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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댄서 님, 상대 시체 위에서 승리의 횃불 춤!

       -아, 이건 못 참지ㅋㅋ

       -닉값 제대로 하시네ㅋㅋㅋ

         

       허수아비는 철저히 회사에서 만들어준 토치 댄서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어떤 게임을 해도 최상위권의 실력을 보였다.

       그의 실력이 장비 덕이라고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그처럼 눈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해보라고 하면, 몇 주를 연습해도 기본적인 조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실력뿐만 아니라 멘탈도 튼튼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두고 악담을 퍼붓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그가 보육원에서 경험한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몸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오늘 저희 팀이 진 이유는 저와 토치 댄서 님과 손발이 안 맞았기 때문이에요…….”

       “예? 뭐가 안 맞아요?”

       “어? 엇, 어엇! 시, 실수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또 논란이 하나 추가되는 건가요.

       -국내 모 유명 스트리머, 생방송에서 장애인 조롱, 충격.

         

       어떻게 보면 그가 방송에서 했던 것은 지금 그가 하는 괴물서커스와 다르지 않았다.

         

       -토치 댄서 님, 10만 원 후원! 데굴데굴 갑시다!

       -오옷, 댄서 님의 개인기라는 그?

       -잠깐만요, 이거 웃으면 우리 나쁜 놈 되는 거?

       -데굴데굴!

       -데굴데굴!

         

       사람들은 다수와 융화되려는 소수자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승리하는 아웃사이더를 숭배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응원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캐릭터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PD의 지시에 잘 따르는 그였지만, 한 가지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바로 트릴 트릴로 시리즈에 대한 것이었다.

         

       TTT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애정을 쏟고 영상까지 올린 게임이었다. TTT만큼은 처음의 콘셉트대로 얼굴이나 음성 노출 없이 오직 게임 내 요소만 활용해 영상을 만들었다.

         

       [인사, 춤, 도발? 움직이지 않고 감정 표현만으로 ‘가시 난사’ 모두 피하기~]

       [이딴 게…도적의 비기……? ‘골판지 상자’를 덮어쓰고 있으면 괴물이 못 보고 지나치는 이스터 에그!]

       [새해 시작도 굴욕의 또더스타인! 엉덩이 밀어내기로 최종 보스 능욕!]

         

       회사에서 영상 편집과 계정 관리는 지원해줬으나,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짜는 것은 모두 그 혼자 했다. TTT 동영상은 토치 댄서의 인기에 비해 조회수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스트리밍 방송보다 이 작업을 더 즐겼다.

         

       그렇게 얻은 수입을 그는 전국의 전능원 시설에 익명으로 기증했다.

         

       그들을 억압하던 사이비 종교단체는 해체되었지만, 그 재단이 관리하던 보육원들은 아직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었다. 같은 종교단체 산하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접점은 없는 사이였지만, 그는 그들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이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부끄러워?”

         

       아르노의 외침에 허수아비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쓴 댄서로서의 가면이라 그만 옛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최근 반년간은 원더스타인으로서만 살아왔었으니 말이다.

         

       “잠시 딴생각을 했네요.”

         

       아르노는 자신을 멍청히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누더기에 대충 박음질해둔 그의 눈과 입은 실력 없는 재봉사가 만든 인형을 보는 것 같아서 퍽 우스웠다.

         

       그는 자리에서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고는 예의 그 호들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잠깐, 그런데 이게 아르노 씨의 본 모습인가요? 요정이었어요?”

         

       허수아비는 아까 자신에게 장난을 쳤던 페어리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까 그것들과 외형적으로 닮은 점이 많았다.

         

       머리에 솟은 더듬이도 그렇고, 뾰족한 귀도 그렇고, 반짝거리는 피부도 그렇고, 남자로서도 여자로서도 성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매끈한 몸매도 그랬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덩치가 그들보다 몇 배는 크다는 것과 그녀의 등에는 날개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크다고 해도 페어리의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고, 사람으로 치면 어린애 수준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루엘로보다도 작았다.

