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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총장이 온 이유.

     여러 가지 의도가 있겠지만, 일단 당사자가 하는 말을 먼저 들어봐야 한다.

     “정말로 황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저기, 성이 아니라 보육원으로 데리고 온 건 나를 반기지 않겠다는 거야?”

     “아카데미에서는 존대하더니?”

     “바토리 부총장이 아니라, 바토리 에르제베트로서 온 거니까. 불만있으면 너도 말 놓든가?”

     “…….”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향해 말을 놓는 쪽이 익숙한, 바토리 부총장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습니다. 편한대로 하시길.”

     “말 놓아도 된다니까?”

     “제가 어찌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분께 감히.”

     “…….”

     바토리 부총장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씩 웃었으나, 휘어진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건방진 녀석. 너 진짜 그러다 죽는다?”

     “윗사람에게 제가 말을 놓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을 때 뿐입니다. 바토리 부총장께서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나 제로스 바르셀과 같은 위치에 있고 싶으십니까?”

     “고집스럽기는. 알았어. 편한대로 할게.”

     편한대로 하겠다더니, 바토리 부총장은 바로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으아, 편하다. 마차 타고 왔더니 전신이 쑤셔서 말이지.”

     “……아예 신발까지 벗으시지 그러십니까?”

     “아, 그래도 돼?”

     “라고 말하면서 냅다 신발을 훌러덩 벗어던지는 건, 하아. 됐습니다.”

     이 여자, 사람 긁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이런 부류의 인간이다.

     

     “연금학 가르칠 때의 그 이지적인 교수는 어디에가고.”

     “…….”

     “응?”

     스르륵.

     “흠흠. 뭐, 공적인 일에 너무 편한 자세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 아카데미 일로 온 것도 아니고, 영지전 관련해서 온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바토리 교수라고 불러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바토리 ‘소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쪽이 네게도 낫지 않겠어?”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연금학 교수. 오로솔 아카데미 부총장. 제국 마도연구소 소장.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직책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 온 직책은-”

     “황제의 그림자.”

     “…너, 사람 말을 좀 끊지 말아줄래?”

     “죄송합니다. 이건 습관같은 거라.”

     “네가 그렇게 추측을 해버리면 또 생각이 엇나가는 부분을 맞추느라 다시 말해야하잖아.”

     바토리는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황제랑 똑같아서는.”

     “알겠습니다. 딴지 걸지 않을테니, 계속 말씀해보세요.”

     “어머, 폐하랑 닮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하나봐? 듣는 사람 섭섭하겠어.”

     “듣고 있지도 않겠지만, 닮아서야 되겠습니까? 넘어서야 하는 사람인데.”

     그 실력을 넘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자.

     “흐응…. 당사자가 진짜로 들었으면 지금쯤 술병 하나 깠겠네. 안심해. 이 자리는 너와 나, 둘 뿐이잖아?”

     “…….”

     “진짜야. 여차하면 몸수색을 해도 좋아.”

     “만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기, 그건 진짜 상처받는 말이거든?”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여자에게 만지고 싶지 않을 만큼 매력이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니.

     “제가 만질 수 있는 여자는 제 혈육인 이들과 아스타시아 뿐이라서.”

     “아, 그런 거라면. …어휴. 너랑 이렇게 사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자꾸 대화가 엇나가는 느낌이네.”

     “아까는 공적인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하더니.”

     “…됐어. 본론부터 이야기할게.”

     바토리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탁자를 두드렸다.

     “이번 내전에 후작가를 돕는 이들은 분명 제국의 ‘폐세자’들일 거야.”

     “…….”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황제가 네게 간접적으로 미안하다고 그러는 거고.”

     “괜찮습니다.”

     황제가 내게 노스트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건 익숙하니까.

     매국노 그레이 때도 그랬지만, 황제는 노스트럼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내게 맡기고는 했다.

     “황제 폐하도 제어할 수 없는 자들이니.”

     제국은 넓다.

     그리고 제국은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키며 합병해왔다.

     “선황의 사생아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사생아입니까?”

     “둘 다?”

     “쯧.”

