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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방학 다들 잘 보냈나요?”

    “네-.”

     

    첫 교시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들어온 교사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 그럼 모두들 책 펴세요.”

    ““아아–.””

     

    아이들의 김빠지는 듯한 야유와도 같은 소리.

    한 아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선생님, 오늘 수업해요?”

     

    하지만, 교사는 단호했다.

     

    “합니다. 67페이지예요.”

    “에엑-.”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수업을 좌지우지할 권한이 없었다.

    선생이 바라는 대로, 교육 커리큘럼이 짜여진 대로 수업을 듣게 될 수 밖에.

     

    역시 아카데미는 오랜만에 오더라도 항상 비슷한 느낌이다.

    지루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평탄한 수업, 앞에서 수업중인 선생 몰래 시시덕거리며 장난치거나 열심히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

     

    그 익숙한 모습에 루크는 가방에서 교과서 대신 연구노트를 꺼냈다.

     

    딱히 수업에 참여할 필요가 없는 루크로서는, 이 시간에 개인연구를 하는 것이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을 아는 교사들도 딱히 그런 루크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별다른 방해 없이 사색에 잠긴 루크는, 며칠 전 제라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

     

    “오랜만이네, 루크! 그동안 잘 지냈어? 머리 잘랐구나, 예쁘네.”

    “그래, 칭찬은 감사히 받겠네, 제라드. 그대야말로 잘 지냈나?”

    “나야 뭐, 항상 똑같이 지내지, 하하하.”

     

    항상 똑같이 바쁘다는 이야기이리라.

    바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도시 전체의 마력공급을 책임지는 곳이니.

     

    “그래, 그대의 노고에 거듭 감사할 따름이로군.”

     

    루크는 그런 제라드에게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건넨다.

     

    “자, 피곤해 보이는데 이거라도 마시게. 피로가 풀릴 걸세.”

    “아! 정말 고마워, 요즘 이 차가 자꾸 생각이 났거든.”

     

    보온병을 받은 제라드는 곧장 한 모금 목을 축였다.

    역시 루크가 만든 차가 효과가 직빵이라니까, 시중에 어떤 차를 마셔도 이 기분이 되지 않는다.

     

    “루크, 이거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야? 레시피 좀 알려주면 안돼?”

    “하하하, 안되네. 재료는 적지만 우리는 과정이 꽤 복잡하거든. 잘못 만들면 효과도 없고.”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이 레시피는 재료는 단순해도 조합의 방식과 과정이 꽤 복잡하고 정교해서 조금만 배합이 틀어져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쓴 물이 되고 만다.

    제라드가 아무리 마법사라고 할지언정, 연금술 능력은 별개다.

    지식보다 손재주와 마력반응에 대한 노하우가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연금술.

     

    실패 시 확률에 따라선 독성을 띄게 될 가능성도 있다.

    모든 실패의 경우를 연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

     

    그러니 알려준다고 해도 제라드가 손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그런 레시피는 절대 아니란 것이다.

     

    루크의 레시피는 보통 그런 종류였다.

    최대 효율을 위해 과정을 굉장히 세밀하게 나눠서, 레시피를 작성한 본인, 또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어야만이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방식.

     

    서드에게 알려준 ‘영혼 치료제’의 레시피 역시 그런 방식이어서, 과거 루크가 직접 건넨 레시피로 미리 단련이 된 서드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나름대로 루크가 안배를 해 두었던 일이다.

    루크는 처음부터 서드에게 제작을 직접 맡길 셈이었으니까.

    하물며 그 연금을 보조할 서클조차 없는 제라드에겐 더욱 알려줘선 안 되는 것이겠지.

     

    “그래도 정말 안 되는 거야? 나 너무 서운한데.”

    “으음……. 그럼 대신 다른 레시피를 알려주겠네. 그대도 쉽게 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정말이야? 그럼 나야 고맙지.”

