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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주방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고, 셰프와 주방 보조 직원들은 지금껏 한 번에 만들어 본 적 없는 양의 요리를 만드느라 동분서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음식의 양만 늘리는 거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기존의 높은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빠르게 많이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골든 렌지에게는 충분히 그걸 다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다만.

       

       “거기 너! 우리 집 어딘지 알지?”

       “예? 옙!”

       “가서 우리 딸 좀 불러 와! 아르 님이 우리 가게에 찾아왔다고 하면 바로 올 거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골든 렌지에게 더 중요한 건, 손님들이 떠나기 전에 딸을 불러 와서 아르와 만나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의 딸은 최근에 유행하는 아르 인형을 보더니 한눈에 반해 사 달라고 졸랐고.

       

       평소에 아주 착하고, 떼를 쓰거나 하는 일도 별로 없는 딸이 뭔가를 사 달라고 하자 골든 렌지는 곧바로 아주 비싼, 그리고 매물이 별로 없어 더더욱 비싼 원조 아르 인형을 어둠의 경로를 통해 S급 미개봉 신상품 수준으로 구해다 주었었다. 

       

       -너무 귀여워요, 아빠!

       -하하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근데 이거 비싸지 않았어요, 아빠?

       -가격은 신경쓰지 말렴, 에밀리. 아빠가 우리 딸 가지고 싶은 거 하나 못 사 주겠니?

       -정말 고마워요,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야!

       

       마글렛 할머니가 제작한 퀄리티 높은 아르 인형을 받아 든 에밀리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아르 인형을 껴안았다. 

       

       매일 밤 껴안고 자는 건 물론이고, 밥을 먹을 때에도 데리고 나와서 무릎에 앉혀 놓고 먹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음식 흘려서 귀여운 인형에 얼룩 묻는다고 설득을 하자, 에밀리는 그제서야 아르 인형을 발치에 내려두었다. 

       

       그러던 에밀리는 결국 아르를 진짜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아빠, 혹시 아르를 진짜로 만나 볼 수는 없을까요?

       -드래곤을 말이니?

       -네에…. 이렇게 귀여운 아르가 진짜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보고 싶어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음, 하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보는 건 힘들지 않겠니?

       -아빠 레스토랑은 유명하니까 어쩌면 요리를 먹으러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럴 확률은 낮겠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바로 불러 주마.

       -꼭이에요…! 오늘부터 밤에 꼭 만나게 해 달라고 별님한테 소원 빌어야지…!

       

       별님에게 빌었던 소원이 효력을 발휘하기라도 했는지, 진짜로 레스토랑에 아르가 찾아온 것이었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자기 밑에 있는 보조를 빡세게 굴리는 골든 렌지라고 하지만, 사실 이렇게 집에 있는 딸을 데려오라는 사적인 심부름을 평소에 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지금 그가 자리를 비우면 요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조를 보낸 것이었다. 

       

       지시를 받은 보조도 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주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쉴 새 없이 골든 렌지의 호통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기! 지금 바로 안 꺼내고 뭐 해! 거기 넌 불 일정하게 유지해 놓으라고 말 했어, 안 했어?”

       

       오히려 주방에 있던 보조들은 딸을 데리러 나가는 보조에게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고 VIP실에 도착하자, 아르의 눈이 커졌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음식들, 그리고 셰프가 추천하는 오늘의 요리들입니다.”

       “쀼우우! 감샤합니다! 마싰겠다!”

       

       ***

       

       아까 비록 양이 적긴 했지만 더없이 맛있게 요리를 먹었던 아르는, 침만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다가 대번에 반색했다.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고기 스튜를 한 숟갈 가득 떠 먹은 아르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삐유…! 레온, 아르 넘무 행보케…!”

       “푸흣. 그래, 아르가 맛있게 먹으니까 보기 좋네.”

       

       아르는 말랑콩떡 상태로 먹느라 식탁 위에 철푸덕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고, 통통한 꼬리로 대리석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요리가 충분히 나왔다 보니, 모두들 아까는 맛보지 못했던, 궁금했던 요리들을 먹을 여유가 있었고.

       

       “와, 어떻게 요리가 하나 하나 다 맛있지?”

       “그러게. 솔직히 처음엔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나 싶었는데. 이 정도면 예약제니 뭐니 염병을 떨던 것도 좀 이해가 되네.”

       “데비, 이것도 먹어 봐.”

       

       레키온과 데보라는 서로 요리를 먹여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 씨, 이것도 드셔 보세요.”

       “앗, 네. 아아.”

       

       그 모습을 내가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실비아도 빙긋 웃으며 내 입에 고기를 넣어 주었다. 

       

       “와, 진짜 잘 먹었다.”

       “삐유우! 잘 머거따.”

       “덕분에 잘 먹었어, 아르야.”

       “고마워.”

       “쀼우! 히히히. 다둘 마싰게 머겄으면 대써여!”

       

       아르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엄청 배부르게 먹은 것까진 아니지만 이렇게 1인분 자체가 엄청 적고 퀄리티가 높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이 정도면 배 터지게 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데는 사실 배 채우러 오는 곳이 아니니까.’

       

       처음엔 나도 너무 맛있는데 양이 적어서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배가 좀 차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애초에 우리가 목적을 잘못 설정하고 온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르의 증표로 공짜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예약제인 곳에 마음대로 찾아와 들어앉기까지 했는데 수량이 제한되어 있을 재료도 마구 소진해 버리니 솔직히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다. 

       

       ‘앞으로 이런 곳에 오려면 미리 좀 예약을 하든지 해야겠어.’

