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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조금 전의 돌무더기가 그녀의 눈물샘을 터뜨리는 데에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나, 꼭 그것만이 그녀가 눈물을 흘리게 된 원인은 아니었다.

         

       “우아아아앙!”

         

       여인은 양갓집 규수처럼 자랐다.

         

       제 좋은 것만 실컷 하고, 싫은 건 전부 떠넘기며 살아왔다.

         

       그런 여인에게 있어 지난 며칠간의 여정은 그야말로 감당키 어려운 수준이었다.

         

       자객의 침입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또 그들에게 끊임없이 쫓기고….

         

       심지어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들어선 곳이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하는 마경이었던 데다, 마인들에게 쫓기기까지.

         

       그뿐인가?

         

       결국 마경의 마기에 잠식당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한 뒤 마인이 되어 이 기괴한 숲을 평생 떠돌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울지 않고 참은 것만 해도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대견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히끅…, 훌쩍….”

         

       하염없이 흐른 눈물이 그간의 고난과 슬픔을 어느 정도 씻어 갔는지, 펑펑 울어대던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슬슬 가슴팍에 묻은 얼굴을 떼어내 뒤로 물러날 법도 하건만, 그녀는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은 채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잔뜩 눈물을 흘린 뒤에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대었던 품이 처음…, 아니, 이제 겨우 두 번째 보는 사내의 것임을.

         

       누군가는 별일 아니라고 치부할 만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나름대로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외, 외간 남자의 품이라니…!’

         

       아버지와 오라비를 제외한 그 어떤 사내에게도 안겨본 적 없는 처녀 중의 처녀였으니까.

         

       품에서 떨어지고 나면 무엇이 됐든 말을 해야만 하는데, 그녀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 자신이.

         

       가장 좋은 건 이대로 떨어져 나와 곧장 줄행랑을 치는 것인데, 그것도 불가능했다.

         

       이곳은 마경.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곳이기에.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덜 민망한 방법을 찾아보려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제 그만 나오는 게 어때.”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아예 사라짐을 확인한 백우진이 축객령을 내린 것.

         

       나오라는 말에 굳건히 서서 버티고 있을 만큼 그녀는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한껏 파묻고 있던 제 얼굴을 가슴팍으로부터 떼어내야만 했다.

         

       “…….”

       “…….”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찾아왔다.

         

       여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고, 백우진은 딱 봐도 창피해 하고 있는 것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여인이 진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 같이 놀 사람이 하, 한 명 더 있네? 그, 그럼 나까지 하나, 두, 둘, 세엣…, 세, 셋!”

         

       천마군림보를 거하게 발사하고 돌아온 노인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아니, 어쩌면 시의적절하게 끼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우진은 가운데에 껴서 와아, 와아 하고 좋아하는 노인을 옆으로 슬쩍 밀어내며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 영감은 치매니까 이해해.”

       “아, 응….”

         

       자연스럽게 반말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두 사람.

         

       “그나저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괘, 괜찮아!”

         

       그녀는 그리 답하며 제 의복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돌가루들을 탈탈 털어냈다.

         

       “저기, 그…, 당신이 날 구해준 거지…?”

         

       여인은 기억하고 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찾아온 백우진의 모습을.

         

       “정확히는 난 운반만 한 거고, 살린 건 저 영감이 했지.”

         

       그녀의 시선이 주변을 방방 뛰노는 노인에게로 옮겨졌다.

         

       “저, 저 할아버지가…, 나를?”

         

       믿기 힘들다는 말투.

         

       이해는 간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이도 노인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할 테니.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치매 때문에 저렇게 되기는 했는데, 원래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거든.”

         

       사실 치매 때문도 아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았던 백우진은 그냥 치매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 그렇구나아….”

         

       여전히 믿기 힘들어 보이는 눈치.

         

       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수긍하려고 애썼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구해줬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했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 하지만 네가 날 운반해줘서 산 거기도 하니까, 너도 내 은인이야. 정말 고마워…!”

       “뭐…,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미, 미안. 어쩌면 보답은 못 할지도 몰라….”

         

       그녀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을 바꾸었다.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 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라는 것을.

         

       “으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재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허나 백우진은 그대로 눈물을 흘리게 두지 않았다.

         

       “또 울 거야?”

         

       그의 말투는 평온했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계속 질질 짜기나 할 셈이냐고.

         

       여인은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안 울어!”

         

       나름 강단은 있는지, 애써 울음을 참는 모습이 썩 대견했다.

