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18

       “……진짜 왔구나.”

        

       나를 본 학생회장이 처음 꺼낸 말이 그거였다.

        

       “진짜로 왔죠.”

        

       뭐라고 길게 말을 붙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학생회장은 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번에는 무시하지 않으시네요.”

        

       “…….”

        

       그 말에는 뭐라고 대답할만한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일단, 왜 부회장이 되려고 하는지부터 물어보자. 이 학교 별로 좋아하지는 않잖아?”

        

       그렇다. 나는 이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이미지가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내가 이 화영고등학교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만 두고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서 ‘아 좋았던 옛날이여’하면서 다시 떠올릴 것 같지는 않다.

        

       아무런 계산도 없는 친구 관계도, 파벌이니 뭐니 하는 것도 없는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 그리울 정도로, 이 학교는 그 안까지 다 썩어빠졌으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지원해보는 거죠. 과연 제가 억지 부리는 게 어디까지 먹히나.”

        

       그렇기에, 괴롭힌다.

        

       뭐,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 아닌가?

        

       이유도 없이 상대를 마구 패는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이런 일을 할 만한 최소한의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합법이다. 부회장이 비어서 거기를 메꾸겠다고 나서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도 아니니까.

        

       게다가 무려 학생회 위원 중 하나인 선도위원장이 나를 추천하기도 했고.

        

       사실 학생회장도 학생회장이지만, 나는 그보다는 이 학교 선생들을 괴롭히고 싶다. 진짜 찔리는 선생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피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선생들에게 아무런 죄도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돈 많은 학교에 편하게 출퇴근하면서 월급 따박따박 받아 가게 하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라고는 해도, 이건 전부 다 내가 진짜로 부회장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실제로 부회장이 될 생각은 없고, 학생회장이 나를 진짜로 부회장에 올려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저기, 그…….”

        

       학생회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미안했다.”

        

       음.

        

       확실히, 미안할 만하다.

        

       학생회장은 참 드물게도, 이쪽 세상에서 ‘나에게 직접’ 잘못을 저지른 인간이었다. 나를 앞에 두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으니까.

        

       물론 사라에게 한 잘못이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뭐, 물론, 이 사람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을 뿐이겠지만, 그렇다고 지은 죄가 완전히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지.

        

       “어떤 일에 대한 사과인지 말씀해주세요.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면 제가 못 알아듣잖아요.”

        

       “……그게…….”

        

       회장은 잠깐 머리를 굴리는 듯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를 앞에 두고도 없는 사람 취급해서 미안해.”

        

       “…….”

        

       “…….”

        

       어, 끝인가?

        

       “할 말은 그걸로 끝?”

        

       “……그리고,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잘못된 것을 깨달은 뒤에는 제대로 사과했어야 하는 건데.”

        

       뭐, 이 정도만 들어도, 나는 충분히 용서해줄 용의가 있었다.

        

       그래. ‘있었다’.

        

       사실은 그 학생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매듭을 짓느니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학교생활을 할까 했었다. 사라도 그 문제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그 일을 끌고 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손아름의 제안을 이렇게 받아들인 이유도 진짜로 부회장이 될 생각이었다기보다는 그저 ‘나는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그런 사과는, 제가 부회장이 되겠다고 했기에 하시는 건가요?”

        

       “…….”

        

       그렇다. 사과할 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태도와 타이밍이다.

        

       사과할 때 사과받는 이에게 제대로 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과하면서 이유를 붙이거나, 변명을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그 사과가 진실하지 못했다는 생각만 하게 만들 테니까.

        

       마찬가지로, 타이밍도 중요하다. 잘못을 한 직후에 사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상대방이 그나마 이해해줄 만한 가능성이 있는 순간이니까. 만약 그러고도 상대의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조금 시간을 두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을 때 사과하면 용서받을 가능성이 조금은 생기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떨까.

        

       일단 타이밍부터가 글러 먹었다. 그 모든 일이 끝난 직후도 아닌, 무려 몇 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이렇게 사과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부회장이 되겠다는 말을 한 직후에 사과했으니, 그 저의가 더더욱 의심될 수밖에.

