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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각국의 중역들이 탄 마차가 대륙의 미래를 결정짓기 위해 한 장소에서 모였다.

     

    벌써 여러 번 개최된 연합군 총회의였다.

     

    “점점 회의가 잦아지는군.”

     

    왕국의 국왕이었다. 국경에서 점점 강력한 마물이 습격해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마왕군이 점점 가까이 진격해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제는 얼굴도 익숙해진 각국의 수장들이 자리한다.

     

    엄숙함이 테이블을 채워가던 도중, 위압감을 풍기며 한 명의 귀빈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예고에 없던 제국 실권자의 등장에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전부 모였는가.”

     

    제국의 3황녀,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그녀를 보고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헤이케였다. 현재 제국의 최고 권력자는 세 명의 승계권자다. 이 자리에 참석할 권리야 있지만 모습을 나타낸 건 무려 1년 만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승계전을 포기한 줄 알았건만.’

     

    지난 1년간 월광궁은 사실상 기능이 정지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담당한 업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고 점점 밀려만 가던 실정이었다.

     

    그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헤이케가 라우가까지 동원해 월광궁의 권한을 뺏어와 제국을 통치하던 중이었다.

     

    헤이케는 아셀라에게 마법의 부작용같은 사고라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가장 경계할 라이벌이 탈락했다면 승계전을 조기 종료해 차기 황제로 등극할 수도 있으니.

     

    헤이케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제국을 안정화하는 게 목표였기에, 아셀라의 부활은 경계할 만한 사건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온 아셀라가 한 바퀴 걸으며 각국의 수장들을 슥 둘러보았다.

     

    어느 하나 그녀의 냉철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한층 성장한 아셀라가 내뿜는 패기는 황제가 살아 돌아왔다고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한 장소에서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네리아 고트베르크의 앞이었다.

     

    “고트베르크 장관.”

     

    “제국의 달을 뵙습니다, 황녀 전하.”

     

    “병원장께서는 나오시지 않았는가.”

     

    “네. 외부 출장 중이셔요.”

     

    “그러한가.”

     

    또각또각, 그녀가 비어있던 자리에 앉았다. 본래 그 자리의 주인이었던 지저국 국왕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만 쩝쩝이고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마도국 선행부대가 곧 출발한다고 들었다.”

     

    아셀라가 화두를 꺼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면 용사파티가 마계로 진입한다. 그동안 연합군은 그들이 싸울 시간을 벌기 위해 마왕군을 전력으로 방어한다. 이것이 현 작전의 골자이지.”

     

    “그렇다. 문제라도 제기하고 싶은가. 제국 월광궁은 뒤늦게 회의에 참가하여 진행 상황을 못 따라오고 있잖은가.”

     

    헤이케의 지적에 아셀라가 코웃음을 쳤다.

     

    “내용을 모를 리가. 이 작전은 최초 월광궁에서 발의했어. 애당초 텔레포트 마법의 원리조차 이해 못 하는 건 그대들이 아닌가?”

     

    아셀라의 발언은 예리했다. 핵심이 될 텔레포트 마법은 마도국만이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도사 부대가 공격당할 수 있으니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았나. 때문에 선행부대가 설치하는 게이트들은 소형이야. 현지에서 상황에 대응해 기동성을 높이려면 보다 공간마법의 고위계에 도달한 마법사가 필요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본녀가 용사 파티를 직접 이끌어주마.”

     

    “직접이라니?”

     

    “파티에 참가하겠다는 의미야.”

     

    아셀라의 폭탄 발언에 회의가 술렁였다.

     

    한 국가의 최고위직이 직접 최전선에 나서서 싸우겠다니,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소리였다.

     

    “황녀 전하, 그게 진심이시오?”

     

    국왕이 심각하게 물었다. 아셀라는 눈을 얇게 흘기며 농담이 아니라는 의사를 밝혔다. 마도국에서 즉시 반발했다.

     

    “이미 용사 파티에 합류할 마도사는 지명을 완료했다. 이제와 변경할 수는 없다.”

     

    “걔, 나보다 강하니?”

     

    얼음장 같은 눈빛을 쏘아내는 아셀라. 마도국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가 연무회에서 보였던 인상적인 6위계 시연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들어와.”

     

    아셀라의 명령에 회의장 문이 열렸다.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한 명의 전사.

     

    용사, 리셰였다.

     

    “으음, 용사님인가.”

    “무슨 이야기를…”

     

    아셀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미 용사 파티는 대부분 제국민으로 편성됐다고 알고 있다. 제국민이라서가 아니라, 여기 용사와 가장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이들을 선택한 결과지.”

     

    리셰를 돌아보는 아셀라.

     

    “어떠한가, 용사여. 그대가 보기에 본녀는 그대와 동행할 마법사로서 자격이 충분한가?”

     

    리셰는 아셀라와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었다.

     

    “네. 저랑 합도 맞춰보셨으니까요. 황녀님께서 와주신다면 큰 힘이 될 거예요.”

     

    “그렇다는군.”

     

    리셰의 등에 양팔을 올린 아셀라가 회의장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본녀는 마왕 토벌 외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적인 화제가 걱정이라면 이 일을 비밀로 하여도 좋다. 외부에는 예정대로 마도국의 마도사가 파티에 참가했다고 발표하여라.”

     

    “…그 조건이라면.”

     

    마도국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인 법국도 납득했다.

     

    교황이 제안했다.

     

    “황녀 전하처럼 위대한 분께서 위험한 장소에서 싸우신다고 하시면 제국민, 나아가 대륙의 민중이 불안해할 걱정이 드는군요. 이 자리의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기아스로 맹약하면 어떻겠습니까.”

