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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엑사테크의 아침, 업무 개시 시간은 꽤 빠르다.

         안 그래도 초단위로 관리되는 엄격한 스케쥴과 지나치게 잘 뽑힌 숙직실도 거기에 한몫을 거들었음은 틀림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오랜 시간 쌓인 뇌의학 기술력을 통한 기적의 수면법이자 사원 관리법이 되시겠다.

         

         단지 에나마나 파라다이스가 원활한 생체 리듬을 관리하라고 다방면에서 적극 권장하는 방식이라면. 이 미친 기업은 알맞은 전기 자극을 통해 사용자를 강제 기상시키면서도, 인공적으로 개운함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는 것 정도?

         

         덕분에 직급과 직무에 따라 칼군무를 추듯 직원들이 동시에 눈을 뜨는 것도 엑사테크의 명물이라면 명물.

         이를 토대로 세간에는 말 그대로 출근길에 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지각이 불가능한 생체형 톱니바퀴로 소문이 자자했…… 아니, 얘기가 좀 샜는데 어쨌거나.

         

         엑사테크 독립 연구 시설 Ex-085는 오늘도 정상 운행 중이었다.

         

         약 2년 전쯤에 굉장히 불미스럽고 한동안 회사 전체를 시끄럽게 달궜던 탈주 사건이 있긴 있었지만… 사실 메가코프 시설에 그런 역사나 괴담이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냐며 슬슬 다들 무감각해진 이맘때.

         

         “……쓰으으읍, 이거 느낌이 진짜 조진 것 같은데.”

         

         여기서 근무하는 수석연구원이자.

         이 시설로만 한정하면 자기 머리위에 있는 책임자를 한 손으로 셀 수도 있는 남자, 미스터 깁슨은 답지 않게 초조한 태도로 방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해진 업무 시간을 무작정 앉아서 채우기보단 자유로운 발상이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개발 방향성, 그리고 비젼(Vision)을 제시하는 게 주업무인지라.

         이렇게 자유로운… 다소 방탕한 자세로 개인실에서 좀 뭉개고 있어도 모가지가 괜찮은 건 일종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그 특권을 고문이라 느낄 정도로 깁슨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었으니, 자리가 아무리 편해도 본인이 불편하다면 소용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낌새가 존나게 안 좋아, 낌새가…!”

         

         쿵… 쿵.

         의족 첨단에는 연결 신경이 없는 탓에, 구둣발로 다소 강하게 가구 모서리나 벽을 차야 간신히 돌아오는 진동이 느껴지는 건 그의 안 좋은 버릇이자 트레이드 마크.

         

         마찬가지로 눈을 감거나 깜빡이고 싶어도 신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서 짜증을 자주 낸다는 것도 은근히 알려져 있었다.

         

         안구를 비롯한 안와眼窩 돌출부를 아예 제거하고, 시신경계 전체를 선바이저 선글라스처럼 생긴 부품으로 난폭하게 대체해서 피부와 금속 부위가 흉하게 이어진 모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외형을 자랑하는 엑사테크에서도 꽤 유별난 모습이었으며.

         

         화면을 꺼버리면 시계가 어두워지는 건 똑같지만… 대뇌 임플란트와의 연동율이 나빠서 오랜 시간 학습된 눈꺼풀의 움직임을 자꾸만 재현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해서 문제였다.

         

         괜히 내부자 임상 실험으로 몇 백명만 굴린 다음 폐기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씨발.

         

         이래서 공짜라고 함부로 애매한 개조 시험에 막 지원하면 안 되는 법인데… 그때는 너무 젊었다. 무담보 무이자 대출이 아니라, 공짜로 묫자리 지정하는 행사인 줄 알았으면 부정 탈까 봐 안 했지.

         

         아직도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후회는 잠시 접어두고.

         하여간 본디 간당간당한 깁슨의 신경줄을 거세게 갉아먹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불과 몇 일 전에 개인 회선으로 들어온 누군가의 짤막한 메시지가 바로 그 기폭제가 되시겠다.

