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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

     

    푸른 하늘. 주위에 펼쳐진 초원. 그 초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몸을 세워 앉았다.

     

    너무도 평화로운 느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평온함을 느낀건 얼마만일까.

     

     

    역병 문제로.

     

    농사 문제로.

     

    도적 문제로.

     

    아담 형의 문제로.

     

    또 크룬드의 문제로 끝없이 힘들었는데 말이다.

     

     

    “…아.”

     

     

    그렇게 있다보니 기억이 돌아온다.

     

    마지막 기억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되살아났다.

     

     

    크룬드를 죽이고, 나 또한 눈을 감았다.

     

    꿈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했던 현실이었다.

     

     

    “…”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이해할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죽음을 맞이해, 건너편으로 넘어온 듯 했다.

     

     

    “………………하아.”

     

    가장 먼저 내 입을 떠난건, 깊은 한숨이었다.

     

     

    얼굴을 짚은채 한참토록 그렇게 굳어있었다.

     

     

    일을 크게 망쳤다.

     

    성공적으로 크룬드를 토벌했지만, 가장 소중하던 존재들에게 한 약속은 조금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시엔, 네르, 아르윈에게 돌아간다는 그 말을.

     

    나를 믿고 보내줬을 그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또 얼마나 힘겨워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미칠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나는 그렇게 앉아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주위를 둘러봐야지만 할 것 같았다.

     

     

    -철컹!

     

    하지만 어떠한 사슬이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땅으로 연결된 그 사슬을 나는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장례를 아직 안 치러서 그래.”

     

     

    누군가가 내게 답했다.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영혼이 아직 신체에 묶여있으니까.”

     

     

    “………..”

     

    그리고 마주한 사람에 온몸이 굳었다.

     

     

    “…왜 벌써 왔어, 멍청아.”

     

    굳은 표정으로 그가 내게 따졌다.

     

     

    “….형?”

     

    아담 형은 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팍 찌푸린채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깨물기를 반복했다.

     

     

    “…하, 미쳐버리겠네 진짜.”

     

    반가움을 느낀것도 잠시.

     

    극도로 그가 분노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분노를 소화하던 다시금 물었다.

     

     

    “…왜 벌써 왔냐고.”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전달 받는다.

     

     

    아담 형에게 마지막으로 혼났던 것도 이제는 거의 10년이 다 되어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라면 나는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혀를 차다, 피식 웃었다.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미안.”

     

    “…”

     

     

    하지만 아담 형은 그걸로도 분이 안풀린 듯 했다.

     

    쪼그려 앉은채 얼굴을 계속해서 짚고 있던 그가 말한다.

     

     

    “…또 나 때문이구나.”

     

    “…?”

     

     

    나는 눈을 깜빡이다, 그의 말을 곱씹었다.

     

    의문을 담아 그에게 물었다.

     

    “이게 왜 형 때문이야.”

     

     

    -툭…툭…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그가 말했다.

     

     

    “…내가 더 명확히 말을 했어야 했는데.”

     

    “…뭐?”

     

    “베르그, 왜….나를 위해 살았어…?”

     

    “…”

     

     

    형의 말대로, 어느정도 아담 형을 위해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긴 했다.

     

    형이 남긴 용병단. 형이 남긴 유언.

     

    형의 영지였을 스탁핀.

     

     

    내가 그렇게 살았던건, 아담 형을 위한 마음도 분명 있었다.

     

    “…유언을 남긴건 형이었잖아. 믿겠다고.”

     

    “…나는 그런 의미로 말했던게 아니었어.”

     

    “…”

     

     

    물론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서야 깨닫기는 했다.

     

    형은 내가 나를 위해 살았으면 했을 것이라고.

     

    그런 의미로 말했을 유언이 아니었다고.

     

     

    같은 입장이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더, 명확하게 말을 했어야 했어.”

     

    아담 형이 다시금 속삭였다.

     

    “…”

     

     

    형도 그러고 싶었던건 아니었을거라는 걸 알았다.

     

    그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할 수 있었던 말이, 믿는다는 그 말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그가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아담 형이 너무나도 자책하고 있는 듯 하여, 나는 오랜만에 익숙한 분위기로 그에게 장난을 던졌다.

     

    “…그러게. 조금 더 똑바로 하지. 그것 때문에 힘들었잖아.”

     

    “…”

     

    아담 형은 내 말에 결국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흘리던 눈물을 진정시킨다.

     

     

    자책하듯, 또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베르그.”

     

     

    결국 나도 떠나간 형을 생각했듯, 아담 형도 죽으며 나를 생각한 것이었다.

     

    이제와 고칠수도 없는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남겨졌을 아내들을 생각하면 웃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허탈한 마음도 있었기에 이럴 수 밖에 없었다.