     그 과정에서 기존의 권력자들 중에는 순순히 제국에 흡수된 이들도 있었지만, 제국에 반기를 든 이들도 있었다.

     노스트럼이 멸망한 이후.

     매국노 그레이와 카르멘 총독을 비롯하여 몇몇 귀족들이 제국편이 되었을 때, 노스트럼 부흥을 위해 들고 일어난 혁명군이 그러한 것처럼.

     

     “주축은 아마 ‘폐세자’, 그러니까 선대 황제가 낳은 사생아들일 거야. 폐하께서 황태자가 되는 과정에서 전부 지워버리지 못한 찌꺼기들이지.”

     “위협이 될 정도입니까? 막 마스터만 8명 정도 된다거나.”

     “조금은 위협이 될 수 있겠지. 마스터급은 아니라고해도, 상급 기사 수준은 될 거니까.”

     설령 마스터가 숨어있다고 해도 멘테 경은 살아서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적에 마스터가 있다고 한다면 조금 골치아픈 일이기는 하다.

     “그냥 그런 자들이 있다, 뭐 그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폐세자들은 어느정도 익숙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합스베르크의 제국’이 망했으면 하는 자들.

     ‘망국의 공주와 다를 바가 없지. 왕자나 공주라고 하기보다는 다들 합스베르크보다 늙은 이들이지만.’

     왕국 내전에 개입해서 전쟁을 장기화하려고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제국에 피해를 입히려는 이들. 

     동시에 ‘합스베르크만 사라지면 자기가 제국 황제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미래에 자신들이 지배할 제국 자체에는 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이들.

     “노스트럼으로 어떻게든 황제를 끌어들여, 황제를 노스트럼에서 죽이려고 한다.”

     “…알고 있었어?”

     “아뇨.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폐세자들이라고. 그렇다면 뭐…다른 사생아들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나는 머리 위에 가볍게 손으로 원을 그렸다.

     “합스베르크 황제의 월계관이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해.”

     “…….”

     “혹은, 그 월계관을 이어받는 사람은 나여야 해.”

     “그게 제일 큰 문제긴 하지.”

     바토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너무 많이 싸질러서 그래. 선황도, 합스베르크 황제도.”

     “……”

     “그나마 합스베르크 황제는 여자의 ‘능력’을 보고 씨를 뿌렸거든? 그런데 선황은 그런 거 없었어.”

     “혈통을 중시한다면….”

     “조금, 잔인한 이야기겠지만.”

     바토리는 찻잔을 기울이며 목을 축였다.

     본인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껄끄러운 모양이다.

     “합병된 왕국의 왕녀나 귀족들, 심지어 왕의 부인들까지도 선황께서는 건드리셨지.”

     “…….”

     “그렇게 태어난 아이 중 하나가 합스베르크 황제였어. 혈통만 따지고 보면 가장 황좌에서 멀었던 아이였지.”

     “그.”

     할 말은 정말 많지만.

     “그거, 직접 보셨던 것처럼 이야기를 하시는 건 대체…?”

     

     빠직.

     “아. 찻잔 그거 비싼 건데.”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나도 제국 정보부 기록을 보고 안 거야.”

     바토리는 얌전히 찻잔을 두 손으로 받치며 내려놓았다.

     “하여튼,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려주려고 왔어. 지금 영지전…사실상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제국인들은 합스베르크 황제가 내리는 시련도 아니고, 그의 의도도 아니야.”

     “이해합니다.”

     “어떤 식으로?”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난 아이가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일단 해보려고 하는 게 사람 본능이니까요.”

     이해할 수밖에 없다.

     “황제의 자리를 빼앗든, 아니면 황태자 자리를 차지하든. 만일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합스베르크도 인정할 겁니다.”

     

     * * *

     그 시각, 바르셀 후작령 후작 집무실.

     “…갔냐?”

     패닉룸에서 슬쩍 기어나온 금발적안의 남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예. 갔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추격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지요.”

     

     군청발의 집사가 한탄하듯 답했다.

     “그, 뭐냐. 내가 사라진 건….”