         

         ‘천운이 따라줘서 마스터 키를 얻었다.’ 라는 더럽게 싸한 문장과, 하필이면 그걸 툭 하고 송신한 이가 무자비한 직언과 옆이나 뒤 안 돌아보는 성격으로 악명높았던 레오나르였기에.

         

         외려 당장이라도 개난장판이 벌어지지 않고 고요한 상태로 하루이틀이 지나갔다는 게 더더더 걱정되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깁슨 또한 나름의 대비는 했으나, 레오나르가 허언이나 과장을 일삼는 타입이 아닌데 마스터 키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만한 회심의 한수가 무엇일지 너무 불길했다.

         

         뭐, 옛날에 만들어 놨던 연구소 예비 ID라도 찾았나? 시설 내부로 숨어드는 것 자체의 난이도가 높기는 해도 그런 걸 잘 쓴다면 일단 안에서는 잠시나마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끽해야 십분 정도만 지나더라도, 레오나르의 이름만 들어도 달뜬 숨을 흘리는 소장 년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겠지만!

         

         “…….”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아니, 아니야. 선 타기가 좀 힘들어졌다고 냅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애새끼도 그런 식으로 판을 엎지는 않는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적으로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을 고민해봐야….

         

         움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위태롭게 서성이던 그의 몸이 돌연 멈췄다.

         왜?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꺼낸 유리잔에 담긴 위스키 표면이 자기가 일으킨 진동과는 완전 엇박자로 흔들린 것 같아서.

         

         …단순한 착각? 흠, 그런 것치고는 방금도 또 혼자서 표면이 어그러졌는데…!!

         

         

         쿠궁—!! 투콰아아아아앙——!!!

         

         

         “썅!?”

         

         이번엔 둔한 자신이라도 눈치챌 정도로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밝은 색조를 띠고 있던 조명들이 동시에 어슴푸레한 적색으로 바뀌며 비상 사태임을 알려왔다.

         

         전직원에게 전송된 경고문과 점등된 벽면 안내등을 취합하면 이게 뜻하는 바는 무려 시설이 공격받고 있다는 건데.

         

         그게 시발 말이 되나? 독극물 누출이나 생산 라인에서 인명 사고 발생, 누울 자리도 못 알아보는 해커가 전산망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진짜 물리적으로 공격받고 있다고? 지금이 무슨 22세기인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정정한다. 만약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분명 그럴 돈이 있고, 병력이 있고, 연구소 상황을 알고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행동으로 옮길 사유가 확실한 미친놈이어야 하는데 굉장히 공교롭게도 짐작가는 인물이 있는 깁슨은 어찌 처신해야 할까.

         

         [ 모든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들은 지정된 위치에서 시설 사수에 주력해주시길 바랍니다. 반복드립니다. 비전투원을 제외한 모든…. ]

         

         난데없이 얻어맞은 짐승이 상황을 파악하고 털을 꼿꼿이 세우는 것처럼.

         

         연구소 전체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과 안내 방송에 따라 방비를 굳히기 시작하거나 말거나, 깁슨은 그래도 책임자 라인업에 속한 인물 겸 찔리는 곳이 있는 사람답게 구체적인 피해 현황부터 체크하기 시작.

         

         사내 네트워크를 열고 상위 권한으로 방어 설비의 실시간 상황판을 열람. 최초로 느꼈던 진동의 정체부터 분석했다.

         

         침투를 위해 외벽에 고폭탄이라도 처박았나? 아니면 진동파 발생장치로 지반이라도 허물려고?

         어느 쪽이나 현실성은 없어 보였지만 그건 이미 정면 돌파를 선택한 시점에서 날아간 셈이니까… 우선 타협의 여지가 있는 지부터 확인해야 맞으리라.

         

         “……엉?”

