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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결국 내가 정했던 규칙은 하루 만에 깨져버렸다.

        

       그게 우리들의 관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고, 여전히 함께 붙어 다녔고, 같이 살았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 사라야!”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나면, 방을 나가기 전 하늘이가 나에게 양팔을 벌려 보이며 그렇게 말한다.

        

       “…….”

        

       그런 하늘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응!”

        

       마치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다는 듯, 하늘이는 다시 팔을 더 크게 벌려 보이는 것이다.

        

       “하아.”

        

       마치 질린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면서도, 나는 그 품으로 들어간다.

        

       하늘이는 그대로 팔을 모아서 나를 꼭 끌어안는다.

        

       이제 여름이라, 교복은 하복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복은 단순히 소매만 짧은 것이 아니라, 천도 동복보다는 다소 얇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하늘이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쓰고 있는 사라의 몸보다도 확연하게 굴곡진 그 몸매를 그대로 느끼고, 얼굴을 붉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는 문 앞에서 비키지 않을 테니까. 학교에도 가야하고.

        

       하늘이는 온 힘을 다해서 내 몸을 끌어안는다. 솔직히, 신체적으로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뭐,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포옹은 좋아한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일이었으니까. 하늘이는 나를 그만큼이나 좋아하니까. 그런 마음이, 몸으로 그대로 느껴져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하늘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을 붉게 붉혔으면서, 정작 표정에는 부끄러움 따위 전혀 없다. 예전에 교실에서 나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렸을 때와 비슷하다. 스위치가 올라간 하늘이는 애정행각을 할 때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하늘이의 얼굴이 내려온다.

        

       쪽.

        

       입술과 입술이 살짝 닿는다. 쪽,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을 보면 그냥 닿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하늘이에게 안기기 위해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었으니까.

        

       그래, 내가 ‘안기기 위해서’라면.

        

       솔직히 조금 내키지 않는다.

        

       나는 분명 제대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인간이었고,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을 이렇게 침식당해버린 것이다.

        

       매일매일 나에게 접촉하던 하늘이가 없으면, 어딘지 조금 불안했다. 내가 먼저 하지 말라고 했더라도, 하늘이가 나와 오래 떨어져 있으면, 쟤가 나를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기에, 안기고 싶다.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조금 그렇다. 그래서 먼저 이렇게 안아주는 하늘이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결국 내가 보이는 반응은 이런 츤데레같은 반응뿐인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이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한참 그렇게 하늘이의 체온을 느끼고 떨어지면, 그 옆에 있는 소희가 이미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

        

       일부러, 소희에게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인다. 하지만 소희는 그게 ‘일부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더욱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래. 내려다본다.

        

       물론 하늘이도 나보다 키가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품에 확 끌어안길 수준의 차이는 아니었다. 마주 서서 보면 내가 살짝 올려다보는 정도랄까.

        

       하지만, 소희는 나보다 키가 ‘확실하게’ 크다.

        

       따지자면 머리 반개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해야 할까.

        

       소희가 마음만 먹으면, 나는 그대로 소희의 품에 폭 끌어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소희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나는 천천히, 소희의 품으로 안겼다.

        

       소희의 포옹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 중이냐고 묻는다면…… 소희가 나를 처음 안았을 때는 정말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하늘이도 언제나 나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는 하지만, 소희는 그런 하늘이보다도 육체적으로 더 힘이 강했으니까.

        

       내 뒷머리에 손을 감아서 그대로 얼굴을 자기 가슴에 묻어버려, 솔직히 숨쉬기도 힘들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희의 포옹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경험을 쌓을수록, 나의 몸을 그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무언가를 대하는 것처럼 손길이 서서히 부드러워져 갔다.

        

       그리고 의외로, 소희는 그 몸도 부드럽다.

        

       물론 하늘이의 몸도 부드럽다. 나의 몸에 와 부드럽게 닿는 그 피부와 신체 각 부위는 웬만해서는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감각을 선사해준다.

        

       하지만, 소희는 경우가 약간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소희는 나보다 키가 확실하게 크다. 그리고 신체 각 부위도 ‘더 확실하게’ 차이가 났다.

        

       소희의 몸매는, 적당하고 보기 좋다고 생각한 하늘이보다도 더욱 특정 부위가 강조되는 몸매였다.

        

       그렇기에, 그 큰 키와 그 몸매가 어우러져서, 나는 그대로 소희의 부드러운 품 안에 푹 묻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스르륵, 하고 소희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내 긴 머리카락 사이를 소희의 손가락이 누비는 것이 느껴진다.

        

       정수리에서부터 시작해, 뒷머리를 지나,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그 간지러움에 살짝 몸서리치지만, 이 부드러운 감옥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손은 점점 더 내려와, 등을 쓰다듬는다. 나는 사람의 등이 이렇게 예민한 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소희의 손가락이 내 등 한가운데, 척추부분을 따라 내려가며 쓰다듬다가, 허리 부근에서 멈춘다.

