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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내가 학생회 부회장을?”

        

       점심 식사 이후에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나를 부른 손아름을 따라갔더니, 나에게 ‘부회장직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라는 말을 했다.

        

       아니, 대체 어떤 생각을 했길래 그런 제의를 해오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내 표정을 봤는지, 손아름이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학생회는 보통 이름만 올려두고 하는 일은 거의 없는 곳이거든.”

        

       “어…….”

        

       다른 학생회 위원이면 모를까, 손아름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아? 적어도 얘는 그 학생회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일 열심히 하는 위원’이었는데.

        

       내가 어떤 의미로 망설였는지 알아차렸는지, 손아름의 얼굴에 있던 웃음은 곧 쓴웃음이 되었다.

        

       “나는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야. 이번에 선도위원 수도 충원되었고…… 나는 선도위원장이 되었거든.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래?”

        

       손아름이 선도위원장이 되었다는 말은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위원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할 뿐이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 ‘이름만 올려두어도 되는 곳’에 굳이 나를 추천하는 이유가 뭐야?”

        

       그렇다. 이름만 올려두어도 되는 곳이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름만 올려두어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 ‘이름’이 너의 이름이면 그만큼 효과가 있을 테니까.”

        

       손아름은 학교 건물 벽에 기대서며 말했다.

        

       우리가 모인 곳은 교내 공원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가면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기야 했겠지만, 그렇다고 듣는 이가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솔직히, 자리를 피하지 않아도 우리가 뭐라고 할 권리도 없고.

        

       게다가, 지난 생일파티 이후부터 나에게 아는 척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아마 대부분은 내 초대장을 받았던 애들이겠지. 복도를 걷다가 마주치거나 식사가 끝나고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한두 사람은 꼭 나에게 말을 붙였다.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또 아니었다. 어쨌거나 내 파벌의 아이였으니까.

        

       그런 사실은 손아름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학교 건물 뒤편이었다. 정확히는, 담벼락과 유난히 가까운 건물 구석. 적어도 이곳을 일부러 오는 학생들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온 것이니, 우리 대화가 중간에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도위원에 지원한 애들, 그날 파티에 온 적 없는 애들 뿐이야.”

        

       “그래?”

        

       그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교내에서 가장 큰 파벌은 당연히 내 파벌이었다. 나머지 파벌들은 주요 인물들이 전학을 가버려서 와해하거나, 세력이 많이 줄었으니까.

        

       하긴, ‘파벌’이라고 해도 그냥 친한 애들끼리 모이는 그룹 비슷한 것이다. 나는 이전에 있던 파벌이 어떤 식으로 나누어져 있었는지, 유명한 파벌이 뭐였는지 알지도 못한다. 관심도 없었고.

        

       내가 파벌을 만든 이유도 다른 파벌과 부딪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내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아마 선도위원에 지원한 애들은 손아름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 보려는 애들이겠지. 나에게 줄을 대려니 무섭고, 내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늘이, 소희, 수아는 언제나 나와 직접 붙어있었다. 그나마 수아에게는 어떻게든 말을 거는 애들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수아가 따로 붙어 다니는 아이가 없는 것을 보면 그 시도들이 그렇게까지 효과를 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파벌’의 우두머리이면서도 정작 그룹을 이끌고 여기저기 시끌시끌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기도 했다. 솔직히 좀 쪽팔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좀 무섭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아이들이 말을 걸 수 있는 대상은 사라의 생일파티에 온 아이들 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먼저 초대받았던 아이가 손아름이다. 어떻게든 줄을 대 보려고 하는 심리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너무 뻔히 보여서 문제였지.

        

       “그러니까, 내 이름을 빌려서 그 애들을 좀 잡아보고 싶다는 거야?”

        

       “음……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손아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선도위원들을 받은 게, 학생회장이니까.”

        

       “으음…….”

        

       학생회장은 본 적이 있다. 제대로 대화라는 것을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나를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든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던, 좀 모범생같이 생겼던 그 사람.

        

       ……그리고 아마도, 원작의 공략 대상 중 하나.

