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8

        

       “흠.”

         

       진성은 나는 모르겠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이아린을 보았다.

         

       “몇 마리 이미 잡아먹었느냐?”

       “아닌데?”

         

       그녀의 태도는 당당했다.

         

       “내가 얼마나 여리고, 어? 내가 얼마나 소녀 같은 사람인데 말이야. 저런 귀여운 애들을 막 잡아먹고 그러겠어? 오라비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본 거야? 응?”

       “흠.”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본 거냐고!”

         

       진성은 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며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이아린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에서 이 악마 같은 짐승을 빨리 해치우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모르겠는데?”

         

       그는 과거에 있었던 논란이 될 법한 이아린의 발언을 꺼냈지만, 이아린은 그 논란을 무적의 카드로 회피했다.

         

       “나는 모르겠는데? 몰라. 기억이 안 나.”

         

       치트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무적의 세 문장을 사용해 진성의 공격을 회피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의 극의를 깨달은 유술의 고수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적의 회피기술은 없는 법.

         

       그녀의 치트키 같은 논리를 깨트려버릴 존재가 나타났다.

         

       “소녀 아니야.”

       “아이 씨, 깜짝이야!”

         

       배 째라는 듯 진성에게 당당하게 몸을 내밀고 있는 이아린의 옆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아린의 자매, 이세린이었다.

         

       투웅-!

         

       이세린은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둠에서 조립되어 나타난 것처럼 튀어나왔으며, 공간을 뒤바꿔서 그 자리에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레 인기척을 내며 이아린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신출귀몰한 이세린의 등장은 이아린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짐승이나 다름없는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이아린이었기에, 저렇게 갑자기 창조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 이세린의 등장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아린은 오이를 보고 깜짝 놀라 튀어 오르는 고양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고, 중력을 반쯤 무시하기라도 한 듯 공중에 붕 떠서 수영장의 옆까지 이동했다. 그리곤 미끄러운 바닥에서 용케 중심을 잡고는 간 떨어질 뻔했다는 듯 자신의 가슴께를 손으로 눌렀다. 그리곤 항의라도 하듯 크게 소리 질렀다.

         

       “야! 인기척 내고 다니랬지!”

         

       하지만 빼액 소리를 치는 이아린의 항의가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지만 이세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오밤중에 왜 시끄럽게 소리를 치냐는 듯 책망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기까지 했다.

         

       그러자 이아린은 발끈하며 손을 수영장 안에 집어넣어 물을 약간 뜨고는 보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이세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이세린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등 뒤를 점하고 그녀의 잠옷 목 부분을 검지로 잡아당겨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 사이로 자신이 떠온 물을 집어넣었다.

         

       “꺅?!”

         

       당연히 방심하고 있다가 등에 물세례를 맞게 된 이세린은 펄쩍 뛰었다.

       그녀는 등에 흐르는 물을 내리겠다는 듯 제자리에서 통통 튀었고, 다행히도 그녀가 입고 있던 잠옷은 치마였기에 물을 빼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물을 빼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들 등 뒤의 물기가 사라지진 않는 법.

         

       그녀는 축축해진 자신의 등, 그리고 물기를 머금어 젖어버린 잠옷의 등 부분의 감촉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이아린을 노려보았다.

         

       “뭐.”

         

       이아린은 그런 자기 자매의 시선에 뭐가 문제냐는 듯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자신은 정의로운 일을 행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뿌듯함마저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이세린이 욱해서 욕을 할 정도로 성질을 북돋는 표정이었다.

         

       “멍청한 이아린.”

       “아닌데? 멍청한 건 넌데?”

       “아니. 멍청해.”

       “응, 아니죠? 인기척 내고 다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거 까먹은 사람이야말로 멍청한 게 맞죠?”

       “아냐. 안 까먹었어. 무시한 거야.”

       “응, 까먹었죠? 까먹었는데 이 악물고 변명하죠? 머리가 멍청해서 그 변명도 제대로 된 게 아니죠?”

       “아냐.”

       “애초에 무인은 뇌도 발달하는데 멍청하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죠? 뇌 발달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멍청하죠?”

       “아니라니까. 그리고 뇌의 발달과 지혜로움은…달라. 너는 지혜가….”

       “응, 멍청한 사람 말 안 들어.”

         

       그리고 이세린의 욕을 시작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세린은 부족한 어휘력을 사용해서 이아린에게 타격을 주고자 안간힘을 썼으며, 이아린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는 사람을 열받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 그녀의 약을 올렸다.

         

       곧 이아린의 유치한데다가 묘하게 성질을 자극하는 말투에 이세린이 말려들었고, 그것을 깨달은 이아린은 승기를 굳히겠다는 듯 ‘나는 팰 테니까 너는 알아서 막던지 피하든지 해라.’라는 태도로 미친 듯이 그녀를 약을 올렸다.

       그렇게 이세린은 속절없이 말의 소나기에 얻어터졌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것인지 치트키를 사용했다.

