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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진성은 아나스타시아를 시작으로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아린에겐 금방 돌아가겠다는 문자를, 옷을 맞춰야 하니 어서 오라는 재촉 문자를 보낸 이세린에겐 옷을 만들 때 자신이 참여해 주술적 공정을 넣어도 되냐는 물음을, 엘라에겐 그녀가 보낸 문자만큼이나 아주 정중한 답장을 보냈다.

         

       ‘성인식 준비라.’

         

       성인식.

         

       주술적 의미에서의 성인식이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의 성인식은 진성과는 크게 인연이 있지 않았다.

         

       회귀 전 성년의 날에는 참여는 했으되 제대로 그 자리에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대충 얼굴만 비춘 후에 핑계를 대며 바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돌아간 다음에는 어렵게 구했던 성인식 관련 주술을 사용해서 주술적 의미의 성인식을 치렀고, 그 효과가 제대로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용병이 되기 위해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용병이 된 후에는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주술을 모으는 고행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진성은 이번에도 똑같은 수순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독립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두 단체 사이의 계약은 진성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것. 이양훈이 자기 핏줄이 아닌 진성을 평생 먹여 살려줘야 하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설령 그러한 의무가 있다고 한들 진성은 그 집에서 계속 얹혀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독립이라는 것은 성인의 의무이며, 성인으로서의 상징성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독립하여 자기 거주지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독립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것.

         

       물론 문화권에 따라 이러한 견해는 다르기는 했지만, 적어도 진성이 행한 ‘원시적인 성인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독립이라는 것은 성인의 필수 조건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주술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의 목표를 위해서라도 독립은 꼭 필요했다.

         

       육체를 강화해 주술의 대가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기 위한 시술.

       그리고 그 시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극소수의 부자와 권력자들.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설프게 남의 그늘에 있기보다는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그들의 곁에 접근하여 그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남의 그늘에 있으면 그늘을 만드는 이가 주인이요, 내가 그 종이 되는 것이다. 하니 설령 기회가 온다고 한들 주인에게 그 기회가 갈 것이고 종에게는 아무런 귀띔조차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할 수밖에.’

         

       세계 3차 대전 당시에도 진성이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던 정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그 정보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자격’이 되지 않은 사람은 아예 그 정보에 접근할 수도 없으며, 설령 접근한다고 해도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서 그 정보를 발설할 수 없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만약 이양훈이 정보를 얻는다고 한들 그것이 진성에게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적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철옹성이었으며, 자격이 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으니까.

         

       힘이 아무리 강하고 쓸모가 있다고 한들 ‘종’에게 베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진성은 반드시 독립해야만 했다.

       그리고 독립하고, 예전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다.

         

       ‘용병과는 다른 길.’

         

       용병이라는 것은 나쁘지 않은 직업이었다.

       위험하고, 더럽고, 제 목숨 부지하기도 어렵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주술을 수집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주술사라는 직업 자체의 희귀성 때문에 진성은 총알받이처럼 소모되는 신세에서 벗어났으며, 미신에 민감했던 용병들에게 꽤 존중받곤 했었다.

         

       심지어는 전 세계의 권력자나 부자와 연이 닿아서 인맥을 쌓기도 하였으며, 가문의 전속 주술사가 되어달라, 기업에 이사로 들어와 주술 의식을 행해달라는 등의 제의도 많이 받았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용병을 다시 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나….

         

       ‘인맥을 제외한다면 큰 메리트가 없다.’

         

       세계 곳곳에 쓸만한 인맥을 만들 수는 있지만 단지 그뿐.

         

       천문학적인 돈을 벌거나 굴릴 수도 없고, 수많은 사람의 위에 서서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도 없으며, 아무리 유명해진다고 한들 대가를 받고 누군가의 개나 검이 되어버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검.

       돈으로 부릴 수 있는 개.

       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명.

         

       용병이라는 것은 그런 직업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돈으로 부릴 수 있는 종.

         

       그렇기에 용병으로 아무리 성공한다 한들 무력에서 비롯되는 존중 말고는 진정한 존중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며, 용병으로 쌓아 올린 무력을 아무리 휘두른다고 한들 그것은 공포일 뿐 경외가 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그렇게 쌓는 인맥 또한 크게 대단한 인맥은 아닐 터.’

         

       게다가 용병으로 일하면서 쌓는 인맥이라는 것이 대단치 못하기도 했다.

         

       용병으로 고용되는 것을 계기로 쌓아진 인맥?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진짜배기 권력자들은 용병을 사용하지 않는다.

       철옹성처럼 자기 영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명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신만의 군대를 이끈다.

         

       경호원이라는 이름으로, 보안요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설경비대라는 이름으로, 시설보호팀이라는 이름으로, 국군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자신의 명령이라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는 사냥개이자 충견을 만들어놓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력에 맞춰 그 이름을 짓는다. 그리고 무력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온갖 핑계와 거짓 명분을 내세워 그들을 앞세우고, 때에 따라서는 비밀리에 사냥개들에게 임무를 시켜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런 과정에서 용병이 끼어들 틈은 없다.

         

       돈이 끼어들기에는 그들의 비밀이 더 무거웠으며, 가볍게 쓰고 버리는 용병을 고용하는 것보다 사냥개들에게 실전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겪게 해주는 것이 더 귀중했기 때문에.