       

       다들 배가 좀 부르고 나니 나처럼 이성을 찾았는지, 슬금슬금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때.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넹?”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씨 마니 먹어서 돈 내야 대여…? 황제 아조씨는 얼마든지 머거도 댄다구, 다 황실에서 낸다구 그랬는뎅….”

       

       황제를 아조씨라고 부른 탓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아마 황제를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아르뿐이 아닐까.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아! 디저트가 남아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쀼우! 디져트!”

       

       디저트라는 말에 아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응? 근데 디저트 이미 나온 거 아닌가?’

       

       딱히 시키지 않아도 전채요리가 나왔듯, 간단한 디저트 역시 우리가 다 먹어갈 때쯤에 서빙이 나와서 이미 싹 다 먹은 참이었다. 

       

       ‘애초에 디저트라고 해도 본 요리보다도 양이 훨씬 더 적어서 먹은 것 같지도 않았지만…. 여튼 먹긴 먹었는데.’

       

       뭐, 추가로 준다는데 마다할 건 없지.

       

       이미 엉덩이를 반쯤 떼었던 우리는 디저트 소리에 냉큼 다시 자리에 앉았고.

       

       “오오…. 이렇게 큰 케이크를…?”

       “이런 게 이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나온다고?”

       “쀼우! 케이쿠다!”

       

       곧 커다란 홀 케이크 하나가 통째로 우리 가운데에 놓였다.

       

       ‘이거 딱 봐도 뭔가 여기서 디저트로 나올 만한 사이즈가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랴.

       우리는 홀린 듯이 케이크를 가져다 먹었고, 케이크는 전문 제과점에서 파는 것보다도 맛있었다. 

       

       ‘생크림의 퀄리티 자체가 달라.’

       

       보통 이런 생크림 케이크는 크림이 맛있으면 술술 넘어가고, 크림이 느끼하고 맛 없으면 먹는 게 고역일 정도로 편차가 심한데….

       

       이건 그야말로 생크림째 퍼 먹고 마셔도 안 질릴 정도로 덜 달면서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거기다가 층층이 쌓여 있는 빵까지 마치 스펀지처럼 푹신하고 촉촉해, 포크로 자를 때부터 과장 좀 보태서 푸딩처럼 부드럽게 잘렸다.

       

       우리가 케이크까지 게눈 감추듯 먹는 모습을 본 직원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이어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면서 커피를 가져왔다. 

       

       무슨 무슨 지방에서 나는 커피 원두를 사용했으며 로스팅이 어쩌고 아주 오랫동안 설명을 하는데,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커피는 아주 뜨거워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셔야 했다. 

       

       그래도 한참 기다려서 마신 커피의 맛은 역시 훌륭했다. 

       

       “후우. 진짜 알찼다.”

       

       이제 진짜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덜컹!

       

       문이 열리며, 셰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셰프님이 여긴 또 왜 다시 오셨지? 

       

       음식 나올 게 있는데 빼먹었다거나 그런 건가?

       

       뭐, 그런 거면 당연히 더 먹을 수 있긴 한데.

       

       “아르…! 아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셰프의 아래쪽에서 들려 왔다. 

       

       시선을 내리니 아르 인형을 꼬옥 안고 있는 아이가 수줍은 표정으로 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저희 딸 에밀리입니다. 아르 님을 정말 좋아해서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마침 저희 가게에 오셔서 데리고 왔습니다만…. 혹시 잠시 뵈어도 괜찮을지…?”

       

       셰프는 우리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아하.’

       

       그렇게 된 거구만.

       

       나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어쩐지, 예약도 안 하고 온 손님한테 시키지도 않은 음식까지 내 오고, 여기서 안 나가는 디저트까지 나오고…. 좀 수상하긴 했어.’

       

       거기다가 엄청 뜨거운 커피까지 가져와서 시간을 끌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르는 셰프와 에밀리를 번갈아 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논이져!”

       

       아르가 폴짝 뛰어 내려오자, 에밀리는 환해진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 안녕…. 하세요…?”

       “쀼우! 안뇽, 에밀리! 편하게 아르라구 불러두 대!”

       “으, 으응! 아르야.”

       

       에밀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듯싶었다.

       

       아르는 에밀리가 들고 있는 인형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쀼! 그거 마글렛 할모니가 만든 인형 아니야?”

       “으응…! 맞아. 아빠가 구해다 주셨어.”

       “역씨! 마글렛 할모니가 인형은 지짜 잘 만들고든! 아르 처음에 가쓸 때 깜짝 놀라써.”

       

       아르는 활짝 웃으며 에밀리에게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에밀리도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어, 아르의 손을 잡았다. 

       

       “오때? 구래두 진짜 아르가 더 귀엽찌?”

       “으응! 당연하지!”

       

       에밀리는 잠시 셰프에게 인형을 맡겨 두고, 가까이서 아르를 안아 보기도 하고, 손을 잡고 말랑말랑한 젤리를 만져 보기도 했다. 

       

       아르는 하도 팬 미팅을 많이 해 봐서 그런지 이제 꽤나 능숙하게 에밀리와 놀아 주었고.

       

       에밀리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팬 미팅 시간이 지나가고.

       

       “구럼 나중에 또 바! 셰프 아조씨 요리 어엄청 잘해서 아르 나중에 또 올 고야!”

       “정말? 기다리고 있을게!”

       

       에밀리는 그새 정이 들어 헤어지기 아쉽다는 얼굴을 했지만, 그래도 만족한 듯 마지막으로 아르와 악수를 했다. 

       

       에밀리는 셰프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다.

       

       “아빠가 요리를 잘해서 아르를 만날 수 있었어요! 진짜 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

       

       그렇게 말하며 에밀리는 아빠를 껴안고 볼에 쪽, 입을 맞추었고.

       

       골든 렌지는 그런 딸을 안고 행복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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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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