     

    “…됐어, 이제와 다 끝났는데.”

     

     

    그 슬픈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덮으려는 듯 내가 말했다.

     

     

    아담 형은 머리를 긁적이다, 내 곁에 다가와 앉았다.

     

     

    “…하.”

     

     

    나도 어차피 사슬 때문에 당장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실정이었기에, 자리에 착석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천천히 포문을 열었다.

     

    “…다 지켜보고 있었지만 말이야, 베르그.”

     

    “…”

     

    아담 형은 결국 분위기를 풀며 내게 물었다.

     

     

    “…잘 지냈냐?”

     

     

    ****

     

     

    베르그의 장례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마을 전체가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전쟁의 승리에 대한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그와 다른 단원들의 장례는 따로 진행되기로 했다.

     

    결국 베르그도 귀족이었기에, 귀족다운 장례가 치러지기로 한 것이다.

     

     

    그가 저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수많은 도구들을 배에 얹은채, 인근 호수 위에서 배 채로 화장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시엔은 베르그의 배 위에 실을 수많은 도구들을 조용히 준비했다.

     

    그의 옷. 그의 무기. 그의 갑옷. 소량의 동전.

     

     

    시엔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베르그의 아이가 배에 있기에 강인하게 있어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불가능했다.

     

    애초에 베르그의 존재가 여태 그녀를 지탱해왔다.

     

     

    10살때부터 자신을 지켜준 베르그가 있었기에 살아올 수 있었다.

     

    성녀가 되어 전쟁터에 나갔을때에도, 어디엔가 베르그가 존재한다는 마음에 견딜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베르그가 없으니, 아무리 세상이 평화롭다고 해도 두려웠다.

     

    베르그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똑똑.

     

     

    그렇게 준비를 하던 그녀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옆을 바라보니, 게일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마치 5년 이상은 순식간에 늙어버린 것 같았다.

     

    몸의 상처도 아직 생생했음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준비…되셨습니까?”

     

    “…………….아니요.”

     

     

    시엔의 말에 게일이 눈을 꾹 감았다.

     

    자신이 말 실수했음을 깨닫는 듯 했다.

     

     

    “…곧 장례식이 시작되려 합니다.”

     

    그가 말한다.

     

     

    ‘장례식’.

     

    지금까지 수없이 많았던 장례식이, 베르그가 대상이 되니 너무나도 두렵게 다가왔다.

     

    그를 전혀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모든건 순서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시엔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된 짐을 챙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

     

     

    하나의 숲을 가로지르고 나오면, 넓은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협소한 장소에서 장례를 치르는건 어려웠던만큼, 숲 앞의 공간에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베르그가 스탁핀의 영지민들에게 받은 사랑이 보이는 듯 했다.

     

     

    이 장례식에는 몇몇 이종족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스탁핀으로 도망쳐왔던 난민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베르그의 추모를 해준 뒤, 베르그가 누워있는 배에 꽃을 한송이씩 선물했다.

     

     

    베르그의 배는 이미 꽃으로 가득했다.

     

    시엔이 놓은 물품들은 그 꽃에 뒤덮여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는 입술을 악물며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베르그가 자신이 강인하길 바랐다면…당장은 그래야지만 할 듯 했다.

     

     

    하지만 그녀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베르그 없이는 균형을 잃는게 너무나도 쉬울것만 같았으니.

     

     

    시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르는 베르그의 배 앞에서 얼굴을 감싼채 끝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며 시엔은 네르가 베르그를 향해 얼마나 깊은 마음을 지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울다 죽는게 아닐까 싶을만큼 네르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시엔도 당연히 그만한 비통함을 느끼고 있었지만…종족의 특성이 여실히 보였다.

     

     

    평생토록 한 명만을 사랑할 수 있는 네르이기에, 그 충격도 더 클 것이었다.

     

     

    시엔은 또 한번 고개를 돌렸다.

     

     

     

    …아르윈이 보였다.

     

    “…”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은채로 굳어있었다.

     

    …표정을 굳힌채로, 가만히 멈춰 있었다.

     

    눈빛에는 어떠한 다짐도 담겨 있는 듯 했다.

     

    “…”

     

    어쩌면 아르윈은 베르그의 죽음을 이전부터 알았을지도 몰랐다.

     

    세계수잎을 나눠받은 그녀였다.

     

    분명 베르그에게 발생한 일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 이유로 보다 강하게 그 애도의 과정을 넘기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혹은, 베르그의 죽음에 어떠한 감정도 못느끼고 있는걸지도 모르고.

     

     

    …무엇이 되었든, 시엔이 오래 생각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아르윈의 슬픔을 헤아리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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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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