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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클라이스는 어려서부터 마수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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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린아이처럼 동화를 읽고 싫어하게 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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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수와 싸우다 돌아가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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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어화둥둥 놀아주던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왜 돌아가셨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그리 말하셨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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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부터 마수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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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틔운 증오의 싹은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처음에는 삼촌. 그 다음에는 고모를 빼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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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외가 친가 할 것 없이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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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왜 죽었어요?’

       ‘…마수와 싸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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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이나 사고로 죽은 친척보다 전투에서 죽은 친척이 더 많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장례를 물경 스무 번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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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클라이스는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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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마수를 전부 다 잡아 쓰러뜨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마법을 공부하렴. 열심히 공부해서 강해지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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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그런 대답을 내놓았다.공부가 좋아진 건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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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클라이스에게 학업은 일종의 마약이었다. 이걸로 잠시나마 쓰라린 상처를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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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책상에서 눈을 돌리면 휑한 저택만이 있었다. 사람은 줄어가고, 추위는 늘어가고. 어느덧 식기구의 절반은 창고로 들어가거나 다른 곳에 팔아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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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 형제들이 줄어들수록 아버지는 첩의 숫자를 늘려갔다. 정부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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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돌아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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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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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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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수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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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북부에 사는 괴물들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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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언니. 언니는 출장 안 가면 안 돼요?’

       ‘우리가 아니면 누가 저 녀석들을 막니? 열심히 해야 돼. 그래야 국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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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언니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언제더라? 아마 아카데미 졸업식 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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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떠난 클라라. 그때의 뒷모습이 기억 속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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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가족을 떠나보내고 난 후. 그나마 헤를라인이라는 친구를 얻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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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눈이 이 모양이야.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군.’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됩니다. 친구분은 더는 현역으로 활동하실 수 없어요. 지계마도사는 시야각이 생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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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그 친구마저도 잃어버릴 뻔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실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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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마수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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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으니. 죽은 줄로만 알았던 클라라 언니가 실은 마왕성에 잡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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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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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스의 몸이 뒤로 확 젖혀진다. 너무 약하지도, 세지도 않은 강도. 살짝 목이 졸렸으나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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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켁켁거리자 짧은 주마등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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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로 돌아왔다. 카트에 누워있는 제 언니의 손을 맞잡은 채로.

       ​

       맞다.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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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스는 지금 막 클라라와 만난 참이었다. 일단 언니가 어떤지 두 눈과 두 손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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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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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의 손이 차가웠다. 마치 얼음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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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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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가 눈을 안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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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고, 목을 졸린 흔적까지 보인다.

       ​

       “아, 으,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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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전신에 난도질당한 자국이 남아있다. 언제 어떻게 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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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언니이.”

       ​

       당황한 클라이스는 울먹이며 클라라를 흔들었다. 왜, 왜 반응이 없지?

       ​

       대체 왜….

       ​

       머리가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뜨거워졌다. 횡격막이 위로 조여드는 감각. 숨을 쉬는 것도 평탄치 않다.

       ​

       “클라라 언니, 눈 좀 떠봐요. 응? 나야, 나. 언니 동생. 우리 오랜만에 만났잖아.”

       ​

       이럴 리가 없다.

       ​

       “근데 왜 눈을 안 떠요? 피곤한 거예요? 왜 대답이 없어요…?”

       ​

       이래서는 안 된다.

       ​

       에테르가 목줄을 더 뒤쪽으로 당긴다. 목이 졸렸지만 클라이스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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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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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더 끌어당기면 질식한다. 그리 판단한 에테르는 손잡이를 느슨하게 두었다. 숨통이 트이자 클라이스는 상체를 숙이고 두 손으로 클라라를 감싸안았다.

       ​

       클라라의 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현실과 마주한 클라이스는 눈을 까뒤집을 기세로 로즈마리를 노려보았다.

       ​

       “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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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그녀의 신형이 앞으로 내쏘아졌다.

       ​

       “너 우리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

       로즈마리는 깜짝 놀라 토끼처럼 튀어올랐다. 설마 얌전하게만 말하던 그 클라이스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

       로즈마리에게 달려드는 속도는 사슬을 팽팽하게 당겨버릴 만큼 빨랐다. 즉, 이 상태로 목줄을 잡고 있으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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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목줄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대로 날뛰거나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붙잡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이에 길라흐가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달려올 수도 있었다.

       ​

       그 녀석이 이 광경을 본다면 온갖 트집을 잡겠지. 로즈마리를 담글 수도 있겠다. 녀석은 동족에게도 가차 없으니 말이다.

       ​

       거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만약 클라라와 클라이스의 관계를 확인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클라이스까지 데려가려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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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클라라를 데려갈 때 클라이스가 같이 가겠다고 생고집을 부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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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가 이리저리 꼬일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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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다. 에테르는 생각을 마치고 줄을 놓았다. 곧바로 양 손을 사용하여 클라이스를 옆으로 밀쳤다.

