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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아버지의 서재에서 나와, 협곡 보육원으로 다시 바토리를 데려온 뒤.

     “정신 좀 차리시죠.”

     “연금술마스터…. 흐헤, 으헤헤….”

     바토리는 망가졌다.

     “예산은 무제한…. 뭐든지…. 히힛, 히히힛….”

     

     무슨 약에 취한 것처럼, 캐롤라인이나 백은에 취한 사람보다도 더 푹 빠진 것처럼 바토리는 두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예산이 있으니까…. 흐힛, 흐헤헤….”

     

     아무래도 이 여자, 내 생각 이상으로 더 광인인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제국의 그림자라거나 황제의 오른팔이라기보다는, 연금술과 마법의 접합이라고 할 수 있는 ‘마도공학 연구자’에 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다루는 법은 간단하지.’

     

     아버지는 그냥 귀찮아서 예산과 기타 절차를 내게 맡겨버린 것 같지만, 그게 핀포인트로 바토리의 진심을 내게 할 수 있었나보다.

     “바토리 소장.”

     “소장?”

     “이제 지브롤터 마도공학 연구소의 임시 소장으로서 대우를 해드릴테니, 소장이라고 불러드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부자가 쌍으로 나를 아주 그냥 젖어들게 만드는구나?”

     “…….”

     “아, 이상한 소리 아니야. 연구 의욕에 젖는다는 말이지, 뭐 이상한 소리 아니다?”

     바토리는 빠르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발언을 주워담으려고 했다.

     “그보다, 이 예산 어떻게 모은 건지 물어봐도 돼?”

     “사진 팔았습니다.”

     “…사진?”

     “아버지의 사진을 몰래 찍어서 화보로 팔았죠.”

     “…그걸로 이렇게까지 많은 돈을 모았다고? 말도 안 돼.”

     “제국 여성들이 음성적으로 사들이는 아버지 사진이 생각보다 잘 팔렸다고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하셨습니까?”

     “그래도 이 정도로 판매대금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

     적당히 아버지를 팔아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제국 그림자 첩보부 수장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군요. 진실을 알려드리는 수밖에. 당연한 소리지만, 사진만 팔아서 그 많은 예산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죠. 사진은…일종의 판매 루트 개척 수단이었을 뿐이니까.”

     나는 보육원 시설의 지하로 향하는 봉인된 문을 열었다.

     “……!”

     문의 봉인을 해제하자마자 바토리의 표정이 굳는다.

     보육원 아래에 지하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지만, 그 안에서 풍겨오는 알싸한 냄새에 바토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앞으로 나섰다.

     “여기, 설마….”

     “제가 개인적으로 기획하고 설립한 지하 연구실입니다.”

     말 그대로, 지하 연구실.

     흙냄새와 솜누스 꽃냄새가 가득하지만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고, 모든 걸 오직 마나의 힘을 이용해 마력초를 재배하는 특별한 시설.

     “협곡 보육원 지하에 이런 연구소가 있다는 건 지브롤터 가문 사람을 제외하면 오직 윈체스터 대공과 카르멘 왕비, 그리고 헥스 로마나 자작 정도만 알고 있죠.”

     “설마 여기에서….”

     “아시겠지만, 모르셨다면 이번에 확실하게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나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하는 협곡의 아이들-보육원 출신 고아들의 인사를 받으며, 샘플 하나를 집어들었다.

     “캐롤라인.”

     “…….”

     “제국의 백은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물질입니다.”

     “역시나….”

     바토리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내가 건넨 캐롤라인이 담긴 유리병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황제폐하께 알려줬다가는 너 진짜 큰일나는 거 알지?”

     “합스베르크 폐하가 모르고 있었습니까?”

     “모르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닌 크림슨 지브롤터가 기획하고 연구한 거라고 판단하고 계셨거든. 아무래도 캐롤라인이 그 쪽으로 쓰이는 용도가 잦잖아?”

     “…서로 패를 오픈한 마당이니, 분명히 말씀드리죠.”

     나는 다른 유리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캐롤라인은 원래 그런 용도로 활용하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이걸 구상했을 때가 대략 10살 즈음이었는데, 설마 10살 짜리가 무슨 발기부전 걸린 성인 남자들을 위한 기적을 만들어내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진짜 아니야?”

     “아닙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캐롤라인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마나보조제다.

     “솜누스 꽃과 마력초를 섞고, 그리고 마물의 뼈나 기타 재료들을 섞은 다음 마나로 흡수한다. 지브롤터의 기사들이 좀 더 빠르게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만든 마나보조제에 불과했습니다.”

