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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5

   기절해 버린 베녹스를 두고, 크라슈는 그의 옆에 떨어진 마법 통신 기구를 쥐어 주머니에 챙겨 두었다.

     

   그러고는 크라슈는 유유히 무너진 벽 사이를 빠져나왔다.

   그의 입에서는 고열을 담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녹스가 있을 줄이야. 생각보다 출력을 더 썼는데.’

     

   기습 공격을 위해 엑셀과 함께 멸화수라까지 쓴 크라슈는 한설아귀로 빠르게 몸을 식혔다.

     

   성배 쪽에 반대파 인력을 투입했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단심문관 대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베녹스는 마스터 급의 강자이니.

   크라슈도 기습 공격에 힘을 쏟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엑셀이 없었으면 기습도 실패했겠는데.’

     

   기습에 성공해서 다행이다.

     

   이단 심문관인 베녹스는 자기 신성력을 오로지 자가 회복과 육체 강화에 투자한 좀비 같은 인간이다.

     

   시간 벌기에 최적화 돼 있는 것은 물론 전투가 길어질수록 까다로운 상대였으니.

   기습은 옳은 판단이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크라슈가 밖으로 나오자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거기에는 아슬란과 디오나가 있었다.

   반대파들이 왕실 성기사단과 뒤엉킨 틈을 타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지하 공간에서 아슬란의 화염 마법은 압도적인 성능이었다.

   불태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기까지 추가 공격을 먹이니 반대파와 왕실 기사단도 난리였다.

     

   거기에 그 사이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디오나의 검 또한 무시무시했다.

     

   단순한 검 실력만으로 추기경에 추대된 그녀다.

   이미 서로 한 번 전투를 치른 반대파와 왕실 성기사단으로서는 그녀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저쪽은 됐고.’

     

   크라슈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아슬란이 임시로 걸어준 인식 저해 마법이 걸린 아스트리아가 허둥거리는 게 보였다.

     

   크라슈는 난전을 피해 바로 아스트리아 앞까지 뛰어왔다.

     

   “아스트리아.”

   “아.”

     

   크라슈가 바로 앞에 나타나자 아스트리아가 흠칫하고 놀랐다.

   그런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그녀의 앞에 등을 보이며 자세를 낮췄다.

     

   “업혀.”

   “어, 업히라고?”

     

   아스트리아가 당황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크라슈가 재촉하듯 그녀를 보자 그녀는 결국 입술을 꽉 깨물곤 크라슈의 등에 올라탔다.

     

   등 뒤에서 묵직한 느낌과 함께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아스트리아가 상체를 크라슈에게 붙인 탓이었다.

     

   크라슈는 아직도 적응 안 되는 느낌이었으나 크라슈는 아스트리아의 허벅지를 제대로 잡았다.

     

   “꽉 잡아.”

   “여, 여기서, 더?”

   “자칫하면 날아가 버린다.”

     

   크라슈가 엑셀을 사용할 때 얼마나 빠른지 아는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크라슈의 목에 자기 팔을 감쌌다.

     

   그녀가 단단히 팔을 감싼 걸 확인하자마자 크라슈는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크라슈가 바닥을 쿵 찍은 순간.

   그의 다리에 서린 엑셀이 그를 가속 시켰다.

     

   가속된 그의 몸이 한순간에 거리를 주파했다.

   아스트리아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눈을 꽉 감았다.

   

   쿵!

     

   그리고 곧 크라슈가 도착한 장소는 조금 전 베녹스가 날려버렸던 문짝 앞이었다.

     

   “히익, 힉.”

     

   로브가 넘어가고, 머리가 산발이 된 아스트리아가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린 그녀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인 표정이었다.

     

   크라슈는 비틀거리는 아스트리아를 잘 내려두곤 거덜 난 문짝으로 다가갔다.

     

   콰아앙!

     

   뒤에서는 아직도 소란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이쪽을 살필 녀석들은 없는 모양이다.

     

   크라슈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신성 왕가의 문양이 이리저리 새겨진 거덜 난 문과 베녹스의 도끼가 보였다.

     

   본래는 신성 보호막이 있었으나 베녹스가 도끼를 휘두른 덕분에 문은 더 이상 보호막이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 옆에는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는 사제들을 대충 걷어차 치워낸 크라슈는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섰다.

     

   “같이 가!”

     

   그러자 아스트리아도 사제들에게 미안해하며 그들을 지나쳐 따라 들어왔다.

     

   내부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 속, 크라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고는 불을 켤 수 있는 등을 발견한 크라슈는 손에 이그니스를 피워 올렸다.

