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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고용주님. 보통 사람은 위협조차 되지 못할 상대라면 그 사람이 어떤 짓을 하던 신경 쓰지 않아.”

   

   별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로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 격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신처럼 찬양받는 사람이 존재하는가하면,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벌레취급을 받는 사람이 있는 법.

   

   자신이 벌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앞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거기에 누가 위협을 느끼겠는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꿈틀거린다 한들 벌레는 벌레일 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 유쾌한 웃음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님은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았어.”

   

   루시라는 인간은 여태까지 다른 이들에게 벌레 취급을 받았다.

   

   뒤에 도사리는 베네딕이라는 괴물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의 발에 으스러져 사라질 벌레라고 말이다.

   

   사교계에 만연한 적의와 무시를 보라. 그 곳에서 루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지.”

   

   허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전무후무한 수준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

   

   대륙의 신성 중 높은 곳에 머무르던 프레이를 상대로 승리.

   

   입학 때의 성적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듯 중간고사에서 1등을 거머쥠.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입학하자마자 최초공략자의 지위를 거머쥠.

   

   이것 이외에도 나는 수많은 업적을 아카데미에 새겼다.

   

   업적뿐일까. 인간관계면에서도 이전과 비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파트란 가문의 영애인 조이. 왕위계승권과는 거리가 있다지만 왕의 핏줄을 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3왕자.

   

   검술명가 켄트 가문에서 태어난 재능의 총아 프레이.

   

   현 주신 교회의 상징이자 일국의 왕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명성을 지닌 페이비.

   

   그 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연줄의 크기는 어지간한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니.

   

   재능과 연줄 양 쪽 모두를 손에 거머쥔 나는 벌레라며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축하해. 고용주님. 이제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사람들이 벌레의 꿈틀거림을 웃으며 볼 수 있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그 벌레가 자신에게 위협을 끼칠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벌레가 너무나도 거대해져서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수준이 된다면 사람은 더 이상 그를 웃으며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조심해. 고용주님. 이제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적이라 규정내리고 진지한 적의를 보낼 거야.”

   

   길게 이야기했지만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내 평판이 올라갔기 때문에 나를 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허접 주신이 일을 못 한 것이 아니었다. 허접 주신이 일을 너무도 잘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억울해! 왜 내 평판이 올랐다는 걸 이런 식으로 체감해야 하는 건데?! 좋은 방식으로 체감할 순 없는 거야?!

   

   평범한 이세계물처럼 스게! 얏빠리 루시 사마다! 같은 이야기는 못 듣는 거냐고!

   

   속으로 절규를 하고 있었더니 카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독심술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그녀다. 내가 느끼는 당혹을 눈치 챈 거겠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도록 해. 고용주님. 당신이 은혜를 입힌 사람은 당신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거든.”

   

   카리아는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한 개의 수첩을 더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방금 전에 받은 게 여러 주교들의 약점이 적혀 있던 거니까. 그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보면.

   

   – 조드 공작 가문.

   솔라딘 왕국의 몇 안 되는 공작 가문 중 하나. 현재 1왕자를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목한 곳이며…

   

   내 예상은 정확했다. 그 곳에는 앞으로 내 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가문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지금 고용주님이 지닌 지위와 인맥은 상당한 수준이야. 그러니만큼 어지간한 사람은 고용주님을 감히 적대하려 들지 않아.

   좀 다르게 이야길 하자면 거기에 정면으로 맞붙을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럴 각오를 한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고용주님을 위협할 거란 이야기야.

   1왕자를 왕위 계승자로 모는 이들. 알른 가문의 부활을 경계하는 이들. 고용주님이 과거에 벌인 일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는 이들.

   앞으로 고용주님이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을 거기에 다 모아뒀어.”

   

   다만 방금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 수첩의 내용은 방금 전처럼 상세하진 않았단 거다.

   

   수첩에는 어디까지나 가문과 그 곳의 사람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을 뿐. 방금 전 받았던 수첩처럼 약점이나 부정같은 게 적혀 있진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의아해 물음을 던졌더니 카리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하고 똑같아. 조사할 시간이 없었거든. 미안해. 무능한 아줌마라서. 혹시 위협이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때 조사를 보충하도록 할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눈에 띄게 된 것은 파트란 축제가 기점이다. 교회 관련해서 조사를 하고 있던 카리아가 내가 벌인 일을 듣고 여러모로 알아보기 시작했다면 시간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거짓을 말하는구나.>

   

   허나 할배는 카리아의 말을 거짓이라 단정 내렸다.

   

   <저 녀석은 과거 왕국의 그림자라 불렸던 녀석이라지? 왕의 그림자로 암부에서 일하던 작자다. 약소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작처럼 힘 있는 가문에 대해 모를 리가 있나.>

   ‘…그것도 그렇네요?’

   

   그러고 보면 그렇다. 왕의 정보원으로 일하면서 왕국 내 귀족에 대해 알아보지 않을 리가 있나.

   

   어떤 의미에서는 적국의 정보보다 철저히 알아야 하는 게 왕국 내 세력에 관한 내용일 텐데.

   

   왜 그런 걸까 싶어 고갤 갸웃거렸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런 걸 추측하는 것에 능하지 못했으니까.

   

   ‘왜 그런 걸까요?’

   <글쎄다. 난 누구처럼 마음을 읽지 못하거든.>

   

   그래서 이런 데 능한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할배도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할배에몽이 만능이 아닐 때도 있구나.