     

    차를 내려본 적이 없던 자신에겐 너무 복잡한 귀찮은 방식 보다는 간단하게 우려낼 수 있는 방식이 훨씬 나은 편이긴 했다.

    루크도 그걸 알고 귀찮고 복잡한 레시피는 알려주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그건 이 차보단 조금 더 향이 강하고 쓰다네.”

     

    뭐, 비슷한 효과만 받을 수 있다면야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부드럽고 향긋한, 완벽한 밸런스가 잡힌 차가 아니라는 건 조금 아쉽다.

     

    “그럼 나중에 그 차는 상용화 좀 시켜줘. 사서 마시게.”

     

    제라드는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루크는 그 생각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음,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네.”

     

    안 그래도 지금 예르나와 다이튼이 이사를 한다고 돈이 꽤 필요한 상황인데,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나쁠 건 전혀 없다.

    항상 거리에 나가서 첼로를 켤 수도 없고, 연주를 한다고 해서 항상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또한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 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마법사들에겐 보통 ‘금전감각’이라는 것이 없다보니 그런 경험은 대부분 없겠지만, 자신은 과거에 온갖 물건을 다루는 잡화점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돈을 다루는 것 역시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금전감각 없는’ 마법사들이 가격 따위 고려하지 않고 사 모은 재료들을 관리할 때부터 길러오던 능력이다.

    물론 본격적인 상인에 비할 바는 절대 아니겠지만…….

     

    ‘옛날 잡화점처럼 시작하면 되겠지.’

     

    일단 물건을 팔고 돈을 번다는 것에 차이는 없으리라.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이야? 나를 만나러 왔다면서. 시설 견학이 또 하고 싶어졌어?”

     

    “아, 제라드. 내 연락처가 바뀌었다네.”

    “어? 그랬어? 번호가 뭔데? 전혀 몰랐네.”

     

    루크는 제라드에게 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연락처를 바꿔 연락을 받지 못 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져서 말이지. 제라드, ‘에레’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가?”

    “아, 그 문자도 못 받은 거야? 전화로 하려고 했는데, 해외에 있다고 해서 문자로 보냈는데.”

     

    그 말에 루크는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사실 문자는 잘 확인을 하지 않는다네. 별 이상한 문자가 많이 와서.”

     

    무슨 문자가 왔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면 항상 대출을 받으라느니, 뭘 가입하라느니 이상한 것들만 한가득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예르나에게 물어봐도 그저 신경쓰지 말라며, 대체 어떤 한가한 사람이 10살짜리 아이의 휴대폰 번호로 그런 것들을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 마땅한 방법은 없는 듯 했으니까.

     

    어쩌면 제라드의 문자 역시 그런 문자들 사이에 섞여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에레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었다면 지금 알려주겠나?”

    “물론이지, 잠깐만 기다려봐. 그 메일이……. 어디보자…….”

     

    제라드가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루크는 살짝 감탄을 내었다.

     

    “오호, 컴퓨터로도 편지를 보낼 수가 있나보구나. 이건 전혀 몰랐군.”

    “메일은 써본 적이 없나 보네? 집에 컴퓨터는 있어?”

    “나도 집에 컴퓨터는 있다만……. 이 메일은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지?”

    “그건 여기 계정을 만들어서 상대방의 메일 주소로 보내면 돼.”

     

    제라드의 간단한 설명에 루크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일? 주소? 그건 집 주소를 쓰면 되나?”

    “하하! 아니지. 여기에 가입하고 받은 주소를 써야지. 여기 가입하는 건 나중에 다른 어른들한테 알려 달라고 해.”

    루크는 컴퓨터라는 가상의 공간에 주소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 꽤 신기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위치라니.

    꽤 모순적이지 않은가?

    마법사로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표현이었다.

    “으음…….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회원 가입’이라면 할 줄 아는 아이가 하나 있으니 나중에 그 아이에게 부탁하면 되겠군.”

    “그래도 되고. 뭐, 아무튼. 어디보자…….”

