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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여울은 제 몸에 걸친 의복과 금으로 된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린 검 한 자루가 전부였고, 백우진 또한 잔뜩 들고 온 식량을 모두 먹어 짐이 가벼워졌으니.

         

       문제는 마음이었다.

         

       “엄청 신경 쓰이네.”

         

       백우진의 시선 끝에는 입을 헤 벌리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안다.

         

       노인은 마경의 그 어떤 존재도 건드릴 수 없는 지고의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외로움이라는 건 일격으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절대자마저도 죽일 수 있는 지독한 녀석 아니던가.

         

       “우리 할아버지도 모시고 가면 안 돼…?”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백우진만이 아니었다.

         

       금여울 또한 잠시지만 함께 지낸 노인에게 정과 연민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 있어 노인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지 않은가.

         

       “안 돼.”

         

       백우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가능하기 때문.

         

       마기에 능숙한 천마신교의 고수나, 천마라면 알 것이다.

         

       노인에게 흐르는 익숙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천마신공은 오로지 당대의 천마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

         

       그런데 그것을 익힌 이가 둘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인사 드리고 출발하자.”

       “응….”

         

       두 사람은 무거운 걸음으로 노인에게 다가갔다.

         

       멍하니 바라보던 우중충한 빛이 살짝 가려지자, 노인의 시선이 아래로 옮겨졌다.

         

       며칠간 함께 지내며 자신을 놀아주던 두 사람을 발견한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영감님, 우리 다녀올게요.”

       “가, 가는 거야…?”

         

       노인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하게 변했다.

         

       며칠간 하루 열두 시진을 함께 놀며 노인을 설득한 결과가 바로 이거다.

         

       처음에는 천마군림보를 발사하며 절대 못 가게 하겠다며 어찌나 난동을 부리던지.

         

       백우진은 그때 금여울 대신에 맞은 천마군림보 때문에 아직도 허리가 쑤셨다.

         

       “할아버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다시 올 거예요!”

       “아, 알았어….”

         

       어두워진 노인의 낯빛에 금여울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선물도 많이 가지고 올게요! 엄청 맛있는 음식이랑 술도 잔뜩!”

       “으, 음식? 술?”

       “네!”

         

       금여울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먹어보기 힘든 요리들을 줄줄이 나열하면서 그 맛을 설명하니 노인의 어두운 안색이 서서히 제 빛을 찾았다.

         

       “그거 다 가지고 올 테니까, 그러니까….”

         

       금여울이 황급히 등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씨잉…, 왜 이렇게 슬퍼….”

       “…….”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준 뒤, 노인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다녀올게요.”

       “으, 응!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 얼른 다녀와!”

         

       조금이나마 밝아진 노인의 얼굴이 무겁게 내려앉은 두 사람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었다.

         

       “가자.”

       “훌쩍…, 응….”

         

       백우진은 금여울의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 * *

         

         

       천마는 사흘에 한 번씩 기분 좋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열병이 지독하구나.”

         

       사흘.

         

       그것은 마경으로 떠난 백우진이 얼굴을 비추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신교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녀의 기감에 백우진의 기척이 포착되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마다 그녀는 동시에 씁쓸하게 웃었다.

         

       “이래서야 남편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와 다를 게 무언지….”

         

       어쩌면 꿈꿔온 일이기에 더욱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맺어진 순간부터 그녀는 그 순간을 바랐다.

         

       마왕의 목을 베어 용사의 업을 달성한 이후의 삶.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의 평범한 삶.

         

       그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평생 검을 놓지 않으리라는 맹세마저도 내던지려 했다.

         

       고즈넉한 저택에서 그와 함께 살고 싶을 뿐.

         

       그가 나갈 때 배웅해주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그런 소소한 삶을 꿈꿨다.

         

       “나는 지금 그때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가….”

         

       내심 바라게 된다.

         

       지금과 같은 순간이 조금만, 조금만 더 길게 이어지기를.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그러나 그것도 서서히 끝이 다가올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나흘….”

         

       사흘마다 돌아오겠다 약속한 백우진이 나흘째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떠났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마경은 어디로든 열려 있으니, 지금까지 나갈 방향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속이 쓰렸다.

