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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

         

         

         전쟁이란 것은 지도자가 ‘요오시, 토바츠다’를 외친다고 곧장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나라들은 이미 모두 멸망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당연하게도 재화, 자원, 인력이다. 뒤로 갈수록 중요도가 떨어진다. 문제는 돈과 밥과 병장기란 뜻이다. 물론 사람은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장기 계획이 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국가는 언제나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준비하며 돈을 쌓아두는 집단이 아닌 탓이다. (그런 나라들은 이미 모두 멸망했다.)

         

         

         “여름…? 지금 여름이라 했나?”

         “예, 성하.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내가 아무리 전쟁에 무지하다지만, 지금이 농한기가 아닌가!”

         

         

         교황의 외침은 적확했다. 기본적으로 교회의 각종 성사들은 농민들이 가장 한가한 농한기에 이루어지며, 따라서 교회인들은 농한기의 기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마족과의 전쟁이 아닌 이상, 전쟁은 농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병력의 거의 대부분이 농노와 징집병인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논리다. 전쟁 한 번 하겠다고 나라를 말려 죽일 수는 없으니까.

         

         

         “성하, 알비니아의 전령이 이르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자국의 영토 내에 군사의 주둔과 통행을 허락할 수 없다고….”

         “당장 에퀴타니아의 동북부 전체를 홀로 감당하겠다는 말인가!”

         “예, 군비 지원을 제외한다면 어떤 종류의 군사적 지원도 거부하겠다고 합니다….”

         “이… 이…!!”

         

         

         교황은 머리를 잡고 비틀거렸다. 이래선 안 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마왕이 언제 도래할 줄 누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장 내일? 일주일 후? 한 달쯤인가?

         

         마왕이 도래하기 이전에 드로안과 틸레스는 무너져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국가가… 아니, 적어도 드로안이 붕괴하기 이전에 크라실로프와 협상을 마쳐야만 한다.

         

         성녀를 감쌌던 죄를 눈감아주고, 무너진 드로안과 틸레스의 영토를 할양해주어, 이 세상 유일의 ‘제국’을 건설하게 해주겠노라고. 그 대가로 마왕을 잡을 군사와 인력을 동원하라고.

         

         그 모든 조건은 단 하나다. ‘빠른 종전’. 어디서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시작될지 모를 ‘제 2의 대전쟁’을 막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이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 지금도, 타인에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있으니.

         

         그 달콤한 속삭임이 마침내 그의 마지막 인내를 끊어내기 이전에. 아직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 신성력이 없는 상황에서, 오직 의지만으로 이겨내야 하기에.

         

         그러니, 시간 싸움이다. 빠른 종전만이….

         

         

         “성하! 로렌시아의 회신입니다!”

         “…그래, 무어라던가?”

         “마녀의 거짓 예언자에게 암살조를 파견했다 합니다! 기사전력으로 열셋! 현지의 사제들 중 몇몇이 적극적으로 협조한 바, 프리첸카야 권역에 들어선 것까진 확인이 끝났습니다!”

         “그래, 그건… 잘 되었군…!!”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청년이라 했다. 신실함이 돋보이던 신학도라고. 신성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기사 전력으로 열셋이 파견되었고 사제들이 이를 지원한다면 그 청년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회유를 시도했을 것이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주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이라면 더욱이. 하지만 이젠 어렵다. 성녀의 편에 선 것이 확실한 이상, 그는 이제 비정해야 한다.

       

        주님의 뜻을 들은 청년이 성녀를 지지한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위협이다. 그를 회유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 자체가 성녀의 결백을 증명할 단서가 될 수 있다. 파트리시아, 그 아이는 워낙 영리했으므로 이 사실을 결코 놓칠 리가 없다.

         

         옳고 그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오직 빠른 종전이다. 이 세상에 어쩌면 마지막 전쟁이 될—.

         

         

        -그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지. 후후후.

         ‘닥쳐라.’