        

       손에 조금 부드럽게 힘을 줘, 나의 몸을 조금씩 자기 몸쪽으로 끌어들인다.

        

       배와 배가 맞닿는다. 소희의 부드러운 흉부에 나의 가슴이 압박된다.

        

       고개를 숙여 묻고 있던 얼굴이, 숨을 쉬기 위해 올라오고—

        

       거기에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소희의 미소 지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쪽.

        

       이번에도, 입맞춤.

        

       입술은 조금 시간을 두고 닿아있다가, 잠시 뒤에 떨어졌다.

        

       눈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지만, 소희는 이내 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당연히,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서는, 수아였다.

        

       수아와의 포옹은 앞의 두 사람과는 또 확실하게 달랐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수아는 나보다 키가 작다. 마주 보면 내가 아주 살짝 내려다봐야 할 정도로.

        

       수아는 뒷짐을 쥔 채, 눈을 치켜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떠오른 부드러운 홍조가 귀여웠다.

        

       피부가 유독 희기 때문일까. 수아는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앞으로 있을 일을 상상하며 얼굴을 붉힌 수아는, 그 자체로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앞의 두 사람처럼, 수아는 가만히 기다린다.

        

       하지만, 두 사람처럼 팔을 벌리고 기다리지는 않는다.

        

       수아는, 내가 팔을 벌려주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걸 위해 수아는 마지막 순번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수아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조금은 주저했겠지만, 앞의 두 사람을 꽉 끌어안아 준 이상, 심지어 입맞춤까지 한 이상 수아를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얼굴도, 결국 화끈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천천히, 조금은 주저하면서도 나는 양 팔을 벌렸다.

        

       수아는 그런 나를 향해서 한 걸음씩, 조금씩 다가왔다.

        

       툭.

        

       그리고, 다 와서는 내 가슴 언저리에 자기 이마를 대었다.

        

       앞으로 몸을 숙인 그 자세는 포옹이라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그만큼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몸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일 거다.

        

       나는 천천히 팔을 오므려, 수아의 등과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내가 팔에 조금씩 힘을 줄수록, 수아의 몸도 점점 더 내 쪽으로 올라왔다. 수아의 얼굴도 조금씩 올라와, 이내 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내 수아와 나의 얼굴은 서로를 그대로 마주 보는 형태가 되었다.

        

       수아의 푸른 눈이, 나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직접 가본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외국의 산호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푸른 바다라기보다는 투명한 유리 같은, 아주 맑은 바닷속으로 선명한 자연색의 산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수아의 맑은 눈은 그 광경이 떠오르게 했다.

        

       푸르고 맑은 눈이라 그런 걸까. 수아의 큰 눈, 눈동자 주변의 홍채가 선명하게 보인다. 잔잔한 파도가 이는 바다를 떠올리는 그 가운데에, 아주 살짝 연한 주황색의 홍채.

        

       마치 누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유리구슬 같은 눈.

        

       그 눈이, 서서히 감긴다.

        

       수아는 눈을 감은 채로, 내 쪽으로 얼굴을 살짝 가깝게 붙였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하늘이보다도 선명한 몸의 라인이 그대로 느껴졌다.

        

       수아는 입을 살짝 내밀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추하게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건, 나더러 해달라는 뜻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살짝, 소리도 없이 우리 둘의 입술이 닿았다.

        

       그렇게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수아는 아니었나 보다.

        

       내가 입술을 떼기 전에, 수아의 양 팔이 올라와 내 목을 감쌌다.

        

       결국, 나는 입술을 붙인 채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수아에게서 떨어진 것은…… 글쎄, 나도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다. 수아가 원하는 만큼은 붙어있었겠지.

        

       ……이게, 요즘 내가 아침마다 겪는 일이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애매한 사이의 우리였지만,

        

       이건 이거대로, 행복한 일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시스템으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외전에서의 양혜인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아르바이트 모집 문구를 보고 취직하게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아르바이트 조건이나 어쩌다가 최나경이 양혜인을 뽑게 되었는지는 외전을 차차 진행하면서 조금씩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양혜인은 외전에서도 같은 나이로 등장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본편보다 외전의 양혜인이 훨씬 더 나이가 많을 예정이었지만… 역시 그보다는 양혜인과 최나경의 나이차가 원작만큼 차이나는 쪽이 더 뭔가가 뭔가 할 것 같아서, 원작과 비슷한 나이로 등장하는 것으로 설정을 틀었습니다. 그렇기에 외전에서 양혜인의 나이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 메이드가 된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대학 관련된 이야기나, 여기서의 양혜인과 양혜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갈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외전은 별도의 떡밥을 다룰 필요가 없다보니 시간은 훨씬 빠르게 흘러가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본편에서의 떡밥은 한 번씩 다 건드리고 지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 가지고 즐겁게 읽어주실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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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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