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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알고 있습니다. 그저 친구라는 이유로 당신이 사랑하는 법국의 성지를 공격하라고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

        

       다행히 소피아가 뭐라고 쏘아붙이거나,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소리치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습니까? 당신은 우리를 감시하는 역할인 겁니다.”

        

       “감시, 요?”

        

       내 말에 소피아는 조금 동요했다.

        

       “저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를 잿더미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다짜고짜 벽을 부수고 들어가 정보만 쏙 빼먹을 생각이긴 했지만, 뭐 최종적으로는 시간을 돌릴 생각이었으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뿐입니다.”

        

       “저한테 물어보실 수는 없는 건가요?”

        

       “예.”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꽤 높은 위치에 있던 원작의 소피아도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 당연히 아직 성당 기사 중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있는 소피아라면 법국의 가장 중요한 정보 중에서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 아니, 전혀 없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제게 그 정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아실 텐데요.”

        

       “…….”

        

       나는 다시 잠깐 머리를 굴린 뒤에,

        

       “제가 정보를 얻는다면, 당신에게도 이야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저에 대한’ 이야기도 해드리도록 하죠.”

        

       내 말에 소피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 전투 방법에 대해서 배워오라고 했다는 이야기, 당신이 받은 임무가 정말로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그게 전부일 거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닐 겁니다. 분명 ‘그 외에 특이사항이 있다면 반드시 보고하라’라는 말을 들었겠죠.”

        

       소피아의 머리 위에 느낌표 하나가 튀어 오르는 것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추측하건대, 법국에서는 제 힘이 ‘여신의 힘’과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이번에 동행하고, 저희에게 협조해주신다면,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해드리도록 하죠. 분명 당신에게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만약 정말로 시간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이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보를 말해주는 것이 마냥 손해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소피아는 조금 망설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증거로 제가 보일 수 있는 것은 우정뿐입니다. 당신이 제게 그 우정이라는 걸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소피아와 레오가 이어진다고 해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만큼.

        

       그래야 레오한테도 좀 덜 미안할 것 같고.

        

       “……팬그리폰의 이름을 거실 수 있습니까?”

        

       “이 대화에서 그 이름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소피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지금 황녀의 이름으로 당신한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인 ‘실비아’로서 부탁드리고 있는 거니까요.”

        

       “…….”

        

       그래,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법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하듯 자랐으니까.

        

       동갑내기는 모두 경쟁 상대고,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밟고 올라야 할 이들이었다.

        

       저 위까지 올라가고 나면 우정이라는 것의 편린을 맛볼 수도 있었을 거다. 실제로도 법국의 ‘기사들’ 사이에선 우정 같은 것이 있는 것도 같았으니까.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당신의 몫으로 두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소피아가 마음을 정하고 방에서 나온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일행들도 대부분 자기 무기 손질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며 슬슬 긴장이 풀려가던 차에 샤를로트의 드레스룸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소피아가 밖으로 나왔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소피아는, 그 딱딱하게 굳은 표정 그대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정 된 거죠?”

        

       소피아의 그 모습을 보고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하도록 하죠. 우리가 찾는 것은 루테티아 지하에 퍼져있다는 그 비밀 시설이에요. 문화제인 성 라티나 성당을 부수는 건 왕녀로서 용납하지 못해요. 그리고, 지하를 붕괴시키는 것도. 어쨌거나 그 위에는 루테티아 신민들의 집이 있으니까요.

        

       샤를로트의 그 말에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샤를로트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쉰 뒤,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한 번 가보도록 하죠.”

        

       *

        

       루테티아 지하 비밀 묘지의 모티브가 된 것은 파리 지하의 카타콤이다.

        

       현실의 카타콤은 매우 좁다. 몇 사람 정도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거나 그 한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서 몸을 구겨가며 틈새로 파고들어야 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넓고 깊게 파여있는 나머지 아예 사람이 실종되기도 하고.

        

       그리고 당연히, 우리의 밀레니엄 사는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게임에 다 적용할 기술력이 없었다.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하고 사방팔방으로 퍼져있는 현실의 카타콤과는 다르게—

        

       “여긴, 대체…….”

        

       우리가 도착한 지하 묘지는 ‘제대로 된’ 묘실이 있는 곳이었다. 해골이 여기저기 마구 널려있고 가끔 이상한 해골 탑이 있는 현실의 카타콤이 아닌, 마치 서브컬쳐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거대하고 정갈한 지하 묘지.

        

       물론 ‘루테티아 곳곳으로 마구 퍼져나가서 전체적인 규모를 다 알 수 없다’ 정도의 설정은 현실의 카타콤과 같지만.

        

       “루테티아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고요?”

        

       그러게.

        

       하긴, 원작 게임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가도에 ‘몬스터’나 다름없는 짐승들이 돌아다니고, 하수구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르마로스가 들어있는 상자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그런 것들이 조금 어이없기는 했다.

