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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시간이 흐르고 진성의 흥미를 이끄는 주술과 주물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시간이 왔다.

         

       주술은 사진을 찍어내듯 머릿속에 담아두었으며, 주물은 모양새와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 그리고 생명체를 가까이 가져댔을 때 보이는 반응과 효과로 그 기능을 추측하였으며, 그것의 사용처와 그 쓸모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살펴본다고 그 끝을 맞이하는 법은 아닌 법.

         

       지식이라는 것은 담아두는 것만이 아니라 해체하고 조합하면서 사용해야만 가치가 있는 법이었다.

         

       진성은 창고에서 얻은 주술을 이리저리 해체하고 움직여가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디에 응용할 수 있는지, 예상되는 대가를 어떤 방법으로 경감시켜야 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리고 주물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주술을 사용한다면 엇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고민했으며, 주물을 해체해서 다른 것에 응용한다면 쓸모가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창고에 틀어박혀 도를 닦는 도사처럼 그 자리에 있었고, 밤과 낮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정신없이 정신의 세계에서 주술과 주물을 탐닉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 나았군.”

         

       그의 몸에 내려졌던 대가가 끝이 났다.

         

       이리저리 요동치는 근육은 멀쩡하게 돌아왔고, 잠을 자려고만 하면 터져 나오는 쥐는 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중간중간 괴물 같은 표정을 지었던 얼굴 근육 역시 멀쩡하게 돌아와서 사람을 마주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게 되었다.

         

       진성은 대가가 끝이 나자 자신이 말한 말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먼저 이양훈과 이세린, 이아린. 그리고 엘라와 아나스타시아에게 전체 문자를 한 통 보냈다.

         

       『 지금 출발. 』

         

       그는 답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넓은 공간에서 홀로 기도를 하는 리세에게 말했다.

         

       “이만 가겠다.”

         

       담담하기 짝이 없는 통보.

         

       하지만 리세는 그 말에도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꾸벅 숙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시지요.”

         

       그녀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묻지 않은 채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가는 진성에게서 미련을 느낀 것인지 그가 등을 돌려서 본전을 나가려고 할 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든 돌아오시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단순히 배웅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에는 분명히 무게가 있었다.

         

       돌아오라는 것은 이곳이 바로 진성의 보금자리임을 뜻하는 말이었으며,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은 진성에게 빨리 돌아와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으니까.

         

       리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고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으며, 신력이 닿는 공간 안에서 진성의 존재감이 느껴질 때까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진성이 신사 밖으로 나가서야 아쉬운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투둑.

       두두둑.

         

       그렇게 진성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약간 아쉬운 듯한 기색을 보이는 리세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몸의 관절을 이리저리 빼고 혀를 길게 내밀어 바닥에 질질 끌었으며,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네 발로 관절을 움직여 뱀처럼 리세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똑바로 선 채 리세의 얼굴 옆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대고 질문을 던졌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아?”

         

       냉기가 느껴지는 질문.

       하지만 리세는 겁을 먹기는커녕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을 뿐이었다.

         

       “새타니. 얼굴 치워주세요.”

         

       그녀는 신력을 끌어올려서 쥘부채 모양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당장이라도 새타니에게 휘두르겠다는 듯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장난을 치듯 그녀에게 다가왔던 새타니는 몸을 무너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 자세 그대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그녀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히힛, 이제 겁 안 먹네?”

       “네에. 당신과 지내면서 얼마나 장난에 당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까워, 아까워.”

         

       그리고 쥘부채가 닿기에는 먼 거리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게 많지 않아?”

       “어째서 아무것도 묻지 않아?”

       “저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했잖아? 응?”

       “외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혼혈인지, 아닌지.”

       “자신의 성과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고.”

       “너에게 신주라고만 불리고.”

       “외부에 나설 때는 차기 신관이라고. 신주라고.”

       “사이고 씨라고 불러달라고만 말하지.”

       “궁금했잖아?”

         

       새타니는 그녀를 자극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입이 여러 개라도 되는 듯 말이 끊임없이 나왔으며, 말을 하는 도중에 다른 말이 겹쳐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가 아니라 뇌리에 직접 꽂히기라도 하는 듯한 새타니의 질문은 리세에게 똑똑히 틀어박혔다.

         

       “이상한 주술을 쓰는 사람.”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한 주술을 쓰고 알고 있는 사람.”

       “나이에 비해서 너무 끔찍한 주술들을 알고, 망설임 없이 행하고.”

       “일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하지만 일본의 철저한 주술에 대한 감시를 뚫고 외국에서 들어왔다고는 믿기 힘들어.”

       “하지만 어떤 걸까? 한국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무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한국으로 도망간 무인에게서 인연이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신주라는 사람은.”

