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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아르의 첫인상은 황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레온은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서 아르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 주었다. 

       

       “뀨우.”

       

       급히 닦느라 살짝 거칠어진 손길에 아르는 눈을 감으며 작게 뀨 소리를 냈다. 

       

       “다 됐다. 크흠. 죄송합니다. 아르가 케이크를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쀼우. 제송함니다.”

       

       레온이 사과하자 아르도 눈동자를 데룩 굴려 눈치를 보더니 허리를 펴고 무릎 위에 손을 얌전히 올리며 함께 사과했다. 

       

       “흠흠, 아닐세. 괜찮네. 그보다 케이크가 입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군. 생고기라도 준비했어야 했나 걱정하던 참일세.”

       

       그러자 아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생고기는 맛 업써여. 마싰게 구운 고기가 체고에여.”

       

       말랑말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아르를 본 황제는 하마터면 피식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뭐지? 생각했던 것과는 꽤나 다른 이미지군.’

       

       독불장군 스타일에,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깽판을 칠 것이라 예상했던 황제로서는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뭐라고 할까. 굉장히…. 귀엽군. 우리 막내딸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야.’

       

       현재 황녀는 총 세 명이 있었는데, 그중 막내는 올해로 열 살이었다. 

       평소에도 커다랗고 귀여운 곰인형을 좋아하는 3황녀라면, 분명 아르를 보고도 귀엽다며 안아 보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자 하니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던데, 설마 이전에 본 그 인형이 정말로 작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본딴 것이었나?’

       

       황제도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금 혼란스럽긴 했다.

       

       ‘아니야.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우호적으로 보이는 저 드래곤이 가진 힘을 생각해야 돼.’

       

       마음만 먹으면 여기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혹시 모를 그런 상황을 대비해 검성 둘이 바깥에서 대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황제가 소형 신호 아티팩트를 딸깍 누르기만 하면 검성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그를 지키고 드래곤에게 망설임 없이 검을 겨눌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러기 위한 자리는 아니지.’

       

       저쪽에서 우호적으로 나올 때 잘해야 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황제는 일단 칭찬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자네들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깊은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네.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마왕을 봉인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샤합니다.”

       

       아르는 레온을 따라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입으로만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부른 건 아니네. 제국을 위협하는 세력을 없애 주었으니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겠지.”

       

       꿀꺽.

       

       황제와 레온, 아르는 동시에 침을 삼켰다. 

       

       “…그 첫 번째는 이것일세.”

       

       황제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그 속에는 척 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보석 몇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황제는 얼른 아르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라도 언짢아하는 건….

       

       “쀼우…! 너무 예뻐여!”

       

       휴우, 다행이군.

       

       “이 중에서 하나 고르라는 거져? 쀼우우…. 다 예뻐서 고르기가 힘드러여. 레온, 레온 눈엔 어떤 게 조을 거 가타?”

       

       고민에 빠진 아르가 레온을 올려다보자, 황제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닐세. 여기 있는 보석 전부를 주겠다는 소리네. 고민할 필요 없다네.”

       “지, 진짜루여?”

       

       황제가 상자를 통째로 내밀자, 아르는 혹시라도 다시 가져갈까 걱정하는 것처럼 냉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가까이서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보석을 본 아르의 입이 절로 귀에 걸릴 듯이 벌어졌다.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군.”

       “헤헤헤…. 너무 마음에 들어여.”

       

       생각보다도 훨씬 좋아하는 반응에 마음이 좀 놓인 황제는 이어서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여러 혜택들에 관해 언급했다. 

       

       제국 내외는 물론 황실까지 출입 절차가 필요한 그 어떤 곳에서도 통행료를 내지 않는 건 물론, 이유조차 묻지 않고 출입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제국에서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모든 숙박 시설의 가장 좋은 방, 그리고 온천 등의 휴양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황실의 인증을 받은 셰프들이 직접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권리까지 언급했다. 

       

       “모, 모든 메뉴를 전부 다 맘껏 머글 수 있는 거예여?”

       “허허, 물론일세.”

       “근데 구러면 주인 아조씨 아주머니들은 돈을 못 벌자나여….”

       “당연히 모든 금액은 추후 황실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장부를 달아 둘 터이니 시설이나 레스토랑 측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황제는 아르가 자신이 공짜로 가게를 이용하면 주인들이 곤란해하지 않을까 배려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지었다. 

