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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수도 아스란.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카란트라 제국의 중심.

       

       과거 마왕군과의 전투에서 최후의 보루로서 지켜 왔던 철벽의 도시.

       

       “쀼우! 레온, 성벽이 어어엄청 노파! 지금까지 본 곳 중 쩰 높은 거 가타!”

       

       아르는 마차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아스란의 성벽을 보고 감탄했다. 

       

       “하하하. 그렇지.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니까.”

       “히히. 삼쵼 말대로 마싰는 것두 엄청 많겠찌?”

       “당연하지. 하지만 먼저 황실에 들러야 해. 맛있는 것도 좋지만 황제 폐하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힝. 아라써.”

       

       수도까지 오는 길에 살짝 느긋하게 맛집을 들르는 건 그렇다 쳐도, 수도에 들어온 이상 늑장을 부릴 수는 없다. 

       

       언제 수도에 들어왔는지 뻔히 기록으로 남을 텐데, 황제의 전보를 받고 온 사람들이 맛집이나 들르고 있다는 걸 알면 황제나 다른 황실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안 그래도 지금 아르한테 티는 안 내고 있지만, 살짝 불안한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

       

       원작 「레키온 사가」에서는 황실이 딱히 착하거나 나쁘거나 어느 한쪽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그냥 레키온이 승승장구하다가 마왕을 물리치고 황제의 치하를 받은 뒤 황녀와 결혼하게 되는 뻔한 스토리가 다였으니까. 

       

       다 좋은 일만 있었으니 황실 측이 어떤 성향인지 변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중간에 껴 있는 이상 다를 수밖에 없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세력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게 현재 자신들의 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황실에서 천 년 전 일의 진상을 알고 있는지 어떤지도 궁금하고.’

       

       다행인 건, 레키온 덕분에 이미 아르의 주가가 제국 내에서 한껏 상한가를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

       그 공포라는 악재를 완전히 박살 내고 제국의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귀여운 아르 인형까지 유행하게 되었으니….

       

       ‘황실에선 제국민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제국민이 없으면 제국은 유지될 수 없으니까.

       

       물론 그런 걸 전부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마왕이라는 강대한 외부의 적이 버티고 있는 이상, 황실도 제국 내부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마찰에 대한 준비는 하는 게 좋겠지.’

       

       아르와 내가 황제와 독대하기로 했으니, 실비아는 들어오지 못할 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실비아는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다가 나나 아르가 텔레파시로 도움을 요청하면 나타나서 지원을 해 주도록 말해 두었다. 

       

       -걱정마세요, 레온 씨. 만에 하나 제국의 검성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서 아르를 해치려 한다 해도, 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뛰어들 테니까요.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레온 씨와 아르는 꼭 지킬 거예요.

       -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되도록이면 셋 다 무사히 탈출하는 걸 우선으로 하죠.

       

       어쨌든 우리는 곧바로 황실로 향했고, 비록 맛집을 찾아 다니진 못했지만 가는 길에 있는 가게에서 먹는 음식도 나름 아르의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레키온은 우리와 헤어지기 전, 아쉬운 표정으로 아르를 안았다. 

       

       “아르야, 크흑. 너 없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리는구나.”

       “어휴, 누가 보면 영원히 헤어지는 줄 알겠어.”

       

       데보라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쀼우! 삼쵼, 아르 금방 가따 올게여. 기다리구 있어여!”

       “그래, 아르야. 기다리고 있을게!”

       

       황실의 경비병들은 입구에 도착한 우리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드, 드래곤! 드래곤이다!”

       “레온 님과 아르 님이 도착하셨다!”

       “문을 열어라!”

       

       어차피 드래곤이란 존재는 제국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프리패스급으로 빠르게 입장했고.

       

       “마차를 부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는 꽤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물론 아직 뭔가 실제로 받은 건 없지만, 일단 태도가 그렇다는 소리였다. 

       

       “레온, 황실 다 왔는데 또 마차 타?”

       “그러게. 뭐 황실 안이 엄청나게 넓나 보지.”

       

       도착한 마차를 편히 타기 위해 아르는 나와 비슷한 크기로 덩치를 줄였다.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걸 본 경비병들은 조용히 놀라며 나직한 감탄사를 뱉었다. 

       

       “와, 진짜 넓긴 하네.”

       

       내부로 들어온 황실은 정원을 통과하는 데에만 삼십 분이 걸렸다. 

       

       “쀼우, 몬가 조은 꽃 냄새가 나!”

       

       아르는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정원의 경치를 마음껏 구경했다. 

       

       “우아, 저 꽃 이뿌다!”

       

       아르가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자, 안내원 역할로 타고 있던 집사 한 명이 허허 웃으며 마차를 세웠다. 

       

       “마음에 드신다니, 기념으로 한 송이 가져가시지요. 나름 귀한 품종의 장미인데, 아르 님께서 보시는 눈이 있군요.”

