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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어, 소명아. 딴 게 아니라 오빠 10만원만 빌려줄래? 이유가 뭐냐고? 아…, 그게….”

         

       사내는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이무기를 내려보곤 답했다.

         

       “…아이스크림 좀 사려고.”

         

       …참고로 이무기는 지금 아이스크림을 수십 개째를 먹고 있었다.

         

       하압.

         

       ‘맛있어.’

         

       차갑고 시원한데 달콤하기까지 하다니 이무기는 평생 먹어 본 적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인간의 음식이라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건만 이무기는 아이스크림 먹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다만 단점이….

         

       하압.

         

       “…아.”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무 막대기만 남은 걸 아쉽게 바라보다가 이무기가 사내의 옷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아이스크림 다 먹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더, 더.”

         

       “…후우, 아니 얌마. 너 지금 아이스크림 몇 개째인 줄 알아? 너 아이스크림 이렇게 먹다가 배탈나. 배 아야 한다고. 내 지갑은 진작에 비었고!”

         

       “…그러면 나 이제 아이스크림 더 못 먹어?”

         

       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더 못 먹는다는 생각에 이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침울해졌다.

         

       “…윽.”

         

       그런 이무기의 표정을 보고 사내는 순간 약해졌다가….

         

       “후우…,”

         

       이윽고 스마트폰 속 통장 계좌를 확인하고는 다시금 아이스크림을 무더기로 사 왔다.

         

       “옛다.”

         

       “와아-!”

         

       “대신 배 아프면 바로 말해라. 알겠지?”

         

       “응!”

         

       이에 활기찬 대답과 함께 이무기는 다시금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하려다가….

         

       “아….”

         

       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손을 멈칫했다.

         

       ‘근데 내가 인간의 음식따위 먹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그녀에게는 이무기에서 벗어나 용이 되야 한다는 사명이 있지 않은가.

         

       용이 되기 위해 하늘의 말씀을 듣고 인간의 삶을 보러 온 것이고.

         

       그래도….

         

       ‘인간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인간의 삶을 보는 일종이 아닐까…?’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머리를 끙끙 앓으며 고민을 시작하니 사내가 이를 이상하게 보고 물었다.

         

       “응? 왜 안 먹어? 배 아파?”

         

       “아…, 그게 아니라….”

         

       “배 아프면 집에 가져가서 나중에 먹어.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을 테니까.”

         

       “…….”

         

       이무기는 사내에게 아니라고 답하려다가 무언가 묘함을 깨닫고 사내에게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친절해?”

         

       “음?”

         

       “너 나랑 오늘 처음 보잖아. 근데 왜 이렇게 친절해?”

         

       이무기는 인간이 타인에게 친절한 이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 그렇게 착한 인간도 아니잖아.”

         

       “뭐 임마?”

         

       승천하기 직전 이무기는 인간의 심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눈앞의 사내는 원래 그리 선한 인간이 아니었다.

         

       “원래 착한 인간도 아닌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허, 이게 나를 언제 봤다고…. 뭐, 근데 사실 내가 그리 착한 놈은 아니긴 하지.”

         

       “근데 왜…?”

         

       “근데 왜 너한테 이렇게 잘해주냐고? 음….”

         

       이무기의 질문에 사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딱.

         

       “아야.”

         

       “그냥.”

         

       …이무기의 이마를 딱치며 말했다.

         

       “그냥?”

         

       “그래, 그냥. 사람이 뭐 착했다 나빴다 할 수 있지. 오늘은 그냥 착한 짓하고 싶었어.”

         

       “으음….”

         

       그냥 착한 짓하고 싶었다라….

         

       ‘자기 만족 때문인가…?’

         

       이무기는 사실 사람이 착했다 나빴다 할 수 있다는 사내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무기의 눈으로 봤을 때…, 인간은 그저 악한 존재였으니까.

         

       뚜르르-.

         

       “어, 뭐야. 여친한테 전화 왔네. 얌마,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 나 잠시 통화할 테니까.”

         

       “응.”