   등에 불을 붙이자 곧 공간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만들어진 등인 듯 하나가 불이 붙자 다른 등들도 연달아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보인 것은 썩 달갑지 않은 광경이었다.

     

   크라슈는 코를 찌르는 피의 향을 느꼈다.

   그리고 그 향대로 눈앞에는 핏물로 가득 찬 수조가 있었다.

     

   여기저기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생긴 것만 봐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것 같은 도구를 본 크라슈는 수조의 앞으로 다가갔다.

     

   수조의 맨 앞.

   거기에는 동그란 원 형태의 잔이 하나 놓여 있었다.

     

   금빛으로 수놓아진 잔은 보기에는 상당한 고가의 물품처럼 보였다.

     

   성배.

     

   보기에는 이래도 성녀의 모든 신성력을 빨아들이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신성 왕가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만이 만들어낸 괴작품.

   크라슈는 그것을 손에 쥐어 들어 올렸다.

     

   후욱!

     

   그러자 크라슈는 자기 내면의 무언가가 성배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받았다.

     

   크라슈 또한 스킬을 다루고 있다.

   스킬은 일종의 신성력에 가까운 힘.

     

   그러니 성배는 크라슈의 스킬의 힘 또한 흡수하려 들었다.

     

   “어딜.”

     

   그러나 크라슈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었다.

   크라슈의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스킬의 앞에 세계 침식의 힘이 휘몰아쳤다.

     

   그러자 성배는 크라슈에게 깃든 스킬의 힘을 흡수하지 못한 채 그의 손에 쥐어졌다.

     

   성배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스킬.

   그마저도 흡수한 스킬을 원래의 형태가 아니라 신성력의 형태로 바꾸어 버린다.

     

   프리만은 지금까지 이걸 이용해 수많은 스킬과 신성력을 녹여내어 성녀라는 존재를 창조해낸 것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 성배조차 어느 한 이름 잃은 신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신성 모독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네.’

     

   이름 잃은 신의 시체의 일부분으로 성배를 만들어내었으니.

   확실히 반대파 녀석들이 종교 혁명을 부르짖을 만하긴 했다.

     

   “여기가…….”

     

   그러는 순간 아스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성배의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이기도 한 곳.

     

   물론 그녀에게는 이곳은 기억에 없는 곳이다.

   그녀가 성녀가 된 것은 신생아 때의 일이니까.

     

   수많은 성녀가 이곳에서 성녀로서의 마지막을 달리했고, 또 새로운 성녀가 태어났다.

     

   그러한 성배의 현장을 물끄러미 보던 그녀는 이내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성배의 현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이제 다음이었다.

     

   오늘이 성녀로서의 마지막이 될지 몰라도 자신으로서 살겠다는 굳은 다짐.

   그 다짐을 느낀 크라슈는 어느샌가 우뢰성을 뽑고 있었다.

     

   아슬란과 디오나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곤 하나 반대파는 물론 신성 왕가 쪽도 이쯤이면 상황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분명 지하 공간 바깥에는 둘 중 하나가 보냈을 전력이 몰려들고 있겠지.

     

   그놈들이랑 맞붙었다간 시간이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최단 거리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야, 간단하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주 대대적으로 세계 전체에 알려줄 속셈이었다.

     

   성녀라는 굴레를 끝낸 성녀.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

     

   그녀의 존재를 말이다.

   크라슈의 우뢰성에 흑염이 감돌기 시작했다.

     

   더불어 감돌기 시작한 크라슈의 흑염을 따라 일대의 공기가 역류하듯 흘렀다.

   역류의 방향은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아스트리아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당신?”

     

   아스트리아가 대체 뭘 하려는 거냐는 표정으로 물었을 때.

     

   파직!

     

   크라슈의 검 위에 뇌기로 된 검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튀어 오르는 스파크와 함께 크라슈는 성배를 손에 끼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럴 때마다 뇌기의 검집 안에 깃은 흑염의 힘은 점차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검귀의 발검술에서 착안해 만들어낸 흑염의 폭풍이 어느샌가 고열을 토해내었다.

     

   “후우.”

     

   크라슈의 입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쿠궁!

     

   동시에 주위가 지진이라도 난 듯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라슈에게 흘러나온 힘의 파동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뭘하려고!”

     

   놀라 소리친 아스트리아가 급히 옆에 있는 기둥 하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둥조차 크라슈의 힘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쿵!

     

   그 순간 문 쪽에서 발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놀란 아스트리아가 그 방향을 보자 거기에는 베녹스가 서 있었다.

     

   머리에 핏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눈은 반쯤 뒤집혀 있었다.

   그야말로 좀비 같은 몰골인 그는 크라슈를 보자 이를 까득 부딪쳤다.