         

         하지만 실황판은 어딘가 이상했다. 아니면 주 레이더를 비롯한 부속 탐지 장치까지 모조리 첫 공격에 날아가서 망가졌던가. 그게 아니고서야 외벽도, 최외곽에 배치된 회전 포탑(Turret)들도 전부 멀쩡한데 어찌 내벽이랑 연구소 벽만 박살 날 리가.

         

         궤도 폭탄이었다 해도 먼저 탐지했을 거고, 구시대적 박격포였어도 반 이상은 요격당해야 정상인 자동화 방공망은 어떻게 무력화했는가?

         

         정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비대한 전력차를 극복하는 쉬운(?) 방법 한가지, 상대방이 가진 가장 큰 무기를 뺏어 쓴다. 그러면 격차가 두 배로 빠르게 좁혀지니까.

         

         – 사이버 엔지니어! 아키텍쳐! 프로그램 개발자! 누구든 상관없이 보안 시스템에 직무 연관성 가진 인간들은 다 컴퓨터에 대가리 처박고 죽기 전까지 접속 끊을 생각 마!! 씨발, 외부 터렛이 몽땅 탈취당했다! 제어권 되찾기 전에는 외부로 머리도 내밀지 말고! 뒤진다! –

         

         – ……방위 기재에 문제(Security Breach)가 생긴 건 분명. 탐지 데이터도 현재는 신뢰성이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식별 부호가 없는 게 움직이면 즉각 발포하라. –

         

         – 외근 나간 인원들은 제외하더라도. 오늘 근무지에 있어야 할 보안 기술자만 100명이 넘는데 복구 작업 진행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리다. …내통자 혐의를 받기 싫다면 뭐라도 성과를 좀 내는 걸 추천하지. –

         

         “…이거 아주 좆 됐군.”

         

         통신은 아예 불이 났고, 담당자들은 비명을 터트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상황이 정리되고 본사에서 나올 역학 조사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지만 지금 현실을 외면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마스터 키’라 자신하더니 진짜로 암호화 난수 규칙성이라도 풀어냈나? 직원을 매수해도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려면 못해도 반절은 포섭했어야 말이 되는데.

         

         수습, 우려하던 도화선은 이미 전부 타 들어갔고.

         일단 깁슨은 자신의 특수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한 쪽에 다소 불만이 남는 방식으로라도 수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도달했다.

         

         삑, 삐비빅…!

         

         그는 침대 틈 사이에 끼워 놨던 중계기부터 얼른 꺼내서 펼쳐 들었다.

         시설 전파망이나 기지국이 아니라, 독립된 위성만을 경유하는 고액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필수적인 장비였으니까.

         

         고질적 결함인 통화 딜레이? 지금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반대편의 상황과 의도를 파악하는 게 더 급하지, 이제 와서 사소한 불편함이 무슨 상관이야.

         

         “……깁슨? 정말 지금 꼭 연락을 해야 했나? 나중에 꼬투리가 잡히는 건 내가 어찌해줄 수 없는 부분인데.”

         

         “전 직장을 아예 전소시키려고 작정한 당사자한테 듣고 싶은 말은 정말 아닌데. 이게 무슨 짓이야!?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겠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레오나르의 고저없이 평온한 목소리를 들은 깁슨이 기함을 터트렸다.

         

         원래는 이게 정말 그의 계획 일부가 맞는지, 무슨 정신머리와 논리를 가지고 결행에 나선 건지 차근차근 확인할 셈이었지만. 그냥 말투만 들어도 전자는 확정이었고 후자는… 덩달아 흥분해서 단어 선택을 못했다.

         

         “조금 있으면 캡슐을 옮겨버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탈환해야지.”