         

       “어, 누나. 무슨 일이야? …응? 어젯밤에 뭐 했냐고? …하핫,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말했잖아. 나 어제 피곤해서 일찍…, 뭐? 클럽?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클럽을 왜…, 어? 준영이 스토리 보라고?”

         

       사내는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주물럭 거리다가 이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누나, 아…, 일단 소리 지르지 말고 들어 봐. 나는 진짜 안 가려 했는데 준영이 생파라…, 누나…, 진짜 미안해. 나 무릎 꿇고 있어…! 누나 잠깐…!”

         

       사내가 뭔가 사고를 쳤나보다. 이무기는 피식 웃으며 다음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그때였다.

         

       “잡아봐라-! 아하하-!”

         

       감각이 짐승 수준을 넘어 발달한 이무기의 시야에서…, 가장 먼저 잡힌 것은 길을 건너는 아이들이었다.

         

       인간의 나이로 이제 겨우 10살 됐을까 싶은 어린아이들.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부우웅-.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말 없는 마차였다.

         

       그런데…, 마차는 아이들을 보고도 멈출 생각도 않고 오히려 비틀거리며 속도를 높였다.

         

       킁킁.

         

       ‘이 대낮에 벌써 저리 만취한 건가.’

         

       후각이 발달한 이무기의 코에서 운전자의 진한 술 냄새가 났다.

         

       역시는 역시다. 역시 인간은 악했다.

         

       인간이 악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만취한 채로 운전을 하지는 않았겠지.

         

       빠아앙-!

         

       “뭐, 뭐야 시발! 딸꾹!”

         

       “…어어?!”

         

       뒤늦게 운전자는 마차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아이들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차를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이무기 뿐이었지만…, 이무기는 구태여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인간의 생은 천기로 정해져 있으니까.

         

       하늘이 정한 천기를 거스르는 것은 그릇된 일.

         

       어린아이들이 죽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 악하기에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일뿐이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앗-!

         

       “……!”

         

       예전의 인간에 비해 요즘의 인간들은 육체적으로 둔하다.

         

       평범한 인간의 능력으로 상처 없이 저 아이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할 터.

         

       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처럼….

         

       “비켜-!!”

         

       옆에서 무릎 꿇고 있던 사내는 그것을 추진력 삼아 마차에 치이기 전 아이들에게 도약했다.

         

       퍼억-!

         

       끼이익-!

         

       “…이, 이봐-!!”

         

       이에 당황한 것은 이무기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일까.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사내는 무사히 아이들을 구해 한쪽에서 몸을 뒹굴고 있었다.

         

       “괜찮냐, 애들아?”

         

       “…네, 넵.”

         

       사내는 아이들의 상태를 한 번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내린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아오 씨…, 냄새. 아저씨 술 마셨죠?”

         

       “아…, 그, 그게….”

         

       “예, 경찰이죠? 여기 음주운전 좀 신고하려는데요.”

         

       곧이어 사내가 경찰들을 부르는 것으로 상황은 완료되었다.

         

         

         

         

       **

         

         

         

       “형, 고마워요-!”

         

       “그래, 잘 가라-!”

         

       곧이어 나타난 부모님들과 함께 떠나는 아이들을 보며 사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후….

         

       “이 봐….”

         

       이무기가 사내의 손을 잡아 당겼다.

         

       “어, 그래. 너도 얼른 데려다 줘야 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뭘?”

         

       “그 아이들 분명 죽을 아이들이었는데….”

         

       하늘이 정한 천기를 절대 바꿀 수 없다. 그것은 적어도 이무기에게 있어서는 불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방금 아이들은 분명히 방금 죽는 것이 천기였는데도 살았다.

         

       눈앞의 사내 때문에…!

         

       “분명히 죽었어야 되는데…! 하늘께서 그렇게 정하셨는데…! 어떻…! 악…!”

         

       쿵.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에 이무기가 횡설수설하니 사내가 조금 아프게 이무기의 머리를 내리치며 말했다.

         

       “얘가 재수 없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었어야 되는 아이들이라니.”

         

       “아니, 그게 아니라 운명이….”

         

       “운명같은 소리하네. 꼬맹이 주제에. 얌마, 운명같은 것은 없어.”

         

       “…뭐?”