         

       “얘기하기 좀 길어. 사람 없는 데로 갈까?”

         

       그녀는 대놓고 자신들의 대화를 안줏거리 삼아 술을 마시려는 근처의 노움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그들은 입을 쩝 다시며 자기네들끼리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둘은 함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누었다.

         

       “바로 도망쳤다고요?”

       “어쩔 수 없었어. 마신의 영역 안에서는 요정도, 마귀도, 다른 마신의 신도들도 본인의 힘을 발휘하기 힘들어.”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날아온 그들.

       아르노는 환상이 다 해제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이 드러난 것을 알고 재빨리 투명화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원더랜드의 경비병들이 들이닥쳤다.

         

       “무단침입자들이다!”

       “체포해라!”

         

       가뜩이나 무슨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던 곡예사들이었다. 그들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자신들이 온 곳이 원더랜드라는 것을 알아챘어.”

         

       허수아비는 그들이 겁에 질렸으리라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명확하게 그 실체를 봤던 자신과 달리 그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말로만 듣던 저승이었다.

         

       “많이 동요하던가요?”

       “아니, 기뻐서 날뛰던데?”

       “…….”

         

       아르노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아, 물론 경비대 쪽에서 계속 ‘산 사람들’, ‘침입자들’이라고 불렀으니 자신들이 죽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겠지.”

         

       허수아비는 그제야 납득이 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로드 판타스틱이 그랬어. 아마 크리스티앙 정도 되는 위인의 유작을 초연하다 보니까 이게 일종의 ‘제사’로 작용해 우연히 어비스로의 통로가 열린 거 같다고. 그리고 그 초대장은 무대 위의 ‘연기자’들만 받은 거라고 설명했지. 알다시피 당신은 잡일꾼이고, 나는 마야의 목소리를 맡긴 했지만, 서막에서는 대사가 없었잖아? 그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설명하니 다들 이해하더라고.”

         

       허수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대도시 한가운데서 아무리 전설적인 공연을 했다고 해도 이렇게 어비스로 날아가는 경우가 있을리 없었다.

       거기에 3가지 조건이 더해졌기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첫째는 공간이었다.

       그들이 공연했던 공간은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살지 않은 건물이었다. 물질계와 어비스 사이의 장벽 역할을 하는 것이 지성체의 영적 흔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곳은 사실상 폐가와 비슷했다.

         

       둘째는 관객이었다.

       공연, 즉, 키르쿠스를 향한 제사가 덜 위협적인 것은 바로 관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내뿜는 감정적 에너지가 제사가 가진 위험성을 상당히 감소시켰다.

         

       그런데 이번 것은 크리스티앙의 유작의 초연이라는 엄청난 이름에 비해 관객은 달랑 1명이었다. 심지어 그는 눈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 상충 효과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로드 판타스틱이 추측한 대로였다.

         

       그리고 허수아비는 그들이 모르는 3번째 요인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가 객석 아래에 둔 별빛이었다. 키르쿠스의 유물 파편인 그것이 경비대원들이 말한 대로 원더랜드로 넘어오는 입장료로 작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경비대원들의 분위기가 험악해 보이자, 그들은 탈출을 시도했어. 일부는 도망치고 일부는 잡혔지.”

       “누가 잡혔나요?”

       “3명이야. 판타스틱, 홉스, 미노바.”

       “단장들만 잡혔군요.”

       “그 사람들이 경비대원들을 막아서고 애들보고는 달아나라고 했으니까.”

       “지몬도요?”

       “안 어울리긴 하지. 그래도 그렇게 했어. 이제 당신 얘기나 해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허수아비는 그녀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간추려 말해주었다.

         

       “잡혔다가 도망친 애가 있다고?”

       “네. 그 사람을 찾다가 우연히 아르노 씨를 보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제 대답해 주세요. 아르노 씨는 요정인가요?”

