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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J. Dox는 흔한 게이머 출신 개발자였다.

        

       어렸을 적 유행하던 소울라이크를 즐기다가 로그라이트까지 뻗어나갔으며,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각종 AOS도 즐기던 중- 더 멋진 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남들에게 즐기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

        

       흔하지 않았던 건, 그의 재능과 열정이었다.

        

       욕망을 실현할 재능이 있었고, 함께할 동료를 찾아낼 열정이 있었다. 의기투합한 동료들은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으나- 어찌되었든 성공을 위해 인생을 갈아 넣는다는 목표엔 모두가 동의했으니 문제가 없었더랬다.

        

       게임의 성공만을 생각하던 Dox같은 자와, 회사 – 나아가 자신의 커리어의 성공을 생각하던 이들이 갈렸지만……어찌되었든, 초기엔 그 길이 겹칠 수밖에 없었으니. 

        

       거기에 첫 프로젝트이자 가벼운 캐시카우로 생각하고 만든 모바일용 로그라이트 게임이 그야말로 대박이 나며 투자자의 눈에 들었으니, 이들은 과연 운도 비범했다고 해야 하리라.

        

       다만, 그 투자자의 눈이 당시 Project K라고만 불리던 나이트 오브 나이츠에까지 향했던 건, Dox의 입장에서는 불운이었다.

        

       게임에 내재된 포텐셜을 알아본 투자금은 끝없이 흘러 들어왔고, 동료들은 결코 돈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임성을 올린다는 미명 하에, 키보드 마우스에 최적화되어있던 게임을 억지로 VR로 포팅할 정도로.

        

       돈을 더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투자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창립 멤버들은 CEO니, COO니, CFO니, CHO니, CVO니……다양한 C를 이름 앞에 붙이고 거액의 연봉을 책정하며 행복해했다.

        

       출시가 기존 목표보다 5년이나 늦어지는 상황에 속이 타는 건, 멋진 게임을 선보이고 싶은 욕망이 들끓던 소수 뿐이었다. CTO라는 직함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던 Dox와, 아예 CCO라는 직함을 거부한 리드 그래픽 디자이너처럼.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은 투자자들과 C자 돌림들의 손을 들어줬다.

        

       VR로 출시된 나오나는 세계를 휩쓸었고, 평론가들은 앞다투어 나오나가 VR게임의 지평을 열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래도 누군가의 승리가 누군가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조금 늦었지만, Dox는 드디어 자신이 만든 게임을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출시 초기부터 자본을 투자해서 리그를 형성한 때만큼은, 투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결국, 자본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게임의 운영은, 차츰차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하면 그만이라는 듯이. 뷰어십 단가와 결제액이 높은 유럽과 북미에서 인기인 캐릭터나 플레이방식은 시스템적으로 권장하고, 낮은 국가에서 인기인 캐릭터는 죽어 있게 둘 지경이었으니.

        

       그리고 지금 걷는 길이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이미 비대하게 성장해버린 조직에서 그가 홀로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기에.

        

       지사 순회 업무까지만 마치면, 퇴사하고 은퇴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나오나를 떠난다는 건, 지난 몇 년간 단 한 순간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음에도. 

       

       어쩌면, 이제는 지쳐서- 그저, 열정을 잃어버린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더랬다.

        

       “……이건 진짜 선물이니까,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도적 단검 설정에 맞춰서 만든 건데……진짜 잘 만들지 않았나요. 저한테 한 쌍 선물해주신 분이, 한 자루는 패러데이에 선물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혹시 버릴 거면 저한테 버려주세요.”

       

       저, 상당히 이상한……그러나, 자신이 이상향으로 상상했던 플레이를 그림처럼 선보이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 * * *

       

       ……단검을 책상에 올려놓으면서 시작한 대사 치고는, 내 손으로 죽인다는 표현은 조금 과하게 비장했던 것 같기도 하고. 거의 이 자리에서 너와 나 둘중 하나는 죽는다는 느낌 아니었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오히려, 임팩트가 제법 컸을 것 같기도 해서.

       

       역으로, 의도치는 않았지만 제법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심증은 전자로 쏠리지만……그래도, 응. 부연설명했으니까 괜찮겠지.

         

       내친 김에 안전하다는 걸 어필할 겸, 단검의 날 부분을 잡아 사장에게 건네어 주고-

       

       ……방금, 움찔하지 않았나. 아니, 확실히 움찔했다.