         

       대업을 달성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겪는 모든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거기에 제법 달큰하게 취해 있었다.

         

       “조금 더 곁에 두려 했건만.”

         

       지금이 끝이다.

         

       그와 온화한 표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다음에 만난다면 그때는 필시 서로에게 검을 겨누어야만 하기에.

         

       적을 상대할 때의 그는 한없이 매정하고, 비정함을 알기에.

         

       “조금 더 그 따스한 표정을 담고 싶었건만.”

         

       이마저도 욕심이었던가.

         

       달콤한 한바탕 꿈에서 이제 깨어나려 할 때.

         

       “…후후.”

         

       그녀는 별안간 웃었다.

         

       느껴졌다.

         

       허전하게만 느껴졌던 그녀의 드넓은 기감 속에 백우진의 기척이 또렷해졌다.

         

       동시에 의아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경에서 사람을 데리고 오다니.”

         

       그 죽음의 땅에서 사람을 만났단 말인가.

         

       “궁금하군.”

         

       그녀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과연 그가 마경에서 마주친 이는 어떤 인물일지 몹시도 궁금해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콰앙!

         

       그녀는 지붕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허공을 유영하여 백우진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보인다.

         

       피로해진 눈으로 비척거리며 걸어오는 백우진의 모습이.

         

       지난번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또 체내에 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원인이 불명했던 전과 달리, 지금은 그 원인이 뻔히 보인다.

         

       그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여인.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백우진의 앞을 가로막은 그녀가 물었다.

         

       “요상한 걸 주워 왔구나.”

         

       백우진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경에서 죽어가고 있길래 좀 구했어.”

       “마기까지 빨아들여 가면서…, 말이지.”

       “얘는 죽지만, 난 이 정도엔 안 죽으니까.”

         

       천마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너는 너구나.”

         

       세월이 제법 흘렀고, 생김새도 달라졌고, 용사라는 무거운 업에서 벗어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다운 행동을 한다는 게 그녀는 그저 기뻤다.

         

       이거면 됐다.

         

       그가 돌아왔음에 안도했고, 따스한 표정을 보았으니 오늘은 다 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등을 돌리려던 순간.

         

       “나 이제 떠날까 해.”

         

       그의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떠난다?”

       “응.”

       “천마신교가 원하면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보였나.”

         

       그녀가 나름 흉흉한 기세를 끌어 올리며 말했지만, 백우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나한테는.”

         

       정론이었다.

         

       그녀는 그를 이곳에서 죽일 생각도 없고, 영원토록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약간의 바람 정도는 있지만, 그가 이곳에 한평생 머물지 않으려 할 것임을 잘 알기에.

         

       “…언제 떠날 생각이지?”

       “몸 좀 추스른 뒤에. 대략 하루 이틀이면 되겠지.”

       “그런가.”

         

       그녀는 보내주고자 마음먹었다.

         

       그와 멀어지는 건 여전히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

         

       오히려 짧게 헤어지고 난 뒤, 오래도록 함께하게 될 테니.

         

       다만,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웠다.

         

       비록 앞으로 살아갈 영원무궁한 삶에 있어 찰나에 불과한 한 자락의 순간일지라도 자신을 적으로서 대하는 그의 비정한 얼굴을 보아야만 하기에.

         

       “그럼 오늘 저녁은 함께하지.”

       “…그래.”

         

       백우진 또한 별말 없이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두 사람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저녁 식사가 어쩌면 서로에게 애틋한 미소를 보이며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 * *

         

         

       천마신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발간 등불이 점점이 비추는 길을 따라 백우진은 그녀와 함께하는 자리에 도착했다.

         

       “왔느냐.”

       “응.”

         

       식탁 위에는 이미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가 올 것임을 예측하고 그녀가 때에 맞춰 준비한 것들이라 뜨거운 김이 펄펄 솟아올랐다.

         

       그중에는 중원의 음식과는 거리가 먼 것들도 존재했다.

         

       그녀와 먹곤 했던 이세계의 음식들.

         

       “특별히 준비한 것들이니, 남겨선 안 돼.”

