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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모르는 천장이다.

       ​

       클라라는 몸을 삐거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늘 고문을 받던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길라흐가 거처하는 방도 아니다.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

       그렇다면 여긴 어디일까.

       ​

       “윽!”

       ​

       무언가에 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목 근처가 따끔거렸다. 클라라는 목을 어루만지며 신음을 삼켰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천천히 반추해나가기 시작했다.

       ​

       분명 자신은 블루베리처럼 생긴 마수에게 목을 졸렸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

       쿰쿰한 공기와, 으스스한 분위기. 오래 있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

       어쨌거나 마왕성 내부인 것만큼은 확실한데….

       ​

       “허억!”

       ​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클라라의 오른팔을 누군가가 붙잡은 건 그때였다.

       ​

       클라라는 헛숨을 삼키며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곧바로 구석으로 도망쳤다.

       ​

       “누, 누구냐!”

       ​

       쩍쩍 갈라지는 목을 가다듬으며 손이 덮쳐온 방향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

       자신을 이곳으로 납치한 마수일지도 모른다.

       ​

       설마 어둠 속에서 고문하려는 건가?

       ​

       간담이 서늘해졌다.

       ​

       “언니, 저예요.”

       ​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돌아온 건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였다.

       ​

       클라라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아니. 모르면 바보다.

       ​

       “아….”

       ​

       손가락을 튕겨 자그마한 불씨를 일으키자 생기를 잃어버린 금빛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

       제국 어느 곳에서나 흔한 금발이었지만, 늘 빗겨주던 머릿결과 고유의 체향을 알아보지 못할 클라라가 아니었다.

       ​

       “클라이스……?”

       ​

       자신을 놀라게 한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한 클라라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

       “클라라 언니, 저예요. 알아보시겠어요?”

       “클라이스니? 정말로?”

       ​

       믿을 수 없었다.

       ​

       그 블루베리처럼 생긴 마수에게 전해 듣기는 했었지만, 설마 동생이 진짜로 마왕성에 붙잡혀 있었을 줄이야.

       ​

       몇 년 만에 보는 가족의 얼굴이었다. 클라라는 참지 못하고 홍수에 잠긴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

       “클라이스, 네가 왜 여기 있니. 왜 여기 있냐고….”

       ​

       가족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하였다.

       ​

       “너만은, 이런 곳에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겨우 만났잖아요. 그런 소리부터 하실 건가요?”

       ​

       그리 말하는 클라이스조차도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오랜만에 본 언니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

       그 도도하고 기품 있던 클라라 하스펠트는 어디로 가고, 처량하고 추레한 모습의 여인만이 남아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틀림없이 자신이 아는 클라라 언니가 맞았다. 목소리며, 몸짓이며,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며.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던 클라이스가 제 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

       “언니, 보고 싶었어요.”

       ​

       자매 사이에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

       “저는 언니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이젠 꿈으로밖에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알아, 알고 있으니까. 미안해. 언니가 전부 미안해…….”

       ​

       자신이 죽으면 가문에서 더는 클라이스를 끌어줄 형제자매가 없다. 그런데도 전쟁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

       이제부터라도 몸조리에 신경 쓰자고 다짐한 클라라였다.

       ​

       “이젠 아무데도 가지 마요.”

       “응응….”

       ​

       클라이스는 클라라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머리를 파묻었다. 바깥에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동생의 어리광. 오로지 클라라만이 클라이스의 이런 일면을 알고 있었다.

       ​

       그런 클라라였기에, 오랜만에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고자 하였다. 클라라는 클라이스의 둥그스름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등을 다독여주었다.

       ​

       그렇게 자매의 포옹은 삼십 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

       ​

       **

       ​

       ​

       기적적으로 상봉한 하스펠트 자매.

       ​

       틀림없이 경축할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첩첩산중이었다.

       ​

       “이제 여길 어떻게 나가지?”

       “나가긴 어려울 거예요. 당장 나가고 싶지도 않고요.”

       ​

       도무지 도망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클라이스는 당장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나가고 싶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저는 죗값을 치러야 해요.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이 바보 같은 동생을 기다려 주세요.”

       ​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말이었다.

       ​

       죗값을 치르다니?

       ​

       몸이 자유로운 이상 한시라도 빨리 마왕성에서 탈출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텐데.

       ​

       클라이스의 반응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포착한 클라라가 질문했다.

       ​

       “누구한테 죗값을 치러? 그보다도 여긴 마왕성이잖니. 사방이 온통 마수야. 죄가 있더라도 고백할 만한 상대가…….”

       “있어요.”

       ​

       클라이스는 덤덤하게 말했다.

       ​

       “분명 마수겠지만, 마수가 아닌 사람이 있어요.”

       “언니는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 게 있어요.”

       ​

       클라라는 입을 다물었다.

       ​

       아직 두 사람은 재회한 지 얼마 안 되었다.

       ​

       그동안 동생의 사정이 어떠했는지를 알 겨를이 없었으니, 자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당장은 캐묻지 않는 것이 동생을 위한 길이리라.

       ​

       대신에 클라라는 주제를 바꾸어서 물었다.

       ​

       “그런데 여기가 어디니?”

