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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공항 냄새, 공항 냄새가 나.”

         

       잠옷 차림으로 나온 이아린은 졸린 눈을 슬쩍 비비고는 구겨진 잠옷을 손으로 탁탁 털어서 주름을 폈다. 그리곤 사뿐사뿐 걸어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진성의 주위를 맴돌았으며, 잠을 자느라 망가진 머리카락을 휘날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수리로 진성의 팔을 꾹꾹 누르기도 하는 등, 잠에 반쯤 취한 채 동물 같은 행동을 계속했다.

         

       “여러 문화권의 냄새가 섞인 냄새. 치즈 냄새…? 아니, 고기 냄새인가? 응. 고기 냄새에 왠지 짠 냄새…. 거기다가 약간의 비린내도 좀 나는 것 같은데…. 나무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녀는 졸음 때문에 눈을 반개한 채 코를 쫑긋 움직이며 진성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 잠에서 깨어나자 그러한 행동을 멈추고 진성과 거리를 약간 벌렸으며, 냄새를 맡는 대신 초점이 또렷하게 잡힌 눈동자로 진성의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흠.”

         

       이아린의 시선이 멈춘 곳은 진성이 손에 들고 있는 짐.

         

       꽤 커다란 크기의 캐리어였다.

         

       그녀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광택이 눈부신 캐리어를 참치통조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고, 어서 저 참치통조림을 따서 자신에게 달라는 고양이처럼 눈빛으로 진성에게 요구했다. 이러한 이아린의 모습은 이리저리 뻗친 머리카락에 더해져서 정말로 표범이나 사자를 연상케 했다.

         

       “…”

         

       하지만 맹수의 눈으로 아무리 노려본다고 한들 진성이 그 요구에 따르는 일은 없었다.

       진성은 눈빛으로 보내는 이아린의 요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듯 평온한 표정이었으며, 졸음이 가시고 그 자리에 욕망이 들어차기 시작한 이아린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짧은 시간 동안 왠지 모를 긴장감 속에서 대치하였고, 그 침묵 속에서 이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라비.”

       “왜 그러느냐?”

       “왜 이렇게 뜸을 들여.”

         

       그녀는 진성에게 타박하듯 그렇게 말하고는 당당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쫙 펼친 손은 거침없이 진성의 앞으로 향했고, 어서 자기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리라는 듯 손끝이 접히며 재촉까지 했다.

         

       “여행 갔다 왔으면 가지고 와야 하는 거 있잖아.”

         

       이아린은 그만 빼라는 듯 내민 손으로 진성을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성은 캐리어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이아린의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놓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통보를 했을 뿐.

         

       “선물은 없느니라.”

         

       그러자 이아린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까와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로 손을 내민 채 다시 말했다.

         

       “여행 갔다 왔으면 가지고 와야 하는 거 있잖아.”

         

       진성은 이러한 이아린의 행동에 똑같이 대응해주었다.

         

       “선물은 없느니라.”

         

       진성 역시 시간을 돌린 것처럼 똑같은 어조로,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통보했다. 그러자 그제야 이아린은 충격받은 얼굴로 진성을 바라보며 경악을 내뱉었다.

         

       “뭐…?”

         

       그 얼굴은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라며 무언으로 항의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아니.

       무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아린은 보법을 밟으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단숨에 진성의 앞까지 거리를 좁혔고, 팔을 위로 올려 진성의 어깨를 꽉 붙잡곤 그를 앞뒤로 흔들며 항의했다.

         

       “여행 갔다 왔는데 특산품을 안 사와?! 어디 갔다 왔는데?!”

       “그건 비밀이니라.”

       “왜 비밀이야?! 기념품 구할 수 없는 곳에 갔다 왔어? 남극? 북극? 아닌데. 생선 냄새랑 짠 냄새 나는 거 보면 바닷가 근처이거나 섬나라일 테고, 식생활 자체가 절여서 뭔가를 먹는 나라일 가능성이 큰데!”

         

       이아린은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머리를 팽팽 돌리며 진성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 추리해냈다.

         

       “아니지, 고기 냄새도 나는 걸 보니 육지 쪽인가? 그럼 유럽? 어쨌든 다녀왔으면 기념품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진성을 앞뒤로 흔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어깨를 꽉 부여잡은 채 정수리로 그의 가슴을 종이라도 치듯 쿵-쿵 때렸다. 물론 그녀와 비교하면 한없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몸을 가진 진성이었기에,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벽에 머리를 박듯이 아주 살살 박았다.

         

       “아니, 면세점에서 뭔가를 사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면세점? 그런 데서 살 이유가 있느냐?”

         

       면세점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진성은 의아한 듯 물었다.