     “…….”

     “그것이 몇 가지 조금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부작용이 생겼을 뿐입니다. 뭐, 이제는 그 부작용라는 게 사실상 메인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캐롤라인을 다시 수납함에 넣는다.

     “제게 있어 이것은 마력을 빠르게 모아 좀 더 강해지는 수단이었죠. 그게 지금은 다른 방면으로 강해지는 게 씁쓸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왕국 전역을 비롯하여 제국에서도 뭇 자존심이 꺾여 고개 숙인 남성들이 주로 이걸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걸 자주 구매하는 이들은….”

     “제국의 여러 귀부인들이지. 피부미용에도 좋고, 부부생활에도 좋고. 정말이지, 여러모로.”

     바토리가 캐롤라인의 뚜껑을 살짝 열더니, 그걸 자신의 손등에 살짝 붓고는 볼에 바르기 시작했다.

     “너, 이건 몰랐구나? 제국 여성들이 캐롤라인, 피부에 발라서 쓰는 거.”

     “…….”

     “주름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알아두…. 잠깐. 내가 주름을 신경 쓸 정도로 나이를 먹어서 이런 걸 알고 있는 게 아니야. 제국 안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용법이라는 걸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압니다. 바토리 소장은 이런 캐롤라인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피부가 어려보인다는 걸.”

     젊어보인다는 말은 실례다.

     바토리 소장이 여러모로 우리를 돕기로 한 이상, 속이 뒤틀리는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

     “지식이 늘었군요. 다음에는 바르기 편하게 슬라임 점액같은 점성 있는 걸로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적어도 제로스 단장이나 발자크 자작 같은 이들에게 ‘위대한 노스트럼’운운하며, 지저분한 남정네들의 노름에 끼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이왕이면 하얀색이었으면 좋겠네. 끈적한 걸로.”

     “…네?”

     “아니, 생각해봐. 아무래도 하얀색이면 피부가 하얗게 물드는 그런 느낌이잖아?”

     “이미 충분히 하얀 것 같습니다만….”

     “나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 하얗게 칠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이들도 있고. 주근깨라거나, 뭐 그런 것들? …나는 없지만!”

     “그렇군요.”

     일일이 하나하나 본인은 아니라고 어필을 하는 게 조금은 안타깝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하며 연구실 안쪽을 가리켰다.

     “하여튼, 당분간 이곳 연구실에서 지내시면 될 겁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라서-”

     “완벽해!”

     “…….”

     “연구실이라면 이런 어두운 분위기가 제격이지. 환기도 잘 되는 것 같고, 마력초 향기 덕분에 몸에 마나가 쌓이는 그런 착각도 드는 느낌이기도 하고. 다만….”

     “다만?”

     “영지전 책임자께서 그리고 계신 부분이랑 여기에서 얻는 연구 성과랑 조금 안 맞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끼이익.

     지하실 내부의 깊은 방의 문을 열자, 곧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여기는….”

     “연구실입니다. 수 년 동안 연구소장 자리는 비어있었지만, 혹시나 그런 분이 나타나면 그 분을 모시기 위해 비워둔 공간이었죠.”

     제도의 특급 호텔 스위트룸을 연상케하는 구조.

     그러면서 동시에 따로 연구실이 마련되어 있어, 얼마든지 지하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

     “노스트럼 왕국에 있는 궁정마도사를 위한 공간과 마탑 탑주의 별실을 참고하여 만들었습니다. 다른 이들 몰래 건설한 거라 조금 조잡할 수도 있겠지만….”

     “조잡하다니. 이렇게 깔끔하고 완벽한 연구실은…하아.”

     바토리가 입맛을 다신다.

     “제국의 마도연구소에 있는 연구실보다 어떤 방면으로는 세련된 것 같아.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마법사의 공방 느낌인데.”

     “그렇습니까? 제국신문을 보면서 열심히 상상한 보람이 있군요.”

     “네가 만든 거야?”

     “기본 밑그림만 그렸습니다. 실제 설계나 그런 건 모르가니아의 도움을 받았죠.”

     “…….”

     회귀자의 미래 지식이 집약되어 만들어진 연구실인 만큼, 장소가 조금 협소하고 가구나 집기들이 노스트럼 왕국의 분위기가 조금 나기는 해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구성.

     “언젠가 제국을 상대로 마도공학을 이해하고 상대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때 이곳에서 마도공학에 재능을 가진 천재를 영입하여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때, 내가 제국에서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재.

     ‘그게 설마 이 여자일 줄은 몰랐지.’

