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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준비된 노예, 아니 연구원들을 바토리에게 소개해 준 이후.

     “뭐지, 지금 이거.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바토리는 좀처럼 지금 상황을 믿지 못했다.

     “혹시 내가 환각에 빠져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 아버지가 매국 선언을 한 날로 돌아왔을 때, 며칠 동안 계속 그런 기분을 느꼈으니까.

     “막대한 예산. 세련된 연구실. 심지어 당장 마도공학 연구소에 데리고 가서 반 년 정도만 키우면 바로 연구진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준비된 공학자들까지. 심지어 다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라, 가장 혈기 왕성할 때. 거기에 더불어 연구원들 특유의 저질 체력은 지브롤터의 훈련 덕분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어디 망가지지 않을 것 같은 튼튼한 몸. 마지막으로 늦은 밤까지 연구해도 그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못할 치외법권까지…!”

     20세 미만 연구원에 대한 심야 연구 허가라는 법적인 문제는 아직 왕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나를 위해 준비된 환경이 있다고? 이거, 꿈인 거지? 솔직히 말해, 그레이 지브롤터. 너 지금 미래에서 와서 나를 이곳에 초대하기 위해 준비해둔 거지? 응?”

     “그게 무슨 미친 소리입니까.”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젠장.’

     어쩌면 그것은 바토리가 갑작스럽게 한 말에 대한 과민 반응처럼 보일 수도 있었고,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당신을 위해서 준비해둔 게 아니라, 대륙에서 가장 마도공학을 잘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영웅’을 위해 준비해둔 겁니다만.”

     “영웅….”

     “예. 영웅.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금술 마스터인 셈이죠.”

     분야는 다르지만 한 분야의 마스터, 그것도 마스터 중에서도 최강자에게 그 분야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는 건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마도공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 분야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

     노스트럼이라는 불모지에서 이렇게 지하에 몰래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불과 수 년 만에 제국 마도공학 연구소의 초임 연구원과 어떻게 비벼볼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는 것.

     

     그들이 공부한 원서와 자료 중에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쓴 책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저들에게는 재능이, 열정이, 그리고 근성이 있습니다. 마음에 든다면 제국으로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연구원을 위해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쪽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뭔데?”

     “성과 없으면 이 자리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 될 겁니다. 제국 연구소의 다른 소장을 부르든, 아니면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사람 한 명 찾아내서 10년을 보고 연구를 시키든.”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심지어 내세우는 조건도 ‘예산을 준 만큼의 성과와 능력을 마음껏 보여라’정도라고 한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거부할 명분이 없다.

     지브롤터를 증오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좋아. 그러면 뭘 원하는데?”

     “무엇이든.”

     우리는 제국의 마도공학연구자에게 기꺼이 우리가 만든 캐롤라인 생산소이자 지브롤터 마도공학 연구소를 내어줄 의향이 있다.

     “……뭐?”

     “당장 해야 할 건 당연히 ‘안전과 효율’이겠지요.”

     우리의 안전과 효율적인 승리를 위해.

     

     “아군 사상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면서, 가장 확실하게 영지전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

     “…….”

     “그것만 해결된다면, 바토리 소장의 덕분으로 우리가 쉽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바르셀 후작, 그리고 이하 제국의 수많은 폐세자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연구해도 좋습니다.”

     “…정말로, 무엇이든?”

     표정이 점차 이상해진다.

     “설마요.”

     지금이야말로, 내가 나설 때.

     “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선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뭐든지, 안 돼?”

     “뭐든지는 안 됩니다.”

     바토리 소장이 실망한 기색을 보인다.

     조금 전까지의 말과 다르지 않냐는 듯 볼을 부풀린다.

     “혹시나 노스트럼 사람들만 전부 죽여버리는 독가스 같은 걸 개발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건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이보세요. 그레이 지브롤터 도련님. 내가 그런 거 개발하려고 할 것 같아?”

     

     그러나 나의 ‘뭐든지’에 대한 선이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한 바토리 소장은 바로 그 끝을 정리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안 해.”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나를 정말 뭘로보고. 그냥 내가 바라는 건…그래, 나의 선을 미리 알려주는 게 좋겠다.”

