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16

       “진짜 할 거야? 좀, 보통 일 아닌 것 같던데. 본사에서 난리칠 수도 있을 걸?”

        

       “응. 당연히, 해야지.”

        

       “……괜찮아?”

        

       제법 길었던 회의 끝에 한국지사에서 나오는 길. 어느덧 제법 따스해졌다 싶더라니, 해가 지자마자 다시 싸늘해진 바람과 함께 들려온 질문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누구에 대해 묻는 건지 반문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질문.

        

       “……응.”

        

       익숙한 질문에, 습관같은 긍정이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것이. 처음으로, 대답에 진심이 담겨있었더랬다.

        

       나는 괜찮았다.

        

       이제는.

        

       “언니.”

        

       한바탕 하고 나온 덕분일까. 아니면, 이제부터 잔뜩……한바탕 할 마음의 준비가 된 덕분일까.

        

       그도 아니면, 이예리가 얼마나……이예나를,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 탓일까.

        

       “응?”

        

       정말로, 정말로 괜찮은 것만 같아서.

        

       부드러운 미소에 화답하듯 마주 웃어보이며, 자백했다.

        

       “나, 기억이 없어.”

        

       조금 급작스러울까. 하지만, 아니다. 언제 어떻게 해도 급작스러웠을 거야. 분위기를 잡고 말한다 하여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어? 무슨, 무슨 기억이? 요즘 또 술 많이 마셨어? 혹시, 약이랑……아니, 혼내는 거 아니야. 그냥-”

        

       “필름 끊기고, 술 마시고……그런 거랑은, 상관없어. 아마도. 기억이 없다……도, 많이 순화해서 말한 거야.”

        

       “……언제부터? 언제부터 기억이 안나?”

        

       “꽤 됐어. 솔직히……언니도, 조금은 눈치 챈 거……알고 있기는 했어.”

        

       이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민이 한 두개가 아니겠지. 당장 정신병원에 데려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 같아도 그럴 거야.

       

       얌전히 가지는 않을 거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긴 시간에 걸쳐 이미 고민을 마쳤고- 조금 전 저 방 안에서, 결국 결단까지 내리게 된 입장이기에.

        

       다행히, 추운 골목길에 선 채 침묵이 흐르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조금 비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어. 사실 처음부터 얘기했어야 했단 것도, 알고 있고. 무서워서 계속 피했을 뿐이라고 생각해.”

        

       절로 흘러나와 말미에 붙으려 드는 사과의 말을 애써 끊어냈다. 이제, 더 이상 미안하지는 않은 이야기였으니.

        

       “……예나야.”

        

       불쌍한 이야기기는 했지만.

        

       언니에게도.

        

       예나……아니, 나에게도.

        

       “하지만……지난 일주일 동안, 확실히 느꼈어. 언니……한테, 눈치보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아. 계속, 언니가 생각하는 예나는 뭔지 고민하게 되어서…….”

        

       나 스스로도 정상적인 언행을 하지 못하는 게 느껴졌으니, 주변에서 보기에는 더욱 심했겠지.

        

       시청자들이 보기엔……한참 더 심했을 거고.

        

       “앞에서 연기했단 뜻은 아니야. 탓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믿기 힘들 건 아는데, 정말로 그건 아니야.”

        

       각오는 했는데. 그럼에도, 이예리의 표정을 보기는 어려워 살짝 시선을 내렸다. 응. 좀 낫네.

        

       제법 긴 시간이었다.

        

       전생……전생이라고 하자. 그 표현조차 가끔은 무섭고,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쓰다 말다 했지만.

        

       여하튼, 전생에서 보낸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1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전생과의 연결고리인 나오나가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그리 집착했었다. 설령 나오나가 정말 망하더라도, 그간 쌓아온 것들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 알고는 있다.

        

       나오나가 망한다고 해도, 내가 첫 시즌의 정상에 이름 석자를 새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 등반하는 내 모습을 수만명의 사람들이 증명해주었다는 사실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아리가 갑자기 ‘이제 선생님이 아니니 필요 없어요’ 라고 말하며 연을 끊을 리도 없다.

