서 바닥에 쓰러지려 하는 것은 잘 버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잠을 못 자는 것?

         

       ‘잠, 잠이라.’

         

       회귀 전 진성은 잠과 거리가 멀었다.

       허구한 날 신체가 주술의 대가 때문에 맛이 간 상태였던지라 고통과 후유증 때문에 숙면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나마 선잠이라도 한두 시간 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세계 3차 대전 이후 안전한 곳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인데다가, 그의 직업이 용병이었다 보니 편히 누워서 자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잠을 잔다?

         

       언제 적군이 들이닥쳐서 목을 벨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어찌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을까?

       그나마 사방에 눈과 귀가 될 벌레를 뿌리고, 주물로 간이 쉘터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게다가 말년에는 가만히 눈을 붙이는 것도 힘들어졌다.

       마약성 진통제를 어마어마하게 투여해야만 간신히 고통을 잊고 눈을 붙일 수 있었으며, 그나마도 잠을 자다가 몇 번 죽을뻔한 이후로는 잠을 자는 대신 의지로 버티며 목숨줄을 붙여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 만약 전설 속의 해골 마법사, 리치가 있다면 말이오. 딱 당신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

         

       그러니 그때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천국과 같은 환경이었다.

         

       원하는 때에 고통 없이 얼마든지 잘 수 있고, 자다가 엄습하는 신경을 태울 것 같은 고통 대신에 몸이 움찔거리고 쥐가 나는 정도의 장난이나 다름없는 것이 대가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진성은 애매모호하게 ‘곧 돌아가겠다.’라는 말만을 남긴 채 계속해서 주술과 주물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문자는 이양훈이 보낸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그 문자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의 문자도 오기 시작한 것이다.

         

       『 오라비. 거 자아 찾기 여행 너무 오래 하는 거 아냐? 웬 이상한 데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성인식 준비나 하지? 』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재촉하는 이아린의 문자.

         

       『 옷 디자이너에게 맞춰야 하는데…. 어서 돌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

       『 되게 유명한 디자이너래요. 거미 계열 소환수에서 뽑아낸 실로 직접 옷감을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작업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붓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고 해요. 』

         

       약간 거리를 두는 듯 담담하게 ‘옷을 맞춰야 하니 빨리 돌아오라.’라고 말하는 이세린의 문자.

         

       그리고….

         

       『 헤어 박. 짧지 않은 시간 얼굴을 보지 못하였기에 그간의 근황을 이렇게 문자로나마 보내어 알려드리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레이디가 되어서 이렇게 먼저 긴 근황을 알리는 것은 신사에게 어서 오라고 재촉을 하는 것처럼 보여 경박하게 느껴질까 고민이 되기는 하였습니다마는, 오랜 고민을 거듭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

       『 헤어 박의 소중한 여동생이자 제 소중한 친우 이 세린, 이 아린 자매의 교환학생이 종료되어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저와 언니는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였으나, 마침 한국에 온 김에 타국의 문화와 그 발전상을 직접 체감하기 위하여 위에 요청하여 정식으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 다행히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고, 스승님과 대마녀 님의 인맥을 통해 그 어떠한 마찰 없이 절차를 밟는 작업은 매끄럽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헤어 박이 말없이 여행을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저와 언니는 공식적으로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의 유학생이 되었으며, 하늘이 축복을 하기라도 한 것인지 이 아린, 이 세린 자매와 같은 반이 되어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린과 언니가 』

         

       편지를 보는 듯 아주 길고 빽빽한 엘라의 문자.

       심지어 말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고 중간에 끊겨있기까지 했다.

         

       『 아주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 너무 즐거워요! 』

       『 아무 문제도 없고, 아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

       『 오히려 칭찬해도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그 부자연스럽게 끊겨버린 문자의 뒤에 온 엘라가 보내는 문자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핸드폰을 빼앗긴 뒤 「검열」이라도 당한 듯한 문자였다. 정중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던 위의 문체와는 다르게, 뭔가 흥이 넘쳐나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가 폭발할 것 같은 톡톡 튀는 말투가 되어 있었다.

         

       『 언 』

       『 혼 좀 』

         

       그리고 그 말투 후에는 한참 동안 문자가 이어지지 않았고, 단어조차 되지 못한 말들이 툭툭 보내졌다.

         

       그렇게 단말마처럼 보내진 도움을 요청하는 짧은 문자를 끝으로 엘라의 문자는 그대로 끊겨버렸다.

         

       대신에 아나스타시아의 문자가 그에게 날아왔다.

         

       『 아무 일도 없었어용. 』

         

       앞뒤를 다 잘라먹고 보낸 듯한 알 수 없는 말이었다.