         

       “오빠. 이아린, 이상한 거 배웠어요.”

       “야!”

         

       고자질.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매들끼리 사이좋게 투덕거리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성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녀는 이아린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평소에 진성에게 보이던 미약한 어색함도 보이지 않은 채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이아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샤랑 놀러 다니면서 이상한 거 배웠어요.”

       “흠.”

       “아샤랑 맨날 놀러 다니면서….”

         

       이세린은 자신이 겪었던 설움을 알아달라는 듯 입을 열어서 진성이 없는 동안 이아린이 일으켰던 사건·사고를 말하려고 했고, 그것을 눈치챈 이아린은 신묘한 보법을 밟으며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아린의 그러한 입막음 시도를 예견하고 있었던 이세린은 계약자로서의 힘을 사용해 몸을 바닥에 쑥 꺼뜨려 버렸고, 유사에 파묻혔다가 다시 솟아나는 사람처럼 수영장의 옆쪽에서 솟아났다.

         

       “사술이다, 사술!”

       “시끄러워….”

         

       이아린은 사기적인 이세린의 회피기술에 불평을 터뜨리며 발을 움직여 그녀의 앞까지 다시 이동했고, 이세린은 이번에는 이동하지 않고 그녀의 손짓을 허용했다.

         

       이아린은 자기 손끝이 이세린에게 닿자 이겼다는 듯 환하게 웃었고,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손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관절을 잡고, 그대로 꺾어서 그녀를 제압하려고 했으나….

         

       투둑.

         

       그 순간 이세린의 모습이 변했다.

       음침하고 나른해 보였던 이세린의 형상은 붉은색의 실과 금으로 만들어진 듯 노랗게 빛나는 실로 분해되었고, 이세린이 입고 있던 잠옷은 매미의 날개처럼 투명한 레이스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마치 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아린의 몸에 감겼고, 거미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끈끈하게 붙어 그녀를 벽에 찰싹 달라붙게 했다.

         

       “야! 이거 풀어!”

         

       이아린은 끈끈이에 잡혀버린 벌레가 바둥거리듯, 혹은 거미에게 잡힌 먹이가 고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듯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효과가 있어 실이 뜯어지고 레이스가 잔뜩 늘어나며 찢어지기도 했으나, 그 숫자가 만만치가 않아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이세린은 아주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멍청한 이아린이 더 멍청해졌어요. 언니 토끼한테 홀려서 온갖 짓을 다 도와주고 다녀요. 얼마 전에는 저택 옥상에 거대 얼음 조각상을 만들겠다고 빙공을 익힌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얼음 만드는데 쓸 물이 필요하다면서 간이 수영장 물을 옥상에서 채워서 옥상이 무너져버렸어요.”

       “야!”

       “게다가 러시아에서 곰이랑 음료수 먹던 게 끝내줬다면서 불법 웅담 채취 곰 농장에 쳐들어갔던 적도 있었어요. 경찰이 왔을 때 곰이랑 콜라 마시고 있는 거 보고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몰라요.”

       “이세린!”

       “게다가 또 학교에서 엘라를 꼬셔서 이상한 짓 하기도 했어요. 석유는 진짜 공룡 화석이 변한 거고,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들었으니까 플라스틱 공룡은 진짜 공룡이 아니냐면서…전시용 거대 플라스틱 공룡 모형을 엘라한테 부탁해서 위치크래프트로 움직이게 만들고 싸우기도 했어요.”

         

       이세린은 이아린이 빠져나올 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고자질했다.

       진성에게 가지고 있던 일말의 어색함도 모조리 버려버리고, 오직 자신의 혈연메이트이자 유전적으로 원수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저 짐승 같은 적의 실체를 오빠에게 알려서 타격을 주겠다는 일념만을 품은 채 말이다.

         

       “그때 엘라 꼬시는 게 엄청났어요. 우리 친구 아니냐, 특별한 사이 아니냐. 내가 너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데 그러냐…. 얼마나 느끼했는지 몰라요. 여자 꼬시는 호스트 같았어요. 게다가 엄청나게 끈질긴데다가 아샤까지 같이 합세해서 엘라는 얼마 못 버티고….”

         

       텁.

         

       하지만 그 복수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행적이 고자질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이아린이 온 힘을 다해서 봉인을 풀고 뛰쳐나와 이세린의 입을 막은 것이다.

         

       “크흠, 오라비? 배고픈데 그만 이야기하고 선물이나 좀 만들어.”

       “읍! 읍!”

       “저거 두 마리 구워줘! 알겠지?! 조금 있다가 식당으로 갈게!”

         

       이아린은 이세린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은 채 그녀를 들고 경공을 사용해 지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폭풍과도 같은 자매 싸움이 지나간 뒤 지하 공간이 적막에 잠기자….

         

       삐융?

         

       폭풍을 피해 물속에 숨어있던 카피바라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진성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듯한 얼굴로.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