       ​

       클라이스는 욱, 하는 신음을 내며 벽면에 부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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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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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속하게 바깥을 둘러보는 에테르. 이 광경을 목격한 자는 없다. 그렇다면 로즈마리까지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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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마리는 머뭇거리면서도 곧바로 지시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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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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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빨리 문을 잠그고 자물쇠까지 걸어놓는다.

       ​

       에테르는 카트를 한쪽에 밀어넣고 로즈마리를 뒤로 숨겼다. 클라이스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이를 까드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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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뭐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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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이 클라이스의 눈동자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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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는 것은 적의, 죽이고자 하는 것은 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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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책감으로 희석되었던 감정이 다시금 살아난다. 클라이스는 없는 마력까지 끌어모아 스태프를 소환했다.

       ​

       “어라. 우리 상대로 싸우려는 거야? 완전 바보같은 생각이네.”

       ​

       로즈마리는 키득거리며 클라이스를 도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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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있어라.”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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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제지당했지만 말이다.

       ​

       “그쪽도 가만히 있고. 상황이나 좀 정리하자.”

       ​

       머리 아픈 와중에도 클라이스를 진정시킨다. 에테르는 클라이스가 원하는 대로 카트를 앞쪽으로 끌어왔다.

       ​

       “기다려.”

       ​

       그러나 만지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에테르가 먼저 맥을 짚기 위해서였다.

       ​

       제아무리 의술에 어둡다고는 해도, 일단은 마왕군 최고간부 중 하나. 간단한 응급처치나 용태 파악은 할 수 있다.

       ​

       특히 인간의 생사 판정은 책으로 잔뜩 익혀서 잘 안다. 먼 옛날. 여행을 다니면서 위급 상황에 놓인 인간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걸핏하면 풍토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마수가 아니더라도 자기들끼리 전쟁 나서 죽고. 온갖 죽음이란 죽음은 다 본 듯했다. 그 과정에서 의학 지식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클라라를 검진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

       “신체에 이상은 없군. 피로가 조금 누적되어 있기는 해도.”

       “그, 그게 정말인가요…? 눈은요?”

       “안구도 멀쩡하다. 그 흔한 각막 손상조차 없어.”

       ​

       클라이스가 달라붙어서 클라라의 손을 어루만졌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따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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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찬 이유는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을.”

       ​

       그제야 클라이스는 이성을 되찼았다. 황급히 스태프를 집어넣고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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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가 살아있다. 다행이었다.

       ​

       하지만 곧바로 위기였다. 그도 그럴게, 지금 주인이 보는 앞에서 공격 의사를 보였으니.

       ​

       “그러게 아까 전에 내가 얘기했잖아? 요긴하게 써먹어 달라고. 설마 죽여서 여기 왔겠어? 여기가 무슨 생체실험실인 줄 알아?”

       “조용히 하라고 했다.”

       “네엥….”

       ​

       블루베리를 잠재운 에테르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

       클라이스의 가족 사랑은 중증이었다. 오죽하면 로즈마리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

       그러니 클라라를 거두긴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클라이스가 연구를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반항하려고 할 테니까.

       ​

       그렇다고는 해도 클라라를 잘 숨기려니 길라흐가 걱정이다. 놈은 정령이 내는 파장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클라라를 연구 용역으로 쓰려고 했다간 마력파 냄새를 맡고 불시에 쳐들어 올 게 눈에 훤했다.

       ​

       즉, 클라라는 연구 노예로서의 가치가 모자라다.

       ​

       “젠장.”

       ​

       에테르는 혀를 차며 카트를 밀어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침음을 연달아 흘렸다.

       ​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식자재가 두 배로 들겠군. 써먹을 데도 없는 년인데…….”

       ​

       타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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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라이스가 앞으로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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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장 무릎을 꿇는 클라이스. 손을 앞으로 내뻗고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고개를 들어올린다. 에테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클라이스는 눈물샘을 찔끔 터뜨리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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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안 돼요. 언니를 보내지 마세요…!”

       ​

       클라이스의 머릿속에 악의에 찬 길라흐의 표정이 떠오른다.

       ​

       클라라의 저 상처는 분명 길라흐가 낸 것일 터. 틀림없이 수많은 고통을 받았겠지. 힘들었겠지. 그러니까 언니를 그 마수에게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가족을 겨우 만났는데, 이대로 다시 헤어지기는 싫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왕성.

       

       클라이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란 결코 순탄치 않았다.

       ​

       “조금 전엔 스태프까지 꺼내며 적대해 놓고, 이제 와서 보내지 말아달라? 완전 제멋대로군.”

       

       에테르가 입꼬리를 내리며 불쾌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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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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