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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선도위원이라는 것은 원래 크게 할 일이 없는 직책이다.

        

       애초에 이 학교에선 직책이 아니라 개인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그 학생의 부모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에 따라 위아래가 정해졌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라의 경우가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보통 돈 많은 집안은 자기 아이를 끔찍하게 아끼는 법이었으니까. 오히려 자기 자식을 그렇게 고립시키는 경우는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리라.

        

       ……하지만, 그런 규칙도, 요즘 와서는 거의 깨졌다.

        

       물론, 여전히 이 학교가 정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도 재산에 의한 서열은 존재했고, 선생들도 여전히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인간들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선도위원이라는 ‘직책’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손아름의 생활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도 그날, 붉은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했었으니까.

        

       사라의 앞길을 막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리고, 사라는 이 학교는 물론이고 이 나라에서도 더 돈이 많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개인 자산이 많았다.

        

       게다가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이 아닌, 유진 그룹이라는, 이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의 회사를 장차 물려받을 예정이다.

        

       ‘돈이 많은 것이 벼슬’인 이 학교에선, 학생이건 선생이건 멍청하게 사라에게 대적하려는 이는 없다.

        

       켕기는 것이 많은 이들은 이미 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 갔고, 남은 것은 장학생들과, 어중간한 재산 때문에 이 학교 졸업생의 타이틀을 버릴 수 없는 이들. 이미 구축한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들 뿐이다.

        

       그래, 여전히 ‘선도위원’이라는 지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지위’는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그 선도위원의 자리에, ‘손아름’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어, 그러니까…….”

        

       이 학교에 다닌 이후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황당한 상황에, 손아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 ‘선도위원’이 되고 싶다고 신청한 애들이야.”

        

       “…….”

        

       학생회장의 말에, 손아름은 고개를 돌려 다시 학생회장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문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다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도위원은 제가 고르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회의 고유 권한일 텐데…….”

        

       “그 학생회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는 놈 중 일을 똑바로 하는 애 이름을 하나라도 댈 수 있겠냐?”

        

       학생회장의 되물음에, 손아름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단연코 ‘없다’라고 할 수 있었다. 학생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그저 나중에 써먹을 자기 스펙용으로 학생회에 이름만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선도위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회 자리가 돈에 의한 서열 때문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서, 형식적으로라도 회의하고 보고를 해야 한다.

        

       당연히 이름만 올려둔 학생회 구성원들이 의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선도위원장은 이미 전학 갔다. ‘부모님께서 갑자기 이사하시느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남겨두고.”

        

       “네?”

        

       손아름은 다시 한번 입을 떡하니 벌렸다.

        

       “하지만 선도위원장은 회장님과 같은 학년이잖아요. 사라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나요?”

        

       “걔 동생이 연관이 있었어.”

        

       “아…….”

        

       “그러니까, 뭐…….”

        

       학생회장은 조금 과장되게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러니까, 선도위원 중에서는 너가 가장 선임이라는 말이지. 애초에 다른 위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선도위원뿐만이 아니라 학생회 휘하의 다른 부분들도 사람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원자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나 골라다가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바꿔말하자면, 선도위원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이야.”

        

       “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 학교가 정말로 갈 곳까지 가버린 곳이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손아름은 다시 문 옆에 서 있는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대충 얼굴이 기억나는 학생들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그나마 다른 학년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 이 아이 중에서 그날 파티에 초대받았던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진짜 목적이 뭔지, 조금 짐작이 갔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그래도 내가 나름대로 한 번 거른 애들이니까.”

        

       “그럼 저 다섯 명 빼고도 더 있었다는 거예요?”

        

       손아름은 진심으로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어. 열 명은 넘었던 것 같은데…… 신청서 보여줄까?”

        

       “……아뇨.”

        

       아마 봐도 잘 모르는 애들일 거다. 만약 이전에 손아름과 대놓고 척진 적이 있는 애들이라면 굳이 손아름 아래로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손아름 자신은 그런 애들한테 갑질할 생각이 없어도, 상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할 거다. 손아름과 척진 적이 있다면, 평소에 그런 행실을 보였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까.