         

       『 그런데 은인 언제 와요? 』

       『 저도 성인식? 거기 가기로 했는데. 』

       『 제 능력으로 한 몫? 한 손 거들기로 했답니다. 』

         

       아나스타시아는 엄청난 속도로 연속적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고,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사진 세 장을 진성에게 보냈다.

         

       첫 번째 사진은 저택의 옥상에서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아나스타시아가 저택의 정원을 뒤로한 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오른손으로 브이(V) 자를 그린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새파란 하늘과 알록달록해진 정원, 그리고 하얀 피부와 빨간 눈을 가진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화보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이은 두 번째 사진은 아나스타시아가 옥상의 난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목숨을 걸고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간을 배 밖에 내놓은 10대 청소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자그마한 몸을 난간 위에 올린 채 위태위태하게 서 있었고, 거기서 전대물에서나 볼법한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을 향해 윙크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천방지축 말괄량이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사진.

         

       “흠. 벌써 능숙하게 사용하는구나.”

         

       거기에는 옥상 밖에서 서 있는 아나스타시아가 찍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옥상 밖 허공에 ‘무언가’가 아나스타시아를 손바닥 위에 올려서 허공에서도 선 채로 있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 무언가의 모습은 참으로 기괴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블록 장난감을 대충 조립해서 나무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리저리 보정작업을 거쳐서 꾸물꾸물하게 만든 다음에 광택이 나게 만든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선명한 여러 색을 품고 있는 그 촉수인지 나무인지 모를 것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몸체에 걸맞지 않은 이모티콘같이 귀여운 얼굴을 툭 내밀고 있었고, 반질거리는 가지인지 촉수인지 모를 것들을 엮어서 사람 손바닥 모양으로 만들어 자그마한 아나스타시아의 신체를 받쳐주었다.

         

       그리고 그 손바닥 위에서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이 불러낸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 대단하지 않나요? 』

       『 현실의 나무를 제가 꿈에서 본 나무로 바꾼 형태랍니다! 』

         

       그녀는 마치 주인에게 사냥감을 자랑하러 온 담비처럼 자신이 위치크래프트로 만들어낸 하인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 것이다.

         

       진성은 그것을 보며 아주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나무라. 그러고 보니 저런 나무를 만들어서 환풍구를 통해 잠입시키곤 했었지.’

         

       담비와 함께 용병으로 활동하던 회귀 전의 일을.

         

       그때의 담비는 현실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재료로 저런 ‘꿈에서 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부렸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꿈에서 본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몸에 걸치거나 몸 안에 집어넣어서 자기 몸을 한껏 강화했다.

       그렇게 강화한 담비의 능력은 어지간한 무인에 뒤지지 않았으며, 팔이 갈라져서 그 안에서 촉수가 튀어나온다거나 망토를 펼쳐서 수많은 눈으로 환각을 보여주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싸우기도 했다.

       게다가 꿈에서 가져온 내장 비스름한 것을 이용해 신체를 개조, 마력을 모아서 사용할 수 있는 서클을 만들기까지 했다.

         

       다만 효율이 높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는데, 그런 단점은 생명력을 흡수하는 꿈의 생물과 마력을 모을 때 도움을 주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메꿨다.

         

       ‘아주 유능했었는데.’

         

       진성은 나무를 소환해놓고 기뻐하는 담비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진에 찍힌 장난감처럼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나무.

         

       예전의 담비가 사용하는 나무는 저렇지 않았다.

         

       어디 지옥이나 심연에서 끌어온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색채였다.

         

       그렇기에 진성은 기억 속의 담비와 지금의 담비에게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모르지.’

         

       담비의 미래는 바뀌었다.

       이름이 바뀌었고, 자신을 낳고 죽어야 하는 엘라가 멀쩡히 살아있었고, 태어난 이후 받는 교육 역시 모두 바뀌었다.

         

       환경이 바뀌면 그 개체의 성향 역시 바뀌게 되는 법.

         

       회귀 전의 담비는 지금의 아나스타시아와 같지 않다.

         

       회귀 전의 담비가 위치크래프트와 근접 전투, 마법을 주로 사용해서 싸웠다면 지금의 아나스타시아는 위치크래프트만을 이용해 싸울 수도 있고, 아예 보조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생물을 소환하는 대신 자신을 강화하는 것에 치중해 어지간한 무인보다 강력한 신체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담비에게는 열린 미래가 있었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아나스타시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 잘하셨습니다. 아주 멋지군요. 』

         

       바뀌어버린 그녀의 앞날을 축하한다는 뜻을 담은 칭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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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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