        -네 모순이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늙은 사제야.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네가 하는 행동들이 무엇이었지? 아, 그래. 그랬지. 어린 꼬마들을 어둠 속에서 죽이려는 계획들이었지!

         ‘나는 죄인이요. 나는 죄인이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아아, 또 기도를 시작했느냐. 누가 듣고 있지? 네 주가 네 기도를 듣고 있나? 걱정하지 말거라. 적어도 ‘신’이 네 기도를 들어주고 있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듣고 있노라.

         

         

         수행사제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시작하는 교황을 바라보며, 이유 모를 한기를 느꼈다.

         

         그의 몸에선 밝게 빛나는 신성력의 편린이 보였다.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확연하게. 하지만… 어쩐지 서늘하고 음산해서, 사제는 다만 경외심으로 이를 바라볼 수 없었다.

         

         주께서 우리를 벌하셨으니, 주님의 힘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리라. 사제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

         

         

         “유진을 암살하려 할 거라고?”

         “예, 형제님.”

         

         

         성녀는 궁정의 화려한 응접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여독을 풀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반은, 곧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다.”

         “…예? 제가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사제들에게 대처를 해두었으나… 프리첸카야에 있는 모든 사제들이 제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파문까지 당한 이 시점에서는 더욱이요.”

         “유진은 프리첸카야에 있지 않은가.”

         “예. 그렇지요?”

         “크라실로프는 제 영역에선 거의 완벽한 방첩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프리첸카야에서라면 더욱이.”

         

         

         작년부터 일어난 습격 사건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을 지경이고, 그 사이에 반정도 한 차례 일어났으며 타국, 타종족 할 것 없이 침탈을 겪어야 했다.

         

         방첩사령부를 직접 관리했던 엘리자베타가 편집증적일 정도로 보안에 투자한 지역이 프리첸카야다. 심지어 엘프 첩보원조차도 프리첸카야에선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대외첩보가 너무 무능해서 쉽게 알기 어렵지만, 대내첩보에 관해서 크라실로프는 마족을 포함해도 이 대륙 최강이다.

         

         

         “하지만 형제님. 제가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제는 어떤 방면에서는 방첩사령부의 요원들보다 훌륭한 첩자가 됩니다.”

         “알고 있다.”

         

         

         언젠가 회고했듯이, 사제를 의심하는 자들은 없다. 이용하려는 자들은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의심하는 자들은 없’었’다.

         

         신의 힘이 실존하는 세상에서 신을 따르는 사제들을 어찌 감히 의심하고 배격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교육 시설이 부족하던 시절부터 교회는 지식의 보고였다. 즉, 사회의 주요 식자층이 교회 인사로 채워졌었단 뜻이다. 그 시절의 전통이 남아있는 문명 사회에서 사제는 불가침의 권위를 지녔다.

         

         국경에 상관없이 존중받고, 작위와 계급에 상관없이 가장 내밀한 정보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이들. 즉, 특정 상황에서 사제들은 엘프보다 훌륭한 첩보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리첸카야에 있는 모든 사제들이 교황을 따르진 않겠지.”

         “예, 그러겠지요. 제가 파문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혼란에 휩싸였을 수는 있어도 모두가 한순간에 교황의 편에 서진 못할 겁니다. 파문자의 측근이었다는 오명과 의심을 벗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니 네가 제어하지 못한 소수의 사제들이 들여보낼 수 있는 암살자들은 그 수가 한정되어 있다.”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스물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의 인원은 반드시 방첩사령부의 눈에 걸릴 테니까.

         

         그렇다면 그 스물을 모두 기사급 전력으로 채운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떠나기 전, 그는 유진과 유리에게 언제나 함께 있으라 말한 적 있다. 암살에 대비한다기보단, 혹시 모를 상황 전반에 대처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가 부재했을 때 적어도 ‘프리첸카야’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그 둘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엔리케가 있는 이상 암살은 반드시 소수의 기습적인 단발성 타격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라면….