     

   “네놈!”

     

   그의 분노가 담긴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확실하게 기절까지 시켜 놨었는데 대체 어떻게 되먹은 육체와 정신력인지.

     

   고작 그사이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가 크라슈를 막기 위해 바닥에 끌고 온 도끼를 들어 올리려던 순간.

   그의 도끼 위에 검 한 자루가 내려쳐졌다.

     

   채엥!

     

   대검 한 자루가 그대로 도끼를 내려찍자 베녹스의 몸이 휘청하였다.

   베녹스가 급히 돌아보자 거기에는 먼지투성이가 된 디오나가 있었다.

     

   “디오나!”

     

   그녀를 알고 있는 베녹스가 소리치자 디오나의 눈이 경고를 담았다.

     

   “성녀님 앞이다. 어느 이가 목소리를 높이나.”

     

   원래는 반대파에게 제안받았던 그녀.

   그러나 그녀는 오직 성녀 아스트리아만을 수호하는 기사다.

     

   프리만보다도 아스트리아를 택한 그녀를 보고 베녹스가 분노를 표했다.

     

   [ 베녹스. 성배를 준비하세요. ]

     

   그때 마침, 크라슈가 베녹스에게 빼앗았던 마법 통신 기구에서 테르사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지금쯤이며 베녹스가 성배를 입수했을 거라는 생각에 보낸 말이었다.

     

   크라슈는 그 목소리를 듣자 무겁기 그지없는 우뢰성을 틀어쥔 채 씨익하니 웃었다.

     

   “아아, 예, 다 준비되었죠.”

     

   크라슈의 목소리가 마법 통신 기구로 넘어가자 테르사다 쪽에서 당황한 반응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가 무어라 말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파지지직!

     

   크라슈의 우뢰성에서 터져 나온 천둥소리와 함께 크라슈가 천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흑염이 얼마나 폭풍을 친 것인지 무겁기 그지없는 검이 천장을 향해 내지른 그 순간.

     

   쨍그랑!

     

   뇌기의 검집이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크라슈의 흑염이 하늘로 승천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삼식(三式)

   멸화천뢰(滅火天雷)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강!

     

   몰아친 흑염과 뇌기의 폭풍이 천장을 찢어발기며 치솟아 올랐다.

     

   지하 공간을 갈가리 분쇄 시키며 올라간 흑염은 이윽고, 중심지의 분수 바닥과 닿았고.

   분수 바닥 따위는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분수를 박살 냄은 물론 물까지 증발시키며 하늘 위까지 치솟아 올랐다.

   

   신들이 손을 씻고 간다던 분수는 오늘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 엄청난 광경 앞.

   구경꾼들이 비명과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분수에서 서둘러 떨어졌다.

     

   분수의 크기가 중앙을 가득 메울 만큼 컸기에 다행히 휘말린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치솟은 흑염의 아래.

   크라슈가 아스트리아를 돌아보았다.

     

   “아스트리아!”

     

   크라슈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자 뜻을 알아차린 그녀가 크라슈에게 달렸다.

     

   “아스트리아 님.”

     

   그리고 크라슈의 곁에 그녀가 서며 뒤를 돌아본 순간.

   베녹스를 막고 있는 디오나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새장을 나가 마음껏 날개를 펼치세요.”

     

   늘 그녀가 새장 밖에 나가 마음껏 날개를 펼치기를 바랐던 성녀의 성기사 디오나.

   어린 시절의 아스트리아부터 지금까지 쭉 키워왔던 디오나는 아스트리아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자신에게 없는 부모가 되어 주었던 디오나다.

   그런 그녀를 본 아스트리아는 어느 때보다 태양과 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엄청 높이 날 거니까. 잘 봐둬.”

     

   그 말을 끝으로 크라슈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뛰어올랐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뚫어낸 구멍 사이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디오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성녀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날아오르셨으니, 자신은 그녀의 성기사답게 할 일을 마쳐야 했다.

     

   “디오나, 제정신이 아니군. 감당할 수 있는 짓을 벌였어야지.”

     

   분노에 가득 찬 베녹스가 그녀의 눈에 비추었다.

   본격적인 전투 태세에 돌입한 베녹스의 몸은 신전에 몸담은 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위협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나는 늘 감당할 수 없는 짓만 해왔다.”

     

   디오나는 그의 말을 덤덤히 받으며 검을 들었다.

     

   “우리 성녀님이 얼마나 말괄량이신지는 너희는 모르겠지.”

     

   오늘 그 사실을 전 세계 사람이 확실히 알기를 바란 채.

   디오나는 오늘도 성녀를 위해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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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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