   

   ‘물어볼까요?’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대답해주지 않을 테니까.>

   ‘네?’

   <생각해봐라. 저 녀석의 능력을. 이미 네 의문을 눈치 채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데 물어본들 대답을 해주겠느냐?>

   

   그것도 그렇다. 방금 전까지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눈치채던 카리아다. 지금이라 해서 내 의문을 모르지 않을 터.

   

   <어차피 나중에 물어보면 알려준다잖으냐. 신경 쓰지 마라.>

   

   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텐데 물고 늘어져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 할배의 말을 따라 카리아에게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녀가 웃음을 지었다.

   

   “믿어줘서 고마워. 고용주님.”

   

   *

   

   카리아가 경고했던 적의를 느끼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2학기가 시작된 후 교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들었으니까.

   

   이전처럼 대놓고 비난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음침하고 음험한 적의가 말이다.

   

   이번 학기도 순탄하지 못 하겠네. 언제쯤이면 편안한 학창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걸까.

   

   세상을 구한 영웅 수준의 호칭을 얻으면 메스가키 스킬을 가지고서도 모두가 우러러 보는 인간이 될 수 있으려나.

   

   있으려나? 왠지 악신을 때려잡아도 스킬의 왜곡 때문에 적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안녕.”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프레이였다.

   

   그녀는 주변의 적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대련 할 때 말고는 아는 척 하지도 않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냐?

   

   “이거 끝나면 대련하자. 나 더 강해졌어. 이번에는 이길 거야.”

   

   그럼 그렇지. 이번에도 대련하자는 이야기였네.

   

   주변이고 나발이고 자기 생각에만 솔직한 프레이를 보고 있자니 걱정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알른 영애. 평안하셨나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가 찾아와 내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대 파트란 공작가문의 영애이자 한 귀족 영애 파벌을 이끄는 조이다.

   

   그녀가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단 사실은 여러 영애의 눈총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방금 전보다 교실의 적의가 날카로워진 게 느껴지지만. 뭐 이 정도 쯤이야.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보다는 조이가 반갑게 인사해줬다는 사실이 기쁘니까 문제없어!

   

   그리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또 한 사람이 내 쪽에 다가왔다. 악신마저 정화시킬 듯한 미소를 지은 페이비가 내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오랜만에 뵈어요. 알른 영애.”

   

   주신 교회의 상징인 페이비는 일종의 아이돌. 그녀가 가장 먼저 내게 인사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질투를 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나를 향하는 적의의 양이 더 늘어난 게 느껴진다.

   

   …이제는 좀 부담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성녀님께서 날 가깝게 생각해준단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암!

   

   “알른 영애.”

   

   이번엔 또 누군데!

   

   아서냐? 다른 세 사람이 지나갔으니 아서밖에 남은 게 없기는 한데!

   

   설마 아서가 인사를 건넸다고 또 적의가 늘어나진 않겠지?! 어쨌든 걔는 말이 왕자지 권력과 거리가 먼 상태니까!

   

   여기서 또 적의가 더해지면 아무리 나라고 그래도 부담스러울 것 같거든?! 제발 아무 일도 없어줬으면 좋겠어!

   

   그리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든 순간 날 맞이해 준 것은 아서가 아니었다.

   

   루카.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분탕충.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죽음의 앞에 서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미치광이.

   

   “잠시 바깥으로 나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 녀석의 표정은 아주 착하고 친절한 교사처럼 보였지만 난 알고 있었다.

   

   저 아래에 깔린 것은 정신병자의 발상이라는 것을.

   

   ‘싫은데요.’

   “내가 왜 당신 같은 잔챙이 교수의 말을 들어야 하지? 싫은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야.

   

   이 미치광이랑 얽혀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물론 난 이 녀석이 무슨 과제를 내더라도 통과할 자신이 있어.

   

   그를 통해서 내 성장에 가속을 넣을 방법도 알아!

   

   근데 이 녀석을 이용한다는 선택지는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이 될 수도 있는 선택지라고!

   

   세이브 로드 기능이 있는 게임이었다면 고려를 해봤겠지!

   

   근데 여긴 현실이잖아! 세이브 기능은 없어! 한 번 뒤지면 그대로 끝이라고!

   

   목숨을 가지고 베팅을 하는 건 쪼잔 악신이 억까 할 때로 충분해!

   

   그러니까 이 분탕충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건 간에 무시할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으니까!

   

   

   목숨을 거는 건 쪼잔한 악신이 억까 할 때로 충분해!

   

   하아. 이 미친놈이 언젠가 관심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일 줄은 몰랐네.

   

   이게 다 허접 주신이 내 평판을 높여 두었기 때문인가.

   

   야! 허접 주신! 평판을 올려줄 거면 좀 제대로 올려줬어야지!

   

   왜 평판이 올라갔는데 내가 손해만 봐야 하는 거냐고!

   

   일 좀 제대로 해!

   

   이러니까 네가 무능 주신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 아냐!

   

   – 띠링.

   

   짜증이 나서 속으로 고함을 친 순간 귓가에 익숙하고도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허접 주신이 2학기가 시작된 후에 퀘스트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

   

   [아카데미의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자동 성장이 종료됩니다.]

   [이제 수련을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게 됩니다.]

   

   [퀘스트가 지급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아카데미의 젊은 교수 루카가 주는 시련을 모두 클리어 하십시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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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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