     바토리 소장이 두 팔을 벌리며 고개를 치켜든다.

     “마법의 종말.”

     “…….”

     “마나의 재능을 타고 나는 소수의 특권계층만이 마법을 누리는 게 아니라, 전 인류가 마법을 누릴 수 있게 세상을 바꾸는 것.”

     “마도공학의 이념이기도 하죠.”

     주제가 ‘마나’라서 그렇지, 이게 다른 단어로 바뀌면 조금 미묘한 말이 된다.

     가령, 신분이라거나.

     

     ‘사실 신분도 어느정도 맞기는 하지만.’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 귀족이 될 수 있는 게 노스트럼이다.

     이미 제국은 마도공학이 퍼지면서 마법사들의 입지가 줄어들었고, 이는 왕국도 마찬가지다.

     ‘제국을 제일 싫어하는 게 왕국 마법사 집단이니까.’

     궁정마도사라는 인간이 마스터급도 되지 못했으나, 상급 마법사 하나가 작정하면 비룡을 타고 날아와서 열차에 화염구 세례를 퍼부어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전력.

     마법의 시대는 저물어가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 것처럼 아직 노스트럼의 마법사들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당대에 마스터만 없을 뿐이다.

     마스터급만.

     “어때. 우리 지브롤터의 도련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가진 기술자를 연구소 고문으로 등용할 거야?”

     “문제없지요.”

     “어머, 진심으로?”

     바토리 소장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어쩌면 나중에는 머스킷 한 방에 기사들이 쓰러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데?”

     “지브롤터의 기사들은….”

     “기사도 마스터도, 너도 나도 한 방에 죽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는데? 정말로 그런 시대가 와도 좋아?”

     “……오겠죠. 무조건.”

     올 것이다.

     햇수로 따지면 불과 7년도 되지 않아, 특수제작한 머스킷-

     ‘총신만 2m가 되는 물건을 머스킷이라고 불러야하는지도 의문이기는 하지만.’

     특수제작한 저격용 머스킷을 이용해 마스터급 사수가 2km 밖에서 방아쇠를 당겨서 암살을 하는 자도 나타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마스터급인 사람들도 간혹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그랬고, 수십 년이 지나면 마스터들도 머스킷 한 방에 죽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

     “그리고 오면 뭐 어떻습니까. 그 때는 그 때의 후손들이 그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살아가게 되겠죠.”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네 자식과 후손들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아이들의 문제죠. 아무것도 없이 맨 땅에서 어떻게 해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물려줄 거 다 물려줬는데 말아먹어버렸다면 제가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때는 다 늙어서 노인이 되었거나, 아니면 죽어서 어디 관 속에 있을 텐데.”

     “…재미있네, 정말.”

     바토리가 야릇하게 미소를 짓는다.

     “너, 진짜 노스트럼이 어떻게 되는 지는 상관 없구나?”

     “그러면 제가 허투루 말하는 줄 알았습니까?”

     “아스타시아랑 합스베르크 황제 폐하 좋으라고 계속 자기세뇌급으로 떠드는 줄 알았지.”

     “거짓된 진심을 말해봐야 다 알아차리는 사람들인데 무슨.”

     짝.

     “됐습니다. 서로의 목적이 맞는다면, 나머지는 실무입니다.”

     서로의 본심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시간.

     “우리 기사단이 세운 계획에 대하여, 혹시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알려주시죠.”

     “…기사들이 말 대신 바이크를 탄다고 했지?”

     바토리가 품에 손을 넣더니-

     “바이크 타고 정면으로 쳐들어갈 생각?”

     “예. …그런 안경은 또 어디에서?”

     “여자의 비밀.”

     곧 주머니도 아닌 곳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냥 안경도 아닌, 다소 크다 싶은 정도의 동그란 안경을.

     “혹시 마도구입니까?”

     “아니? 그냥 패션인데.”

     “…패션으로 안경 끼면 지식이 향상되고 머리회전이 좋아집니까?”

     “개인적인 연구 루틴이야. 연구 할 때 항상 눈에 뭔가가 튀는 걸 방지하려고 끼던 게 습관이 되었거든. 검사들도 평소에 허리에 검을 차고 다닐 때, 특정 위치에 놓잖아? 비슷한 거지.”

