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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을까?

        

       아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참 동안 아이들에게 잡혀있었으니까.

        

       누가 나를 하늘이의 품에서 빼앗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소희 아니었을까? 나는 소희가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셋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가 소희였으니까.

        

       차례대로 한 번씩 안아준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 사심을 채운다.

        

       그 계획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계획이었다. 당연히 나를 끌어안는 아이들도 그만큼 사심을 채울 거라는 걸,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패인이었다.

        

       대체 몇 시간이나 될지 모르는 포옹을 당하고, 몇 번이나 될지 모르는 뽀뽀를 당했다.

        

       그래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겠다는 듯 키스를 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 목덜미나 쇄골 등, 어떻게 보면 입술보다도 훨씬 엄한 곳에 뽀뽀를 당했으니 오히려 더 자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으음, 사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지 않았다고 확신은 못 한다. 마지막에는 기억이 희미했으니까. 막판에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포함한 네 소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그렇구나.

        

       이제는 적응해서 고작 이 정도로는 의식이 전환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갈 수도 있는 모양이구나.

        

       오히려 자극하면 할수록 적응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개인마다 또 역치의 최대치가 있는 것 같다. 사라만 해도 키스만으로 의식이 바뀔 정도니까, 나는 그것보다 역치가 조금은 더 높다고 할 수 있겠지.

        

       여기서 더 높아질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더러 허접이라더니, 너도 허접이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따지자면 내가 훨씬 더 오래 버텼는데!

        

       “그래도 나는 키스 한 번에 바뀌지는 않았거든.”

        

       눈을 떠보니, 예상대로 눈앞에 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결국 나는 그 계속되는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모양이다.

        

       ……여자애들한테 안기고 뽀뽀 당해 기절이라니, 좋아해야 하는지 쪽팔려 해야 하는지, 이제는 감도 안 잡힌다.

        

       …….

        

       그나저나, 지금 자세가 조금 이상한데.

        

       눈앞에 보이는 게 사라 얼굴밖에 없다. 양쪽으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시야를 조금 차단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인 얼굴이 익숙한 사라의 얼굴이라 망정이지, 다른 여자 얼굴이었다면 나는 아마 다시 기절했을 거다. 다만 이번에는 공포감에 기절한 게 되었겠지만.

        

       “……이건?”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라를 보자, 나보다 확실하게 키가 커 보이는 사라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알면서 물어보는 거야? 여자애한테?”

        

       보통 ‘여자애’라고 하면, 눈을 뜬 상대 여자애를 아래다 깔고 양손을 깍지 껴 잡은 상태로 말을 걸지는 않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성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할지 몰라 말해두자면, ‘남자애’도 마찬가지다. 자는 여자애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질지 대부분은 알고 있으니까.

        

       “나도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러니까 나도 포옹해줘야지!”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까.

        

       “일단 네가 아무것도 안 한 건, 그 상태에서 뭘 할 수 없는 상태라 그랬던 거잖아. 나랑 같은 몸을 쓰고 있으니까. 이 몸을 움직이는 건 나 아니면 너고, 의식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래서 나한테는 칭찬 안 해주겠다는 거야? 불공평해!”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싶은 것을 꾹 참은 채, 그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로 어떻게 포옹하는데?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꽉 잡은 상태잖아.”

        

       “……그건 그렇지만.”

        

       당연히, 사라는 그다음 말에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냥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이렇게 안 하면, 도망갈 거잖아.”

        

       그건 또 무슨 억울한 소리야.

        

       “내가 너한테서 도망간 적 있어?”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나는 꿈속에서 사라가 다가오면 언제나 그대로 받아주었으니까.

        

       안 그랬으면 사라가 내 주변 네 사람 중 키스 횟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아침에 했던 말이 있잖아.”

        

       내가 세 사람한테 경고했을 때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잡고 있는 거야? 내가 아예 도망갈 시도도 못하게?”

        

       “그치만! 내가 이렇게 안 하면 불공평하잖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사라는 지금 내 주변 사람 중 키스 횟수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아.”

        

       결국, 나는 한숨을 참지 못했다.

        

       내 숨결에, 사라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눈꺼풀도. 내가 한숨 쉬는 것을 보니 조금 무섭긴 한 모양이다.

