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6

   [216화는 일러스트 연출이 포함 되었습니다. 내용 이해를 위해 일러스트를 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치솟아 오른 흑염 속.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스트리아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크라슈는 높은 상공에 올라와 있었다.

   그러고는 아스트리아를 당겨 올려 대뜸 공주님 안기를 하더니 그대로 두다리를 아래로 향해 뻗었다.

     

   쿠웅!

     

   크라슈가 착지하자 연기가 사뿐히 휘날렸다.

   오러로 보호를 한 만큼 피해가 전혀 없는 크라슈는 자기 머리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크라슈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얼굴 가득 눈물이 차오른 채 볼을 잔뜩 부풀린 성녀께서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우리 성녀님께서는 아무래도 고소 공포증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괜찮냐?”

     

   크라슈가 뒤늦게 묻자 그녀는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몸이 멈칫하였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눈에 수많은 프리만의 시민들이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축제 관광으로 놀러 온 이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중 성녀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성녀님?”

     

   누군가 한 명 아스트리아를 보고 부르자 아스트리아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로브 자락을 매만졌다.

     

   그러자 어느새 로브가 풀렸나 태양빛의 머리카락이 드러났음은 물론.

   그녀의 얼굴을 가리던 가면 또한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갔다.

     

   사람들 앞에서 늘 당당히 성녀의 모습을 보이던 그녀이나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아스트리아.”

     

   그러자 크라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연스럽게 그가 아스트리아를 내려주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스트리아로 몰려들었다.

     

   아스트리아의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이미 몇 번이고 사람들 앞에서 성녀로 서본 그녀다.

     

   그녀가 로브를 풀어 벗었다.

   그러자 로브 안쪽, 신이 빚어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몸매와 성녀의 복장이 드러났다.

     

   단 한 순간에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달라졌다.

   어딘가 경건함마저 느껴질 만큼 자애로운 얼굴 뒤.

   빛이 모여들어 후광이 비출 지경이었다.

     

   보는 이들 모두가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을 때.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프리만의 시민 여러분, 그리고 신을 믿는 이들께 성녀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이 이 자리를 빌려 알립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무척이나 고귀하기 그지없었다.

   성녀라는 말은 그녀 말고는 수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프리만의 성녀라는 존재는 신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닌 프리만의 신성 왕가가 프리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녀에게서 성녀를 부정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스트리아에게 홀려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하나둘 그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들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모두 아스트리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스트리아는 이 장소를 확실하게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습이었습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수많은 성녀가 배출되고, 그들은 프리만의 이기적인 득을 위해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성녀라는 악습을 끝낸 뒤 폐기 되었다.

   아스트리아는 역대 성녀들을 기리듯 두 손을 모았다.

     

   “저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저 또한 같은 성녀이지만 프리만의 욕심으로 인해 태어난 성녀라는 악습이 계속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을 전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여기 있는 시민들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태양 빛 같은 눈동자가 선명히 빛났다.

     

   “저는 그 악습을 이제 끝내고자 합니다.”

     

   크라슈가 그녀의 옆에서 성배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서 새까만 흑염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흑염의 옆에서 아스트리아는 모두에게 고했다.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은.”

     

   늘 자애롭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자기 나이대에 걸맞은 소녀 같은 웃음이 지어졌다.

     

   콰직!

     

   그리고 성배가 흑염에 녹아 전체에 금이 갔다.

     

   “오늘부로 성녀를 그만둡니다.”

     

   쨍그랑!

     

   이윽고, 성배가 산산조각이 나며 불타 없어졌다.

     

   그 웃음은 모두가 그녀가 진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성녀님이 그만두셔?”

   “정말로?”

   “어, 그, 그래도 되는 건가?”

   “프리만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러면 왕가는 신성 모독을 저질렀다는 거 아닌가?”

   “특, 특보다! 특보라고!”

     

   당연히 그 발언은 삽시간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스트리아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장소에 있는 이들도 덩달아 그 소식을 듣고, 당혹스러워했다.

     

   신들의 축제 날.

   성녀가 성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해 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길이길이 역사에 기억될 장면이었다.

     

   그때였다.

     

   “아스트리아 님의 뜻을 따르라!”

   “신성 왕가 프리만은 신성을 모독한 죗값을 치러라!”

     

   시민들 사이에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람잡이의 목소리였다.

     

   크라슈의 시선이 신전 쪽으로 향했다.

   이게 누구 짓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수를 바꾸었군.’

     

   성왕 테르사다 베아키스.

   그가 이 상황을 전해 듣자마자 수를 바꾼 것이다.

     

   성녀라는 악습을 폐지 시키는 건 더 이상 자신들의 손으로 할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이 상황을 이용해 신성 왕가를 뒤엎어 종교 혁명이라도 이끌겠다는 속셈이었다.