         

       “일단 집 걱정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묻는 여인의 모습에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여기가 어딘지 벌써 잊어버렸나 보네.”

       “아….”

         

       문득 떠오른 집 생각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망각하고 있었다.

         

       이곳이 마경이라는 것을.

         

       자신은 집 걱정보다,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기…, 미안한데.”

         

       그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백우진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미리 알아차렸다.

         

       “염치없는 건 알지만, 날 밖으로 데려다줄 순 없을까…? 부탁할게!”

         

       두 손을 모은 채로 간곡히 부탁하는 여인.

         

       마음 같아선 백우진 또한 그녀를 밖으로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그녀의 얼굴이 금세 침울하게 변했다.

         

       백우진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데려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 돼.”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가장 먼저 백우진은 어디로 가야 마경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길이라곤 천마신교로 향하는 길뿐인데, 그곳으로 데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겪어봐서 알 텐데. 여기는 숨만 쉬어도 마기가 쌓인다는 걸.”

       “아.”

         

       백우진의 말에 그녀는 죽을 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인을 따돌리기 위해 달리다가 온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고통에 겨워하던 순간을.

         

       그때를 떠올린 여인은 황급히 제 팔과 다리를 확인했다.

         

       “어…, 아직 안 변했어…?”

         

       그가 노인과 해괴한 놀이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마인을 따돌릴 때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너를 함부로 어딘가로 데려다줄 수 없는 이유야.”

         

       이 근처에는 마경을 넘실거리는 혼탁한 마기 대신 노인이 천마신공으로 피워올린 진마기가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

         

       그 반경은 대략 동굴로부터 삼 장 가량.

         

       그 너머로 가게 되는 순간 곧장 혼탁한 마기의 공격을 받게 된다.

         

       “여길 나가는 순간 아마 넌 밖으로 나갈 때까지 버티지 못할걸.”

       “할아버지한테 부탁드리면 되지 않아…?”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널 구할 때의 영감님은 정신이 온전할 때였어. 지금은…, 모르겠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네 몸에 쌓인 마기를 즉각 빼낼 수 있을지, 없을지.”

         

       웬만하면 이에 대해 실험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혼탁한 마기는 신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에.

         

       더군다나 노인은 기껏 만난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신과 놀아줄 사람이 없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아마 노인에게 밖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어지간해선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그럼 어떡해? 나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야…?”

         

       울먹이는 물음에 백우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안타깝다는 투로 대답했다.

         

       “당분간은 그래야겠지.”

       “당분간이면 얼마나?”

         

       그녀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기적으로 마기를 흡입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

         

       “영감님을 정신을 차리거나, 아니면 내가 네 마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둘 중 하나만 성립되면 그녀를 밖으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

         

       “그렇구나….”

         

       그녀는 생각보다 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납득했다.

         

       “그러면, 저기…, 나 그때까지 여기서 살아도 돼…?”

       “집주인이 내가 아니라 저 영감이지만, 아마 될 거야.”

         

       백우진은 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영감은 놀아줄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할 테니 말이야.”

         

       어쩌면 그녀의 존재가 제 수련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줄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그러한 속내를 감추며 백우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가며 그녀에게 물었다.

         

       “잠시지만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때.”

       “…그럴까?”

         

       그녀는 갑자기 제 옷매무새를 정돈하더니, 다소곳한 몸동작으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내 이름은 금여울이라고 해.”

       “금여울…?”

         

       금 씨라.

       

       

       그거 아는가?

         

       중원 제일의 상단으로 손꼽히는 황금상단은 두 가문이 함께 이끌어가는 상단이라는 것을.

         

       …바로 황씨 가문과 금씨 가문이 말이다.

         

       “저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뭔데…?”

       “너 혹시 집이 황금상단이니…?”

       “맞아, 우리 아빠가 황금상단을 이끄는 대행수셨어.”

       “…맙소사.”

         

       걸어 다니는 황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중원 제일의 부잣집 딸내미 ㄷㄷ

    천마신공 파트는 곧 끝이 날 예정입니다.

    애초에 천마신공 파트는 그것을 전부 연마하는 데에 목적을 둔 파트는 아니었습니다.

    고금 제일의 무공인 만큼 그리 빨리 익히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다만, 천마신공을 통해 또 다른 여정을 이어갈 토대를 만들기 위함이었읍니다.

    슬슬 그것의 끝이 보이고 있네요.

    최대한 예쁘게 잘 마무리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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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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