         

         “그렇다고 진짜 연구소 문짝을 날려버리면서 등장하면 어떡해? 이럼 정보를 찔러준 내가 뭐가 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랬다고.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인데 왜 예상치 못한 것처럼 그렇게 흥분했냐는 언사에 깁슨이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해준 건 본인이 맞으나, 이럼 마치 자기가 싸움을 부추긴 것처럼 들리지 않나? 자신은 그저 빨리 대화나 협상에 나서라는 의미로 꺼낸 말인데.

         

         “정보 출처가 걱정된다면. 네가 입수한지 일주일은 족히 지났으니 이제는 얼추 실무자 선까지 명령이 내려갔겠지. 나는 그걸 입수하자마자 결행에 옮긴 것처럼 보일 테고.”

         

         “그건… 맞긴 한데! 씨발, 아무튼. 대체 마스터 키는 뭐야? 설마 이상한 조직이랑 손잡은 건 아니겠지?? 외세가 엮여서 정치 문제가 되면 본사가 나서는 걸 알면서….”

         

         반박할 논리가 바로 떠오르지 않은 것도 크다. 그렇지만 승산과 효율을 깐깐하게 따지는 레오나르가 이런 대담한 방식을 택하게 된 자신감의 근원, 결정적인 계기를 알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한 그가 뒷말을 흐렸다.

         

         쿵쿵거리는 소음이 끊이질 않는 건물. 전장이 전장인지라 어마어마한 질량이 동시에 움직여서 흔들리는 지축.

         

         깁슨에겐 유독 이번 통신 사이의 간격과 침묵이 길고 아찔하게 다가왔다.

         

         소란 한복판에서 저울의 수평을 바로잡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올라가 있는 무게추를 전부 파악할 수만 있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지기에 그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무얼. 수의 폭력 따위로는 천재의 행차를 막을 수 없는 법이지. 그리고… 더 할 말이 있으면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얘기하지. 난 이미 안에 들어왔으니까.

         

         “……뭐?”

         

         진짜 작정하고 덤벼들었다는 사실만 가까스로 확인한 순간 이미 전화 연결은 끊어졌다.

         벌써 침투에 성공했다고? 그럼 거짓말이 들키는 것도 시간 문제에… 이 빌어 처먹을 커플이 세기의 치정 싸움을 시작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면 레오나르가 너무 유리하다.

         물론 원하는 걸 다 이루기는 어려운 걸 넘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틀림없이 그 누구도 이득보지 못하는 결말에 도달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로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눈 상황에, 중간에 끼인 깁슨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씨발…….”

         

         먼저 천재라는 표현, 그답지 않게 감상적인 암시가 마음에 걸렸다. 현역 시절 레오나르는 분명 천재였다. 나약한 퓨어 육신으로도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초인적인 업무 강도를 견뎌내면서 동시에 개인 프로젝트까지 진행할 만큼.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설령 그가 사이버네틱스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천재라 해도 홀로 이쪽 엔지니어들의 손발을 묶었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레오나르의 기준점은 보통 자기자신. 남들이 천재라고 빈정거려도 그는 코웃음 치는 걸로 매번 일관해 왔거늘.

         

         그런 위인이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가 와서 스스로를 3인칭으로 호칭한다? 미심쩍다. 어딘가 어색하다.

         

         허면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 무엇일까.

         아마 소수 정예의 해커 팀을 고용해서 백업을 맡긴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더럽게 우수한 놈들로 골라서.

         

         그간 암흑가 물 좀 먹으면서 힘들게 지냈기로서니, 사고 방식까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뀔 줄이야… 실수했다.

         

         “…전 수석 연구원이라는 놈이 배알도 없게!”

         

         하나씩, 우선 그 지원부터 끊어내자.

         

         차고 있던 딴 주머니를 모른 척해준 은혜를 친구가 원수로 갚겠다면, 이쪽도 거리낌 없이 저울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리라 결심한 깁슨이 변수를 만들고자 연락을 개시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니네 장비 쩔더라 2’

    이 습한 더위 좀 빨리 가셨으면 좋겠네요. 진짜 스트레스가 장난아니게… 어우씨.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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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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