       “주인님의 별실이에요.”

       “……주인님?”

       ​

       클라라는 제 귀를 의심했다.

       ​

       이곳은 마왕성. 클라이스가 주인님이라고 부를 만한 대상이라면 마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클라이스는 어릴 적부터 가족을 여럿 빼앗아 간 마수를 특별나게 싫어했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수를 ‘주인님’이라 부를 아이는 아닐 텐데.

       ​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해요. 주인님 말고는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서…….”

       “마수야?”

       “네. 일단은요.”

       “혹시 그 마수가 죗값을 치르느니 마느니 해야 하는 대상이니?”

       “…….”

       “맞구나.”

       ​

       의도치 않게 정곡을 찔러버렸다.

       

       클라이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실수로 들꽃을 밟아버린 순진한 아이처럼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 감정인지, 클라라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여기 마수들이 싫니?”

       

       이번에는 당연한 질문을 하는 클라라. 이는 클라이스가 세뇌나 정신지배 따위를 당하지 않았는지를 판단하려는 물음이었다.

       

       다행히도 클라이스는 클라라의 새 질문에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싫어요. 전부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런데 그 주인님이라는 녀석은?”

       “…….”

       ​

       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이건가.

       ​

       세뇌 같은 건 당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리 생각하며 클라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등 스위치를 찾아서 켜고 안쪽 문을 활짝 열어서 어둑어둑하던 방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

       “앗, 불도 켤 수 있는 거였어요?”

       “전등이라는 거야. 마수들은 발광 스크롤 대신 이걸로 밤을 밝히는 모양이더라고. 몰랐니?”

       “네. 주인님은 랜턴 하나만 놓고 작업하시거든요.”

       ​

       그 뒤로 하스펠트 자매는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잘 계시는가, 마왕성은 어떤 곳인가 등등.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침을 정했다. 그 사이 클라라가 몇 번이고 도망치자는 제안을 건넸지만 클라이스의 도리질로 인해 무산되었다.

       ​

       어쩔 수 없다. 클라라는 클라이스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

       덜컥, 하고 바깥쪽 문이 열리며 트렌치 코트를 두른 흑발금안의 소녀가 들어왔다.

       ​

       “당신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가? 아무튼, 네 새로운 주인이다.”

       ​

       클라라는 에테르의 이름을 몰랐지만,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

       “그 갈고리팔 남자와 동격인 마수구나.”

       “말조심해라. 본관은 그런 등신과는 격이 다르니까.”

       ​

       그러면서 에테르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그 뒤로 머리가 라디오처럼 생긴 삐쩍마른 마수 두 체가 나타나 하스펠트 자매에게로 다가왔다.

       ​

       “읏….”

       ​

       기괴한 모습을 한 마수들을 본 클라라는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

       이상하리만치 마수들은 공격을 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물건들을 열심히 나르기 시작했다.

       ​

       싱글 사이즈 침대 두 개. 조명 스탠드. 옷가지를 넣을 수 있는 서랍.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간이 식탁과 식기구. 1.5L짜리 생수 열 병과 물컵. 치약과 칫솔. 거울과 빗. 그 외에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생필품들까지.

       ​

       거의 살림 하나를 차리고도 남을 만큼의 가구가 몇 평 남짓한 방 안에 빼곡히 들어찬다.

       ​

       하스펠트 자매의 입이 함지만 하게 벌어졌다.

       ​

       “이, 이건 무슨…….”

       “이게 다 뭔가요? 왜 갑자기 이러시는 거죠?”

       ​

       클라이스와 클라라는 목줄까지 찬 마왕군의 노예.

       ​

       그런데 이 정도면 공녀 신분으로 있을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 생활환경이었다.

       ​

       심지어 보통 노예에겐 허락되지 않는 푹신푹신한 침대까지 제공하다니.

       ​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

       “표정에서 다 보이는군. 별다른 건 아니다. 고급 노예를 부려먹으려면 이 정도 대접은 해 줘야지. 안 그런가, 클라이스?”

       ​

       움찔.

       ​

       허를 찔린 클라이스가 몸을 떨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

       “본관의 허락 없이 바깥에 나가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해 주지. 말을 잘 들으면 노예 목걸이도 벗게 해 주고 말이야. 물론 양질의 식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류 영양사에게 주문해서 배 터지게 먹여줄 테니까.”

       “…….”

       “물론 구라를 풀거나 내치지도 않는다. 본관이 제일 싫어하는 게 실컷 써 놓고 버리는 거거든.”

       ​

       은근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에테르.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일말의 애정이나 걱정을 포함한 어느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아서, 클라라는 내심 두려움을 느꼈다.

       ​

       심지어 이 말을 들은 클라이스의 행태가 말이 아니었다. 말이 비수라도 되어 꽂히기라도 한 것처럼 에테르가 한 마디씩 꺼낼 때마다 클라이스는 땅을 뚫을 기세로 고개를 내리깔았다.

       ​

       무엇보다, 달콤한 제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뭐, 좋아. 클라이스. 자매와 같이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지?”

       “네?”

       “내일부터 새 연구를 시키겠다. 그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 제국으로 돌려보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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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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