     “이해했습니다.”

     본인의 루틴이 중요하다면, 안경을 쓰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능력만 보여준다면 그만이지.

     “좋아.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건드려볼까…. 일단 바이크 있잖아. 꼭 바이크여야만 하는 거야?”

     “아니요. 바이크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적진에 침투할 수 있는 물건이면 그만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솔직히 타이밍만 잘 맞아떨어진다면, 지금 당장 기사단을 끌고 가서 전부 다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타이밍을 끌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아직, 선전포고를 하러갔던 멘테 경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일 즈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르면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

     “그리고 하나 더. 이왕이면 좀 더 시간을 끈 뒤, 왕국 내부의 겁쟁이들이 좀 더 후작령으로 모이게끔 만들고 싶습니다.”

     “고름이 모여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겠다?”

     “고름이라…. 예. 비슷하겠네요.”

     그다지 내키는 표현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갈 왕국의 건전한 방향성을 생각하면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쪽은 바토리 소장도 좀 진지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만.”

     “흐음, 뭔데?”

     “돈 얘기입니다.”

     “……나 별로 돈 얘기 안 좋아하는데?”

     바토리 소장은 단호히 손을 흔들더니.

     “그냥 줘.”

     “…….”

     내게 한 손을 쭉 뻗었다.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일단 예산부터 주지 않을래?”

     “아버지께 받으셨잖습니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단다. 그건 인생의 진리지.”

     “알고는 있습니다만, 돈을 줘야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울컥하는 이야기군요.”

     “알면, 줘. 아니, 주실래요?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네?”

     바토리 소장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두 손을 내게 쭉 내밀었다.

     어린 아이가 사탕이라도 달라는 것처럼 내미는 그 가증스러운 미소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아까 말씀드렸죠. 성과만 낸다면….”

     “돈 값 할테니까, 어서!”

     “예.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일단 가볍게, 500억?”

     “…….”

     가벼운가?

     잘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500억 정도는….”

     “이보세요, 그레이 지브롤터.”

     바토리 소장이 표정을 굳힌다.

     “탈러로.”

     “…미치셨습니까?”

     “말했잖아.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500억 탈러가 말이나 됩니까?”

     “몰라. 일단 지르고 보는 거지. 선심썼다. 50%할인해서, 250억 탈러만 줘.”

     “…….”

     너무나도 당당하게 엄청난 예산을 내놓으라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알겠습니다.”

     “어, 진짜?”

     “얼마나 모일지 모르겠지만, 한 번 자금을 끌어모아보도록 하죠. 바토리 소장이 연구하는 동안, 연구비를 마련하면서 우군을 좀 늘려볼까 하거든요.”

     “……흐음, 또 무슨 계획을 세우려고 하는 거야?”

     “별 거 아닙니다.”

     나는 지팡이를 검 대신 들으며, 바토리 소장을 향해 뻗었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나, 나는 마도공학 마스터지 너희같은 괴물이 아니거든?”

     “…….”

     그런가.

     진짜로 겁을 먹은 것 같은 모습이라, 나는 지팡이를 거두며 대신 손을 뻗었다.

     “협곡과 검의 이름으로.”

     “…기사 임명식이야, 뭐야?”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뭔데?”

     “이걸로 돈을 받을 겁니다.”

     “……??”

     “뭐,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내 정장에 새겨진 문장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면죄검,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면죄검?”

     “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면죄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니면 ‘면검부’라거나.”

     너무나도 별 거 아니지만.

     “면죄검을 산 이들에게는 훗날 지브롤터가 후작령을 상대로 이겨도, 그 책임이나 죄를 묻지 않겠다. 노스트럼의 모든 귀족 가문에 ‘지브롤터의 용서’를 팔려고 합니다.”

     “…….”

     “생각보다 잘 팔릴 겁니다, 이거.”

     내가 제일 잘 팔아치웠으니까.

     “어떤 죄는 돈으로 용서받을 수 있거든요. 좀, 많은 돈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국엔진 엑셀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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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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