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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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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이 아닌 그 어떤 남자였더라도 다들 입을 모아 “제스가 아깝다. 뭐 하러 그런 남자를?”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눈이 부셨다.
    ​
    ​
    그런 그녀가 평범한 남학생도 아닌, 반에서 가장 배척받는 ‘그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
    ​
    붉은 머리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미인, 교실 문짝을 부술 수 있는 강자(이건 안 믿는 사람이 많았다.)라는 사실은 그녀를 순식간에 학교의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
    ​
    “저렇게 예쁜 애를 왜 이제야 알았지?”
    “아팠다잖아.”
    ​
    ​
    갑작스러운 절세미인의 등장에 학생들은 들썩거렸지만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노아가 고아원에 쉽게 녹아들었을 때처럼 제스 또한 어떠한 안배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
    ​
    소란스러운 학교 분위기와 달리 리안은 정신을 반쯤 빼놓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등교를 위해 길을 나설 때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리안은 제스에게 팔이 봉인 당한 채(그냥 끌어안긴 것뿐이다.) 종일 끌려다녔다.
    ​
    ​
    “하,하,하…맛있게..으득..먹게.”
    ​
    ​
    어느 순간부턴 저녁까지 제스의 집에서 해결할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날뛸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젓가락을 또각 부러뜨리는 고릴라… 아니 제스의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것도 점차 익숙해졌다.
    ​
    ​
    “그렇게 좋니?”
   “응!”
    ​
    ​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품은 제스의 엄마는 두 사람을 응원한다며 미소 지었다. 종종 의미 심정 한 미소를 지으며 방에서 둘이 놀라 부추기기도 했다. 이에 고릴라가 반발했지만…
    ​
    ​
    “그렇게 반대하다가 밖에서 몰래 놀면 어쩌려고요? 요즘은 룸카페가 모텔이나 다름없다던데..”
    ​
    ​
    요즘 애들에 대한 충격적인 정보 앞에 침몰했다. 확실히 부모가 있는 집이라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 터였다.
    ​
    ​
    “히히..!”
    ​
    ​
    뭣보다…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제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기에 맥이 탁 풀려 막을 수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
    ​
    제스의 집이 제집보다 익숙해졌을 때쯤,  고릴라는 리안을 반쯤 도둑놈… 아니 사위로 인정했다.
    ​
    ​
    “남자라면 낚시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어,예?”
    ​
    ​
    그는 내심 아들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리안을 끌고 다니며 하나하나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리안도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에 빠져들었다.
    ​
    ​
    ‘가족이… 생긴 것 같아.’
    ​
    ​
    사람들이 끝없이 입에 담던, 그저 동화 속 존재처럼 느껴지던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당장 내일이 되면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아 밤을 몇 번이나 새기도 했다.
    ​
    ​
    행복한 만큼 두려움 또한 깊어져만 갔다.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새카만 공허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
    ​
    단 한 방울의 애정을 찾아 그저 눈뜬장님처럼 헤매던 과거가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동시에 이 행복이 영원히 제 곁을 떠날 수 없도록 묶어두고 싶었다.
    ​
    ​
    권능의 힘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리안의 혼란은 짙어져만 갔다. 그럴 때면 리안은 언제나 제 곁을 맴도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
    ​
    감히 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까지의 고민이 전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
    ​
    ‘어째서? 왜? 언제부터?’
    ​
    ​
    출처를 알 수 없는 애정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어지진 못했다.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가 “아, 사람을 착각했다!”라고 말하며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이 애정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찌든 때처럼 ‘불안’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평온한 일상을 위한 정당한 대가였기에 리안은 기꺼이 제 불안을 받아들였다.
    ​
    ​
    그건 너무나 -… 인간다운 성장이었다.
    ​
    ​
    ​
    마음속 깊게 남은 상처를 받아들이고, 제스의 안온한 애정 속에서 점차 내면이 성장해가는 리안과 달리 제스는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있었다.
    ​
    ​
    팟!
    쨍그랑!
    ​
    ​
    ‘이걸로 오늘만 네 번째.’
    ​
    ​
    그녀는 리안의 머리 위로 떨어지려던 화분을 쳐내며 미간을 구겼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자 방치된 화분들이 보였다. 기척이 없는 걸로 봐선 강한 바람에 ‘우연히’ 떨어진 듯했다.
    ​
    ​
    제스는 리안과 함께하게 된 이후 발생한 온갖 사건, 사고들을 세어보았다. 두 손으로도 전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
    ‘대체 왜? 리안이 뭘 잘못했기에?’
    ​
    ​
    이 세상은 마치 리안을 증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시로 그를 위협했다. 그의 권능이 ‘생존을 위해’ 깨어난 것도 이러한 세계 때문이었다.
    ​
    ​
    제스는 리안을 따돌리다 못해 죽이고 싶어 하는 ‘세계의 의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 만큼은 알 수 있었다.
    ​
    ​
    ‘내가 지켜야 해.’
    ​
    ​
    이 세상 전부가 그를 죽이려 한다면 그 모든 이들을 물어뜯어서라도 그를 지킬 것이다. 리안을 제 반려라 칭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긴 약속이었다.
    ​
    ​
    “검은색이랑 빨간색이랑 섞이면 무슨 색일지 궁금하지 않아?”
   “어? 아마 두색을 섞으면 -…”
    “나중에 확인해보자!”
   “…? 그래.”
    ​
    ​
    그녀는 리안을 지키며 틈틈이 그를 꼬시는 걸 잊지 않았다. 똑똑한 수인다웠다. 후에 제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리안은 한동안 벌겋게 익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
    ​
    제스와 노아가 각자 리안의 과거 속에서 그를 지키고 있을 때, 아이리스 또한 그녀들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
    ​
    끼익,끽.
    ​
    ​
    가장 먼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든 소리는 반쯤 부러져 흔들리고 있는 가로등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불길한 새의 울음처럼 기분 나쁜 쇳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흡,콜록콜록!”
    ​
    ​
    자신이 낯선 장소에 서 있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거칠게 숨을 삼켰다. 그러자 다크판타지 세계에 비해 오염된 공기가 목구멍을 긁고 지나가 매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
    ​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몇 번이고 기침하던 아이리스는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가진 철 마차들이 널브러져 있고, 유리창이 깨져 내부 뼈대를 훤히 내보이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
    ​
    엉망이 된 건물 안쪽에서 불어온 시린 바람이 아이리스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과 달리 적나라한 감각에 아이리스는 어깨를 작게 떨었다.
    ​
    ​
    터벅.
    ​
    ​
    “…!”
    ​
    ​
    그 순간 들려온 발걸음 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낯선 외모와 익숙한 영혼, 리안이 말끔한 얼굴로 도로 옆길을 걷고 있었다.
    ​
    ​
    “리안…!”
   