     여러모로 정체가 수상쩍기도 하고-사실은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지만-, 아직 제국 사람인 건 맞지만, 설령 황제의 오른팔이라고 하더라도 조건만 맞으면 지브롤터로 ‘전향’하게 만들 수 있다.

     크비슬링스 300명을 모아서 줄테니, 에르제베트 한 명 달라.

     그런 느낌.

     “오로솔 아카데미가 열렸을 때, 제국에서 연금학 교수께서 오신다고 했을 때, 솔직히 기대했습니다. 아무래도 연금학 수업을 듣다보면 학생들 중에서 마도공학에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가 나올 것 같아서.”

     “…….”

     “그런 학생은 아쉽게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마도공학에 가장 능통한 전문가를 모시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이렇게 임시로나마 모시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요.”

     “임시…?”

     “아무래도, 제국분이시잖습니까. 황제 폐하의 지원군으로 이곳에 오신 만큼, 영지전이 끝나면 다시 오로솔 아카데미로 돌아가셔야죠.”

     “…….”

     바토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어보이지만, 공사를 혼동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이 친구들이 도와드릴 겁니다.”

     짝.

     “메를린. 밖에 있나?”

     “예, 도련님.”

     “연구실에 있는 아이들 데리고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손뼉을 치자, 곧 소장용 연구실 밖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쪽은 메를린. 보육원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아가씨. 보육원을 담당하고 있는 메를린….”

     “아가, 씨?”

     바토리가 헛웃음을 흘리며 메를린을 위아래로 훑었다.

     “누가 누구를 보고 아가씨라고 하는 거야, 응?”

     “…도련님께서 데리고 오신 귀족 영애분이 아니신지…?”

     “우리 대화 하는 거 못 들었어?”

     “죄송합니다. 저는 평범한 메이드고, 제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면 도련님께서 저를 부르시지 않다보니.”

     “…못 들었다?”

     “업무에 필요한 일이라면 파악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때때로.

     “도련님. 이분은…?”

     “오로솔 아카데미의 바토리 에르제베트 교수. 제국에서 왔지만, 이곳 연구실에서 임시로 우리를 돕기로 했다.”

     “…실례했습니다. 저보다 더 어려보여서, 귀족 영애분이신 줄.”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게, 가장 눈치 빠른 길일 때가 있다.

     “흠흠.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나이가 올해로 28살이니까, 아가씨라고 불릴 나이는 지났지.”

     이래서 내가 메를린을 보육원장으로 뽑았다.

     그리고 그녀는 보육원장이 된 이래,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바토리. 제가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으음, 아니야. 갑자기 온 것도 있고, 몰랐다는 건 오히려 엿듣지 않았다는 거 아니겠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를린. 잘 모시는 걸로 이번 일을 만회하도록.”

     “예, 도련님.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래. ‘연구’ 쪽으로도 말이지.”

     “연구…?”

     “예.”

     나는 바토리에게 메를린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가리켰다.

     “이 아이들은 보육원에 들어온 이후, 지하에서 캐롤라인 제작을 해온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예. 이제는 다들 어엿한 청소년이 되었고, 일부 성인이 된 아이들이 있죠.”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이 누가봐도 저기 제국의 연구원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들이 연구를 보조할 겁니다.”

     “…….”

     보육원 아이들 중 기사가 될 수 없었던, 그러면서도 동시에 연구 쪽으로 재능이 있던 아이들은 전부 이 날을 위해 길러왔다.

     “마도공학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마음껏 굴리시면 됩니다.”

     기호.

     “아마 마도공학 연구소 입학 시험을 본다면, 일단 합격은 모두 100% 통과할 겁니다. 최소한 그 정도 기본은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

     “마도공학을 바탕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이들이거든요.”

     현실.

     “무엇보다, 이 지브롤터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지지 않고 남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열정.

     “마음 같아서는 오로솔 아카데미에 훗날 대학원이 열린다면, 청탁으로 대학원에 보내서 제국의 선진 마도공학을 직접 배우고 익혀 기술을 연마하게 하고 싶을 정도로.”

     바토리는 갑자기 이곳에 찾아왔으나, 이들은 내가 8년 전부터 준비한 인재.

     “체력도 지브롤터식 수습 기사 훈련으로 충분하고, 캐롤라인을 마시면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예. 캐롤라인은 말 그대로 자양강장제, 순간적인 피로회복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습니다.”

     지브롤터에서 일할 제국의 마도공학자를 위한 보조 연금술사들.

     “마음껏, 굴리십시오.”

     준비된, 대학원생(예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집한 고아를 노예로 부린다

    의외로 중세 다크판타지 악역에 충실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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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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