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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나는 아치문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작대기로 만들어진 팔다리로 벽을 타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 올라가야 탐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일행들을 찾을 방법들을 궁리해뒀다.

       상태창의 기능은 대부분 먹통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들은 작동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진화연구소의 진단 기능이었다.

         

       진단 기능은 오직 생물을 대상으로만 작동했다. 그것을 역으로 활용하면 생명체를 탐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르노의 환상을 간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카드순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체’였다. 나는 생물 탐지를 써서 인파 속에서 육체를 갖춘 자들을 찾아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감지되었다. 요정이나 마귀같이 반은 육체, 반은 영체를 가진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단 기능에 필터를 적용했다. ‘진단 불가’로 판정된 영체들은 흰색으로, ‘신규 진단 대상’은 푸른색으로, ‘기존 진단 대상’은 붉은색으로 표시되도록 했다.

       색색의 페르소나들이 그림에서 물감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필터 기능을 이렇게 활용한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치료 대상의 병변 부위를 표시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었다. 시스템의 숨겨진 활용법을 발견한 것 같아서 게이머로서 뿌듯했다.

         

       넘실거리는 하얀 파도 속에서 나는 붉은빛을 찾아내기 위해 사방팔방 둘러봤다.

         

       카드순 앞 광장은 테트로미노 광장만큼이나 넓었다. 건물 옥상에 올라왔는데도 광장의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먼 곳을 살피기 위해 무게중심을 기울였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하마터면 옥상에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새로운 몸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여기서 다리 작대기라도 부러졌다간 페르소나가 회복될 때까지 기어 다녀야 했다. 나는 최대한 균형을 잡는 데 주의를 기울이며 탐색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한참을 둘러봐도 푸른빛만 간간이 보일 뿐, 붉은빛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벌써 도시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생물 탐지는 만능이 아니었다.

       진단하기 위해서는 내 눈으로 대상을 직접 봐야 했다. 시각적인 무언가가 그 앞을 가리고 있으면, 그걸 꿰뚫어 보는 힘까지는 없었다. 다른 영체에 가려져 있던 푸른색이 뒤늦게야 불쑥불쑥 뜨는 것은 그래서였다.

         

       아니,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나 넓은 공간에 있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혼자서 모두 살핀다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도 매초 수백 명의 사람이 아치문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몇 시간을 허비한 나는 탐색을 포기하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막 필터를 해제하려는 순간, 붉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고 탄성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었다.

       그곳은 내가 서 있던 건물 바로 옆이었다. 골목 안쪽에 있어 미처 시야가 닿지 않았었다.

         

       설마 지금까지 계속 저기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건물을 타고 올라가면서 흘끗 봤던 곳이긴 했다.

       그런데 내가 그곳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척 봐도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곤충의 날개를 단 가느다란 페어리, 수염을 기르고 땅딸막한 노움, 모래와 돌로 이루어진 골렘 등.

       그곳에는 요정들이 모여 있었다.

         

         

       ***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식견과 통찰력을 드러내기 위해 이 세계를 무언가에 빗대고는 했다.

       포도주, 마차, 고양이 등.

       그래도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비유라고 한다면, 역시 ‘한 송이 꽃’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커다란 나무에 맺힌 한 송이의 꽃에 불과하며, 우리가 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꽃봉오리 안에 고인 물이요, 우리가 대륙이라 생각하는 것은 물 위로 머리를 내민 암술과 수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나무에 빌붙어 사는 벌레들이고, 마신은 나무에 매달린 벌집의 여왕벌로 꽃의 꿀을 따가는 존재였다.

         

       아름답고 고상한 비유이긴 했지만, 아르노는 <빵과 서커스>에 실렸었던 비유가 더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골목길에 버려진 동냥 그릇에 불과하며, 우리가 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 안에 고인 구정물이요, 우리가 대륙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 위를 떠다니는 음식물 찌꺼기였다.