       그렇기에 용병들은 진짜배기 권력자들에게는 고용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대신에 그 아래에 위치한 ‘적당한’ 권력자들이나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진성이 만났던 이들 역시 바로 이러한 ‘적당한’ 권력을 가진 이들.

         

       물론 세계 3차 대전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 멀쩡하게 부와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격의 차이가 메꿔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배기들은 세계 3차 대전이 터지는 와중에도 전쟁 전처럼 사치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진짜배기 권력자들과 접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진짜배기 권력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아주 간단했다.

         

       과거 용병 생활하며 권력자들이 제안했던 것처럼, 자신의 주술을 그들을 위해 사용해주기만 하면 된다. 진성의 주술 실력은 범상치 않은 것이었으며, 그 지식 또한 방대한데다가 쉬이 보기 힘든 것들이 가득하였으니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넓은 인맥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맥 사이사이에 진짜배기 권력자가 한둘은 끼게 되겠지.

         

       진성은 그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육체 강화 시술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그만이었다.

         

       ‘물꼬를 트기도 쉽지.’

         

       한국에서는 아주 쉽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진성은 광양 그룹 회장인 이양훈과 가볍지 않은 인연이 있으니 비슷한 위치에 있는 기업가나 권력자들과 접하기 쉬운 입장이었으며, 또한 그의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인생에 호국회와 애국단이 얽혀있으니 그것을 재료로 그들에게 접근할 수도 있었고, 주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 오랜만에 나타난 주술사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일본?

       마약 대신에 남을 끌어내리는 것에 혈안이 된 작자들이 점차 세를 넓혀가고 있으니, 한국보다도 더 쉽게 인맥을 만들 수 있으리라.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세계 3차 대전 초반에 초토화가 됨에 따라 시술과 연관이 있을 만한 권력자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니, 운이 좋다면 그들에게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러시아도 마찬가지.

       핵 샤워의 빅토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될 미래의 러시아 대통령과 연을 만든 상태였다.

       지금의 빅토르도 어마어마한 권력을 얻고 있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훗날 그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다면 러시아에서 진성이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없게 되리라.

         

       ‘대부분 쭉정이니, 쓸모있는 작자들에게 닿기까지는 꽤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진성은 회귀 전 고고한 척 자신의 세력권에 틀어박혀 있던 권력자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무력이란 가장 천박한 힘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이야말로 최선이라고 지껄이던 권력자들은 넘쳐났다. 전쟁이 터짐에 따라 종신대통령으로 임명된 이들이 그러하였으며, 정부가 무너지자 우후죽순 솟아난 곳에서 왕과 황제를 스스로 칭하며 나타난 이들이 바로 그러했으며, 군대를 장악하고 그들의 힘을 보검처럼 휘두르는 독재자들이 바로 그러했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세계에 군림하다시피 했던 기업가들이 그랬고, 미디어 계열 기업가 집단이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권력은 평화에서나 성립되는 것이다.

         

       전쟁이 터지고, 혼자서 연대급, 사단급의 힘을 낼 수 있는 비대칭 능력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들의 부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작정이라도 하듯 움직이는 미치광이들은 달러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려는 듯 미국 전역에 소란을 피우고 다녔고, 능력자끼리 뭉쳐서 만들어진 집단은 혼란 속의 군대보다도 더 끔찍한 위력을 선보였다.

         

       전 세계의 농업 대부분을 지배하는 기업가?

       세상을 불로 정화해야 한다며 뭉친 미치광이 능력자들이 전 세계의 농지를 불태우고 다니는 데 그 힘이 제대로 작동할 것 같은가?

         

       손가락 하나로 수십만 명을 부릴 수 있는 권력자?

       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녔다고 한들 수백 미터 너머에서 공간을 베는 것으로 모가지를 썰 수 있는 정신병자 아나키스트 무인의 칼을 피할 수 있을까?

         

       ‘세상에 온갖 미치광이들이 가득했지.’

         

       생명과 무력은 돈으로 살 수 없었다.

       그 무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을 휘두르는 미치광이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미쳐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권력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으며, 부와 권력을 유지하거나 불릴 수 있는 이들은 이러한 무력을 등한시 여기지 않은 극소수의 집단들뿐이었다.

         

       혹은 본인이 무력을 가지고 있거나.

         

       ‘유럽 전역에 인맥을 뻗어나갈 때 대마녀가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구나.’

         

       대마녀, 오딜리아 A 라이히.

         

       그녀 역시 세계 3차 대전 나름 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권력자였다.

         

       진짜배기라고 불리기에는 한없이 모자라기는 했으나 인맥 자체는 꽤 훌륭한 편이었으며, 웬 이상한 종교인한테 걸려서 전 재산을 다 갖다 바치기 전까지는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았었다.

         

       훗날 이상한 종교인 때문에 성격이 뒤틀리고 돈이 없어지고, 용병들의 돈을 떼먹었다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나중에 크게 될 사람들과 인맥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회귀 전의 일.

       진성의 손이 닿은 지금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종교인이 차지해야 할 빈자리는 진성이 비집고 들어간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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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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