    ​
    아이리스는 지금까지 몇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다. 어차피 그를 품에 안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충동을 막을 수 없었다.
    ​
    ​
    날랜 몸짓으로 지저분한 도로를 지나 어째선지 발걸음을 뚝 멈춘 리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
    ​
    “…!”
    ​
    ​
    분명 달려가 안긴 건 그녀인데 더 놀란 것 또한 그녀였다. 그녀는 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제 등을 토닥거리는 손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를 만나지 못하는 줄 알았다. 목구멍을 조여오던 불안감이 안도로 바뀌는 순간 억울함과 안도, 분노 등.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나와 그녀의 볼을 적셨다.
    ​
    ​
    ‘누구..지?’
    ​
    ​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가 그저 당황스러워 어색한 손길로 등을 토닥였다. 
    ​
    ​
    보통의 사람이라면 머릿속의 기억을 뒤적여 눈앞에 있는 미인이 왜 자신을 붙잡고 우는지, 아는 사람이었는지, 괴이는 아닌지 따위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겠지만, 리안은 현재 ‘권능’으로 인해 배경에 녹아든 상태였다.
    ​
    ​
    멸망한 세계도 끔찍하게 생긴 괴이들도 권능 앞에선 ‘원래 존재했던 것들’로 치부되었다. 그건 사람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
    ​
    기억에도 없는 낯선 이가 다가와 친한 척 말을 걸면 기억이 조작되어 정말 친했던 사람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
    ​
    오랜 시간 힘을 쌓아온 권능은 따로 정보가 없어도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여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아이리스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존재였기에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
    ​
    정보가 없다면 권능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에 권능은 정보 수집을 위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에 영향을 받은 리안이 자연스럽게 아이리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전부 해줘.”
    ​
    ​
    낯선 목소리 속에 담긴 익숙한 온기에 아이리스는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하나, 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를 토닥이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리안의 표정이 점차 어색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
    ​
    “어… 그러니까? 우리가 둘도 없는 소중한 관계라는 거지? 가족 같은…”
    ​
    ​
    자신만만하던 권능은 곧바로 작동을 중지했다. 리안도 함께 고장 나버렸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언제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3

계속 쭉쭉 적다보니 멈추지 못하고 완결까지 쭉 적고 말아서 대 지 각 하고 말았습니다 ;0; 죄송합니다.