       그리고 마귀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벌레고, 마신은 그릇에서 먹을 만한 것을 뒤적거리고 다니는 거지라고 말이다.

         

       꽃에 비유한 건 어느 교황이었다. 그는 나무와 꽃을 모두 자라게 하는 빛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그러한 예시를 든 것이었다.

         

       동냥 그릇에 비유한 건 어느 광대였다. 그는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하기 위해 그러한 예시를 든 것이었다.

         

       여기서 꽃잎 혹은 동냥 그릇의 테두리로 비유되는 공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계의 경계에서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들이 바로 요정이었다. 그들이 사는 그 경계의 땅은 요르문간드라고 불렸다.

         

       원더랜드에 온 아르노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주변의 북적이는 요정들 덕분이다.

       이곳도 자주 왔던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멀리도……오래도……떠나왔구나.’

         

       그녀는 환상을 만들고 노는 어린 페어리들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수십 년 전, 그녀는 대륙에 놀러 나왔다가 노예 사냥꾼들에게 붙잡혔다.

       원래 페어리는 날개를 통해 영계와 물질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사냥꾼들이 뿌린 약을 흡입하니까 날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환상조차 잘 만들 수 없었다.

         

       그녀는 새장에 갇힌 채 어느 귀족 가문의 애완동물로 팔려나갔다. 귀족은 딸에게 그녀를 선물로 주었다.

         

       귀족의 딸은 그녀를 사교모임에 들고 나가 자랑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말이 사교모임이지 그곳은 어린 애들의 유치한……동시에 잔인한 장난들이 오고 가는 놀이 현장이었다.

       마치 평민 아이들이 개구리 뜯기나 귀뚜라미 싸움을 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녀에게 매운 걸 먹이고 눈물 콧물 흘리는 모습을 감상하거나, 딱밤으로 그녀의 팔과 다리를 분지르거나, 포크 하나를 던져주고 사나운 고양이와 대결을 시키곤 했다.

       

       그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법사들의 실험체가 되어 병조림이 되거나 해부를 당하는 동족들도 많았다.

         

       그렇게 살아남는 게 목적인 세월을 보내다가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는 아직 괴물서커스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외형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당한 그곳 사람들은 동질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날개 없는 언니!”

       “뚱뚱한 언니!”

       “덩치 큰 언니!”

         

       어린 페어리들이 그녀의 주위를 빙빙 날아다니며 장난을 걸어댔다.

         

       그녀의 키는 1m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린 페어리들보다는 덩치가 몇 배는 컸다. 동심을 잃으면 날개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멈췄던 성장 역시 진행되었다.

         

       “날개 잃은 동족분! 아이들이 나쁜 말 해서 미안해요!”

         

       선생 페어리의 사과에 아르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슬슬 도시 안으로 가볼 시간이었다.

       잡혀간 일행들이 어떻게 됐는지 조사해봐야 했다.

         

       “저, 저기 잠시만요!”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허수아비가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걸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르노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가면 쓴 놈들이 반 요정인 그녀를 찾는 이유는 뻔했다. 아마 공연에서 환상을 담당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일 것이다. 이곳에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요청을 받았다.

         

       “미안하지만, 환상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어.”

       “환상이요? 어, 그럼 잠시만요……혹시 당신……아르노 씨?”

         

       그의 말에 그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누구야?”

         

       머릿속으로 순간 과거 서커스 동료였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저승에서 그녀를 알아볼 만한 사람은 그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그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반은 물질계, 반은 영계에 속한 존재였다. 상대의 생김새만이 아니라, 상대의 영적 파장을 통해서도 존재를 분간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원더스타인?”

         

       그녀의 말에 허수아비는 크게 반색하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르노 씨가 맞지요? 반갑습니다! 정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답도 없다 싶었는데, 으아악!”

         

       허수아비는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우당탕 굴렀다.

         

       그 모습을 보고 근처에 있던 어린 페어리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만든 환상 밧줄이 그의 다리를 묶은 것이었다.