       

       진희도 마찬가지고-

        

       레반은……놀릴 별명을 새로 만들어야 해서, 조금 곤란하겠지만- 아무튼. 하려면 못할 건 없으니까.

        

       알게 된 프로게이머들은……음. 같이 패러데이 욕이나 하면서, 오히려 더 친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오소독스 반응이 궁금하네. 그 진중해보이는 목소리로 패러데이 쌍욕을 얼마나 할지.

        

       ……이건 꼭 들어보고 싶긴 하더라. 어쌔신……단점만 있는 건 아닐 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들도.

        

       다들 나오나, 많이 좋아하니까. 우리 나오나 죽었어요- 라고 발표할 때, 얼마나 예쁘게 활활 타오를지. 역대급의, 본적 없는 수준의 화재일 터였다.

        

       분명……요즘 섞여 들어온 불순분자들 따위는 가볍게 녹아 없어질 정도의-

        

       응. 보고 싶네. 시청자들도.

        

       ……그러니, 결국은 그렇다.

        

       나오나가 정말 망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에야, 깨달은 것이다.

        

       이젠 나오나와 도적보다도, 그 둘을 통해 연결된 모든 것들이- 내가 직접, 한 땀씩 연결한 연(緣)이, 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는 것을.

        

       그러니, 욕심을 내고 싶어져서.

        

       “나 혼자만 준비하고 말해서 미안해. 나중에라도,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꼭 해줘. ……언니.”

        

       그리 많은 것들과 연결된 이예나로, 살고 싶어져서.

        

       눈을 피한 채,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언니에게, 인사를 마쳤다.

        

       부디, 다시 인사할 수 있기를.

        

       .

       .

       .

        

       감히 말하건대, 지난 1년은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로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은 순간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인생은 소설도 영화도 아닌 고로, 내 삶은 깨달음 한두개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괜찮다.

        

       헤매는 감각은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으니까.

        

       그러나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방향을 가늠할 북극성이 흐릿하게나마 보인다는 점이겠지.

        

       그 북극성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아직은 명명하지 못했지만.

        

       더 이상 죄책감은 아니다. 그리움도 아니고.

        

       마음이 가는 대로 지내다 보면. 그러면, 아마도.

        

       아마도, 이제부터 이예나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 시작으로, 지금부터는 아따먹의 시간이다.

        

       * * * *

        

       시위로부터 열흘. 고소 공지로부터, 아흐레.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방송은 이제 더 이상 어떤 규칙성을 논하기조차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켜지는 시점도. 공지 여부도. 방송 시간도. 심지어, 방송의 내용은 물론, 스타일마저도.

        

       랜덤한 것도 정도가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으니.

        

       아직 원숙하지 못한 스트리머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저런 식으로 방송을 하면, 아무리 잘 나가도 결국 고정층이 다 갈려서 망하는 거라고 혀를 차며.

        

       그러나 데뷔 후 단 몇 개월 만에 나오나와 트위트의 정상을 정복하고 군림한 신인에게 그러한 지적을 하는 건, 그리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 되기 어려웠던 탓에.

        

       일부 커뮤니티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불평 불만은, 타 스트리머 팬의 질투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몰락의 징조가 보일 땐, 상황이 180도 달라지는 법이다.

        

       물론, 아따먹의 체급은 아직도 트위트 1위를 가벼이 넘볼 수준이었다.

       

       그러나-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몰락할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인터넷방송을 오래 보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들이 몰락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오나로 유명해진 스트리머가, 정작 나오나에 흥미가 떨어진 듯이 건드는 둥 마는 둥 한다.

        

       어떤 드립도 허용하던 스트리머가, 광범위한 고소 선언을 하고 변호사마저 선임했다.

        

       온갖 미친짓을 하던 스트리머가, 이제는 공중파 교육 방송이라도 나온 양 말을 조심하며 사린다.

        

       그러면서도, 방송시간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또, 불규칙적이다.

