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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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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정지했던 권능은 이내 활발하게 움직여 답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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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다른 생김새,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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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키워드를 조합하며 답은 쉽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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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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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권능은 아이리스를 ‘헤어졌던 연인’으로 해석해버렸다. 연애 경험은 물론 지식까지 제로에 수렴하는 리안에게 ‘넌 사실 여자친구가 있었으니, 여자친구에게 행동하듯이 해라.’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장이 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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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 자체 검열 ]과 [ 자체 검열 ]까지 안전하게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권능의 힘 앞에 부족한 지식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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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눈동자에 인위적인 ‘사랑’이 생겨나고,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추억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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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미안해. 자기한테 너무 걱정을 끼쳤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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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 여보, 애기 등등… 다양한 표현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가장 무난한 단어가 툭 뱉어졌다. 아이리스는 재차 흘러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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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자신을 다정한 손길로 끌어안을 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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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쾅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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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거칠게 뛰다 못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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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절대 곁을 떠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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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그리도 소망했던 말이 그의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온 순간, 아이리스는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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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소리, 온기까지도 모두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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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리안은 권능으로 인해 아이리스를 ‘연인’ 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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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망가진 세계에 살아가는 것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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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괴이를 보고 일반 사람 보듯 행동해도, 아이리스가 괴이를 보듯 하면 인식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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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다치지 않게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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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전까진 망가진 길도 무너진 건물도 그저 평범하게 인지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리안은 아이리스가 다치지 않도록 부서진 길을 피해서 그녀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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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으로 피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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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의 힘이 있는 리안이라면 모를까, 아이리스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괴이가 그녀에게 나쁜 영향을 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에 따라 괴이를 피해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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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존재 하나만으로 리안은 멸망한 세계의 주민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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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변화에 아이리스 또한 바짝 긴장했다. 기이할 정도로 리안을 공격하지 않았던 괴이들이 이제부턴 그를 난폭하게 공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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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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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안도의 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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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헉..!”
   “뭐야…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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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낯선 목소리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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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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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 파리가 들어갈 듯 크게 입을 쩍 벌린 이가 멍하니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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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눈 결정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순백의 비단은 마치 천사의 날개 같았고, 밤하늘의 별빛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는 쉽게 볼 수 있는 색이 아니었기에 이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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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이들로 인해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천사가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었고, 아이리스는 마침 격이 다른 외모를 자랑했다. 두 가지 사실이 맞물려 저런 얼빠진 말이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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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천사라는 말을 듣게 된 아이리스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무리의 전력을 파악하던 그때, 시야가 갑작스럽게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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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우리 자기가 천사 같이 예쁘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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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그의 옆에 서 있던 리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칭찬에 아이리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체리 색으로 물들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수줍었는지 귓바퀴까지 붉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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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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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줍음에 얼굴을 붉히던 아이리스는 손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시선을 내리자 리안이 제 손을 살짝 아플 정도로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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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리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어째서 이리 제 손을 꽉 붙잡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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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적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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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제 손을 꽉 붙잡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제 불안감을 확인하기 위해 한걸음 옆으로 움직여 리안의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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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몸으로 가린 덕분에 겨우 정신을 추스르던 이들이 다시 넋을 놓은 채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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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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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으로 보이긴커녕 멍청하게까지 느껴지는 무리의 모습에 아이리스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저런 멍청한 놈들을 보고 리안이 긴장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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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솟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리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고, 눈동자 속에는 타오르는 듯한 감정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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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에겐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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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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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선 절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감정이 그곳에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크게 출렁거리며 마구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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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붙잡힌 손을 힘주어 마주 잡자 무리 쪽을 지그시 바라보던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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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리안에게 자신은 그의 것이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 말을 속삭이고 싶었지만 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행동으로 제 심정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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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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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이 탁 풀릴 정도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아이리스가 리안의 품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곤 빈손으로 슬금슬금 리안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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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닿은 따스한 온기가 리안을 옭아맸다. 이유 없이 성큼 다가온 온기는 순간적으로 리안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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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내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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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벅거리던 머릿속은 ‘연인’이라는 한마디에 얌전해졌다. 리안은 자연스럽게 빈손을 내밀어 아이리스의 등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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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으로 인한 착각과 상관없이 리안은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감각에 짧게 숨을 참았다가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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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야..”
   “사람을 홀리는 괴이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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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뜬금없이 무너진 길 한가운데서 꼬냥거리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이리스와 리안의 분위기가 멸망해 가는 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괴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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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도망가고 엉망인 길 위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로부터 몇 분 더 끌어안고 있다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을 꼭 붙잡은 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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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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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 戀人.
   연인이란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뜻한다. 손만 잡고 돌아다니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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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권능으로 인해 아이리스를 ‘연인’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연인의 개념까지 권능을 통해 인지한 상태였다. 문제는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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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권능이 연인다운 스킨쉽을 하라 명령을 내려도 몸이 버벅거리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비단 연애 경험이 적어서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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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고, 그에 대한 애정을 되돌려주는 건 리안에겐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자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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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잡는 것까진 괜찮았지만 허리를 끌어안거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리안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먼저 성큼 다가간 건 아이리스였다. 그녀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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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추워.”
   “으응? 그… 그래?”
   “응, 더 붙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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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저물어 밤이 되자 아이리스는 그다지 춥지 않음에도 리안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리안의 다리 사이에 앉아 그의 팔을 끌어당겨 제 허리를 감게 했다. 익숙하게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리안의 턱 아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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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품에 가득 안기자 알 수 없는 꽃향기가 리안의 정신을 순식간에 혼미하게 만들었다. 맞닿은 몸을 통해 정신없이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아이리스의 심장 소리였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에 리안의 심장도 덩달아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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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이이잇
   끼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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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저물어 캄캄한 어둠 속을 괴이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지만, 두 사람은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그저 달콤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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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두 사람은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리안은 한숨도 못 잔 채 뜬눈으로 반을 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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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괜찮아?”
   “어, 으응..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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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퀭해 보이는 모습에 아이리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리안은 곧바로 허리를 쭉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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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멸망을 향해가는 세계의 새로운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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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도 한 입 먹어, 아 -..”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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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 끊어져 가는 세계와 달리 두 사람의 분위기는 여전히 봄 같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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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도 퇴고 완료되면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3

