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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기념품 가게를 한참 돌아다니던 루크는 곧 어떤 물건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모자라…….’

     

    끝이 뾰족하게 높은 모자.

    옛 마법사들을 상징하는 꽤 멋들어진 형태다.

     

    루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모자를 집어 들었다.

    탑 이어 수인용으로 제작되어 귀가 나오는 부분도 있었고.

    한번쯤 써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리라.

     

    머리에 시험삼아 얹어보자 꽤 알맞은 착용감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꽤 좋다.

    챙도 넓으니 최소한 얼굴로 비춰지는 햇빛을 막는 데 안성맞춤이 아닌가?

    얼굴의 빛을 막으면 살도 더이상 타지 않을 테고, 그럼 안대도 더 빨리 벗을 수 있겠지.

    먼 옛날, 자신 역시 그런 모자를 쓰고 다녔던 적도 있었기에 약간 추억에 잠기기도 했고 말이다.

    이 곳에 있는 물건 치고는 가장 실용적이라 생각하며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옆에 비치된 거울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모습은 결코 위엄있는 마법사 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뭐, 어린 아이의 몸이니까 그렇다고 치기엔 어딘가 답답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무언가가 인식을 거부하는 것 만 같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들까, 하고 생각하다보니 모자 위로 튀어나온 이 귀가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과거에 주로 보아오던 그 형태와 비슷하면서 중요한 부분이 크게 다르기 때문일 것일까?

     

    왜냐하면 과거에 수인족 마법사조차 극도로 적었고, 그렇기에 마법사의 모자를 굳이 수인이 착용하기 쉽게 그런 식으로 제작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수인족 자체가 인간과 적대하는 상황이었기에 구태여 그런 차림을 할 필요도 없었기에.

     

    수인족이 이런 차림을 한다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가설을 받아들이기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루크는 자신이 품에 안고 있던 인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하지만 그 가설이 맞으려면 이 인형 때부터 느껴졌어야 했을 텐데,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았지.”

     

    이미 고양이 귀에 마법사 모자, 그게 이상하려면 일단 이것부터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무언가 자신의 심층에 내재된 어떠한 감정 탓인가?

     

    아니면 정말로 이 모자가 어울리지 않아서?

    하지만, 분명히 꽤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입자마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다.

    대체 자신이 마법사의 의상에 어째서 거부감이 느껴진단 말인가?

     

    ‘혼자선 판단할 수 없군.’

     

    그렇게 결론내린 루크는 자신의 행색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가까운 곳에 옷을 예르나처럼 입은 여성이 보인다.

    흰색 레이스 블라우스에 검은 장갑을 낀 여성은 그리 흔치 않으니, 분명 예르나일 것이다.

     

    ‘옳지, 그러면 예르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어.’

     

    그 뒷모습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순간…….

     

    “아, 예르나 할 말이 있…….”

     

    멈칫, 루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챙 때문에 가려져서 잘 안 보였는데, 머리 위에 솟은 한 쌍의 고양이 귀가 그 사람의 종족은 엘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내 사람을 잘못 봤군,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려 하니,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루크, 너니?”

     

    헌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예르나가 맞다.

    그녀가 엘프 귀를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워내자, 한 쌍의 귀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 예르나, 그대가 맞았구나.”

     

    예르나는 고양이 귀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머리띠는 뭐지? 왜 거울 앞에서 귀를 가리고 있었던 겐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나.”

    “정말? 그렇게 보였어?”

     

    예르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여 루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루크가 그런 예르나의 표정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하자, 그녀는 그대로 루크가 쓰고 있던 모자를 푹 누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자 너머로 받는 쓰다듬은 뭔가 굉장히 미묘한 느낌이 든다.

     

    루크는 곧 그 손길을 거부하고는 예르나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이 예르나를 찾은 것은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던가.

     

    “아, 예르나. 이 모자 어떤가? 혹시 이상한가?”

    “아니, 그 모자 너무 귀엽다! 완전히 마법사 같네! 인형이랑 똑같아. 그거 사고 싶어서?”

     

    예르나는 루크의 이상하냐는 질문에 격렬히 거부했다.

    아니, 심지어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다.

    바로 사서 안겨주고 싶어하는 모양새.