        

       아마 회장이 적당히 걸렀겠지. 손아름과 굳이 부딪히지 않을 아이들로. 이 사람은 그래도 학생회에서 제대로 일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거랑은 별개로 지난번에는 학교의 여론에 따라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말하는 건데. 학생회에 공석이 아주 많이 생겼어. 혹시 추천하는 인물들 있으면 말 좀 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아예 처음 애들 보다는 지인이 있는 쪽이 일하는데 부담이 적을 테니까.”

        

       학생회의 구성은 대부분 학생회 회의로 결정된다. 선출되는 존재는 회장 하나뿐이고, 부회장부터 나머지 학생회 위원과 위원장들은 모두 학생회의 회의로 결정되는데…… 이 회의라는 것이 제대로 실행되는 것을 손아름은 본 적이 없었다.

        

       “네에…….”

        

       혼이 조금 빠진 것 같은 기분의 손아름이 멍하니 대답하자, 학생회장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안경을 벗어 닦았다.

        

       “그리고…… 저기 저 애들은 아직 선도위원은 아니야. 너가 위원장이니까, 너가 뽑아라.”

        

       “…….”

        

       다시 한번 말하자면, 학생회가 제대로 소집된 적은, 적어도 손아름이 선도위원을 하는 도중에는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손아름도 그냥 회장이 앉혀준 거니까.

        

       이렇게 이름 있는 학교의 선도위원이라면 분명 경쟁도 심할 거로 생각했는데, 신청하는 것과 동시에 위원이 되어서 얼마나 놀랐던가.

        

       물론 실망하는 것도 금방이긴 했지만.

        

       “하지만 저는…… 제대로 학생회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지금 남아있는 학생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야. 그나마 손에 꼽아보면 나, 그리고 너뿐이지. 적어도 너는 아예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데까지 가 보기라도 했잖아. 선도위원장이 그대로 남아있었어도 너보다 경험은 없을걸.”

        

       “그,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지만, 손아름은 학생회장의 그 말에 조금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참에, 학생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하면 그건 그거대로 좋지 않겠어? 몇 년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사라가 이 학교에 다니는 중에는 충분히 굴러가겠지.”

        

       “…….”

        

       예사라의 상황을 알고도 대놓고 방조하던 학생회장이 이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묘했다.

        

       그러니까, 묘하게 짜증 났다.

        

       물론 손아름이 화를 낼 사안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도 똑같이 행동했으니까.

        

       아니, 따지자면 오히려 더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저 무시했던 회장과는 다르게, 손아름은 대놓고 사라에게 이런저런 나쁜 말을 했으니까. 전부 오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런 손아름이 사라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사라의 배려 덕분이었다. 만약 사라가 점심시간에 손아름이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을 거부했다면, 손아름은 지금쯤 전교에서 무시당하는 애로 남아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친구가 된 이상 사라의 힘을 이용할 생각만 하는 학생회장을 보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 뭔가 불만을 쏟아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

        

       잠깐만.

        

       “저기, 회장님.”

        

       “응?”

        

       안경을 다 닦고 다시 얼굴에 쓰던 회장이 손아름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부회장 자리는 어떻게 되었죠?”

        

       “……부회장도 그만두었지. 걔는 진짜로 1학년이었으니까.”

        

       게다가 부회장은 학생회장 집안만큼 돈이 많은 집안의 아이였다. 그렇기에 부회장 자리에 앉았던 거고. 실제로 친분이 있는 집안이었다는 말도 들었었는데…… 정작 부회장도 ‘일 안 하는 학생회 위원’ 중 하나라, 실제로 말을 섞어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왜, 네가 하고 싶어?”

        

       “아뇨.”

        

       학생회장의 말에, 손아름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추천하고 싶은 사람?”

        

       학생회장의 미간이 모였다.

        

       화가 나거나 짜증 난 표정이라기보다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아마 손아름이 이렇게까지 추천할만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니, 잠깐만. 너 설마.”

        

       학생회장이 경악에 찬 얼굴로 손아름을 바라보았다.

        

       손아름은 그런 학생회장에게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 설마입니다.”

        

       그 말에, 학생회장은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그때까지도, 선도위원 후보 다섯은 학생회장실 문 옆에서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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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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