올라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잠시 정지했던 권능은 이내 활발하게 움직여 답을 찾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생김새,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 가족.

세 가지 키워드를 조합하며 답은 쉽게 나왔다.

‘연인.’

리안의 권능은 아이리스를 ‘헤어졌던 연인’으로 해석해버렸다. 연애 경험은 물론 지식까지 제로에 수렴하는 리안에게 ‘넌 사실 여자친구가 있었으니, 여자친구에게 행동하듯이 해라.’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장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무려 [ 자체 검열 ]과 [ 자체 검열 ]까지 안전하게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권능의 힘 앞에 부족한 지식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리안의 눈동자에 인위적인 ‘사랑’이 생겨나고,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추억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정말… 미안해. 자기한테 너무 걱정을 끼쳤구나.”

“…?!”

허니, 여보, 애기 등등… 다양한 표현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가장 무난한 단어가 툭 뱉어졌다. 아이리스는 재차 흘러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가 자신을 다정한 손길로 끌어안을 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쿵쾅쿵쾅!

심장이 거칠게 뛰다 못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앞으로는 절대 곁을 떠나지 않을게.”

그녀가 그리도 소망했던 말이 그의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온 순간, 아이리스는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숨을 삼켰다.

아이리스는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소리, 온기까지도 모두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렇게 리안은 권능으로 인해 아이리스를 ‘연인’ 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망가진 세계에 살아가는 것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건 다르다.

리안이 괴이를 보고 일반 사람 보듯 행동해도, 아이리스가 괴이를 보듯 하면 인식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자, 다치지 않게 조심해.”

그전까진 망가진 길도 무너진 건물도 그저 평범하게 인지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리안은 아이리스가 다치지 않도록 부서진 길을 피해서 그녀를 이끌었다.

“…저쪽으로 피해 가자.”

권능의 힘이 있는 리안이라면 모를까, 아이리스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괴이가 그녀에게 나쁜 영향을 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에 따라 괴이를 피해 다니게 되었다.

아이리스의 존재 하나만으로 리안은 멸망한 세계의 주민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에 아이리스 또한 바짝 긴장했다. 기이할 정도로 리안을 공격하지 않았던 괴이들이 이제부턴 그를 난폭하게 공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이리스는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안도의 숨을 흘렸다.

“어?!”

“헉..!”

“뭐야… 헉!”

그때 낯선 목소리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

입에 파리가 들어갈 듯 크게 입을 쩍 벌린 이가 멍하니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눈 결정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순백의 비단은 마치 천사의 날개 같았고, 밤하늘의 별빛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는 쉽게 볼 수 있는 색이 아니었기에 이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괴이들로 인해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천사가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었고, 아이리스는 마침 격이 다른 외모를 자랑했다. 두 가지 사실이 맞물려 저런 얼빠진 말이 나오게 되었다.