     

    그렇다면 딱히 이 차림새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 거부감은 대체 어째서란 말인가…….

     

    “…….”

     

    루크가 말을 잃은 채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자, 예르나는 곧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 지 떠올리고선 곧장 사과를 건넸다.

     

    “아차, 미안. 귀엽다는 말은 싫다고 했었지. 미안해, 무심코.”

     

    그러자 루크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음, 아? 딱히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네,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있었을 뿐이지.”

    “응? 그래?”

     

    그런 루크의 미지근한 반응에 예르나는 오히려 살짝 당황했다.

    그동안 ‘귀엽다’라는 말을 실수로라도 하는 날에는 꽤 오랫동안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과 손길을 피해다녔는데, 이제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이제 그 말도 엄연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

    그런 거라면 환영이 아니려나.

     

    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품에 안긴 인형을 바라보던 루크가 결심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예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르나, 이 모자랑 같이 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을까?”

    “응, 물론이지! 말만 해!”

     

    ———–

     

    커다란 ‘매직키티’인형과 함께 탑 이어 수인용 마법사 모자, 그리고 똑같이 마법사 코트를 입은 안대 낀 여자아이가 기념품 상점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인형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 그것은 이 놀이공원에서 흔하진 않아도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지금 저 아이처럼 인형과 옷을 동시에 지니는 경우는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게도 ‘매직키티’를 좋아하는 것일까?

     

    하지만 누구보다 이 공간을 즐기는 모습을 한 아이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그 모습은 굉장히 역설적이고 또한 재미있어 보여서, 기념품 상점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과 의문을 선사하고 있을 무렵.

     

    “……이상하군, 이상해.”

     

    루크는 중얼거렸다.

     

    ‘전통적인 마법사 복장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니? 대체 왜지?’

     

    자신의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루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5000년 전엔 분명 이렇게 입고 다니던 때도 있었거늘, 어째서 이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지 못한 루크는 결국 모자를 포함해 마법사의 코트까지 구매했다.

    기념품 치고는 생각보다 괜찮은 품질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어딘가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 옷을 입을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들 자신이 지금 들고 있는 이 감정은 말에 섞여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렇게 앉아있는 동안 자신을 한번씩 바라보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도 전혀 이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없나.’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대놓고 이 차림을 드러내어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면 당장에 달려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은 없다.

    대체 뭘까? 이 느낌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그렇게 루크가 고민을 쌓아가고 있을 때, 일행이 기념품 상점에서 마침내 계산을 마치고 걸어나왔다.

     

    “잘 기다리고 있었지? 이제 가자!”

    “아, 그러지.”

     

    루크는 곁에 앉혀 두었던 인형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예르나가 웃으며 묻는다.

     

    “다른 사람들한테 새 옷 자랑 많이 했어?”

     

    루크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바라던 감정을 관측하진 못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한 명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니, 루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루크는 다이튼을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거지?”

    “저긴 어때? 지금 시간도 좀 있으면 어두워질 타이밍이고.”

     

    루크가 다이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공포의 사령술’이라 적힌 간판이 있었다.

     

    이름에 ‘공포’가 들어있으니 추측하자면, 이용객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시설인가?

    어쩌면 과거 메리와 함께 보았던 ‘공포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왜 사람들이 그런 걸 보려고 하는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해골과 살점으로 해둔 장식이 꽤 인상적이다.

    하지만 글쎄.

     

    “저런 곳을 왜 가나? 이해할 수가 없군.”

    “왜? 무서운 거 싫어해?”

    “딱히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습다. 전혀 무섭지도 않고.”

     

    다이튼은 그런 루크의 반응에 놀리듯 말했다.

     

    “에이. 사실은 너도 무서운 거 아냐? 괴물도 나온다는데?”

    “괴물? 하!”

     

    루크는 해골로 장식된 간판과 피칠갑된 건물 표면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품질이 너무 조악해서 할 말이 없구나. 뼈의 형태도 인위적인데다, 장식도 미묘해. 실제 인간의 뼈나 시체와 비교하면 너무 장난감 같구나.”

    “……어?”