     

   단지, 거기에 주최자가 그들이 원한 크라슈가 아니라 전 성녀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그때 하늘 위에서 무언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동안 신성 왕가가 저질러 온 신성 모독을 담아낸 신문이었다.

     

   순식간에 퍼져 가는 신문 속,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신성 왕가가 국가의 위상을 올리거나 지키고자 얼마나 끔찍한 짓을 자행했는지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들의 내적에 신성 왕가를 향했던 불만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어느 국가의 통치자들이 그렇듯.

   신성 왕가라 한들 시민들의 내적 불만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그 불만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한 대사건이었다.

     

   “신성 왕가는 죗값을 받아라!”

   “신을 모독하다니. 제정신이냐! 당장 왕궁에서 나와 죗값을 치러라!”

     

   아니나 다를까, 불이 붙은 시민들이 프리만을 바꾸고자 노성을 토해냈다.

   프리만은 종교로 시민들을 한데 묶어 놓고 있었다.

     

   그러한 종교가 그릇된 짓을 저지른 것을 알았으니 그들의 분노는 한 대 뭉쳤다.

     

   ‘이래서 종교가 무서운 거겠지.’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는 짓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콰아앙!

     

   그러는 순간 때마침 신성 왕가가 있는 곳에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라슈는 그 폭발 소리가 누가 저지른 짓인지 잘 알았다.

     

   ‘그 구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네.’

     

   테르사다와 반대파들이 본격적으로 신성 왕가를 무너트리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전 회귀 전에는 결국 달성해내지 못했던 종교 혁명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성녀가 직접 나서서 성녀의 직위를 그만두고, 악습을 알려서일까.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분노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스트리아가 성녀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것은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아스트리아.”

     

   크라슈가 아스트리아를 부르자 그녀가 침묵한 채 분노한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한 짓일까.”

     

   그녀는 시민의 분노가 신성 왕가를 향해도 되는지 걱정했다.

   분명 이번 일로 수많은 이들이 피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모르지.”

   “우리가 저지른 짓이잖아. 모른다고 해서 넘어가면…….”

   “아니, 이 세상의 일은 원래 대부분 모르는 법이다.”

     

   크라슈는 걱정이 담긴 아스트리아에게 일갈했다.

     

   “어떤 일이든 항상 옳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듯이, 어떤 일이든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

     

   크라슈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귀를 통해 보아온 세상은 늘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도, 옳은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옳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크라슈는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너도 그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야.”

     

   아스트리아가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담긴 진심을 읽은 아스트리아가 어째선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던 그녀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 보았다.

   하늘에 스쳐 지나가는 구름은 무척이나 커 태양을 잠시 가릴 정도였다.

     

   아스트리아의 얼굴 위에 그림자가 졌다.

     

   “당신, 나는 이제 성녀가 아니야.”

   “그래, 그렇겠지.”

   “그런 내가 앞으로 있을 곳이 있을까? 사람들은 성녀를 원하지. 아스트리아를 원하지는 않을 텐데.”

     

   그녀는 늘 성녀로서 사람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녀를 그만둔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에 관해 그녀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원한다.”

     

   그 순간.

   크라슈의 입에서 무척이나 덤덤한 말이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스트리아의 눈이 천천히 크라슈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성녀가 아니라. 아스트리아, 쭉 너였어.”

     

   크라슈는 늘 성녀가 아닌 아스트리아를 보아왔다.

     

   그러니 처음 그날부터.

   크라슈는 그녀를 성녀가 아니라 아스트리아로서 대했다.

     

   그 눈을 보자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왜 자신이 이 남자를 자꾸만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처음부터 오늘까지 오직 나를 아스트리아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건 이 세상 어느 사람도 해주지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는 누군가 해줄 수 있는 일일지 몰라도.

   성녀일 때의 자신을 아스트리아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런 이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신이 수십 번을 태어나고.

   수십 번의 삶을 살더라도.

     

   단 한 번 그를 본 순간.

   분명 또 한 번 같은 마음을 품고 말았을 텐데 말이다.

     

   바람이 불어왔다.

   무척이나 따스함을 머금은 태양 같은 바람이.

     

   

     

   그래서인가.

   그녀의 입에서 무심코 그 말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하늘 위, 구름이 사라졌다.

   구름의 틈 사이.

     

   내리쬐어진 태양 빛이 아스트리아에게 닿았다.

   태양을 상징하는 주홍빛의 머리카락은 그 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다.

     

   그녀의 웃음을 마치, 신마저 꾸며주기 위함인 마냥.

     

   그녀는 무척이나 화사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 평생 책임져 주라.”

     

   성녀이기에 한 번도 부린 적 없는 욕심.

   그 한 번의 욕심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