정작 천사라는 말을 듣게 된 아이리스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무리의 전력을 파악하던 그때, 시야가 갑작스럽게 가려졌다.

“하하, 우리 자기가 천사 같이 예쁘긴 하지.”

어느새 그의 옆에 서 있던 리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칭찬에 아이리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체리 색으로 물들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수줍었는지 귓바퀴까지 붉어질 정도였다.

꽈악.

수줍음에 얼굴을 붉히던 아이리스는 손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시선을 내리자 리안이 제 손을 살짝 아플 정도로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리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리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어째서 이리 제 손을 꽉 붙잡는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적인 건가?’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제 손을 꽉 붙잡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제 불안감을 확인하기 위해 한걸음 옆으로 움직여 리안의 옆에 섰다.

리안이 몸으로 가린 덕분에 겨우 정신을 추스르던 이들이 다시 넋을 놓은 채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허어…”

“아…”

적으로 보이긴커녕 멍청하게까지 느껴지는 무리의 모습에 아이리스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저런 멍청한 놈들을 보고 리안이 긴장했단 말인가?

치솟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리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고, 눈동자 속에는 타오르는 듯한 감정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이리스에겐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었다.

‘질투..?’

리안에게선 절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감정이 그곳에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크게 출렁거리며 마구 뛰기 시작했다.

꽉 붙잡힌 손을 힘주어 마주 잡자 무리 쪽을 지그시 바라보던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아이리스는 리안에게 자신은 그의 것이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 말을 속삭이고 싶었지만 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행동으로 제 심정을 표현했다.

폭.

맥이 탁 풀릴 정도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아이리스가 리안의 품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곤 빈손으로 슬금슬금 리안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맞닿은 따스한 온기가 리안을 옭아맸다. 이유 없이 성큼 다가온 온기는 순간적으로 리안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아, 내 연인이다.’

버벅거리던 머릿속은 ‘연인’이라는 한마디에 얌전해졌다. 리안은 자연스럽게 빈손을 내밀어 아이리스의 등을 끌어안았다.

권능으로 인한 착각과 상관없이 리안은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감각에 짧게 숨을 참았다가 뱉어냈다.

“뭐, 뭐야..”

“사람을 홀리는 괴이일지도 몰라..!”

두 사람이 뜬금없이 무너진 길 한가운데서 꼬냥거리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이리스와 리안의 분위기가 멸망해 가는 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괴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도망가고 엉망인 길 위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로부터 몇 분 더 끌어안고 있다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을 꼭 붙잡은 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

연인 戀人.

연인이란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뜻한다. 손만 잡고 돌아다니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리안은 권능으로 인해 아이리스를 ‘연인’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연인의 개념까지 권능을 통해 인지한 상태였다. 문제는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권능이 연인다운 스킨쉽을 하라 명령을 내려도 몸이 버벅거리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비단 연애 경험이 적어서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고, 그에 대한 애정을 되돌려주는 건 리안에겐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자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손을 잡는 것까진 괜찮았지만 허리를 끌어안거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리안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먼저 성큼 다가간 건 아이리스였다. 그녀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오빠 추워.”

“으응? 그… 그래?”

“응, 더 붙어있자.”

해가 저물어 밤이 되자 아이리스는 그다지 춥지 않음에도 리안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리안의 다리 사이에 앉아 그의 팔을 끌어당겨 제 허리를 감게 했다. 익숙하게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리안의 턱 아래 흔들렸다.

아이리스가 품에 가득 안기자 알 수 없는 꽃향기가 리안의 정신을 순식간에 혼미하게 만들었다. 맞닿은 몸을 통해 정신없이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아이리스의 심장 소리였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에 리안의 심장도 덩달아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히이이잇

끼이이..

해가 저물어 캄캄한 어둠 속을 괴이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지만, 두 사람은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그저 달콤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두 사람은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리안은 한숨도 못 잔 채 뜬눈으로 반을 새야 했다.

“오빠… 괜찮아?”

“어, 으응.. 괜찮아.”

딱 봐도 퀭해 보이는 모습에 아이리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리안은 곧바로 허리를 쭉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멸망을 향해가는 세계의 새로운 날이 밝았다.

“오빠도 한 입 먹어, 아 -..”

“아아..”

숨이 끊어져 가는 세계와 달리 두 사람의 분위기는 여전히 봄 같을 뿐이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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