     

    이야기를 마친 제라드는 몇 번 손가락으로 수정구슬을 몇 번 문지르더니 이내 화면을 가리켰다.

     

    “자, 이게 동화를 쓰던 친구에게서 받은 메일이야. 한번 봐봐. 이걸 찾고 있던 것이 맞니?”

    “그렇군, 어디한번 보자…….”

     

    루크는 제라드가 비켜준 자리에 올라앉아 화면을 확인했다.

     

     

    -메일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네, 제라드.

    -전화나 문자는 지금 내가 에이레스가 아니고 베리튼이라서 추가요금이 들어서, 부득이하게 메일로 보낸다.

    -소설 집필을 위해서 잠깐 여행을 왔거든. 아참, 엘프들이 술은 기가 막히게 만든다는 거 알지? 너도 나중에 베리튼에 올 일이 생긴다면 베리튼의 수제 과일주는 꼭 먹어보길 바란다.

     

    오호. 과일주라, 그래. 엘프들이 과일 주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다른 술은 별로 즐기지 않았지만, 엘프들의 과일주 만큼은 특별히 취기도 강하게 오르지 않고 달콤하여 꽤 맛이 좋았으니까.

    옛날 드레노르 지역에 가서 대접받았던 과일주의 맛을 떠올려보니 금세 침이 고인다.

     

    그때는 케일과 레니에와 함께 마셨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겠지.

     

    ‘기회가 된다면 다 함께 다시 한번 마셔보고 싶구나.’

     

    루크는 조금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며 다음 줄을 읽기 시작한다.

     

    -아무튼, 그래. 몇 주 전에 술자리에서 내게 한 말 기억하나? ‘에레’에 대해서 물어봤었지?

    -한참을 떠올려 봤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최근까지 연락을 못 했었다. 그런데 베리튼에 오니까 기억이 났어. 그건 여행중에 치매걸린 늙은 엘프한테 얼핏 들은 말이었거든. 그 땐 한 300살 되었다고 했나? 아직도 살아있는 줄 모르겠네. 아무튼 그건 엄청 오래 된 말이라고 들었어. 그 애는 대체 어디서 에레라는 말을 주워들은건지 참 궁금하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아는 건 이거니까. 알아서 전해줘.

     

     

    “베리튼? 이거 참 우연이로군. 이때 나도 베리튼에 있었는데…….”

     

    뭔가 이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루크는 이어서 수정구슬을 움직여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에레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어. 그건 말이지, ‘분신처럼 소중한 사람’을 말하는 고대어라고 하더라.

    -그건 특정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가 딸에게, 아니면 딸이 어머니에게, 뭐 그런 사이에 하는 호칭 같은 거래. 꽤 포괄적인 뜻이던데. 그 호칭은 닮은 꼴이면 죄다 써먹을 수 있어서 나이 구분은 하지 않는대.

    -내가 이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궁금하지?

    -그건 바로 300살 넘은 치매걸린 엘프 할배가 날 보고 ‘에레’라고 했기 때문이다.

    -야.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 아니, 그리고 대체 그 할배는 날 얼마나 봤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뭐…….”

     

    루크는 화면을 본 채로 굳어버렸다.

    뒤에 이어지는 그의 푸념들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고 딱 한 문장에 루크의 시선은 고정되었다.

     

    ‘분신처럼 소중한 이’.

     

     

    그것을 듣고 떠올랐다.

     

    그 말을 자신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레니에였다는 것을.

     

    “에레……!”

     

    그건 레니에의 이름의 유래이기도 했다!

    성녀로 태어난 그녀는, 여신에겐 그야말로 ‘에레’였을 테니까!

     

    맙소사, 자신이 이걸 잊고 있었다니?

    루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지? 내가 만날 수 있나?”

    “어? 어어, 뭐. 안될 건 없지만…….”

    제라드는 루크의 격한 반응에 꽤 당황했다.

    루크에겐 에레의 뜻이 그렇게 충격적인 말이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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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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