         

       “모든 것은 다 몸으로 때워서 쟁취하는 거지. 내가 방금 몸을 날려 애들을 구한 것처럼.”

         

       사내는 그리 말하며 방금 전 몸을 날리며 생긴 종아리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아.”

         

       이무기는 마치 뇌가 트이는 것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천기는 원래 없었다.

         

       운명도…, 우연도 없다.

         

       모든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천지인(天地人) 그 속에서 조화로운 선택들의 연속이 있을 뿐.

         

       “흐읏….”

         

       “뭐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이무기가 머리를 부여 잡으니 사내가 걱정스러운 말투와 함께 달려들었다.

         

       “…어어.”

         

       이무기는 그제서야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너…, 너….”

         

       알 수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걸.

         

       그녀가 동굴에 들어가 수련을 하기 이전, 그녀가 이무기라 부르기도 뭐한 뱀이던 시절.

         

       그보다 이전.

         

       그때도 그녀는 이무기였다.

         

       뱀이기 전에 이무기였다는 게 말이 이상하지만…, 수백 년 전에도 그녀는 승천 직전의 이무기였다.

         

       그리고 그때….

         

       “아….”

         

       드디어…, 드디어 모든 것이 하나씩 기억나기 시작한 이무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그동안 수련이 부족해서 용이 되지 않던 게 아니었다.

         

       누군가를 보기 위해 그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승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눈앞에 있다.

         

       물론 그 누군가는 더 이상 이무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아….”

         

       이무기가 오롯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륵-.

         

       이무기가 사내의 뺨에 손을 뻗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야?”

         

       “…이름?”

         

       사내는 이무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달라진 분위기 때문인지 곧이곧대로 답했다.

         

       “이 연….”

         

       “연(緣)이라….”

         

       이 연의 대답에 이무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용용이.”

         

       “용용이? 아니, 무슨 이름이 그따구…, 아…, 미안.”

         

       “아니야. 나도 별로라고 생각해. 그래도….”

         

       용용이가 이 연의 뺨에서 손을 내리며 말했다.

         

       “분명한 내 이름이야.”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우웅-.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세상이 정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화아아-.

         

       용용이의 몸이 이무기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게 무슨.”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이 연은 두 눈에 모두 담았다.

         

       처음은 검은 비늘로 덮인 거대한 이무기. 하지만 이내….

         

       스스스-.

         

       검은 비늘이 벗겨지고…, 그 안에서 하얀 비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치 무지개 비슷한 오색 광채가 용용이의 몸을 덮고 뿔이 솟아난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몸이 더욱 커지고 마치 하늘이 축복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풍운이 몰려 든다.

         

       하지만 용용이는 곧바로 하늘로 향하지 않고 이 연에게 뺨을 부비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고마워, 너 덕분에 멋진 용이 되었어.]

         

       그리고는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았다.

         

       “…….”

         

       이 연은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용용이가 하늘에 솟아난 구멍에 빨려 들어가고….

         

       파앗-.

         

       세상은 다시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허.”

         

       이 연은 순간 자기가 꿈을 꾸던 것이 아닌가 했지만 그의 옆자리에는 방금 전 아이가 먹던 아이스크림 빈 봉투가 낭자했다.

         

       그 모습을 조금 멍한 눈으로 보다 이 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의 해라 그런가…, 신기한 일이 다 있네.”

         

       실제로 용이란 존재를 볼 줄이야. 그래도….

         

       “나쁜 용은 아니었던 것 같지.”

         

       그래, 확실히 나쁜 용은 아니었다.

         

       이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서 함께 있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조금 적적함이 들어 폰으로 즐겨 보던 무협 소설을 킨 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걸로 외전 또한 모두 마쳤습니다! 제 신작에도 조그마한 관심을 부탁드리며 이렇게 마지막 인사 드리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이번 용의 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Don’t Worry, I’m Just an Ordinary Bandit

Don’t Worry, I’m Just an Ordinary Bandit

Status: Ongoing
I was born as the son of a bandit in a martial arts novel. Forget the original story, I just want to live an easy life as a bandit. "Hero! Take care of the world! I'll just stay here and be an ordinary th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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