         

         

         “유진과 유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고작 1년 전 입학식, 용사 파티 꼬마들이 모두 햇병아리에 불과하던 그 시절.

         

         그 때에도 유진은 ‘이반’이 ‘전력’으로 투척한 돌을 ‘감지’하고 베어냈다.

         

         즉, 이미 그 시절에 사선감지를 익히고 있었다는 뜻이며, 단순히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날아드는 자갈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낼 실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

         

         

         “으—아아아아!!”

         

         

         유진은 곧장 바닥을 굴러 간신히 검로를 피했다. 눈 앞에 번뜩이는 칼날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이래서 사제를 한다고 했는데에!!”

         

         

         상식적으로 21세기에서 20여 년을 살아온 문명인이, 냉병기로 사람을 썰어재끼는 인간 도살자들과 칼을 맞대고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유진은 거의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싸우기 싫어서 신학부에 입학했고, 꼭 싸워야 할 때는 무조건 정신계 주문을 처박아 용기부여라도 해야 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과다.

         

         

         “유진!! 도망치지 마!! 진짜 나 죽는다니까!!”

         “으아아—!!”

         

         

         달려드는 칼날을 쳐내고 뒤로 물러선 유리가 도망치는 유진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적어도 등을 맞댈 수는 있어야 어떻게 싸움이 이루어지기라도 할 것 아닌가.

         

         지금 당장 보이는 적만 열 명이 넘었다. 하나하나가 초인이었으므로, 아차 하는 순간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초인과 초인의 전투는 무력의 격차와 상관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법이다. 신경반응의 극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싸움 탓이다. 어쨌건 아무리 강해도 사람 피부는 칼날보다 강하지 못하니까.

         

         베이면 다치고, 치명적인 위치를 찔리면 죽는다. 이 단순한 논리 속에서, 유리는 심지어 혹덩이를 안고 싸워야 했다.

         

         

         “제발! 정신! 차려!!”

         “누구! 마법사!! 빨리!!”

         “없어!”

         

         

         카앙!! 칼날을 쳐내고 뒤로 주춤 물러서 벽에 기댔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기사들의 눈이 형형하다.

         

         프리첸카야에서 이런 과격한 급습이라니. 예상도 못했고, 대처도 어렵다. 무장이라고는 칼 한 자루와 양동이 같은 투구…. 투구?

         

         

         “그거 뭐야?”

         “후욱— 후!”

         “유진?”

         “내 머리를 쳐!!”

         “어…?”

         

         

         유진은 투구의 바이저 아래에서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빨리! 세게 때려! 정신 나갈 정도로! 그래도 기절은 하지 않을 정도로만!”

         “이게… 무슨…? 의미가…?”

         “시간 없어! 빨리!!”

         

         

         유리는 한숨을 내쉬고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이 녀석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이걸로 전의를 다질 수 있다면 남는 장사기는 하니까.

         

         유리가 양동이처럼 생긴 투구를 쾅, 내려찍자. 유진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후우… 후….”

         

         

         숨소리가 잦아든다. 바이저의 틈으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실신하진 않은 모양이다.

         

         

        -스르릉.

         

         

         칼날이 칼집을 긁어내는 소리가 서늘했다. 유리는 미심쩍은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

         “신은 하나뿐이며, 주께서는 위대하시다.”

         “성공…했어…?”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완벽한 상단세.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예기. 폭력적인 광기.

         

         그 모습을 보며 유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녀석. <북부대공가 망나니 검술천재>라고 했지. 빙의한 소설이.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흡!
    *
    이반은 헛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았다. 온 길을 돌아오니 잠시 뒤,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진 자갈이 보였다.
    차곡차곡 정보를 분해해 재조립한다.
    -검술.
    -재빠른 몸놀림. 신속한 반사신경. 이건 아마도, 사선감지.
    -학생 수준에서 갖추기 어려운 능력이지만, 학생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EP6. 입학 첫날에 상태창이 열렸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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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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