        

       태도의 경우는……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생인 학생회장이 엄청나게 심도 있고 대단한 사과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차라리 축구부 부장처럼 자의건 타의건 자기가 가진 벽을 허물고 나에게 친근하게 굴었으면 서로 사과니, 뭐니 따질 이유가 없었을 텐데.

        

       “제가 사과받으려고 부회장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학생회장은 ‘아니야?’라고 물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렸어요.”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제가 부회장이 되겠다고 한 이유는, 이 학교를 괴롭히고 싶어서예요. 그 알량한 사과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

        

       내 말에, 학생회장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있는 안경이 조금 흘러내린 것 같다.

        

       “두 글자로 줄여 말하자면, ‘복수’가 되겠네요.”

        

       물론,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다. 사실 학교 안에서의 내 위치는 무난히 이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만족한다. 이건 사라도 마찬가지일 거고.

        

       굳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그냥 무난하게 학교에 다니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그냥 입 싹 다물고 멀쩡히 학교 다니고 있는 가해자들을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더라도 이 학교에 다니는 내내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다니기를 원하긴 했다.

        

       나는 언제든지 당신들을 조질 수 있으며, 지금 당장 당신들이 무사한 것은 내가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힘은, 사람들이 딱 그 정도를 느낄 만큼이었다.

        

       뭐, 학생회장도 내가 대놓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으니, 나를 대놓고 부회장에 앉힐 생각은 들지—

        

       “드, 드리겠습니다!”

        

       “네?”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생회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팍 숙이면서 말했다.

        

       “부회장 자리는 줄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라고, 누가 보면 내가 칼이라도 들고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학생회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손아름을 보았다.

        

       이쪽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 그러니까.”

        

       “네가 하겠다면 선생들도 절대로 반대하지는 않을 거고, 지금 학생회에 남아있는 애 중에도 널 어떻게 할 수 있는 애들은 없으니까! 나와 그 애들 목숨만큼은……!”

        

       “아뇨, 아뇨, 아뇨. 잠깐만요.”

        

       나는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꾹꾹 누르며 학생회장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제가 부회장이 되겠다는 말을 받아들이겠다고……?”

        

       학생회장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서 손아름을 보았다.

        

       손아름은 명백하게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세게 저었다. 머리 위에 한 가닥 떠 있는 바보 털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러니까, 손아름과 이야기가 되어있던 건 아니라는 말이지?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그 협박이 엄청나게 잘 먹힌 모양이었다.

        

       *

        

       목숨을 빼앗을 생각은 없다고 학생회장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뭘 생각했는지 오히려 더 당황하는 바람에 일단 얼른 도망 나왔다.

        

       ……사실 저것도 다 연기고, 실제로는 하나도 겁에 질리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얼른 도망간 적이 있기는 했지.

        

       ……그랬어?

        

       원래부터 겁이 많은 성격인가? 분명히 처음 얼굴을 봤을 때만 해도 좀 거만하지만 똑똑한 이미지였는데.

        

       손아름은 회장실에 남았다. 일단 여기는 자기가 맡겠다는 모양이다. 뭐, 그래도 회장실 안에 있던 사람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얼굴을 본 사이였으니까.

        

       “사라야!”

        

       옆에서 내 팔을 홱 낚아채는 사람이 있어서 봤더니, 하늘이였다.

        

       “엄청나게 섹시했어!”

        

       이 몸으로 그런 말을 들으면 놀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는 않지만…… 하늘이가 하는 말이니까 한없이 진심이겠지?

        

       “진짜 예쁘긴 하더라. 꼬고 있던 다리가.”

        

       소희가 반대쪽 팔을 잡으면서 슬쩍 성희롱을 해왔다.

        

       그런데 사라 다리가 예쁜 건 사실이긴 해.

        

       헤헤.

        

       그리고 수아는 질 수 없다는 듯, 나의 등 뒤에서 백허그를 해왔다. 등에 수아의 몸이 딱 달라붙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저, 얘들아. 그런데 여긴 복도잖아?”

        

       그렇다. 대놓고 애정행각을 하기 시작한 이 애들은, 복도에서도 당당했다.

        

       그러니, 나의 그 말에도 당연히 나를 놓아주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사라까지 있었으면 앞도 찼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지.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