        

       사실 학생회장이야말로 나에게는 엄청나게 희한한 존재였다. 뭐랄까, 하늘이랑 어떻게 엮일만한 이유가 없지 않나?

        

       아닌가? 무려 그 윤다호가 튜토리얼 취급이니, 학생회장 정도는 케이크 먹는 것처럼 쉽게 공략할 수 있기라도 한 걸까?

        

       음, 역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회장이 왜?”

        

       “그게, 그러니까…….”

        

       손아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큰 결심을 했다는 듯 말했다.

        

       “그, 회장도, 너를 괴롭히던 사람 중 하나니까. 그러면서도 아무런 일 없이 그냥 넘어가 버린 사람 중 하나였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벌이라도 내려줬으면 좋겠다?”

        

       내 물음에, 손아름은 다시 한번 잠시 고민했다.

        

       “으음, 그보다는, 그…… 아무래도 그 사람은 따로 반성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용서하고 말고는 오로지 너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나, 싶어서.”

        

       아무래도 자기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말하기가 애매한 건가.

        

       그래도, 손아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내가 대단한 처벌을 원하거나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부회장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학생회장에게 골탕을 먹이는 셈이 될 테니까.

        

       자기가 그렇게 무시하던 존재가 엄청나게 힘을 키워 나타나더니, 자기 아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버린다.

        

       그리고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하나씩 툭툭 던지면서 괴롭히는 거다.

        

       일일 드라마식 복수극이 떠오르는 광경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다.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흥미가 동하기도 했다.

        

       원래 고등학교 학생회장, 부회장은 보통 인기 투표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학생은 회장이나 부회장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대충 뽑는다. 별생각 없이 1번을 뽑은 아이들에 의해 1번이 학생회장이 되기도 하고, 발이 엄청나게 넓어서 여기저기 친구가 많은 사람이 회장이 되기도 한다.

        

       여기 이 학교의 학생회장이라면 어느 쪽일까?

        

       아마 전자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학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교내에서 더 돈 많은 사람, 더 권력이 높은 사람의 자식을 찾아 친교를 맺으려는 애들만 넘치는 곳이었으니까.

        

       ……사라,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귀찮아.

        

       역시 그렇겠지?

        

       그런데, 어차피 부회장이 된다고 해도 일하는 건 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나 휘두를 수 있는 권력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거참, 남일 말하듯 말하네.

        

       부회장 권력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어.

        

       원래 국무총리나 부통령은 기껏해야 대통령 총알받이다. 실제로 권력이 있건 없건,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 거기에 내 이름을 올린다고 해도,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으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아름을 바라보았다.

        

       손아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사실 부회장이라는 게 회장이 인가하지 않으면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돼. 만약 하겠다는 의사만 내비쳐도 회장은 충분히 압박받겠지.”

        

       그런가?

        

       확실히 그럴지도.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게. 지금 당장 신청할 생각은 없어.”

        

       “그래, 알았어. 딱 그 정도만 생각해주는 것으로도 좋아.”

        

       다행해도, 손아름은 나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기,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고 잠깐 다시 혼자 생각에 빠지려는데, 손아름이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응? 아까 거기서 덧붙일 말이라도 있어?”

        

       “어, 아니, 그 이야기는 아니고. 이번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

        

       손아름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내 양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아무리 그래도 교내에서 그렇게까지 애정행각을 보이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

        

       그 말에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지난번에 내가 포옹해준 이후로 리미트가 풀려버린 세 사람, 그리고 교내에서 우리 행적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 이 두 가지가 섞여, 요즘 하늘이와 수아와 소희는 나에게 대놓고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손아름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쪽.

        

       내 왼쪽 볼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왼쪽 팔에 딱 달라붙어 있던 하늘이가 내 볼에 뽀뽀한 것이다.

        

       쪽.

        

       그리고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내 오른쪽에 매달려 있던 수아가 내 오른쪽 뺨에 뽀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쪽.

        

       내 목덜미에, 소희의 입술이 와 닿는다.

        

       “어…….”

        

       그 광경을 보고, 손아름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아니, 그, 미안…….”

        

       나의 말에, 손아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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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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