     “잘하셨습니다, 전하. 사신이라고 온 자가 갑자기 국왕을 암살하려고 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니.”

     “그, 그렇지? 하하. 멘테…그 여자, 아카데미 때랑 다르게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씁.”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너무 꼬마의 몸이라서 건드리기 좀 그랬는데, 그렇게 자랄 줄 알았다면…. 아니지, 흐흐, 다음에는 한 번….”

     “일단 사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아, 아아. 그래. 사로잡아야지. 마스터라도,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니까.”

     세인트 지오는 노스트럼은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소파에 다시 주저앉았다.

     “이봐. 드리테.”

     “예, 전하.”

     “멘테 경을 비롯해서 저들 말이야, 지브롤터 기사단 이길 수 있는 거 맞나?”

     “예.”

     드리테, 라고 불린 집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답했다.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저희로서는. 제가 이겨야 나중에 제가 제 자리를 되찾았을 때, 전하께서도 국정 운영을 편안히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길 수는 있고?”

     “물론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옛 왕족만…무려 13명인 걸요.”

     드리테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에는 없지만, 저희도 마스터가 둘이나 있습니다. 예. 지금 전하의 뒤에 있는 이처럼.”

     “…….”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드리테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뒤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쪼록, 그쪽까지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로스 바르셀.”

     “…….”

     드리테 집사가 집무실을 떠난 뒤.

     “쯧.”

     “…죽일까요?”

     세인트 지오의 뒤로,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아니. 됐다. 그보다, 저 녀석들의 목적은 파악 끝났나?”

     “예.”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이기면 합스베르크 황제가 자신들을 인정해줄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목적이더군요.”

     금발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제로스 바르셀.

     “저들은 노스트럼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좋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우리도 이용해주자고. 우리는 그냥 누워서 술만 마시고, 장소만 빌려주면 되겠어.”

     “…….”

     “전쟁이고 뭐고, 다 제국의 버려진 왕족들에게 맡겨버리면 그만이지. 흐흐흐.”

     * * *

     “그레이 지브롤터를 이기면 황제가 자신을 황태자로 임명할 것이다?”

     “그것도 있지만, 합스베르크 황제의 시각으로 보면 그보다 더 나아가야죠.”

     거기까지는, 만인의 생각.

     합스베르크의 생각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지브롤터를 이긴다.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보다 중요한 게 과정…’누구를 데리고’ 이겼냐.”

     “아.”

     만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비롯한 등신 머저리들을 데리고 지브롤터를 이긴다?”

     “…….”

     “그러면 황제해야죠.”

     무능한 아군을 데리고 마스터 여럿이 있는 지브롤터 백작령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이 대륙을 이끌어나갈 자격이 충분한 존재다.

     “물론, 그렇게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마침 잘 왔습니다. 기술자가 왔으니, 도움을 받아야죠.”

     “도움?”

     “예.”

     나는 바로 앞으로 다가가, 앉아있던 바토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기, 무슨?”

     “갑시다.”

     “어딜?”

     “소개.”

     나는 창 밖을 가리켰다.

     “아버지께, 우리 영지의 ‘연금술 고문’을 소개하러.”

     “저기, 나 그렇게까지는 할 생각이-”

     “지브롤터 기사단에, 연금술을 끼얹으면 어떻게 될까요.”

     “……!!”

     어깨에서 잔떨림이 그대로 손을 타고 흘러온다.

     “제가 단편적으로 생각나는 거라면, 일단 지브롤터 기사단이 마도바이크를 타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것 정도인데.”

     “아, 아아….”

     “바토리 고문께서 저희 기사단에 기술적 조언을 해주신다면, 그보다 더 세련되고 멋진 마도공학의 혁명을 보여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사단에게…내 연금술을?”

     꿀꺽.

     “지브롤터 기사단을 이용해서?”

     “예. 이건 기회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바토리의 눈동자가 희열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국의 마도공학, ‘전쟁’에 쓰인 적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

     “당신의 기술, 여기에서 한 번 펼쳐보심이 어떠신지?”

     나는 바토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노스트럼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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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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