        

       한두 가지만으로도 하향세의 신호탄이 되었을 현상이 모두 동시에 발현되는 사이, 나름 유명세를 탄 얼굴마저도 꽁꽁 감추고 있었으니.

        

       인터넷방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 등지에서는, 아따먹 역시 이제 퇴물이 될 거라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고 있었다. 신선한 미친 짓거리 원툴인 신인이 으레 그렇듯 평범하게 망할 거라는 예측과 함께.

        

       물론, 그러한 예측은 그나마 순한 편이었다. 전세계 각국의 아이피에서는 제발 제대로 망해서 얼굴도 까고, 그 유명한 몸도 조금 더 확실하게 노출하라는, 음습한 욕망이 섞인 악담도 올라오고 있었으니.

        

       그러나 분명한 건, 아직도 아따먹은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려 드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닐 정도로.

        

       그러니-

        

       [작성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제목: 방송 공지]

       [오랜만이에요.

        

       5분후 캠방입니다.

        

       감사합니다.]

       –     ????

       –     응~ 안 속아~

       –     누가 집에 가서 그 좆 같은 청테이프 좀 다 태워라

       –     ㄴ 고소 수고

       –     ㄴㄴ 고소드립 씹ㄵ이라고 씨1ㅂ라아

       –     ㄴㄴ 고소 수고

       –     ㄴㄴ 하 씨1발 진짜…

       –     캠방 진짜예요?

       –     ㄴ 진짜겠냐 씹련아

       –     ㄴㄴ 왜 욕을 해 자꾸…

       –     ㄴㄴ 이제 방장한텐 못하잔아 시팔

       –     ㄴㄴ 욕을 안 한단 선택지는 없구나…이 텐련도 정말 대단한 시청자들만 골라 모으긴 했다

       –     ㄴㄴ ‘전설의 0군’

       –     캠 안 켜도 돼~ 시위 사진 옆에 두고 볼거야~

       –     좆러데이는 다녀온 거임?

       –     ㄴ 화염병 던졌단 뉴스 안 난거 보니 아님

       –     ㄴㄴ ㄹㅇ

       –     진짜 캠 킬 거지? 내가 시발 또 속는다 진짜

       –     ㄴ 보증 좀 서줄래?

       –     그냥 오토바이 헬멧 사진이나 볼게요~

       –     요즘 얘 방송 왜케 기대가 안 되냐

       –     ㄴ 그럼 팬카페에 왜 옴? 제발 이런 소리 할 거면 좀 나가라

       –     ㄴㄴ 안 그래도 이제 안 올거다 ㅇㅇ 목소리 빨아주는 듁수들만 데리고 방송 잘 해봐라 ㅋㅋㅋ

       –     ㄴㄴ ㅇㅇ 제발 좀 꺼져 또 댓글 확인하러 들어오지 말고

       –     요즘 폼 개 좆박은건 사실이자너

       –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 5분하다 끄려나

       –     ㄴ 부추전만 구워도 재밌던 시절이 있었는데

       –     ㄴㄴ ㄹㅇ 이미 5번 본 에어쿡방 팬튜브 다시 보는게 생방보다 재밌음

       –     겨우 일주일 좀 컨디션 안 좋았다고 댓글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이걸 팬이라고 진짜

       –     ㄴ 팬을 고소하는 스트리먼데 팬도 좀 뭐라 하면 안 됨?

       –     ㄴㄴ 고소 예정인 새끼들이 쓴 글은 봤냐? 그걸 팬이라고 부르네 씨발 진짜 ㅋㅋㅋ

       –     니네 어차피 개같이 달려가서 볼 거면서 왜케 뿔났냐

       –     ㄴ 또 캠방이라고 낚시하고 뭔 지랄할지 상상만해도 화나서 그럼

        

       3줄짜리 짧은 공지에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또, 이를 캡쳐한 화면이 온갖 커뮤니티를 뒤덮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nowOne 님, 4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푸른물결 님, 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5연참의 마무리로 쓰고 싶었던 화입니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네요.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달라는 과학자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며칠이었습니다. 실패했지만, 여기까지가 한번에 읽으실 분량이라 생각해서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올려보았습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