         

       거기서 이아린이 탐낼만한 물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의류는 이양훈이 가지고 있는 광양 그룹의 자회사의 것을 이용하고 있고, 핸드백이나 신발, 드레스 같은 것은 일류 디자이너에게 직접 받는다. 시계 같은 것은 연을 맺고 있는 스위스의 일류 장인에게서 받아오고 있으며, 가구 역시 전 세계의 가구 장인에게서 직접 받아온다. 거기 들어가는 재료 역시 인맥이 없으면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것들임은 당연하다.

         

       향수?

       이양훈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향수 회사에 주문해 만든 향수를 사용한다.

         

       건강식품?

       역시 면세점에서 살 필요가 없다.

         

       그런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직접 구해온 귀한 것들을 수시로 먹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인맥과 돈을 이용해서 주기적으로 영약이 될만한 것들을 구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내공을 늘리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면세점에 집착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야 했다.

         

       진성은 의문을 품고 이아린을 바라보았고, 이아린은 답답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목소리를 확 줄여서 진성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거 있잖아 그거. 생명의 물.”

       “생명의 물?”

       “에이, 이 오라비 봐라. 눈치가 없어, 눈치가. 러시아 애들은 잘 알아듣던데.”

         

       이아린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술 말이야, 술.”

       “술이라…?”

         

       진성은 그녀의 요구에 피식 웃었다.

         

       “나 역시 미성년자인데 어찌 그것을 사 올 수가 있느냐?”

       “아 맞아, 그랬지…?”

         

       진성의 어이없다는 듯한 반문에 이아린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진성을 빤히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오라비는 분명히 성인이 아닌데 왜 성인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아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고, 진성의 어려 보이는 얼굴을 머리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을 떼어내었고, 대신에 그의 팔을 붙잡고 가자는 듯 힘을 주었다.

         

       마치 동물이 옷자락을 입으로 살짝 물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봐 오라비. 선물을 안 챙겨왔으니 선물을 만들어서라도 줘야지?”

         

       그녀는 마치 돈을 뜯는 것처럼 살짝 건들거리는 말투로 말하며 그를 저택의 지하에 있는 어떤 방 앞까지 데려갔다.

         

       끼익.

         

       그녀가 금속으로 된 문을 열자 육중한 소리와 경첩이 내는 소리가 조용한 어둠 속에 퍼졌고, 살짝 열린 틈새로 짐승 냄새가 확 풍겨왔다.

         

       “흠.”

         

       털 달린 짐승에게서나 나는 냄새.

       평범한 개나 고양이보다는 설치류에게서나 날법한 냄새였다.

       게다가 그 냄새에는 물비린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카피바라?”

       “응. 카피바라.”

         

       그녀가 안내한 곳에는 카피바라가 잔뜩 있었다.

         

       얼핏 세어도 열은 넘을 것 같은 카피바라들은 제각기 마음에 드는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떤 카피바라는 바닥에 딱 붙어서 뻣뻣해 보이는 털을 축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어떤 카피바라는 구석에 만들어놓은 거대 쳇바퀴의 위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대다수 카피바라는 지하에 만들어놓은 수영장에 들어가 있었는데, 온천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속에서 축 늘어진 채 온천을 즐기는 할아버지들처럼 눈을 감은 채 한껏 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반쯤 녹아서 온천과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뻣뻣하면서도 묘하게 복슬복슬할 것 같은 털 뭉치들이 한껏 귀여움을 뽐내며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카피바라들은 문소리가 들리자 귀를 쫑긋 세우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라면 당장 달려들어서 애교를 부리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열린 문 틈새로 이아린의 모습이 보이자, 카피바라들은 털을 바싹 세우고는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수영장 밖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카피바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번개처럼 움직여 수영장 안으로 도망갔으며, 수영장의 계단 부근에 있던 카피바라들은 열심히 물장구를 치며 수심이 깊은 곳으로 헤엄쳤다. 그리고 겁이라도 집어먹은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이아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싶으면 덜덜 떨면서 물속으로 잠수했고, 숨이 필요할 때만 슬쩍 코를 내밀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물론 물이 깨끗해서 물속의 카피바라가 훤히 보이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카피바라는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진성은 이아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흠.”

       “뭐, 왜.”

         

       쿵.

         

       이아린은 진성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괜히 화가 나기라도 하는지 슬쩍 발을 움직여 문을 툭 쳤다. 하지만 툭 쳤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육중한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는 마치 종을 치는 것같이 웅장했다.

         

       첨-벙!

       끼익!

         

       당연하게도 그 소리를 들은 카피바라는 더 겁을 집어먹었고, 아예 자신이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깊이 잠수했다.

         

       “카피바라가 이렇게 겁을 먹을 만한 녀석들이 아니거늘. 어찌 겁을 먹는고?”

         

       이아린은 그의 물음에 당당하게 답했다.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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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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