이제 마지막 퇴고만 남아서 퇴고가 끝나는대로 바로바로 올릴 예정입니다. 이번주 안에 완결까지 전부 업로드 하겠습니다!

+

이번편에 나왔던 제스의 “검은색이랑 빨간색이랑 섞이면 무슨 색일지 궁금하지 않아?”라는 말은…

붉은 머리인 제스와 검은 머리인 리안 사이의 아이는 무슨 색의 머리카락이 나올지 궁금하지 않냐는 매우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3c다음화 보기

리안이 아닌 그 어떤 남자였더라도 다들 입을 모아 “제스가 아깝다. 뭐 하러 그런 남자를?”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눈이 부셨다.

그런 그녀가 평범한 남학생도 아닌, 반에서 가장 배척받는 ‘그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붉은 머리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미인, 교실 문짝을 부술 수 있는 강자(이건 안 믿는 사람이 많았다.)라는 사실은 그녀를 순식간에 학교의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저렇게 예쁜 애를 왜 이제야 알았지?”

“아팠다잖아.”

갑작스러운 절세미인의 등장에 학생들은 들썩거렸지만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노아가 고아원에 쉽게 녹아들었을 때처럼 제스 또한 어떠한 안배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소란스러운 학교 분위기와 달리 리안은 정신을 반쯤 빼놓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등교를 위해 길을 나설 때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리안은 제스에게 팔이 봉인 당한 채(그냥 끌어안긴 것뿐이다.) 종일 끌려다녔다.

“하,하,하…맛있게..으득..먹게.”

어느 순간부턴 저녁까지 제스의 집에서 해결할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날뛸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젓가락을 또각 부러뜨리는 고릴라… 아니 제스의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것도 점차 익숙해졌다.

“그렇게 좋니?”

“응!”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품은 제스의 엄마는 두 사람을 응원한다며 미소 지었다. 종종 의미 심정 한 미소를 지으며 방에서 둘이 놀라 부추기기도 했다. 이에 고릴라가 반발했지만…

“그렇게 반대하다가 밖에서 몰래 놀면 어쩌려고요? 요즘은 룸카페가 모텔이나 다름없다던데..”

요즘 애들에 대한 충격적인 정보 앞에 침몰했다. 확실히 부모가 있는 집이라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 터였다.

“히히..!”

뭣보다… 리안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제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기에 맥이 탁 풀려 막을 수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제스의 집이 제집보다 익숙해졌을 때쯤,  고릴라는 리안을 반쯤 도둑놈… 아니 사위로 인정했다.

“남자라면 낚시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어,예?”

그는 내심 아들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리안을 끌고 다니며 하나하나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리안도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에 빠져들었다.

‘가족이… 생긴 것 같아.’

사람들이 끝없이 입에 담던, 그저 동화 속 존재처럼 느껴지던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당장 내일이 되면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아 밤을 몇 번이나 새기도 했다.

행복한 만큼 두려움 또한 깊어져만 갔다.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새카만 공허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단 한 방울의 애정을 찾아 그저 눈뜬장님처럼 헤매던 과거가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동시에 이 행복이 영원히 제 곁을 떠날 수 없도록 묶어두고 싶었다.

권능의 힘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리안의 혼란은 짙어져만 갔다. 그럴 때면 리안은 언제나 제 곁을 맴도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감히 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까지의 고민이 전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어째서? 왜? 언제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애정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어지진 못했다.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가 “아, 사람을 착각했다!”라고 말하며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애정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찌든 때처럼 ‘불안’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평온한 일상을 위한 정당한 대가였기에 리안은 기꺼이 제 불안을 받아들였다.

그건 너무나 -… 인간다운 성장이었다.