         

       원작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그의 정체를 마주한 허수아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그의 호감 가득한 시선을 애써 못 본척하며 중얼거렸다.

         

       “마, 맞아. 날개가 떨어지긴 했지만……난 페어리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재빨리 덧붙였다.

         

       “이, 이상하지? 인간도 아니고 요정도 아닌 것이…….”

         

       그녀의 말에 허수아비는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뇨. 무척 예쁜데요?”

         

       그의 말에 아르노는 울컥했다.

         

       “빈말은 집어치워. 하나도 안 기쁘니까.”

       “진짠데…….”

       “흥. 아주 사탕발림이 입에 발렸어. 당신 같은 남자 잘 알아. 평소에 달콤한 말을 아무리 해줘도, 결국 옆에 두는 여자는 따로 있잖아.”

       “옆에 둬요?”

       “일일이 말꼬리 잡지 마!”

         

       허수아비는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버럭버럭 성을 내는 그녀를 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신이 뭘 잘못 했나?

       환상을 벗어던진 아르노는 완전 애 같았다. 아까 그 페어리들처럼 말이다.

         

       “됐어. 그건 집어치우고, 당신 모습이나 설명해 봐. 죽은 자처럼 선명한 페르소나잖아? 어떻게 된 거야?”

         

       그녀의 말에 허수아비는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나 이상한가요?”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은 복장만 좀 바뀌었을 뿐이지 모두 평범한 모습이었어. 무대 경력이 가장 긴 로드 판타스틱의 콧수염이 몇 배로 자라난 것을 빼면 말이야.”

         

       허수아비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까지는 대충 원더랜드에 와서 페르소나가 되었다고 설명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혼자 이렇게 변했다면 그렇게 둘러대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르노가 멀쩡히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환상을 덮어 씌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겠지만, 그녀 역시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만들 수 있는 환상은 한 사람분, 그것도 고작 몇 시간 유지하는 게 한계라고 했다.

         

       아니, 애초에 여기서 원더스타인의 모습을 하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거기다 만나는 동료마다 자신의 이름을 여기서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것도 수상했다.

         

       “뭔가 숨기고 싶은 사정이 있는 모양이지?”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그래. 내가 요정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우리 말이야……아예 오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건 어때?”

         

       허수아비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정체를 숨기자고요?”

       “그래. 당신은 이곳 주민인 척, 나는 놀러 나온 요정인 척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갈 때는 슬쩍 뒤따라가는 거지…….”

         

       허수아비는 그녀의 제안을 곰곰이 검토해보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괜찮은데요?”

         

       그가 그녀의 계획을 긍정하는 순간, 상태창에 알림이 떴다.

         

         

       *서브 퀘스트-가면극

       : 원더랜드에서의 당신은 토치 댄서입니다.

         

       달성 조건

       : 아르노를 제외한 일행들이 원더랜드에서 모두 나갈 때까지 그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들키지 마십시오.

         

       성공 시 보상

       : 페르소나 1기를 원더랜드 밖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페르소나를 데리고 나갈 수 있다?

       처음 보는 보상의 내용이 솔깃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어떤 보상인지 자세히 알기 힘들었다.

         

       그때, 아르노가 손뼉을 짝 쳤다.

         

       “좋아. 그럼 정체를 숨기는 것으로 결정!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할 거야? 혹시 생각해둔 게 있어?”

         

       허수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오즈라고 부르면 됩니다. 당신은요? 아, 그러고 보니 부단장으로 활동할 때 쓰던 루미온이라는 이름이 본명인가요? 아니면, 아르노가……?”

       “둘 다 맞아. 전자는 요정 세계에서의 이름이고, 후자는 인간 세계에서의 이름이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아르노는 지금까지 2명에게만 허락했던 애칭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루미라고 불러.”

       “하하,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루미 씨. 그럼 이곳을 나갈 때까지 잘 부탁하겠습니다.”

       “나야말로, 오즈.”

         

       허수아비와 날개 잃은 요정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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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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