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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

        

       내 말에 한순간 방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전쟁……?”

        

       우리들의 바로 머리 위쪽이 고향인 샤를로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소피아는 샤를로트의 그 중얼거림에 흠칫 떨더니, 곧장 앞으로 한걸음 나와 법국을 변호하듯 말했다.

        

       “법국이 벨부르를 상대로 전쟁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과거의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도 이미 오래전에 양국 간의 협의로 끝난 일이라고요!”

        

       “법국이 벨부르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법국이 아니라면?”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앨리스가 말했다.

        

       “아마도, 황제와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을 겁니다.”

        

       내 말에 앨리스가 목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신음소리를 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제국과 법국의 전쟁이라니? 그런 전쟁을 왜 굳이 루테티아 아래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죠?”

       

       앨리스와 내 대화를 듣던 샤를로트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제국과 법국의 전쟁이 아니라, 황제와 법국의 전쟁입니다.”

        

       내 말에, 다시 한번 방 안이 조용해졌다.

        

       원작에서 황제는 전쟁을 준비했고, 그리고 실제로 실행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으로부터 2개월쯤 뒤에 이 세계는 전쟁터가 된다.

        

       루테티아에서의 실습은 내가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원작에선 전쟁이 일어나기 거의 직전까지도 앨리스가 완벽한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황제가 대놓고 전쟁을 준비하는 몇 개월간 벨부르와 제국 사이의 관계가 벌어지고, 샤를로트의 성격도 예민해졌으니까.

        

       아니, 애초에 이 세상에서처럼 샤를로트와 앨리스가 처음부터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나 천천히 친해지고, 그러다가 전쟁 때문에 다시 사이가 갈라지고, 황제를 막는 과정에서 다시 친구가 된다.

        

       “어떻게든 황제를 막아보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거죠.”

        

       “황제를, 막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황제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

        

       정확히는 ‘했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주로 나 때문에 그 전쟁을 그만두고 계획을 바꾸었다. 그 계획이 뭔지, 나는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나는 입을 열었다가, 앨리스와 소피아를 한 번씩 보았다.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피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표정을 숨긴 앨리스보다 저렇게 대놓고 표정을 보이는 소피아 쪽의 감정이 더 알아보기 어려웠다. 감정이 너무 뒤섞였다고 그래야 하나.

        

       ……하긴, 따지자면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긴 했지.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미아는 양손에 스태프를 꼭 쥔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스태프에 박힌 마르마로스는 내가 처음으로 마르마로스를 건넸을 때보다 더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주었던 그 얼음 속성의 마르마로스는 아직도 스태프에 그대로 박혀있었다. 그 뒤로도 더 좋은 마르마로스를 몇 개 더 얻었을 텐데 굳이 저걸 계속 달아두는 이유는…… 음.

        

       로티와 제이크는 붙어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우리를 따라왔다. 마치 내가 그렇게 도왔으니 자신들도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양.

        

       나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저 두 사람은 그런 말을 들었어도 그냥 따라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레나였다. 자기 앞에서 겉멋만 잔뜩 부린 나한테 완전히 속아서 여기까지 쭉 따라와 버린. 얘 앞에서 내 진짜 모습을 보였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실망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저런 다른 것을 신경 쓰느라 어느새 컨셉을 두고 경쟁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레어와 레오.

        

       클레어는 내가 이쪽으로 오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나와 만났던 주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출생의 비밀도 가지고 있었고.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하필이면 거기에 처음 떨어진 건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클레어의 그 출생의 비밀 때문에 클레어가 죽은 뒤 황제의 계획이 급격하게 무너져내렸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클레어는 나를 당당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레오는…… 미안한 게 참 많은데.

        

       착해빠져서는 내가 이런저런 부탁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따라와서 도와주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둘이서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라도 할까. 그래도 요즘 들어 나랑 독대한다고 얼굴이 파랗게 질리지는 않으니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음.

        

       너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는지, 방안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더 불안하게 변하는 것 같아서, 나는 슬슬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황제는 과거에, 이 세상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접었다’라고 하더군요. 주로 저라는 이유 때문에.”

        

       “…….”

        

       아이들의 눈이 앨리스에게로 향했다.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실비아는 자기가 황제가 되는 것을 거부했지. 오로지 내가 제국의 적통이고 황제의 자리를 이을 자격이 있다면서. 아버지는 실비아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으시거든. 그래서 실비아가 그런 길을 싫어한다고 하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야.”

        

       “어?”

        

       앨리스의 이야기를 듣던 미아의 입에서 그런 의문사가 터져 나왔다. 방안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자, 미아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맞습니다. 저는 황제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인물이죠. 고아원 출신이니까요.”

        

       어차피 이 방 안에 있는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실상은 아주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이 말은 진실이기도 했다. 만약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클레어 팬그리폰’이었다면, 그건 거짓말이거나, 자기 자신도 진실을 알지는 못한다는 의미가 될 거다.

        

       “그런데도 제국의 황제는 당신을 차기 황제로 보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샤를로트가 물었다.

        

       “아버지는…… 제국을 이어 나갈 인물의 핏줄보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니까.”

        

       앨리스가 말했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핏줄을 신경 쓰고 있지만 말이야.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능력 있는 아이들을 골라올 정도로. 오히려 ‘정조’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 맞는 말이겠다. 원작의 클레어만 보더라도.

        

       “하지만 저는 황제가 그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그 계획은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말했지만, 연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마 법국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죠. 그런 사실은 저도 여기까지 들어와 보고 나서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만.”

        

       “…….”

        

       내가 말을 마치자, 한동안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황녀님은.”

        

       입을 연 사람은 소피아였다.

        

       “황녀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의 불씨를 끄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물론 그렇게 숭고한 생각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전쟁이 터지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느니, 그 많은 슬픔이 오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느니…… 내가 무슨 권리로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서 움직였을 뿐이다.

        

       만약 반대로, 그러기 위해서 전쟁이 필요했다면 나는 거리낌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거다. 다만, 그랬다간 해피엔딩까지 가는 길이 엄청나게 험난하겠지만.

        

       “그러니, 저는 이번에도 이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짐승들이 어디서 쏟아지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주체가 법국인지. 만약 법국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어떤 방법으로 그러고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 예상가는 부분은 있다. 이미 질리도록 돌아본 던전이니, 아주 이상한 길로—원작에선 나오지 않았던 쪽으로—빠질 일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 속의 내용이 반영된 세계라고 하더라도, 이 세계는 게임 속이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니, 변수가 생겼다면 그 원인을 미리 알아야 했다. 그래야 후에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을 테니까.

        

       아니면 ‘전에’ 찾을 수 있도록 움직이거나.

        

       내가 말을 마치자, 다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리 내 대답하거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거나 한 사람은 없었다.

        

       철컥.

        

       침묵을 깬 건 작은 금속음이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레나가 권총을 손에 쥐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는 그런 레나한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가시겠습니까?”

        

       거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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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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