마음속 깊게 남은 상처를 받아들이고, 제스의 안온한 애정 속에서 점차 내면이 성장해가는 리안과 달리 제스는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있었다.

팟!

쨍그랑!

‘이걸로 오늘만 네 번째.’

그녀는 리안의 머리 위로 떨어지려던 화분을 쳐내며 미간을 구겼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자 방치된 화분들이 보였다. 기척이 없는 걸로 봐선 강한 바람에 ‘우연히’ 떨어진 듯했다.

제스는 리안과 함께하게 된 이후 발생한 온갖 사건, 사고들을 세어보았다. 두 손으로도 전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대체 왜? 리안이 뭘 잘못했기에?’

이 세상은 마치 리안을 증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시로 그를 위협했다. 그의 권능이 ‘생존을 위해’ 깨어난 것도 이러한 세계 때문이었다.

제스는 리안을 따돌리다 못해 죽이고 싶어 하는 ‘세계의 의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 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지켜야 해.’

이 세상 전부가 그를 죽이려 한다면 그 모든 이들을 물어뜯어서라도 그를 지킬 것이다. 리안을 제 반려라 칭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긴 약속이었다.

“검은색이랑 빨간색이랑 섞이면 무슨 색일지 궁금하지 않아?”

“어? 아마 두색을 섞으면 -…”

“나중에 확인해보자!”

“…? 그래.”

그녀는 리안을 지키며 틈틈이 그를 꼬시는 걸 잊지 않았다. 똑똑한 수인다웠다. 후에 제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리안은 한동안 벌겋게 익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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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와 노아가 각자 리안의 과거 속에서 그를 지키고 있을 때, 아이리스 또한 그녀들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끼익,끽.

가장 먼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든 소리는 반쯤 부러져 흔들리고 있는 가로등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불길한 새의 울음처럼 기분 나쁜 쇳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흡,콜록콜록!”

자신이 낯선 장소에 서 있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거칠게 숨을 삼켰다. 그러자 다크판타지 세계에 비해 오염된 공기가 목구멍을 긁고 지나가 매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몇 번이고 기침하던 아이리스는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가진 철 마차들이 널브러져 있고, 유리창이 깨져 내부 뼈대를 훤히 내보이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엉망이 된 건물 안쪽에서 불어온 시린 바람이 아이리스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과 달리 적나라한 감각에 아이리스는 어깨를 작게 떨었다.

터벅.

“…!”

그 순간 들려온 발걸음 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낯선 외모와 익숙한 영혼, 리안이 말끔한 얼굴로 도로 옆길을 걷고 있었다.

“리안…!”

아이리스는 지금까지 몇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다. 어차피 그를 품에 안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충동을 막을 수 없었다.

날랜 몸짓으로 지저분한 도로를 지나 어째선지 발걸음을 뚝 멈춘 리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

분명 달려가 안긴 건 그녀인데 더 놀란 것 또한 그녀였다. 그녀는 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제 등을 토닥거리는 손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를 만나지 못하는 줄 알았다. 목구멍을 조여오던 불안감이 안도로 바뀌는 순간 억울함과 안도, 분노 등.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나와 그녀의 볼을 적셨다.

‘누구..지?’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가 그저 당황스러워 어색한 손길로 등을 토닥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머릿속의 기억을 뒤적여 눈앞에 있는 미인이 왜 자신을 붙잡고 우는지, 아는 사람이었는지, 괴이는 아닌지 따위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겠지만, 리안은 현재 ‘권능’으로 인해 배경에 녹아든 상태였다.

멸망한 세계도 끔찍하게 생긴 괴이들도 권능 앞에선 ‘원래 존재했던 것들’로 치부되었다. 그건 사람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기억에도 없는 낯선 이가 다가와 친한 척 말을 걸면 기억이 조작되어 정말 친했던 사람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힘을 쌓아온 권능은 따로 정보가 없어도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여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아이리스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존재였기에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정보가 없다면 권능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에 권능은 정보 수집을 위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에 영향을 받은 리안이 자연스럽게 아이리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전부 해줘.”

낯선 목소리 속에 담긴 익숙한 온기에 아이리스는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하나, 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를 토닥이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리안의 표정이 점차 어색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둘도 없는 소중한 관계라는 거지? 가족 같은…”

자신만만하던 권능은 곧바로 작동을 중지했다. 리안도 함께 고장 나버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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