         

       “이것 좀 풀어주세요!”

         

       아르노는 작대기 같은 팔을 휘두르며 방정을 떠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 허수아비가 원더스타인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놀라웠다.

         

       무려 사도가 강림했을 때도 침착하게 웃던 그가 아닌가?

         

       아르노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그를 상대로 새우 꺾기를 시도하는 밧줄을 보고 황급히 손을 휘저어 환상을 지웠다.

         

       “이게 무슨……. 갑자기 왜들 저러는 거죠?”

         

       허수아비는 그의 머리 위를 깔깔거리며 날아다니는 페어리들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그냥 장난치는 거야.”

       “쳇, 장난이요? 하마터면 다리가 부러질 뻔했어요.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데, 저기…….”

       “어, 어? 으, 응.”

         

       그녀는 그가 손을 내미는 것을 얼떨결에 받아 그가 일어서는 것을 부축해주었다.

         

       그녀는 그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해진 밀짚모자에 누더기를 대충 기워 만든 얼굴.

       짚단을 엮어 만든 몸통에 낡은 조끼.

       거기다 작대기로 이루어진 팔과 다리까지.

         

       영락없는 허수아비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그 꼴은 또 뭐고?”

       “조금 늦게 도착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 페르소……이런 망할 요정 놈들! 저리 가지 못해!”

         

       허수아비는 이제 팔을 묶으려 드는 밧줄들을 보고 어린 페어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요정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상을 만들어 공격을 가했다.

         

       그들도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처음에는 흐느적대는 허수아비의 꼴이 우스워서, 이제는 난리를 피워대는 그의 모습이 재밌어서 계속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닥을 나뒹구는 그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꺄하아아!”

       “너무 웃겨! 이 허수아비!”

       “우아악!”

         

       아르노도 그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정말 그 원더스타인이 맞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페어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카드순으로 떠났다. 그들은 멀어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그를 향해 혀를 내밀거나 엉덩이를 팡팡 쳐 보였다.

         

       허수아비는 그들을 보고 콧방귀를 흥하고 뀌며 몸 어딘가에 부러진 곳은 없는지 조심히 살폈다.

         

       “의외네. 이런 모습.”

         

       아르노의 말에 허수아비는 갑자기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팔다리를 못 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광분해서 날뛰고 말았다. 그것도 그렇게나 요란법석을 떨며 말이다.

         

       허수아비는 방금 자신이 어떻게 보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방금 그것은 ‘토치 댄서’로서 방송을 할 때의 모습이었다.

         

       그가 방송을 시작할 때, 그는 익명으로 동영상을 투고하던 때처럼 조용히 게임만 하는 방송을 하려고 했었다. 오버해서 리액션을 하거나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PD 쪽에서 그를 설득했다.

         

       “어차피 아바타로 얼굴을 가리는 버츄얼 방송이잖아요! 낯을 가릴 필요 있어요?”

       “토치 댄서님을 선망하는 장애인 분들도 있을 건데, 그분들 앞에서 마냥 우울하고 가라앉은 모습만 보여줘 봐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토치 댄서님은 이제 세상의 편견을 바꿀 우상입니다! ‘아, 장애인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구나’가 아니라, ‘저런 몸이라도 유쾌하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말이죠!”

         

       결국 PD의 말에 넘어간 그는 본격적으로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발성 연습과 연기 지도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능숙하게 ‘토치 댄서’를 연기할 수 있었다.

         

       “푸하핫, 손가락 10개 다 달린 분들이 실력이 왜 그래요? 차라리 발로 하지 그래요?”

         

       그는 데뷔 첫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살엔딩 님, 100코인 후원! 일러스트 지원!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음 일러스트는 누구로 할까 고민 중입니다! 유라크네 or 클라라로 생각 중인데 말이지요…

    -몽디 님, 63코인 후원! 연재하지 않은 날에도 후원을 해주시다니..ㅠㅠ..더 성실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나오지 않아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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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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