         

       백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남길 리가.”

         

       중원의 것과 이세계의 것이 합쳐진 식탁.

         

       백우진은 그 두 가지 맛을 즐기며 풍족한 식사를 했다.

         

       두 사람이 먹기에 한참이나 많은 양이었지만, 결코 남는 것은 없었다.

         

       천마도, 백우진도.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식사를 만끽했기에.

         

       젓가락이 향할 곳이 없게 되었을 즈음, 천마가 입가를 훔치며 말을 꺼냈다.

         

       “너도 알고 있겠지. 오늘이 우리가 웃으며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운명이, 신이 그리 만들었다.

         

       제 삶을 두 번이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빌어먹을 신이.

         

       하다못해 이제는 전 연인까지 적으로 삼게 만들고야 말았다.

         

       “네가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퍽 즐거웠다.”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나도.”

         

       백우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이대로 이곳에 머문다면, 어쩌면 그녀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잠깐 했을 정도로.

         

       천마의 말이 이어졌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 예전에 네가 그렇게 말했었지.”

       “어…, 그랬지.”

         

       백우진은 기억 속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히 그런 말을 하기는 했는데, 어떤 상황에서 했었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또 그녀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일까.

         

       “그래서 며칠 생각해 보았다. 너와 내가 각자의 길로 흩어질 때, 어떤 끝이 가장 좋은지.”

         

       그녀의 손이 별안간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백우진의 목덜미가 무형의 기운에 붙잡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사이,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천마는 그 뒤를 유유히 따라왔다.

         

       당도한 곳은 붉은색 등이 곳곳을 밝히고 있는 침소였다.

         

       그를 움켜쥐고 있던 무형의 기운이 백우진을 커다란 침상 위로 내던졌다.

         

       그가 어리둥절한 사이, 천마가 눈에서 요요한 빛을 뿌리며 입을 열었다.

         

       “낮에는 너와 함께했던 영광스러운 나날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밤에는.

         

       “…너와 함께했던 뜨거운 밤을 그리워하며 지새웠지.”

         

       침상에 다다른 그녀가 제 위에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니 오늘은 그때의 그리움을 해소해야겠다.”

         

       간드러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가 울린다.

         

       백우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점차 옷차림이 얇아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 것인가….’

         

       오고야 말았다.

         

       어쩌면 하고 바랐던 천마합일의 순간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얼떨결에 추석을 전부 쉬어버린 죄인입니다.

    추석은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일단 사죄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화목해야 할 추석에 불화가 생기는 바람에 여러모로 일이 많았습니다.

    뭔가 싸움 자체는 술 깨면 얼굴 붉히면서 화해할 수준이라 다행히 오래 가지 않고 술 깨고 다음날에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연휴 마무리 겸해서 서울로 올라와 호프집으로 가족끼리 갔었더랬죠.

    이제 술이 좀 들어가고 가족 중 한 분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다가 가게 에어컨 실외기에 발이 걸려 넘어지셨습니다.

    실외기가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가 좀 우그러져서 저희가 수리비를 지불하겠다 했더니 가게 사장님께서 뜬금없이 150만 원을 부르시더군요…

    실외기가 아예 고장나지도 않았는데 실외기 값도 아니고 거의 에어컨 한 대 값을 달라시니…

    그래서 난생 처음 경찰서까지 다녀왔읍니다.

    말다툼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경찰 분께서 저희쪽 손을 들어주셔서 에어컨 수리 업체 불러서 원상복귀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수리 업체 불러서 5만 원 안 되는 금액으로 수리를 끝마쳤네요…

    몇 번 말씀드린 적 있듯, 제가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게 해결될 때까지 거기에 자꾸 정신이 팔려서 글에 집중을 못 하는 바람에 오늘에서야 연재를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나름대로 공을 들여야 해서,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조금 더 이번 에피소드가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요.

    물론 제 실력이 거기까지 안 돼서 못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일은 19금 걸고, 남녀의 열락을 표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도 잘 해결했고, 그 사이에 나름대로 몸도 잘 추슬렀으니 앞으로 연재 꾸준하게 이어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단 말씀 전하며 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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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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