       

       ‘온천 이야기나 레스토랑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아이 같군.’

       

       말투도 그렇고, 눈앞의 드래곤은 굉장히 어리고 순수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만큼 옆에 있는 계약자의 성품이 더 중요해질 터인데….’

       

       어떻게 계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계약을 한 이상 사역마는 계약자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드래곤이라는 엄청난 존재를 키우는 만큼, 계약자가 못된 마음을 먹고 그 힘을 이용하려 한다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 끔찍한 방향으로 번질 수 있을 터. 

       

       드래곤의 환심을 사는 것만큼이나 지금은 계약자의 환심을 사는 것도 중요할 터였다. 

       

       황제는 그간 조용히 있던 레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라도 무언가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터놓고 말해 보게. 황실은 마왕과 맞서 제국을 지켜 주는 자네들을 위해 얼마든지 지원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일세.”

       

       앞으로도 마왕과 맞서서 제국을 지켜 달라,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앞서 제시한 것들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추가로 원하는 것까지 들어 준다면 좀 더 확실하게 이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황제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에 황제의 표정은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폐하, 혹시 천 년 전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

       

       황제의 표정이 굳은 걸 확인한 나는 그가 ‘진실’을 알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듣자마자 저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으니까. 

       

       “알고 계시는군요.”

       “그, 그게….”

       

       황제가 즉시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여기서 한 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해.’

       

       황실 측에서 우리의 입막음을 하는 대신, 회유책을 써서 제국의 통제 아래 놓고 싶어한다는 것은 잘 알았다. 

       

       아마 우리가 제국의 안녕을 위해 마왕 세력과 계속 싸워 주는 동안, 황제는 자신의 말대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쪽에서 베푸는 호의 말고도 우리한텐 한 가지 무기가 더 필요했다. 

       

       만약 황제가 천 년 전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우리를 부르면서도 이에 대해 우리가 따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을 터.

       

       ‘근데 시작부터 아르가 전혀 적의 없이 마냥 좋아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게 흘러가니까 긴장이 슬슬 풀렸겠지.’

       

       나는 그때를 노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했고, 황제는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나는 진지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고, 황제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곧 자신의 의자에 달린 무언가를 눌렀다. 

       

       위잉—

       

       마나가 퍼져 나가더니 방을 감쌌다. 

       

       “방음 결계를 전개하는 아티팩트네. 이걸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호위들도 절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걸세.”

       

       황제는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말했다. 

       

       “그래, 원하는 게 뭔가? 역사를 바로잡기를 원하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바로잡아야 할 건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우…. 그래, 맞는 말이지. 하지만 제국의 상황은….”

       

       황제가 말을 흐렸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마왕들과 대립하고 있는 지금, 쓸데없는 혼란을 야기하는 건 좋지 않다는 이야기겠죠. 저희도 막무가내로 밝히라고 말씀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내 말에 황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고맙네.”

       

       하지만 나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현재 제국 바깥에 바할라크라는 마왕이 부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저도 모릅니다만, 준비가 끝나면 마물의 대군을 이끌고 제국을 치려 할 겁니다.”

       “그런…!”

       

       처음 듣는 정보에 황제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그 바할라크의 군단과 싸워 이기고, 바할라크를 봉인할 때까지. 그때까지 진실을 밝히는 건 미뤄도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바할라크가 봉인되고 나면….”

       

       나는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아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천 년 전, 드래곤들이 마왕들과 싸웠고, 마신을 봉인시킨 건 다름 아닌 최후의 은룡이자 여기 있는 아르의 어머니인 카르사유였다는 사실을 제국에 공표해 주십시오.”

       

       나는 꿈속에서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던 카르사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을 던져 희생해 가며 마신을 봉인하고, 알 하나만을 남긴 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용을 깨울 자’가 아르를 잘 키워 주기를 바랐던 착하디 착한 용.

       

       제국의 황제에게 일개 용병이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할 용기를 낸 건, 이런 카르사유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경의의 표현이었다. 

       

       “…알겠네.”

       

       황제가 시선을 떨구자, 나는 아르와 함께 인사를 한 뒤 응접실을 나왔다. 

       

       저벅, 저벅.

       

       아르와 단 둘이 걸으며, 나는 아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르야, 우리 저녁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을까?”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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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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