        

       “안 도망가. 애초에 그 약속이 이젠 의미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몸이 그 애들 손에 있는데?”

        

       내가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사라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얼른 손을 놓은 뒤 말했다.

        

       “우, 우리 중에 누가 나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말을 하면서 사라가 나를 힐끔거렸다.

        

       나더러 가라는 건가?

        

       “싫어. 나도 나갔다간 무슨 일을 겪을지 뻔히 알고 있는데.”

        

       “하지만, 정말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잖아! 막, 어? 더 깊은 입맞춤을 해온다던가!”

        

       그, 구강구조와 구강구조가 얽히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 애들도 내가 깨어있을 때 나랑 그런 키스를 하고 싶어 하지, 잠들어있는 나를 대상으로 억지로 할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 않겠지?

        

       막상 생각하고 나니 조금 불안하네.

        

       그렇다고 튀어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괜찮아. 친구들을 믿어.”

        

       사라가 내 위에서 잠깐 물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일어나 앉으며 말하자, 사라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믿으라고?”

        

       “응. 그야, 친구들이니까.”

        

       “……걔네들이 ‘친구니까’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너랑 딱 달라붙어 다니고, 사실상 데이트나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같이 목욕도 하고, 아예 너랑 같은 방에서 동거 중이라는 걸 알고 말하는 거지?”

        

       “…….”

        

       음, 조금 더 불안해졌다.

        

       “그, 하지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아니라 너가 나가보는 쪽이 더 옳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이 몸은 사라의 몸이었으니까.

        

       “……엣.”

        

       내 말을 듣고 사라도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몸으로 키스하면 사라가 키스한 걸까 내가 키스한 걸까. 사라는 첫 키스를 빼앗긴 셈이 되나?

        

       뭐, 나와 사라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하는 하늘이를 보면 굳이 사라의 첫 키스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여기서 사라와 첫 키스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기절해있을 때다.

        

       만약 그 상태에서 누가 선을 넘어버리면…… 그건 사라와 한 일일까, 아니면 나와 한 일일까?

        

       마지막에 잠든 것은 나였으니 나와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다음에 사라가 깨어났다면 자고 있던 사라와 한 셈이 되는 거니까.

        

       ……저렇게 기겁할만하긴 하네.

        

       그런데, 사라야.

        

       나도 좀 무서운데.

        

       “어쩌지?”

        

       하지만, 저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내가 보고 올까?”

        

       깨어나고 싶다고 막 깨어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라는 혼자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친구들을 믿을래.”

        

       “그렇지? 그게 좋겠지?”

        

       “…….”

        

       잠시간의 침묵.

        

       결국 우리 두 사람 다, 백 퍼센트 믿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 됐어. 그건 이제 그만 생각할래. 내일 되어보면 알겠지.”

        

       사라는 이제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어, 아, 잠까— 으헿.”

        

       그대로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밀쳐 넘어뜨렸다.

        

       “그보다 지금은 할 일이 있잖아? 다른 애들한테는 다 해준 거, 나한테도 해줘.”

        

       “어……으, 아, 알았으니까! 잠깐만,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아무래도 나와는 다르게 사라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사라는, 그대로 내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내 시야로, 하늘이가 했던 일들을 다 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아마도, 소희와 수아가 했던 일들도.

        

       사라는 그 일들을 모두 해버릴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그냥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

        

       “…….”

        

       아침에 일어나보니, 단추가 몇 개 풀려있었다.

        

       파자마의 한쪽이 흘러내려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력을 다 소모해버린 것 같다. 단추를 다시 채울 힘도 없었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헤헤.

        

       무슨 일이 있긴. 어제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이 아마 현실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증거로, 나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세 사람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안녕!”

        

       “오, 일어났네.”

        

       “사라야, 잘 잤어?”

        

       ……저렇게 당당하게 말을 거는 걸 보니 뭔가 짜증이 확 밀려오는데.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가씨, 아침 식사하실 시간—”

        

       양혜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그대로 딱 멈추어 섰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한 번 향했다가, 상쾌한 표정의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으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내 목에서는 그런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어째 이 상황, 겪어봤던 것 같은 기분인데.

        

       기분 탓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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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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