       

       집사가 곧바로 근처에 있던 정원사를 시켜 장미를 한 송이 따다가 아르에게 내밀자, 아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가까이서 보니깐 더 이뻐여! 고마워여 아조씨, 헤헤.”

       

       웃으며 장미를 이리저리 살피던 아르는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삐유!”

       “왜 그래, 아르야!”

       

       꽃을 주어 방심하게 만든 뒤 기습하려는 작전인가? 

       

       실비아 씨를 불러야 하나?

       

       아주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리고.

       

       “아르 손바닥에 가시 찔려써! 힝.”

       “…….”

       

       아르가 눈물을 글썽이자 집사가 허겁지겁 일어나 사과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드래곤 님이라 맨손으로도 괜찮으실 줄 알고! 금방 따로 포장해서 드리겠습니다!”

       

       아르는 그렇게 줄기 부분을 잘 포장한 장미를 만족한 표정으로 아공간에 넣어 보관했다. 

       

       ***

       

       “폐하! 드래곤과 계약자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현재 응접실에 모셔 놓고 폐하께서 가시는 동안 드시라고 케이크와 쿠키, 커피 등의 디저트를 내놓아 두었습니다.”

       “잘했다. 금방 가도록 하마.”

       

       카란트라 제국의 황제, 카이우스 르반 페토르 부르셀은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지만, 속마음에는 기대와 함께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여러 혜택을 언급할 생각이긴 하지만…. 과연 드래곤이 마음에 들어할지.’

       

       당근을 선택하기로 했지만, 막상 드래곤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보석을 좋아할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보석함에 있던 보석을 몇 개 집어 오긴 했는데, 혹시라도 대놓고 뇌물처럼 여기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고.

       

       제국 내 도시에서 통행을 무조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와 황실 출입권을 줄 생각이었지만, 애초에 드래곤의 힘으로 통행 같은 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허가해 주고 생색 내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황실 및 황실 근처에 있는 제국 내 유명 셰프들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대접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드래곤인데 인간의 입맛 기준으로 식사를 마련했다고 언짢아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드래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 응접실에 디저트 말고 신선하고 육질 좋은 생고기라도 갖다 놓으라고 할 걸 그랬나?’

       

       다디단 케이크를 먹고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화를 내거나, 혹은 커피가 쓰다며 찻잔을 깨 버리지는 않았을까?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예 몰랐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황제에게는 황제에게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진실이 하나 있었다. 

       

       ‘천 년 전, 페룬 대륙을 마신으로부터 구한 건 영웅 카란트라가 아니라 드래곤이었다는 것.’

       

       그 거짓 역사에 변명을 대자면, 그건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 이후, 너무나도 어지러운 대륙의 상황을 어떻게든 진압하고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지.’

       

       전쟁이 끝나고 남은 건 폐허가 된 도시들, 그리고 모든 걸 두고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의 나부끼는 작은 목숨들뿐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는 건 ‘영웅’의 존재뿐이었다. 

       

       마침 드래곤들은 모두 동면에 빠졌고, 적당히 증거품을 조작해 영웅 카란트라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제국을 세워 권력을 부여하고, 통치를 시작하여 차츰 혼란을 수습해 나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실은, 제국의 초대 황제 카란트라부터 시작해 오직 황제에게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처음에야 조작에 가담했던 주변 인물들도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천 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카란트라라는 영웅의 역사가 정설이 되어버렸고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황제뿐이었던 것이다. 

       

       ‘드래곤의 후손 역시 그 진실에 관해 부모에게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대면했을 때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역사를 바로잡아야 된다고 따질 수도 있었다. 

       

       ‘드래곤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

       

       목숨을 걸고 대륙을 지켜냈더니 웬 카란트라인지 타란튤라인지 하는 녀석이 영웅 자리를 꿰차고 떵떵거리면서 대대손손 권력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황당했던 건 마찬가지라고…!’

       

       그렇다고 갑자기 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비밀을 먼저 나서서 제국민들 앞에서 공개할 수도 없는 노릇.

       

       누군가는 드래곤이 직접 따지기 전에 사실 관계를 바로잡았어야 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후대에게 미룬 것이었다. 

       

       어쩌면, 드래곤들의 동면이 수천 년 더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아…. 하필 그게 나 때 걸려 가지고….’

       

       황제의 머릿속에는 이미 잔뜩 화난 사나운 드래곤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자신에게 포효하는 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응접실로 가는 황제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꿀꺽.

       

       마침내 황제는 떨리는 손으로 응접실의 문을 열었고. 

       

       “쀼우! 레온, 이 케이크 엄청 마시써! 헤헤.”

       “아르야, 황제 폐하 오신다는데 입가에 크림을 그렇게 묻히고 있으면…. 앗! 오셨잖니.”

       “…….”

       

       말랑말랑한 아르가 활짝 웃으며 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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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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