     

    다이튼은 루크의 발언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루크는 ‘실제 인간의 뼈나 시체’와 직접 비교를 할 수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파이리스, 그대의 눈에는 어떻지? 저 ‘공포의’ 집이.”

    “응, 언니 말대로, 저거 다 가짜야. 별로 안 무서운데? 진짜가 아니니까.”

     

    파이리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자매(?)의 문답에 다이튼은 살짝 정신을 놓을 뻔 했다.

     

    하긴, 저 두 아이들은 고작 저런걸로 무서워 할 리가 없나, 아니. 트라우마나 자극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게다가 예르나 역시 저런 걸로 무서워할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꺄악, 너무 무서워.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같은 진부한 스킨십도 전혀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예르나 앞에 괴물이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제압이나 하지 않을까?

    예르나 쪽이 아니라 괴물 분장을 한 직원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체 왜 그랬을까.

     

    잘못된 제안을 한 대가로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살짝 따가울 지경.

    뒤에서 예르나가 자신을 보고 있을 표정이 무서워 뒤를 돌아보기도 겁난다.

     

    -꺄아아악!!

     

    그 순간, 공포의 집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나왔다.

     

    “히엑!” 

     

    그러자 파이리스는 움찔거리며 루크의 뒤로 숨는다.

    고음에 놀란 것이 아니라, 비명에 가득 담긴 ‘공포’라는 감정에 놀란 것이리라.

    하지만 루크 역시 그 비명엔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비명에 담긴 감정은…….

     

    ‘내가 찾던 감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설마, 지금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이 바로 ‘공포’라고?’

     

    이럴수가, 자신이 마법사 의상을 보고 느끼던 감정이 공포였다니?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바로 그 마법사인데, 마법사의 옷을 보고 공포를 느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 감정이 자신의 것일 리 없다.

     

    하지만 몸은 확실히 그것이 공포임을 알려온다.

    반사적으로 비명의 방향으로부터 자신의 뒤로 숨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팔을 뻗어 가리고 있었으니까.

    바로 약자를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 5000년 전 ‘위대한 영웅 루크 이루시’의 적부터 몸에 배고 말았던 행동이다.

    그리고 파이리스는 그런 루크의 몸과 팔에 숨어 빼꼼히 공포의 집 쪽을 바라보고 있다.

    또 갑자기 ‘공포’가 들이닥치지는 않을까 경계하면서.

     

    “…….”

    “…….”

     

    예르나와 다이튼은 그런 자매를 보고 순간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공포의 집을 꾸민 해골이나 시체는 ‘실감나지 않다’며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고작 비명소리에는 저 정도로 놀라다니.

    게다가 그 짧은 순간 동생을 보호하려고 인형까지 내팽개친 루크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눈물겹기 그지없다.

    단 둘이 그런 삶을 얼마나 오래 해 왔으면 저토록 빠르고 자연스럽게 동생을 감쌀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무서웠구나…….”

     

    예르나는 루크를 향해 다가와 와락 안아들며 등을 토닥거렸다.

    루크는 그런 예르나에게 당황했다.

     

    “아니, 이건 오해다, 예르나…….”

    “응, 알아. 괜찮아, 이제 걱정할 건 없으니까. 이제 무서워 할 필요는 전혀 없어.”

     

    아니, 틀렸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오랜만에 또 이런 반응인가?

    루크는 해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저 비명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고 하려던 루크는 문득 말을 멈췄다.

     

    이건 ‘거짓말’이 아닌가?

     

    실제로 자신이 비명에서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무섭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그저 자신의 감정이 바로 두려움, 공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뿐이지.

     

    그래서 이 오해를 그렇게 간단히 해명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예르나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있으니, 자신과 함께 예르나에게 안겨 있는 파이리스가 곁에서 예르나의 말에 꽤 절절하게 대꾸했기 때문이다.

     

    “비명소리는 진짜야. 너무 무서워……. 그치, 언니?”

    “그건…….”

    “역시 그랬지? 미안해, 그러니까 얼른 다른 데로 가자.”

    “…….”

     

    결국 답이 없는 상황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법사의상이 왠지 모르게 무서운 루크. 이유가 뭘까요?

    하지만 루크에게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다이튼 이거이거… 또 실수했네요. 밥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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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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