         

        조금, 조금 억울한데.

         

        이건 나로서도 나름 큰 결심을 하고 가져온 선물이었다. 우리의 돌격대장, 갱생도질이 보내온.

         

        이 아저씨가 도적의 아버지라고 어필하는 바람에 떠오르지만 않았더라면, 모른 척 하고 조용히 다시 집으로 가져갔을 지도 몰라. 그 정도로 마음에 든……로망을 건드리는 멋드러진 단검이었다.

         

        선물하려고 꺼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조금은 불퉁거릴 정도로.

         

        하지만, 결국……선물한 장본인이 직접 한 요청 – 혹시 명예의 전당 따위가 생길지도 모르니, 꼭 한 자루는 잘 보이게 사인해서 패러데이에 선물해달라는 – 을, 노골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더라.

         

        솔직히……내가 다 낯이 뜨거워질 정도의 요청이었다. 패러데이가 내 사인을 대체 왜 보관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정도로. 팬이란 원래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거겠지 싶어, 겨우 참았지만.

         

        팬을 자청하는, 고마운 사람이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러한……고마운, 팬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시위까지 나와서, 사인을 받아가겠다고 든 사람들만 수백명 아니었나.

         

        그깟 나오나가 뭐라고.

         

        그……도적이, 뭐라고.

         

        내가, 뭐라고.

         

        ……자꾸만 감정이 북받치려 드는 건, 내가 아닌 호르몬 탓이겠지. 술이 필요해. 진짜로. 호르몬을 잠재우는 데는 빨뚜 만한 게 없는데.

         

        하지만, 아니야. 지금은 술 타령할 때가 아니다. 

       

       협박이 아닐 땐 확실히 협박이 아니라고 해야, 나중에 진짜 협박도 먹히는 법이니까.

       

        농담 아니에요. 둘 다. 이건 진짜 선물이고……게임은 진짜 죽일 거예요. 내버려 둬봐야, 어쌔신 다음에는 또 일본시장 공략한다고 사무라이나 내겠지. 할복은 고통이 심하다던데, 목 쳐줄 사람 필요하지 않나요.”

         

       “……사무라이……노 코멘트입니다. 하지만 회사 보안에는 더 신경써야겠네요.”

       

       ……설마, 이것도 진짜 하려고 했나.

       

       이건……정말로, 초심으로 돌아갈 때인 것 같은데. 유독 나한텐 초심을 찾으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나라도 독려해야겠지.

        

       그리고 도적부흥운동회 회장- 아따먹의 초심은,  일단 무슨 짓이든 하는 거였으니까.

       

       어디……내가 뭘 할 수 있나 볼까.

       

       * * * *

       

       아따먹은, 신기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만날 때부터 팬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간 그가 온라인에서 보고 키운 팬심은, 대개 만나면 신기루처럼 증발하기 마련이었다.

       

       아따먹은, 달랐다.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새하얀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부드러이 움직임이는 모습은, 방심하면 무심코 몇 분이고 멍하니 쳐다보게 될 것만 같았지만-

       

       정말로,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외모가 방해가 될 지경이었으니.

       

       아무리 랭킹 1등을 달성한 사람이라지만, 변방에서 뜬금없이 만난 사람이다. 게임 개발은 커녕, 코딩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런데 별 뜻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듯이 향후 패치 방향을 모조리 맞춰버리고- 그 와중에, 그에 대한 반응조차 Dox 자신의 생각과 똑같았으니.

        

       그리 말하는 걸 듣고 있자면, 패러데이의 임원으로서 살아가며 강제로 참아오던 게이머로서의 가려움이 핀포인트로 해소되는 느낌이 드는 탓에- 무장해제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사무라이 낼 때는 또 일본도만 길쭉하게 뽑아야 멋있다고 성기사 양손검 특성 너프할 거고……그 다음은 뭔가요. 중국시장 공략하는 권법가라도 내나. 남들 무기 들고 싸우는데 혼자 침팬지마냥 주먹 휘두르는 캐릭터 하나 뽑아야 되니, 비슷하게 무식한 광전사를 또 너프……음.”

        

       그렇게 끝없이 궁시렁거리던 이예나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사이.

       

       결국, 참지 못한 호탕한 웃음소리가 지사장실을 가득 메웠다. 아파트였다면, 층간소음으로 항의가 들러왔을 정도의 데시벨이었더랬다.  