        

       게임이라면 ‘게임적 허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그게 아예 현실이 되어버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임의 던전에 있는 모든 것은 누군가가 ‘의도해서’ 배치한 것이다. 여기가 이렇게 넓은 것도, 단순히 기술력 문제뿐만이 아니라 너무 좁으면 플레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이 ‘현실’에서 그 ‘게임적 허용’이 이렇게 당당하게 존재하는 것은 대체 누구의 생각일까?

        

       게다가 그 게임적 허용은 이런 ‘장소의 비슷함’에 국한될 뿐이고, 다른 일반적인 부분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HP도, MP도 없다. 인벤토리 같은 것도 따로 없어서 뭔가 들고 다니려면 손에 들거나 가방에 넣거나 해야 한다.

        

       ‘현실’이면서도 이런 어중간한 부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도 의미 없겠지.

        

       어쨌거나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실존하는 곳이었으니까.

        

       “이런저런 폭약을 쓴다고 하더라도 천장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샤를로트의 말대로 조심하도록 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멍한 표정으로 유적을 올려다보던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들어오는 과정에서 하수구 일부를 조금 폭파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팔을 움직여보았다. 마력석을 몇 개씩이나 박은 강화복은 아직까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 장비를 만든 장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레나는 그렇게 말했었지.

        

       이번 일이 제대로 끝나면 소개해주도록 할까.

        

       나는 등 쪽에 특수제작한 코끼리 사냥용 리볼버 소총을 매고, 손에는 늘 애용하던 소총을 들었다.

        

       홀스터에는 자동권총과 리볼버가 각각 들어있었고, 일반 화약탄이 가득 들어있는 탄창과 마르마로스 탄이 한발씩 순서대로 꽂혀있는 탄띠까지.

        

       아마 지금껏 내가 했던 모든 무장 중에서는 가장 중무장한 상태일 것이다.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피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장소이지만, 루테티아 전역에 걸쳐 넓게 퍼져있으므로 길을 잃기도 쉽습니다. 제 뒤를 확실하게 따라와 주십시오.”

        

       “……대체 당신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당장이라도 캐묻고 싶지만, 이런 장소가 실제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았으니 일단은 뒤로 미루기로 하겠어요.”

        

       “모든 일이 끝나면 얼마든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소피아 쪽을 보았다. 소피아는 다소 창백해 보였다. 어쩌면 이 지하 유적 곳곳에 걸린 횃불이 창백한 푸른 빛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

        

       앨리스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왠지 그 눈에서는 ‘미리 와본 건 아니겠지?’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야.

        

       뭐, 게임 안에서 와봤다고 한다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

        

       어, 잠깐만.

        

       나 방금 앨리스의 표정을 읽은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감사는 금방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KYYY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이라는게 잘 유지하는게 마냥 쉽지가 않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술 담배 전혀 안 하는데도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니 조금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먹는 것을 별로 참지 않고, 그렇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니 마냥 잘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릴때는 그냥 약 먹고 넘어가면 되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저도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건강을 열심히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도 가고 약도 처방받고 해야죠! 이렇게 보여도 삶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편이라서요!

    다시 한 번, 후원해주신 점 너무나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늘 힘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겠죠. 제가 여기까지 쓸 수 있었던 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모두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글을 읽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만한 소설을 계속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잉크돛대 님, 후원 감사합니다!

    크나큰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해주시는 모든 응원은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크론병이 있다고는 해도 평소에는 아픈줄을 잘 몰라서 이렇게 한 번씩 크게 아픈 것 같습니다. 아픈 줄 모르니 그냥 적당히 방치하다가 한 번씩 크게 터지는… 부디 독자 여러분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바로 병원에 가주셨으면 합니다. 안 그러면 저처럼 나중에 몰아서 아프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덕분에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병원에 가는 내내 걱정했던게 ‘다음 연재는 어쩌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노트북을 평소에 들고다니지는 않고, 그렇다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도 여러모로 어색하니까요.

    그나마 다행히 빠르게 퇴원할 수 있어서 이렇게 여러분께 계속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걱정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꾸준히 건강관리에 힘써서 여러분께서 걱정할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오래오래 건강걱정 없이 살고 싶으니까요!

    다시 한 번, 큰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분께서 계속 따라오며 읽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deadly우박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 중에 ‘어차피 한 40 되면 죽을 생각이니 그냥 대충 쓰지 뭐’라는 생각을 하던 친구가 있는데, 지금은 제 주변에서 그 친구가 병원에 가장 열심히 다니고 있거든요. 일찍 죽을 생각으로 아무거나 막 먹고 막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일인지 나름대로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앞으로는 먹는 것도 잘 생각해서 먹고, 운동도 조금씩이나마 하면서 살아야겠어요.

    걱정해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주제에 이런 걱정을 끼쳐드리면 안될 일이지만, 이게 그냥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 그래도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는 일은 없도록 미리미리 건강체크를 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오래오래 만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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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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