     

    아셀라가 교황을 흘겨보았다. 표현은 저래도 결국 제국에 용사 파티의 전권을 뺏겼다는 걸 알리기 싫은 의도다. 항상 음흉한 국가다.

     

    하지만 아셀라가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라스에게 이 일은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

     

    “보안은 중요하지. 그리 하여라.”

     

    아셀라의 용사 파티 합류가 결정됐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헤이케가 아셀라를 붙잡았다.

     

    “제정신이냐, 아셀라. 목숨을 내다 버릴 셈인가? 황실의 통치자가 즉각 지원도 못 받는 최전선에 나가겠다니!”

     

    “재밌는 표현이구나.”

     

    아셀라가 코웃음을 쳤다.

     

    “헤이케, 너는 늘 용감한 척하면서도 최전선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명령만 내리고 있었지.”

     

    “당연한 판단 아닌가. 지휘관이 맨 앞에서 먼저 죽으면 부하들이 전멸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잖나. 전투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그들을 승리로 이끄는 게 내 의무다.”

     

    “그래, 네 말도 올바르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셀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난 명령만 내리기는 지쳤어.”

     

    헤이케로서는 변해버린 아셀라의 태도가 갑작스러웠다. 아무리 충동적인 성격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이렇게나 극단적이었던가.

     

    “아셀라, 승계전은 포기한 거냐?”

     

    “아, 황제 말이지.”

     

    헤이케의 직접적인 질문에 아셀라는 흥미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또르르 굴렸다.

     

    이마를 타고 내린 하얀 새치를 만지작거리고는, 입바람을 후 불어 날려버렸다.

     

    “무거운 관 따위는 필요 없어. 너나 가져.”

     

    “…뭐?”

     

    활짝 입꼬리를 올리고 자리를 떠나버리는 아셀라.

     

    헤이케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리를 떠나는 아셀라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미래를 바꿀 확실한 방법.’

     

    세상을 멸망시킨 폭군, 황제 아셀라.

     

    이제 그녀는 역사에 없다.

     

    황제로서의 자신이 새겨져 있었던 수많은 미래의 시간선도, 확실하게 삭제됐다.

     

    그리고 이제는.

     

    기록되지 않을 용사 파티의 마법사 아셀라만이 남는다.

     

    ‘라스.’

     

    내가 너를 데려다줄게.

     

    네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미래로.

     

    조금만 기다려.

     

    너를 해칠 위험한 건, 용사와 함께 전부 쓰러트리고 올 테니까.

     

    그리고.

     

    그리고 나면….

     

     

     

    ***

     

     

     

    “입원 이틀 차셔? 통증, 어제보다 괜찮으시고. 밥이 맛이 없어? 원래 그래요. 나도 똑같은 거 먹어요. 나중에 계란 하나 더 넣어드릴게. 심하시면 여기 버튼 누르시고. 예, 내일 봅시다.”

     

    회진을 돌며 일과를 시작한다. 복도를 걸으면 뒤로 레지던트가 우르르 따라온다.

     

    종합병원이 확장 개원한 지도 3개월. 신입 교육도 겸해서 진료와 수술은 꾸준히 뛰고 있다.

     

    의료 인력은 300명까지 확충했는데,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현대 사회와 비교하면 노인 숫자가 적어서 장기 입원자가 적어서 다행이다.

     

    그나마 새해가 되어 기존 레지던트들이 연차가 차고 육성소에서 신입들이 들어오니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

    ○ 연금술 B

    ○ 의학 B+

    ―――――――――――

     

     

    연금술도 B로 올랐고, 의학은 A가 되기 직전이다. 대부분의 스킬이 A로 승급 직전이었다.

     

    어느 정도 병원도 안정이 되었기에, 이제는 랭크가 더 올라서 디버프가 최고 등급이 되기 전에 슬슬 다녀올 때가 됐다.

     

    “기슈타, 전에 얘기했던 모험 말인데.”

     

    “오, 혹시 어머니께 다녀오자는 얘기 말이냐?”

     

    “그래. 탐험대를 꾸려야겠어. 6개월 코스로.”

     

    “준비 끝났다!”

     

    천둥족 다섯 개 부대가 순식간에 출정 준비를 마쳤다. 천룡에게 다녀온다고 하니 너도나도 지원해서 선발대회까지 열었다더라.

     

    “이번 연합군 회의는 참석 못 하겠네.”

     

    슬슬 용사 파티 멤버도 정해졌고, 마도사 선행 부대가 출발할 때가 됐다. 그 내용은 변동될 게 없으니 네리아에게 맡겨도 되겠다 싶었다.

     

    “가볍게 다녀오자고. 쳐들어오는 마왕군 정찰도 겸해서.”

     

    “하하, 마족 놈들은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한데.”

     

    “먹지 마, 지지야. 저주에 의한 복통과 메슥거림, 장염을 동반할 수 있어.”

     

    “그러냐? 아쉽게 됐군.”

     

    그렇게 나는 천둥족 대병력과 함께 평원을 내달리며 조금 긴 산책의 막을 열었다.

     

    매머드에 올라타 후국령을 넘어 공국으로, 여러 소국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 전진한다.

     

     

    바닷가가 끝나는 제7 부두의 국경.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소금 사막이 우리를 맞이했다.

     

    인간이 살지 않는 미개척의 땅, 중간계의 시작점이었다.

     

    “어머니는 저 너머에 계신다, 라스! 허리를 붙잡아라!”

     

    기슈타가 내 팔을 끌어당기고는 기세 좋게 매머드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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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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