        

       아, 죄송해요. 이렇게……이렇게까지 대놓고 말씀하실 줄은 몰라서. 네, 그……VR장르의 특성상, 캐릭터들 간 중복되는 영역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움직임과 스킬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도적 너프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유저들의 접근성을 높이고……그리고……아, 못해먹겠네요. 네.”

        

       그렇게 다시 한참을 웃은 사장은, 두 손을 슬며시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예, 뭐. 저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그 잘난 밸런싱 할 거면 데미지나 좀 깎든가, 이제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캐릭터 매력을 깎아놓고 있어. 어쌔신 같은 소리하고 있네, 판타지 중세 게임에 이미 도적이 있는데 어쌔신이 왜 또 나와, 도적은 그럼 그냥 도둑이냐……같은 말은, 명색이 사장이니 하면 안 되겠지만……네. 애초에 유료 캐릭터 판매 비즈니스 모델 출시 직전에 절 갑자기 사장 만든 이유도 뻔하니까요. 이 정도 말은 편하게 해도 되겠죠. 도적 동지끼리.”

        

       -흐흫.

        

       그에 화답하듯이, 예나의 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아……죄송해요. 그, 하신 말씀이 사실 좀 그리운 말이어서. 아무튼- 그러면 저도 도적 동지끼리, 편하게 얘기해도 될까요.”

        

       본격적인 작당 모의가 시작되었다.

        

       * * * *

        

       도적 너프를 반대하는 유저들이 현실에서 이렇게 모여서 시위를 했다고요? 하나님 맙소사. 우리 고객들이 현실에서 시위를 했다고? 이거이거, 투자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소셜 리스크네요? 이런 중요 사실이 어떻게 보고가 안 됐죠?

        

       “……그러게요. 어딘가 도적 혐오 세력이 있는 것 아닐까요. 마침 도적은 피부색이 조금 어두운 것도 같은데, 혹시…….”

        

       “아, 맞습니다! 설정상 혼혈이에요. ……그런데, 그 쪽으론 안 가면 안 될까요. 저희 본사가 미국인데, 진짜 게임 죽이려는 거 아니시면…….

        

       “……아니었어요?”

       

       “참. 그런데 여기 현수막에, 이 문구 뜻은 뭡니까?”

        

       “……아. 그……장작이 부족하여 불씨가 스러져 갈 때는, 보다 큰 불길을 일으키면 된다는, 한국 속담이…….”

        

       “오, 이미지 번역 됐네요. 어……이거 그냥 폭탄 터트리겠다……아까부터 말하던 게임 죽이겠단 뜻 아닙니까? 버그를 알고 있는 범위가, 나오나 소스 코드를 뽑아가고도 10년은 연구하신 수준이던데…….”

        

       “속담이에요. 설마, 동양권 속담의 심오함을 무시하시는……여기, 유능한 변호사니 조심하세요.”

        

       “……그런 속담이 있습니까, 변호사님? 번역기엔 안 나오는데요.”

        

       “없……있……있습니다. 아주……예전에 쓰이던, 사어여서, 없는 듯이 안 나오는 거고……네.”

       

       음. 

       

       역시, 이게 변호사지.

       

       슬며시 고개를 돌려, ‘고마워’라고 입모양으로 인사하니……표정이 조금, 미묘한 게. 어째 프로페셔널한 변호사보다는 그냥……정신머리 없는 동생 보고 화난 언니 같아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4 / 4

    작가인 제가 생각하기에 맛있는 떡볶이를 위한 준비가, 흐름과 일일연재의 한계로 인해 늘어지는 전개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이러면 댓글을 비롯한 독자님들의 반응을 확인하기에 앞서, 퇴고 과정에서 저 스스로가 가장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럴 때면 늦게라도 휴재 혹은 지연을 걸고 흐름을 바꾸어서 수정해왔으나… 이번에는 전개상 그러기 어려웠던 탓에, 그나마 극복하는 방법이 일일연재를 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연재 지연을 양해해주시고 찾아와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전개 흐름상 5연참이 딱 맞아서, 어떻게든 +1을 해보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으나…시간의 한계로 인해 무리였습니다. 대신 금토에는 휴재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준비는 대략 끝났네요. 마지막까지 힘내겠습니다.

    다음은 금요일 연재분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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