         

       새타니는 입을 찢어가며 웃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하지만 리세는 입을 귀까지 흉하게 찢는 새타니를 담담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해. 일본어도 잘하고 일본 문화에도 익숙한 것 같아.”

       “하지만 뭔가 허술한 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한국인일까? 하지만 한국은 주술이 망해버렸는데? 그럼 일본인일까? 응? 응? 응?”

       “궁금하잖아. 왜 안 물어봤어?”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떤 성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왜 그렇게 돌아다니냐. 돌아다니는 것이 외국이냐? 외국을 도대체 왜 돌아다니는 거냐?”

       “묻고 싶었잖아?”

         

       마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놓으려는 듯한 새타니의 말.

         

       리세는 그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궁금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러자 새타니는 정곡이라도 찔린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파묻힌 어린아이의 시체에서 비롯된 당신. 한낱 인주였으나 신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귀신이 되어서 미욱하게나마 자아를 얻을 수 있었던 당신이야말로 궁금했던 거잖아요?”

         

       리세는 귀까지 찢어진 입을 실로 꿰매기라도 한 것처럼 꽉 다물고 있는 새타니를 보며 방긋 웃었다.

         

       “당신의 자아가 점점 살이 붙어서 어린아이처럼 된 것은 이해가 가요. 그리고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이해하고요. 하지만 자신이 궁금한 것을 남에게 떠넘기고, 충동질해서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는 마세요.”

         

       리세는 그렇게 방긋 웃다가 표정이 지워지기라도 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돌변하더니, 신력으로 만든 쥘부채를 기다란 채찍처럼 만들고는 손목을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채찍은 허공을 날아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움직여 새타니를 때렸다.

         

       짜-악!

         

       “끼야악?!”

         

       신력으로 만든 채찍에 무방비 상태로 맞은 새타니는 꾹 다문 입을 벌리고 비명을 내질렀고, 리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살짝 움직여 채찍을 밧줄처럼 새타니의 몸에 감았다. 그리고 꽁꽁 묶인 새타니를 자신의 앞까지 끌어왔다.

         

       “불경해요.”

         

       리세는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새타니를 노려보았다.

         

       “신주님이 아니었으면 한낱 시체 상태로 파묻혀서 흙 일부나 되었을 피조물 주제에, 감히 그런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경해요.”

       “히, 힉?”

         

       새타니는 차가운 광기에 잠식된 것 같은 리세에게 겁을 집어먹은 듯 몸을 움츠렸다.

         

       리세는 그런 새타니를 한참이나 말없이 쳐다보다가 다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만 봐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

         

       그녀는 자비를 베풀겠다는 듯 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억눌린 분노가 담긴 용서를 내뱉었고, 새타니의 몸에 감겨있는 신력을 거둬 다시 쥘부채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쥘부채를 쥔 손에 힘을 잔뜩 주고는 그대로 새타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아악!

         

       “끼야아아악! 봐준다며!”

       “이것만 하고 봐 드리겠다는 말이었어요.”

         

       리세는 안심하고 있다가 다시 불시에 공격받은 새타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악! 아, 파! 아파!”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냥 소리만 요란할 뿐이에요.”

       “아파!”

       “…으음. 신력으로 만들었으니 영체에 타격이 가긴 했겠네요.”

         

       리세는 신력으로 만든 쥘부채를 흩어버리곤 바닥에 뒹구는 새타니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새타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서늘함과 비견되는 스산함을 담아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 그런 질문 하지 마세요. 아시겠나요?”

       “하지만 궁금하잖아.”

       “궁금해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런 건 모두 요소에 불과한 것이에요. 본질하고는 거리가 멀답니다.”

       “으, 응?”

       “그분의 국적이 어떻게 되었든, 이름이 어떻게 되었든. 그분은 신주님이시며,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실 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믿으시면 된답니다.”

         

       리세의 말은 마치 정신세계를 탐험하고 화두를 파고드는 수행자의 것과 닮아있었다.

         

       물론 완전히 수행자와 같지는 않았다.

       신을 모시고 믿는 무녀 특유의 맹목적인 믿음이 곳곳에 묻어나와 있었으며, 의문을 품고 의심하는 대신에 그 사실을 온전히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종교인 특유의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말은 꽤 깊이가 있었다.

         

       “말 어려워.”

         

       어린아이 수준의 자아를 가진 새타니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가요? 그렇다면 이것만 기억해두세요. 다시는 저를 충동질하지 않고, 그런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아시겠나요?”

         

         

         

        * * *

         

         

         

       진성이 다른 나라를 거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대뜸 이아린이 그에게 물었다.

         

       “오래비, 대체 어디를 쏘다닌 거야? 공항 냄새가 나는데?”

         

       그녀의 말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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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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